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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랙탈 차원에 따라 약물 효과적으로 퍼뜨려

근육주사는 맞고 나서 약물이 잘 퍼지도록 문질러야 한다. 하지만 혈관에 맞는 주사는 문지를 필요가 없다. 오히려 문질렀다가는 시퍼런 멍이 들기 마련이다. 조직마다 특성이 달라 약물이 퍼지는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윤휘열 충남대 약대 교수팀은 약물이 혈류를 타고 퍼지는 모습을 프랙탈 확산모형으로 분석해 조직에 따라 약물이 어떻게 퍼져 온몸을 순환하는지, 또 어떻게 몸 밖으로 나가는지 연구하고 있다. 특히 약이 몸속에서 효과를 발휘하려면 특정 부위에 도달해야 한다. 연구팀은 혈관이 가까운 부위는 약물이 아주 빨리 퍼지지만, 혈관과 먼 조직의 깊숙한 부분은 약물이 아주 천천히 퍼진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이 약의 효능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연구팀은 조직별로 약물이 퍼지는 속도의 차이가 시간에 따른 약물의 혈중 농도 변화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시뮬레이션으로 관찰했다. 그 결과 프랙탈 차원이 높아짐에 따라, 약물이 조직 내로 퍼지는 속도가 크게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를 역으로 이용하면 조직별로 프랙탈 차원이 얼마나 높은가를 파악한 뒤 그에 따라 약물이 확산하는 정도를 조절하면 효능을 훨씬 높일 수 있다.


생체리듬 속 프랙탈차원이 병을 알려

심장박동이나 뇌파, 심지어 걸음걸이에서 나타나는 프랙탈 리듬이 어떻게 깨졌는지 분석하면 건강에 이상이 생겼는지 알 수 있다. 언뜻 반대일 것 같지만, 심장박동이나 혈압, 맥박은 건강한 사람일수록 시간 간격이 일정하지 않고 불규칙적이다. 주변 환경이나 신체 조건이 달라질 때마다 심장이 순간적으로 대응해 온몸에 혈액을 보내는 속도를 조절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혈관질환이 있으면 이상적인 프랙탈 리듬에 가까워져 프랙탈 차원이 높아진다. 뇌파 역시 뇌의 상태와 기능, 위치에 따라 프랙탈 차원이 다르다. 체시계열에 나타나는 프랙탈을 연구한 신정규 ‘래블업’ 대표는 “뇌 질환이 있거나 의식 상태가 달라지면 뇌파의 프랙탈 차원이 크게 낮아지거나 높아진다”면서 “특히 의식을 잃었을 때에는 뇌파가 단순해지거나 무작위성이 크게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특성을 활용하면 시간에 따른 의식 수준을 판별하거나, 수술 중 마취가 어느 정도 됐는지 알 수 있다. 프랙탈을 활용해 수술 중 각성을 막는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
 



 
폐에 뚫린 구멍 크기의 분포에서 프랙탈 찾다

황정은 서울아산병원 의생명연구소 연구원은 만성폐쇄성폐질환을 정밀하게 진단하고 치료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이 질환에 걸리면 기관지에 염증이 생기고 폐에 구멍이 뚫려(폐기종) 폐기능이 떨어지면서 숨이 차고 일상생활이 힘들어진다.

전세계 사망원인 4위일 만큼 흔하지만, 폐기종 초기에는 자각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아 조기 발견이 어렵다. 얼마나 빨리 진행될지 예측도 쉽지 않다. 게다가 한번 망가진 폐포는 되살리기가 어려워 떨어진 폐기능을 되돌리기도 어렵다. 폐기종이 심각하게 진행된 환자는 폐 이식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데, 조건이 맞는 기증자가 턱없이 부족한 데다 대개 폐를 이식해줄 수 있는 뇌사환자는 오랜 중환자실 생활로 인해 건강한 폐를 가진 경우가 드물다.

황 박사는 폐가 프랙탈 구조를 띤다는 점에 착안했다. ‘그렇다면 폐기종의 분포도 프랙탈을 따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자동화 알고리즘으로 폐기종의 크기와 개수를 분석했다. 그리고 구멍의 크기 별로 개수를 센 다음 그래프를 그려봤더니, 멱함수 법칙을 따른다는 결과가 나왔다. 멱함수 법칙은 프랙탈의 대표적인 특성 중 하나다. 폐의 부풀기가 다른 CT 영상 세트들을 분석한 결과, 구멍 크기는 달라졌지만 멱함수 그래프의 기울기는 같았다. 또 사람마다 기울기는 달랐지만 모두 멱함수 법칙을 따랐다.

프랙탈을 활용하면 폐기종 환자의 몇 년 뒤 사망위험도 알 수 있다. 황 박사는 폐기종 환자의 폐에서 건강한 부분의 프랙탈 차원을 계산했다. 그 결과 폐기종이 덜 진행된 폐일수록 프랙탈 차원이 높았다. 구멍이 상대적으로 적어 불균일하고 복잡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폐의 프랙탈 차원이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 비해 10년 뒤에 살아 있을 확률이 높았다.
 


 
치료에도 이용할 수 있다. 황 박사는 “가까운 미래에 폐기종을 치료하는 데 각광받게 될 기술이 바로 줄기세포를 활용한 바이오프린팅”이라면서 “프랙탈은 훌륭한 생체 설계도”라고 밝혔다. 바이오프린팅은 환자 자신의 줄기세포와 생체재료를 쌓아 올려 조직이나 장기를 만드는 방법인데, 이식했을 때 면역거부반응 같은 부작용이 없다. 하지만 폐는 다른 장기보다 훨씬 복잡하게 생긴 데다, 폐기종이 심할 경우 구멍 나기 전의 폐포가 원래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다. 이때 건강하게 남아 있는 조직의 프랙탈 법칙을 분석하면 비어 있는 공간의 구조도 추측할 수 있다. 황 박사는 “폐기종뿐만 아니라 혈관이나 기도처럼 프랙탈 구조를 띤 다른 부위가 손상됐을 때도 같은 방법으로 인공장기 설계도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프랙탈이 현대 의학에 달아줄 수 있는 날개의 크기는 무한하다. 하지만 해외에 비해 국내에서는 프랙탈 의학을 연구하는 전문가가 많지 않다. 첨단 의료장비와 정교한 수술 방법, 뛰어난 약물로도 치료할 수 없는 난치병을 해결하려면, 지금보다 한 차원 높은 지식이 필요하다. 몸속에 굽이굽이 접혀 있는 프랙탈 미스터리를 푼다면 미래에는 지금보다 훨씬 건강하고 행복한 100세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2016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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