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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단일클론항체를 만들다

Chapter 05. 노벨상┃항체 알아낸 수상자들

외부에서 항원이 들어왔을 때 체내에 만들어지는 항체는 한 종류가 아니다. 항원 표면에는 여러 개의 항원 결정 부위가 있어서 각각에 맞는 다양한 항체가 생긴다. 


또 항원 결정 부위가 하나뿐인 항원도 여러 가지의 항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하나의 항원 결정 부위에 친화력이 서로 다른 여러 개의 항체가 결합할 수 있어서다. 


혈청 치료에 사용되는 항체는 실은 여러 개의 항체가 모인 항체 그룹이다. 


20세기 중반 면역을 연구하던 과학자들에게는 바로 이 점이 큰 고민거리였다. 혈청 치료를 위해 동물에 항원을 주입해서 항체를 얻으면 항체 그룹의 구성이 번번이 달랐다. 이런 방법으로는 분자적으로 동일한 항체를 만들어내는 게 불가능했다. 


게오르게스 잔 프란츠 쾰러와 세사르 밀스테인은 한 가지 항체만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는 데 매달렸다. 


쾰러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분자생물학연구소에서 연구 중이던 밀스테인의 연구실에 1974년 합류해 2년간 공동연구를 진행했다. 


두 연구자는 체내에서 항체를 생산하는 B림프구(B세포)에 주목했다. 항원이 들어오면 B림프구는 항원 결정 부위와 반응하고, 이런 반응의 결과물로 항체가 생성된다. 연구팀은 활성화된 B림프구를 각각 분리하면 한 가지 항체만 생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B림프구는 수명이 짧아 항체를 대량 생산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세포융합이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증식 능력이 뛰어난 종양세포인 골수종세포와 B림프구를 합쳐 항체를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세포를 만들고자 했다. 이들은 쥐에게 양의 적혈구를 주입하고 이로 인해 쥐의 비장에서 활성화된 B림프구를 추출했다. 그리고는 폴리에틸렌글라이콜(PEG)을 이용해 골수종세포와 융합했다. 폴리에틸렌글라이콜은 세포융합을 촉진한다.


쾰러와 밀스테인은 1975년 융합 세포 하이브리도마(hybridoma)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공개했다. 그들이 만든 하이브리도마는 두 종류의 항체를 만들었다. 한 종류는 양의 적혈구를 인식했고, 다른 한 종류는 미지의 특이성을 보였다. 후자는 골수종세포에서 유래한 항체였다. 


이후 두 연구자는 항체 발현 능력을 상실한 골수종세포를 분리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그들은 이를 활용해 단 하나의 항원 결정 부위에만 반응하는  ‘단일클론항체(monoclonal antibody)’를 탄생시켰다. 


단일클론항체 개발은 면역학 연구에 대변혁을 가져왔다. 단일클론항체 덕분에 과학자들은 특정 항원에만 특이적으로 결합하는 항체를 정밀하게 만들 수 있게 됐다. 
단일클론항체는 오늘날에도 질병 진단 시약과 치료제 등에 다양하게 쓰인다. 


특히 2019년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치료제 후보물질로도 주목받고 있다. 항체 치료제는 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어 환자를 치료하는 데도 쓰이지만, 감염을 예방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네덜란드와 독일 국제 공동연구팀은 2020년 5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코로나19를 유발하는 사스코로나바이러스- 2(SARS-CoV-2)의 스파이크 단백질 수용체에 결합하는 단일클론항체 4개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단일클론항체는 부작용이 적은 암 치료법으로도 주목받는다. 암세포와 결합하는 단일클론항체에 항암제를 결합한 뒤 암 환자에게 투여하면, 항암제가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파괴해 정상 세포의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다. 


쾰러와 밀스테인은 단일클론항체를 발견한 공로로 1984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이에 대해 쾰러는 밀스테인 덕분이었다고 공을 돌렸다. 그는 1981년 남긴 비망록에서 “스스로 연구의 동력을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밀스테인의 실험실이 아니었다면 (단일클론항체) 연구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이라며 “밀스테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 연구를 할 수 없었다”고 썼다. 


밀스테인은 노벨상 수상자 강연에서 “세포융합 기술은 상업적으로 가치가 없어 보였던 수많은 기초 연구의 부산물”이라며 “좋은 실험을 하고 나머지는 걱정하지 말라는 연구소의 지원 덕분에 개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쾰러, 밀스테인과 함께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한 닐스 카이 예르네는 1955년 면역시스템의 발달과 조절을 설명하는 중요한 이론을 제시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무수히 많은 물질을 인식할 수 있는 무수히 많은 항체를 몸속에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중 자주 쓰는 항체는 더 많이 살아남고, 덜 쓰는 항체는 적게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예르네의 이론은 이후 틀린 것으로 밝혀졌지만, 1957년 호주의 바이러스 학자 프랭크 버넷이 제안한 클론 선택설의 토대가 됐다. 


클론 선택설은 체내에 침입한 항원과 맞는 항체를 만드는 면역세포는 여러 개의 클론으로 분열하고, 해당 항체를 생성하지 않는 면역세포들은 도태된다는 이론이다. 


1974년 예르네는 ‘면역망 이론(immune network theory)’으로 또 한 번 학계의 주목을 받는다. 면역망 이론은 면역시스템이 서로 다른 항원과 항체, 림프구가 상호작용하며 조절된다는 이론으로, 예르네는 항원이 침입하면 항체와 림프구들은 서로의 짝을 바꿔가며 다양하게 결합할 수 있고 이것이 면역성을 획득하는 원동력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학계는 면역이 주로 항체에 의존한다는 학파와 면역세포에 의존한다는 학파로 나뉘어 있었는데, 예르네는 ‘면역시스템(immune system)’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면서 항체와 면역세포가 함께 면역에 관여한다는 새로운 관점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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