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발전소에서 최악의 사고라고 일컬어지는 '멜트 다운'이 체르노빌에서 일어났다. 전세계를 죽음의 재 공포에 빠뜨리고 원자력 산업계의 앞날에 먹구름을 드리우게 한 체르노빌 사고의 베일을 벗긴다.
지난 4월 26일 새벽, 소련의 대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에프'는 흑해에서 불어오는 훈훈한 봄바람과 함께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소련 제3의 도시인 키에프의 시민들은 다음날인 일요일 그곳 경기장에서 벌어질 축구 경기구경에 벌써부터 마음이 들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때 키에프 북쪽 1백20km 떨어진 곳에 있는 체르노빌에서는 32년의 세계 원자력발전 사상 최악의 사태가 싹트고 있었다. 83년이래 가동을 하고 있는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의 네번째 원자로의 핵심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4월25일 이었다. (다음은 이 사고의 진행과정을 가상해 본 것이다)
갑자기 원자로의 우라늄 연료 막대를 식혀주던 냉각수가 돌기를 멈췄다. 뒤에 소련 당국은 사고의 원인이 '사람의 잘못'이라고 밝혔으나 파이프가 터진 것인지 또는 물을 보내는 밸브가 작동하지 않았던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1백만 KW의 발전용량을 가진 이 원자로는 오늘날 서방 세계에서 널리 쓰이는 있는 원자로와 두드러지게 다른 점이 있다. 서방세계에 널리 보급되어 있는 가압수형경수로는 원자로의 중심부인 노심(炉心)에 보통 물(경수)을 순환시킨다. 이때 물은 노심에서 일어나는 핵의 연쇄반응을 조절하는 중성자의 감속재 구실 뿐 아니라 노심에서 발생하는 많은 열을 연교환기로 옮겨 2차 수증기를 만든 다음 터빈을 돌려 발전한다. 체르노빌 원자로의 경우는 물 대신 흑연을 감속재로 사용하고 또 노심에서 끓은 물이 수증기가 되어 막바로 터빈을 돌려 발전하게 되어 있어 이것을 흑연감속비등수형(BWR)이라고 부른다.
냉각체계 이상이 원인
아뭏든 체르노빌 원자로는 1천 7백의 흑연 블럭으로 둘러싸인 1천6백61개의 우라늄 연료봉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노심을 식혀주는 냉각재가 없어지자 연료봉은 재빨리 과열되어 1천9백27℃까지 올라갔다. 이런 높은 열에 연료봉 장치를 둘러싼 지르코늄합금과 압력관이 녹아내리고 주변의 흑연을 과열시켰다. 그래서 온도는 2천8백16℃로 치솟았으며 우라늄 연료까지 녹기 시작했다. 이 원자로는 비상시 물에 잠겨 자동적으로 운전이 중단되기로 되어 있을지 모르나 그런 장치를 가동하기에는 벌써 때가 늦었다. 온도가 더욱 올라가면서 남아 있던 물이 초 고온의 수증기로 바뀌어 버렸고 이 수증기는 가압관의 벽을 타고 새어나와 흑연과 우라늄 연료와 지르코늄과 반응해서 폭발성이 매우 높은 가스를 만들어 냈다. 이 가스는 몇시간이나 축적되어 있다가 압력관에서 방출된 산소와 합쳐 마침내 폭발을 한 것이다. 이때 4월 26일 토요일이었다.
이 폭발로 원자로를 수용했던 건물은 박살이 났고 노심은 쩍 벌어져 강력한 방사능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체르노빌 원자로는 이런 경우에 대비한 보호용 격납구조가 없었기 때문에 방사능은 마음대로 공기중으로 흘러나갔다. 한편 부서진 흑연벽돌은 흡사 거대한 석탄더미처럼 타기 시작했다. 이런 불은 물을 가지고는 끌 수 없다. 물은 흑연과 반응해서 불에 탈 수 있는 일산화탄소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오히려 불길을 부채질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소련당국은 이 재해를 수습해 보려고 재빨리 움직였다. 헬리콥터를 동원하여 많은 양의 납과 모래와 중성자흡수 붕소를 원자로 위에 뿌렸다. 그러나 이런 방법으로는 불을 잡을 수 없었으며 체르노빌의 불은 계속 타올랐다. 한편 소련당국은 사고지점을 중심으로 직경 18마일(28.8km)의 동그라미를 그려 체르노빌에 대한 접근을 일체 금지시켰다. 전문가들은 헬리콥터와 비행기로 현장을 조사하는 한편 부상자들을 위해 의료반이 파견되었다. 소련 정부의 에너지 문제의 대변인인 '보리스 셰르비나'부수상이 일단의 과학자들과 함께 현장에 도착하여 본 재해의 실상은 극영화 '차이나 신드롬'의 참상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심각한 것이었다. 흔히 원자로의 노심이 녹아 내리면 많은 방사능 물질들이 땅속 깊이 침투하는 것인데 체르노빌의 경우는 흑연이 타면서 산소를 빨아들인 뒤 방사성동위원소를 공중에 마구 내뿜어 댔다. 그중의 일부는 이웃의 '키에프'시의 수원지로. 흘러 들어가는 프리피야트강을 틀림없이 오염시켰을 것으로 보인다. 약5만명으로 어림되는 체르노빌 시민들은 모두 철수 했을 뿐 아니라 인구 2백50만의 키에프 시도 철수설에 커다란 혼돈에 빠졌다.
몇 세대 동안 폐허가 될지도
문제는 체르노빌 사고의 피해가 앞으로 오랜 세월을 두고 여러분야에 걸쳐 파급될 것 같다는데 있다. 원자로에서 뿜어낸 방사능은 바람에 실려 조용한 죽음의 길을 인도할 것이다. 체르노빌 사건이 발생한 처음 몇시간 내의 치명적인 형태의 아이오다인(옥소)과 세슘이 대기속으로 방출되었다. 이것은 고도의 위험성을 가진 다른 방사능 배출물질을 수반하고 있었다. 이 방사능 구름은 처음에는 소련에서 가장 뛰어난 농장지대인 우크라이나지방 일부상공에 떠돌아 다니다가 북쪽 스칸디나비아 지방으로 이동했다. 주말에 이르러 이 불길한 방사능 장막은 동부유럽을 가로질러 지중해 연안까지 번져나갔다. 이 방사능의 장막이 어디까지 번지고 또 누구에게 피해를 입힐 것인지? 그것은 오로지 변덕스런 기상패턴에 달려 있다. 그래서 당국이 위험은 적다고 보증을 해도 수백만의 사람들이 며칠이나 몇주일을 불안에 떨었다.
그러나 가까운 거리에서는 방사능을 가진 불기둥은 치명적일 수 있다. 소련 당국이 상세한 내용을 밝히지 않고 있어 건강에 얼마나 많은 피해를 주었는지 추정하기 어려우나 3-4마일 거리에 있었던 희생자들이 생존할 수 있는 기회는 50대 50이 되지 않을까 하고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의 방사선건강학교수인 헨리 와그너는 추정하고 있다. 사고지점에서 5-7마일 내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메스꺼움이나 그밖의 증세를 경험하겠으나 곧 죽지는 않을 것 같다. 사고장소에서 60마일 내에 살던 사람중에는 앞으로 30년 동안 백혈병이나 그밖의 형태의 암으로 죽는 사람의 수가 늘어날 것이다. 2백마일이상 떨어진 스웨덴이나 동유럽에서는 가슴을 한두번 X선에 노출되었을 정도의 방사능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체르노빌을 둘러싼 이웃 땅에는 더욱 심각한 피해를 줄 것이다. 이 곡창지대의 사방60마일은 오염된 표토를 제거하지 않는 한 수십년간 심한 오염상태로 남아 있을 것같다. 불길이 뿜어 낸 세슘137과 스트론튬90등의 방사능 입자는 매우 느릿하게 붕괴하기 때문에 땅에서 완전히 없어지려면 넉넉잡고 수십년은 기다려야 한다. 이 보다 짧은 수명의 아이오다인 131과 함께 이 방사능 물질들은 사람과 곡물과 가축에 짧게 또는 장기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남 캘리포니아대학의 화학교수인 제임스 워프는 인접지역의 경우 몇세대 동안 철거해야 한다고 해도 놀랄 것 없다고 말하고 있다.
관료주의에 묵살된 경고
모스코바 당국은 소련의 핵발전소가 흠잡을 수 없는 최신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2월호의 '소비에트 라이프'라는 영자출판물에서 우크라이나 동력상 비탈리 스클리아로프는 바로 체르노빌 핵발전소에 언급하면서 "핵심이 녹아 내리는 확률은 1만년에 한번이다"고 자랑스레 말했었다.
그러나 서방 전문가들은 체르노빌에 있는 4기의 거대한 RBMK-1000형 원자로는 여러모로 보아 시대에 뒤 떨어진 원자로라고 지적한다. 체르노빌의 원자로는 1942년 엔리코 페르미가 시카고대학 스태그 필드에서 세계 최초의 핵 연쇄반응을 일으키는데 사용했던 원형 원자로의 일부 설계와 같다. 이 두개의 로는 핵반응을 조절하는데 흑연을 사용했다. 현재 소련의 원자로는 거의 반이나 감속재로 미국처럼 물을 쓰는 것이 아니라 흑연을 사용하고 있다. 1954년 오브닌스크에서 처음으로 가동한 이래 소련의 원자로는 지난 30년간 변한 것이 없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이런 낡은 기술을 사용하는 것 외에도 소련의 엔지니어나 과학자들은 서방에 비해 안전면에 몹시 소홀하다고 알려졌다. 미국 시카고 대학의 엔리코 페르미연구소장 로버트 색스는 소련의 안전정책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안전에 허술한 이런 원자로를 가지고 그동안 큰 사고없이 발전을 해왔다는데 놀랄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소련내에서도 원자로의 안전에 대한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키에프에서 발간되는 간행물인 '리테라투르나 우크라이나'지에 약 한달전에 실린 "이것은 개인문제가 아니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체르노빌 근처에 사는 류보프 코발레브스카라는 저자는 건설의 질에 '결함'이 있다고 지적하고 매 입방미터마다 강화 콘크리크의 신뢰성을 보증함으로써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고 요구 했다.
그렇다면 소련의 과학자들은 체르노빌형의 원자로의 설계가 잠재적인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만약 알고 있었다면 소련 지도층은 무슨 이유로 이런 형의 원자로의 건설을 그대로 밀고 나갔을까? 1973년 이래 런던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는 소련 출신의 생화학자 조레스 메드베덴(60)은 소련의 핵에너지 사업의 역사를 되돌아 볼 때 소련 과학자들은 체르노빌 모델의 결함을 잘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비쳐준다고 말하고 있다. 소련 최초의 소규모 (5천KW)의 원자력 발전소는 1954년 '니콜라이 돌레잘'교수가 설계했다. 이것은 당시 소련 기술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그러나 그 뒤 새로 건설된 원자력 발전소는 단순히 이 최초의 규모를 늘려서 설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바꿔 말해서 위험도도 그만큼 늘어 났다는 것을 말한다. 더우기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새로 건설하는 원자력 발전소의 위치를 소련의 유럽쪽 주요도시 근처로 결정했다.
'돌레잘'교수는 1977년 이런 결정을 반대하는 캠페인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그는 소련의 민간과 군사용 원자로의 크고 작은 사고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연료의 저장과 운반의 안전문제를 제기하면서 원자로를 인구가 많은 곳에서 벗어나 시베리아에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소련 과학자들은 이런 것은 모호한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출판될 수 없다. 그래서 그의 경고는 분명하지 못했으며 암시적인 표현에 그쳤다. 돌레잘과 같은 과학자들의 권고는 전능한 관료주의에 의해 묵살당했다. 그 이유는 정치적인 것 외에도 경제적인 측면도 있었다. 소련정부는 원자로에서 나오는 남아도는 열을 빌딩 난방에 사용한다는 데 높은 우선권을 두었으며 따라서 원자로는 도시근처에 자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노동력에 관한 문제가 있었다. 아무나 가기 싫어하는 시베리아보다는 소련의 유럽지역에서 원자로를 건설·유지할 숙련노동자를 찾는 것이 훨씬 쉽다.
특히 핵 과학자들은 원자력 시설에서 발생한 가장 사소한 사고라도 완전한 기록을 해 두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소련 지도층이 아니라도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을 제한하는 요인이 도사리고 있다. 소련 시스템에서는 이런 저런사고를 공산당 정치국에 보고하는 관료는 바로 그 사고가 난 원자로 건설을 책임졌던 관료들인 것이다. 사고 지역과 정부와의 독립된 커뮤니케이션 라인이 없는 것이다.
깊어질 핵에너지 불신
체르노빌 사고 여파는 서방측의 원자력 산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에너지의 공급과잉상태와 반핵운동으로 고전하고 있는 서방의 원자력산업계는 이번 사건으로 더욱 어려운 입장에 빠져 들어 갈 것으로 보고 있다.
웨스팅하우스사의 제임스 무어 발전시스템 담당 부사장은 "소련것은 시속 1백마일로 달리는 오픈 카에 매어 둔것이라면 우리것은 전차속에 넣어 시속 30마일로 달리는 것과 같다"고 원자로의 안전성을 비유하고 있다. 그러나 체르노빌사고는 핵에너지에 대한 일반의 원천적인 불안을 재연시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70년대의 유류파동으로 자극을 받아 과잉건설을 했던 미국은 이제 용량이 넘쳐 재래식이건 원자력이건 발전소의 건설해약사태를 빚었다. 새로운 세대의 핵발전소 건설을 의욕적으로 모색하고 있던 영국은 체르노빌 사고의 영향을 받아 건설허가는 늦어질 전망이다. 네덜란드 내각은 "소련의 사고 원인을 완전히 분석하고 이해할 때까지는 새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위해 단 한번의 삽질을 해서도 안된다"는 신문들의 논조를 받아들여 2개의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위한 토의를 보류하고 특별 안전조사를 한다고 발표했다. 40억달러의 연료 재처리공장 건설 계획을 밀고 있는 서독 정부는 체르노빌 사고를 계기로 다시 기세를 올리고 있는 반핵그룹에게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원자력 발전에 전력 생산의 65%를 의존하고 있는 프랑스의 경우는 아무 탈없이 체르노빌의 여파를 극복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에는 반핵운동이 없으며 원자력 발전소를 자랑으로 생각하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또 전력의 26%를 원자력 발전에 의존하고 있는 일본은 다른 천연 에너지 자원이 없기 때문에 원자력의 장래는 안전하다고 보고 있다.
한편 미국에서는 현재 건설중인 27기의 원자력 발전소의 운전허가를 줄 것인가의 여부를 둘러싼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새로운 안전규제를 이미 운용중인 1백개 원자력 발전소에도·적용해야 한다는 문제도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유럽 기업들의 원자력 발전소 수출도 핵에너지에 대한 불신이 번지면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원자력 산업계는 체르노빌 사고가 그들 업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그 영향이 얼마나 심각할 것인가에 대해서만 의견이 다를 뿐이다.
체르노빌 사고는 많은 오염물질을 바깥세계에 마구 뿌려 많은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했을 뿐 아니라 서방 원자력 산업계 앞날에도 먹구름을 드리우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