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Life & Tech] 저 하얀 설원 위에~

친절한 우아씨의 똑똑한 데이트 ➌

저 하얀 설원 위에~


라면만 90일째 먹고 있는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혹시 그간 둘에게 좋은 일이 일어났냐고요?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아직’입니다. 소년은 조르고 졸라 1박 2일 여행길에 올랐는데, 하필 추위를 질색하는 소녀를 한겨울로 시간이동 시켜버렸거든요.


무슨 얘기냐고요? 며칠 전부터 살랑대는 봄(?)바람에, 섣불리 양떼 목장으로 온 게 화근이었지요. 국내에서 유일하게 양을 방목해 키우는 대관령 양떼 목장은 무려 해발 700m 고원에 위치해 있습니다. 3월, 이곳은 아직 하얀 설원입니다.


“에… 에취!” 소녀가 큰 기침을 한 번 하자, 소년이 더욱 쪼그라(?)듭니다.


 


양털은 공기를 품는다


“미안, 나는 자기랑 빨리 푸른 초원이랑 하얀 양을 보고 싶어서…(찌릿) 하지만 다 자기를 위해서!(찌릿)그런 거란 말이야, 구시렁구시렁.” 소녀는 눈을 흘기지만 다 알고 있습니다, 그 따뜻한 마음을. 게다가 올해는 양의 해인걸요! 소녀는 소년의 서툰 솜씨를 ‘양해’해 주기로 합니다.


소년이 건초를 사와 내미네요. 푸른 초원에서 뛰노는 양을 볼 수는 없지만, 축사에서 양들에게 건초 주기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양들의 순한 눈을 바라 보니, 어느덧 소녀의 마음도 스르르 풀립니다. “우와~, 내 동생 곱슬머리 만지는 것 같다. 양털은 왜 이렇게 곱슬거리는 거야?” “응, 그건 말이지!” 소년도 금세 신이 났습니다. “양털이 이중 구조라서 그래.”


양털은 ‘케라틴’이라는 단백질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 단백질의 아미노산 분자가 나선형으로 돼 있어 탄성이 좋지요. 표피 안쪽은 오르토층과 파라층 이중 구조로 돼 있는데, 수분 흡수율이 서로 다릅니다. 한쪽 섬유가 더 빨리 많이 팽창해 털이 꼬부라지지요.


이런 모양 덕분에 양털은 다른 동물의 털보다 따뜻합니다. 동물 털을 배배 꼬아 만든 털실이 따뜻한 이유는 가닥 사이사이 공기를 가둘 수 있는 ‘중공’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공기는 지구에 존재하는 최고의 보온재이지요. 그런데 꼬불꼬불한 양털로 직물을 짜면 다른 털보다 중공이 더 많이 생깁니다. 마치 생머리보다 파마머리를 땋았을 때 빈 공간이 많이 생겨 머리다발이 두툼해지는 것처럼요. ‘어그부츠’를 신어 본 사람이라면 다 알걸요. 한 번 신으면 벗을 수 없게 만드는 그 후끈한 열기를요.


“예전에 양털 깎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엄청 신기한 거 있지? 털이 한 가닥씩 나오는 게 아니라 서로 엉켜서 모피 한 장처럼 나오더라니까. 마치 양이 입고 있던 외투를 벗기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어! 물어보니까 그걸 ‘플리스’라고 부른대. 양 한 마리에서 3kg이나 나온대!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나… 양털 목도리 하나만 떠 주면 안돼~?” 한참을 떠들던 소년이 조심스레 묻네요.


“그거보다 쉬운 방법 알려줄까? 자기 머리카락 길러서 목에 둘둘 말면 돼! 해보면 깜짝 놀랄 걸?” 소년에겐 안됐지만, 사실입니다. 사람 털도 공기를 품을 줄 압니다. 궁금하면 정말로 해보세요, 신세계를 경험하게 될 테니까요~!

 

입춘 뒤에 태어나야 양띠?


산책을 끝내고 내려오는 길, 양쪽으로 늘어선 상점에는 양양털 표면에는 비늘이 겹겹이 쌓인 ‘스케일층’이 발달해, 큰 마찰력이 생겨 실이 쉽게 풀어지지 않는다 인형이 가득합니다. 소년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합니다. “자기 양 띠지? 양 인형 사줄까?”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선물이 인형이라는 걸 남자들은 언제쯤 깨달을까요. 다행히 굳이 싫은 티를 내서 소년에게 무안을 줄 필요가 없습니다. 소녀는 양띠가 아니거든요. “91년생이지만, 난 말띠야. 생일이 2월 3일이거든.” 소년은 충격에 휩싸입니다. “왜…, 왜죠?”


띠는 신정이나 음력 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태양력도, 태음력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태양이 움직이는 길인 황도를 15˚ 간격으로 나눈 24절기, 즉 입춘에서 시작해 대한으로 끝나는 절기력을 기준으로 하지요.* 가장 먼저 드는 절기가 입춘, 그러니까 양력 2월 4일에 띠가 바뀌는 겁니다. “헉! 올해 2월 1일에 태어난 내 조카도 그럼 말띠였던 거야?”


이제 해가 뉘엿뉘엿 질 시간이네요. 기다렸다는 듯 소년이 말합니다. “많이 추웠지? 자, 이제 우리 따뜻한 곳으로 갈까? 지금 차편도 다 끊기고 없어~.” 순진한 얼굴을 한 채 눈 가리고 아웅하는 소년의 얕은 수에 소녀는 결국 큰 웃음을 터뜨리고 맙니다. 과연 소년과 소녀는 오늘 밤새 별똥별을 헤아릴까요? 궁금하다고요? 그럼, 다음화를 기대해 주세요~♥


 
사연을 보내주세요!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5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우아영 기자
  • 일러스트

    허경미

🎓️ 진로 추천

  • 생명과학·생명공학
  • 환경학·환경공학
  • 축산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