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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면역세포가 ‘남’을 구분하는 원리를 밝히다

Chapter 05. 노벨상┃면역세포 탐구한 수상자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영국 옥스퍼드대 생물학과 강사였던 피터 브라이언 메더워의 집에서 약 180m 떨어진 곳에 영국 비행기 한 대가 추락했다. 조종사는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전신의 60%에 3도 화상을 입었다. 메더워는 그를 돕고 싶었다. 유일한 해결책은 피부 이식이었다. 처음에는 정상 피부를 당겨 화상을 입은 부위를 덮으려 했지만, 부위가 넓어 불가능했다.


메더워는 하는 수 없이 다른 사람에게 기증받은 피부를 환자의 화상 부위에 이식했다. 하지만 열흘 정도가 지나자 면역거부반응이 일어나며 이식한 피부가 괴사했다. 메더워는 기증받은 피부를 한 번 더 같은 환자에게 이식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피부가 곧바로 괴사했다. 


메더워는 피부 이식 수술을 통해 우리 몸의 면역시스템이 외부 물질의 정보를 기억한다는 사실을 처음 증명했다. 


인간을 비롯한 고등생물은 체내로 침투하는 항원에 대항하기 위한 방어 수단으로 면역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면역시스템은 외부 물질을 인식하고 유해성을 판단해 제거한다. 그리고 외부 물질의 정보는 항체로 저장해 다음에 똑같은 물질이 침입하면 즉각 대응할 수 있게 한다. 


면역시스템이 작동할 때 외부 물질에 대응하는 것만큼 중요한 점은 자신의 신체 조직에는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남과 나, 외부 물질과 자신을 구분하지 못하고 면역반응이 오류를 일으키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 몸의 세포는 외부 물질과 자신을 구분하는 면역기작을 가지고 있다.


바이러스학자이자 의사였던 프랭크 맥팔레인 버넷은 이런 면역기작이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난 뒤에 후천적으로 습득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태아 때 조직이 발달하면서 면역력이 생기고, 특히 자신의 신체 조직 성분에 대한 특징을 학습하고 기억한다고 주장했다. 태아 때 외부 물질이 침입하면 그 또한 자신의 물질로 인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의 주장은 계속해서 피부 이식을 연구하던 메더워의 실험을 통해 입증됐다. 


메더워는 일란성 쌍둥이와 이란성 쌍둥이인 소를 대상으로 서로의 피부를 이식한 뒤 변화를 살폈다. 


당시 연구자들은 유전자가 100% 같은 일란성 쌍둥이 소에서는 면역거부반응이 일어나지 않고, 이란성 쌍둥이 소에서는 면역거부반응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깨고, 두 경우 모두 면역거부반응이 없었다. 메더워는 엄마의 자궁 안에서 함께 자라는 동안 태반을 통해 면역 관련 물질이 오가면서 면역거부반응이 일어나지 않도록 후천적으로 면역 관용(immune tolerance)이 생긴다고 결론지었다.


면역 관용은 쥐 실험을 통해 한 번 더 입증됐다. 메더워는 태어난 지 24시간이 안 된 쥐 A에 다른 쥐 B의 림프구를 주입하면 이후 쥐가 다 자랐을 때 쥐 B의 피부를 쥐 A에 이식해도 면역거부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국제학술지 ‘네이처’ 1953년 10월 3일자에 발표했다. 


면역 관용에 대한 이론을 제시한 버넷과 이를 실험으로 증명한 메더워는 후천적 면역 관용을 발견하고 면역 관련 질병 연구에 기반을 만든 공로로 1960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버넷은 1960년 12월 10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과학을 발전시키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라며 “20~30년이 지나면 지금의 발견이 덜 중요해질 수도 있지만, 우리 모두에게는 다음 세대에 진보적인 학문의 전통을 전달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우리 몸에는 후천 면역보다 훨씬 더 즉각적이고 공격적인 면역시스템이 존재한다. 


병원체가 들어오면 백혈구의 일종인 세포독성 T림프구(T세포)가 인식해 곧바로 공격하고 병원체를 죽인다. 이를 선천 면역이라고 하는데, 병원체 감염 초기에 인체가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방어 기작이다.


1970년대까지 항체를 기반으로 한 후천 면역은 많은 부분이 밝혀져 있었지만, T림프구가 감염 초기에 어떻게 정상 세포는 건드리지 않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만 인식해 죽이는지에 대한 연구는 부족했다.


호주 존커틴의학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던 피터 찰스 도허티와 롤프 마르틴 칭커나겔은 이런 선천 면역 연구에 매진했다. 두 사람은 1960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버넷의 면역과 감염병의 관계를 다룬 책을 읽으며 과학자의 꿈을 키운 일명 ‘버넷 키즈’였다.


도허티와 칭커나겔은 림프구성 맥락수막염바이러스(LCMV)를 이용해 세포 매개 면역(면역세포가 직접 병원체나 감염된 세포를 제거하는 면역반응 방식)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LCMV는 쥐와 사람을 숙주로 삼아 뇌수막염을 유발한다. LCMV가 몸에 들어오면 T림프구가 이를 인식하고 파괴한다. 


이들은 실험용 쥐에 LCMV를 감염시켜 생성된 T림프구를 채취한 뒤, 같은 혈통을 가진 다른 감염된 쥐의 세포와 섞어 관찰했다. 그 결과 몸밖에서도  체내에서와 마찬가지로 감염된 세포를 찾아 파괴하던 T림프구가  다른 혈통의 쥐에게 주입했을 때는 감염된 세포를 인식하지 못했다. 


이는 T림프구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를 인식하고 파괴하려면 바이러스 항원뿐만 아니라 자신의 주조직 적합성 복합체(MHC)도 필요하다는 걸 의미했다. T림프구의 킬러 본능은 자신 안에서만 발휘되는 셈이다. 


면역세포가 작동하려면 자신과 외부 물질을 동시에 인식해야 한다는 이들의 발견은 면역시스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져왔다. 


도허티와 칭커나겔은 우리 몸의 면역세포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와 정상 세포를 구별하는 방법을 발견한 공로로 199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칭커나겔은 1996년 12월 10일 노벨상 수상 기념 연설에서 “우리가 지금 (노벨상 시상식이 열리는) 스톡홀롬에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면역학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이 영광을 자연과 질병에 관한 기초 원리를 찾고 있는 모든 기초 과학자들에게 돌리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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