90년대까지 원전은 전체 발전량의 3분의 1 이상 차지할 예정. 그러나 종합적인 안전계획의 부재, 인력부족, 폐기물 처리 등 안전대책의 과제는 산적해 있다.
총 발전량의 22%
78년 7월 20일 경남 고리에 원자력 발전소1호기가 준공됨으로써 우리나라는 핵에너지 시대로 접어들었다. 현재 가동중인 원전은 고리에 원고력2호기와 5호기 그리고 경북 월성의 원자력 3호기 등 모두 4기이며 여기서 생산되는 전기는 전체 발전량의 19.9%를 차지한다. 건설중인 것은 모두 5기로서 원자력 6호기(고리)와 7호기(전남 영광)는 시운전 중이며 연내 상업운전에 들어갈 예정이고(4호기는 없음) 8호기(영광)는 87년 3월, 9호기(경북 울진)는 88년 9월 그리고 10호기(울진)는 89년 9월에 준공될 예정이다. 이상의 9기가 모두 가동에 들어가면 원자력 발전이 전체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7.2%에 이르게 된다.
발전용량은 원자력 1, 2, 5호기가 5백80~6백50MW의 중규모인데 비해 5호기 이후는 모두 9백50MW로서 대규모 원자력 발전소가 정착될 것으로 보인다.
원리적으로 볼 때 원자력 발전도 증기를 발생시켜 그 힘으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해 낸다는 점에서는 석유나 석탄을 쓰는 화력발전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단지 원자력 발전소에서는 석유나 석탄을 태우는 대신 우라늄의 핵분열 에너지를 이용한다는 것으로, 화력발전의 보일러 역할을 하는 것이 원전의 원자로이다.
원자로는 사용하는 핵연료, 감속재, 냉각재에 따라 경수로, 중수로, 개스로, 고속증식로 등으로 나뉜다. 우리나라는 원자력 3호기가 중수(重水)를 감속재 및 냉각재로 쓰고 천연우라늄을 연료로 쓰는 중수로(HWR)일 뿐 나머지는 모두 가압경수로(PWR)로서 농축 우라늄과 경수를 사용한다.
가압수형 원자로는 비등수형과는 달리 노심을 도는 수증기(1차계)와 터빈을 돌리는 수증기(2차계)가 분리되어 방사능을 띤 증기가 순환하지 않도록 되어 있다. 발전원리를 간단히 살펴보면 원자로 압력용기 내에서 냉각재인 물에 높은 압력을 가해 수증기가 되지 않고 높은 온도를 유지하게한다. 이 뜨거운 물을 증기발생기로 보내 2차계의 물과 열교환을 해 증기를 발생시킨다. 이 증기가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우리나라 원자로의 주공급자는 미국이다. 원자력3호기를 뺀 1호기에서 8호기까지의 6기는 미국의 '웨스팅 하우스'가, 3호기는 캐나다 원자력 공사, 그리고 원자력 9, 10호기는 프랑스의 '프라마톰'에서 들여온 것이다.
5중 격납용기로 안전하다고
고리 1호기가 가동을 시작한 이래 원전의 안전성 문제에 대해서는 심심치 않게 논의가 이루어졌지만, 체르노빌 사고와 그로인한 방사능 낙진은 원전사고가 강건너 불이 아님을 일깨워 주기에 충분했다.
체르노빌 사고를 보는 원자력 산업계와 당국의 입장을 요약한다면 우선 소련의 원자로의 기본적인 설계개념이 우리것과 다르기 때문에 비슷한 사고가 우리나라에도 발생할 가능성은 없으며, 설사 사고가 발생해도 5중 격납용기로 덮혀있어 방사능이 누출될 우려가 없다는 것이다. 또 과기처는 이 사고를 계기로 국내에서 가동되고 있는 원전의 일제 안전점검에 들어갔다. 점검결과가 아직 나오지는 않았지만 일반의 궁금증과 우려를 해소하려면 원전이 원래부터 갖고 있는 위험성과 그것을 막기 위한 안전대책의 타당성을 따져 보는 일이 앞서야 할 것이다.
원전 사고의 가장 큰 특징은 이론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고의 상한(上限)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원전의 가동에 따라 원자로에는 많은 양의 방사능이 쌓이게 된다. 예컨대 출력 1천MW의 원자로인 경우 1년 동안 가동하면 1억큐리의 방사능이 생긴다. 허용신체부하량인 ${10}^{-6}$큐리의 ${10}^{14}$배나 되는 양이다. 물론 원자로 내에 축적된 방사능이 모두 밖으로 방출된 적은 없다. 그러나 이 가운데 1%만 방출된다 하더라도 가공할 만한 사태가 일어날 것이다. 이와같은 원자로의 잠재적 위험성은 원폭투하의 경험을 제외하고는 종래의 그 어느 산업재해와도 질적으로 다르다.
한 번 일어났다 하면 전례없는 큰 피해가 예상되기 때문에 원전의 사고가 일어날 확률을 기존의 공학적 안전성이라는 관점에서 계산하는 것은 무리이다.
인간적실수의 위험은 언제나 있어
게다가 큰사고는 여러 사소한 사고로부터 시작될 가능성이 크며 많은 경우 이들은 독립적이 아니고 서로 연관되어 있다. 사고확률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요인은 인간적 실수이다. 운전자의 조작잘못 부주의 오판 등은 지금까지 사고의 중요한 원인이 되어왔다.
원전사고를 다른 재해와 구별짓는 또 하나의 측면은 고장을 탐지해 내기가 어렵고 보수가 어렵다는 것이다. 일단 운전이 시작되면 원자로와 주변기기의 대부분은 강한 방사능을 띠게 되어 직접적인 점검은 곤란 하며 특히 운전중의 점검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평상시 뿐만 아니라 사고가 일어났을 때도 사고의 성격이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간접적이고 이차적인 수단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이 간접적 수단에 사소한 고장이라도 생기면 사태의 파악에 커다란 혼선을 일으킬 수 있다. 드리마일 아일랜드 사고에서 이러한 전형적인 예를 볼 수 있다. 사고로 원자로가 과열돼 물을 퍼부어야 했다. 그런데 원자로 내의 수위는 가압기(加壓器)의 수위계를 통해 간접적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었다. 운전원이 본 가압기는 물이 가득차 있었다. 당연히 원자로 내도 물로 차있을줄 알고 조치를 취했지만 사실은 원자로의 물과 증기는 심하게 누출돼 핵연료 파손으로 줄달음치고 있었던 것이다.
원자력 발전의 경우 일반적인 공장과는 달리 일단 가동이 정지되면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도 원전의 특징이다. 따라서 고장이 발견된 경우라도 '조그만'것이라면 그대로 방치하거나 미봉적인 보수에 그치고 가동을 계속하려는 경향을 갖게 된다. 이것이 큰사고의 잠재적 원인이 될 수 있다.
심층방호의 개념
우리나라의 원전 안전대책은 대부분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기준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안전대책의 내용은 우선 각종 장치가 고장을 일으키지 않도록 운전 이전에 철저히 관리·점검하는 것과, 일단 운전중에 고장이 발생해도 안전보호장치가 작동해서 중대사고로 발전하는 것을 막는 일, 그리고 환경방사선 모니터링을 실시해 발전소 주변 주민이 받는 피폭 방사선량을 줄이도록 노력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운데 기본이 되는 것은 안전설계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세가지 수준의 심층방호 개념을 채택하고 있다. 첫째 수준은 사고의 발생을 방지하는 목표 아래 원자로가 고유한 안전성을 갖고 신뢰성을 높이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안전설비계통은 같은 것을 중복 시설하며, 한 계통의 사고가 다른 계통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기계적·전기적으로 상호 분리한다.
그 다음 수준은 사고의 확대를 막기 위한 설계로서 안전보호계통, 원자로 정지계통 그리고 비상노심냉각계통(ECCS)으로 이루어 진다. ECCS는 원자로의 안전설비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서, 원자로에 큰 사고가 생겼을 때 핵연료의 계속적인 반응을 막고 연료와 피복재가 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붕산수를 노심으로 주입, 노심을 냉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심층방호 개념의 마지막 수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사고의 영향을 완화시키고 방사성 물질의 확산을 막기 위한 것으로 격납시설, 격납용기 냉각계통 그리고 비상 개스배출계통으로 구성된다.
방사성 물질 혹은 핵분열 생성물이 외부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차폐방벽은 다섯가지가 있다. 가장 안쪽에 우라늄 펠레트와 피복관이 있고 다음에는 압력용기가 이것을 감싼다. 밖에는 격납용기와 원자로 건물이 차폐 역할을 하게 된다.
'절대적 안전' 있을 수 없어
세계의 여러나라가 위에서 본 것과 같은 안전장치를 겹겹이 함에도 불구하고 대형사고가 빈발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우선 안전설비의 기본가정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원자로 안전설비의 기본개념은 다중(多重) 방벽을 쌓고 최소한 이들이 사고시 동시에 작동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는 가정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TMI사고에서 보듯이 각 안전설비에서 조그만 고장이 연속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은 언제라도 있으며, 이것이 안전설비의 본래기능을 충분히 무력화시킬 수 있다.
다음에 안전설계의 바탕이 되는 공학적 자료의 신뢰도 문제를 들 수 있다. 이 문제는 다시 말해서 현재의 과학기술 수준이 원자로의 '절대적 안전성'을 보장할 만한 수준에 와 있느냐는 것이다. 미국의 경험을 볼 때 답변은 부정적이다. 미국원자력위원회의 보고에 따르면 원자력 사고의 원인중 설계불량과 기기의 고장이 45%에 이르며 주목할 만한 사실은 사고의 원인조차 파악 못하는 경우가 원자로 사고의 20%를 점한다는 것이다.
원전 안전성의 '아킬레스 건'이라 할 비상노심냉각계통(ECCS)이 바로 그 예이다. 전문가들은 ECCS가 '작동하지 않는 경우는 없으며 작동하는 경우는 언제나 본래의 기능을 수행한다'고 믿을 공학적·기술적 증거는 없다고 지적한다.
몇년 전 미국 '아이다호'주 국립원자로 시험소에서 행한 50MW급 가압경수로 ECCS 실험에서 중대한 결함이 발견되어 큰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이 실험에서는 1차냉각수의 배관이 절단돼 냉각수가 상실되는 사고를 가정했는데, 이때 원자로 용기에 주입된 긴급노심냉각수는 수증기의 압력 때문에 과열된 노심을 통과하지 못하는 예기치 못한 현상이 나타났던 것이다. 원인을 분석한 결과 ECCS 설계가 대형 실용규모에서의 실험에 근거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소규모의 축소실험장치와 컴퓨터를 이용한 가상적 묘사(Simulation)에서 얻어진 자료를 확장(Scale up) 이론에 적용해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란 것이 밝혀졌다.
안전대책에 소홀하다는 지적
지난 84년 환경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고리 주변 해역이 방사능에 크게 오염돼 해수의 방사능 오염치는 국제원자력기구의 허용치보다 평균 1.4배, 최고 2.98배 높았고 온배수의 영향으로 생태계 교란의 조짐이 보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원전사고의 자세한 내용이나 환경에 미친 영향에 관한 공표된 자료는 거의 없는 형편이다. 모두 사고는 아니겠지만 지난 8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원자로 발전정지사례가 1백22건 일어났다는 사실로부터 문제를 간접적으로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워싱턴에 소재한 개발도상국정책연구소는 지난 80년 '한국원전, 환경 및 안전요인 등에 의문점' 이라는 보고서에서, 부산에서 20마일도 안떨어진 고리에 4개의 원자로가 집중배치되는데 대해 우려를 표하고 만일 이들중 한군데서라도 큰 사고가 나면 50마일 내의 18개 미육·공군기지가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한국원전의 안전대책에 관해서는 보다 포괄적인 보고서가 원자력 자문관이자 전제네랄일렉트릭 사장인 '살로몬 레비'에 의해 작성되었다. 세계은행과 한국정부의 위촉을 받아 2차의 현지연구를 바탕으로 완성된 이 보고서에서 '레비'는 '한국의 대규모 원자력 발전 계획에는 안전과 건강 그리고 방사선 피폭 가능성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고 결론짓고 있다.
폐기물 임시처리의 위험
'레비'는 우리나라 원전 안전대책의 헛점으로서 통합적이고 완전한 안전계획의 미비, 미국 TMI사고에 대한 구체적이고 세밀한 대응 부족, 방사선 폐기물의 저장과 처리를 위한 포괄적 계획이 입안되어 있지 않음, 훈련된 인력부족과 자질결함, 미국내 원형로(reference plant)가 없는 원전이 4기나 있음을 들었다.
보통 원전건설에 10~14년 걸리는데 비해 우리는 7년이 고작인 것을 보더라도 안전도 보다는 공사스케줄을 당기는데 더 주안점이 두어졌다고 보여진다. 이것은 원전 건설비용이 대부분이 미국 수출입은행 등의 차관으로 충당되기 때문에 외채를 최대한 활용하려는 압박이 작용했기 때문이라 한다.
방사성 폐기물 처리의 문제는 아직도 기술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많은 원전의 가장 큰 골치덩이 중의 하나이다. 중·저준위 폐기물만 해도 작년에 1만4천 드럼에 달했고 2005년이 되면 그 양이 40만 드럼이 될 전망이다. 현재 방사성 폐기물은 임시저장되고 있는 실정이며 종합처리시설은 아직 완공되지 않고 있다. 앞으로 수명이 다한 원자로 폐기(또는 해체)의 문제와 함께 방사성 폐기물 처리는 원자력 안전대책의 큰 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원자력 인력의 자질향상은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다. 인력확보와 훈련의 내실화가 이루어져야겠지만, 그보다 앞서 모두 영문으로 작성된 운전절차가 한국어로 되어야할 것이다. 운전자 훈련의 상당한 시간이 영어를 이해하는데 쓰이는 일은 시급히 없어져야 할 것이다.
그 밖에도 고리원전지역이 지진발생이 가능한 단층권이라는 서울대 지질학과팀의 연구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안전대책 수립에 감안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원전사고의 특징은 그 빈도가 아니라 피해의 광범함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