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혼자 힘으로 만든 공상과학영화제

영국 SCI-FI-LONDON

런던의 문화 중심가 웨스트 엔드. 4년전 우리나라에서 뮤지컬 돌풍을 일으킨 ‘오페라의 유령’이 19년째 장기 공연을 이어가고 있는 이곳은 뮤지컬, 영화, 공연 등 여러 가지 문화행사로 생명이 넘친다. 바로 이곳에서 런던의 문화지도에 또다른 색을 입히는 작은 움직임이 눈길을 끈다.

영국 유일의 SF 영화 축제인 런던 SF 영화제 ‘SCI-FI-LONDON’이 그것. 지난 2월 2~6일까지 SF와 판타지를 주제로 한 영화축제가 ‘커즌 소호’ 극장을 중심으로 열렸다. 올해로 벌써 4회째인 런던 SF 영화제는 다양한 문화행사가 공존하는 런던의 중심가에서 SF 영화의 세계가 얼마나 넓은지 알려주는 유일한 행사다.

“런던 시민들에게 SF 영화의 세계를 알리고 싶어요.” 런던 SF 영화제를 기획한 루이스씨(41)가 밝힌 영화제의 목적이다. 루이스는 자기가 느꼈던 SF 영화의 감동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어서 시작한 것이 이렇게 영화제로 태어났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의 꿈은 어느 정도 실현됐을까?
 

국산 대작 '원더풀데이즈'는 '스카이블루'라는 제목으로 런던 SF 영화제에 소개됐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한국의 SF 영화를 런던에 알리는 기회가 됐다.


목적은 한 가지, SF 영화의 대중화

런던에는 매년 크고 작은 문화 행사가 끊이지 않고 열린다. 그래서 어지간한 홍보로는 행사 이름조차 알리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모든 행사 주최측이 업체의 후원을 받으려 하기 때문에 웬만한 경쟁력을 갖추지 않고서는 후원사를 확보하기도 어렵다. 이런 가운데 런던 SF 영화제는 입장객 수익만으로도 행사를 계속할 수 있을 정도로 꽤 알려져 있다. 일반의 관심도 높아서 올해는 모두 22차례나 여러 언론에서 취재를 나올 정도였다.

“금년에 홍보 팸플릿을 2만2000부 찍었어요. 런던 시내에만 뿌렸는데 며칠 새 모두 동이 났죠.” 루이스는 사람들이 행사에 관심을 갖는 것이 기쁘면서도 팸플릿이 부족해 안타까운 듯했다. 그래서 루이스가 홍보 타겟으로 맞춘 곳은 인터넷. 먼저 공식 홈페이지를 일목요연하게 구성하고, 새로운 소식은 뉴스로 만들어 배포했다. 그리고는 매일같이 SF 동호회와 포럼을 다니며 영화제를 알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영화제가 인터넷 이용자들에게 효과적으로 검색될 수 있을까. 루이스는 홈페이지로 가는 링크를 여러 곳에 걸어두면 구글 검색 결과가 상위로 올라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웹디자이너였던 루이스는 짧은 시간에 인터넷에서 효과적으로 홍보하는 방법을 충분히 알고 있었고, 그 결과 런던 시내의 호텔을 검색하는 관광객에게도 런던 SF 영화제 소식을 알릴 수 있게 됐다.
 

기획자 루이슨는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매번 관객들에게 직접 영화를 소개한다.
 

낙타, 바늘구멍에 들어가다

루이스는 이 축제에 관한 한 거의 모든 것을 혼자 준비하고 실행한다. 극장 섭외부터 후원사 발굴, 언론 인터뷰, 그리고 뉴스 배포에 이르기까지 행사와 관련된 사전 준비는 모두 그가 땀 흘리며 만든 결과였다. 물론 가장 중요한 영화 선정도 그의 몫. 그는 “2004년에 나온 신작 SF 영화들을 모두 봐야하기 때문에 행사 준비 기간이 1년은 걸린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올해 영화제를 위해서 본 영화는 무려 4백편. 그 중 줄거리와 재미, SF적 요소 등을 기준으로 상영작을 고른다.

본격적으로 영화제를 준비하는 과정은 영화제작사에 필름을 요청하면서 시작된다. 문화의 도시 영국에서 유일하게 열리는 SF 영화제라는 이름값 덕분에 각국의 영화사는 어렵지 않게 협조해준다. 그러나 문제는 우송방법. 부피가 작은 DVD라면 문제가 없지만, 원본 필름을 복사해서 배편으로 전달하면 개막시간에 맞춰 도착하지 않을까 애를 태우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시간을 놓쳐 날려버리는 비용이 아까운 건 둘째, 그보다 애써 고른 영화를 관객들에게 보여주지 못하는 아쉬움이 더욱 크다고 한다.

처음 영화제를 시작했던 2002년에는 꿈도 소박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노릇. 변변한 후원사도 없었기에 영화제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상영관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흥행 대작이 아닌 SF 영화를 걸어도 관객의 입장료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을 극장 측이 납득해야만 했다. 그것도 극장이 한창 붐비는 성수기인 2월에, 이름도 없는 SF 영화제를 위해 상영관을 내줘야만 했다. 과연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갈 수 있을까?

루이스가 가진 것은 수년 간 쉬지 않고 본 SF 영화필름과 SF 지식, 그리고 열정을 담은 두 발뿐. 상영관을 찾아다니며 SF 영화제를 설득한 그에게 커즌 소호 극장이 흔쾌히 상영관을 제공했다. 단 이틀간이었지만 스크린을 확보해서 처음으로 SF 영화제라는 이름을 걸고 행사를 열었다. 좌석점유율은 80%를 기록했다. 후원사 하나 없이 순수하게 입장료만으로 행사를 개최할 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뜨겁게 호응한 관객 덕분이었다.

영화제를 지탱하는 저력은 바로 열정

토요일 오후 이번 2005년 행사에서 최고의 영화로 꼽힌 ‘프라이머’(Primer)가 상영되기 직전 루이스와 함께 오데온 팬튼가 극장을 찾았다. 루이스가 제일 먼저 들른 곳은 영사실. 그는 상영 준비 상태를 점검한 뒤 스크린 앞으로 가서 관객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가 극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에게 영화의 의미와 주의 깊게 볼 점, 영화제에 선정된 배경을 소개한 후에 영사기가 돌기 시작했다.

루이스는 매번 영화가 상영되기 전에 이렇게 영화를 관객들에게 소개한다. 상영관이 커즌 소호 극장과 오데온 팬튼가 극장 두 군데로 나뉘어 있어서 루이스는 두 곳을 쉴 틈 없이 오가면서 SF 영화 알리기에 열성이다. 영화와 관람객에 대한 그런 정성이 이 영화제를 지탱하는 힘이 아닐까. 큰 예산을 들이지 않고 혼자서 1만명이 참가하는 영화제를 진행하는 놀라운 힘의 저력이 바로 열정임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주 상영관이 있는 커즌 소호 극장은 꽤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한쪽 구석에 마련된 ‘미니 시네’에서는 출품된 단편영화를 무료로 상영하고 있어서 극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심심치 않게 이용할 수 있다. 영화제 행사의 실제 진행은 모두 4명의 동료들이 맡아서 하고 있었다. 며칠간 계속된 행사에 체력이 떨어진 탓인지 구석에서 새우잠을 자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그러고 보니 루이스도 이제 체력을 비축해야 할 시간이었다. 토요일 밤에는 올빼미족을 위한 심야 프로그램이 이어지기 때문에 어쩌면 뜬 눈으로 밤을 새워야 할지도 모른다.
 

런던 SF 영화제 최고의 영화로 뽑힌 화제작 '프라이머'. 2004년 선댄스 영화제에서도 드라마부분 대상을 받았다.


문화의 중심에서 SF를 외치다

런던 SF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작품 중에는 흥행에 성공한 대작 뿐 아니라 극장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각양각색의 SF 영화도 포함돼 있다. 저예산 독립영화나 다큐멘터리, 그리고 애니메이션과 단편 영화들까지 어떤 장르 어떤 형태의 영화도 SF적 요소가 포함된 것이라면 대상이 된다.

금년 SF 영화제의 화제작은 단연코 ‘프라이머’. 셰인 카루스 감독의 2004년 신작으로 같은 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드라마 부문 대상과 슬론장편영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번 런던 SF 영화제에서도 최고의 영화로 뽑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상영됐다. 단편 부문에서는 존 하덴 감독이 만든 13분짜리 영화 ‘개가 된 인간’이 최고의 영화에 올랐다. 이 영화는 사람을 개로 바꿀 수 있는 혈청을 발견한 과학자의 이야기를 담았는데, 이번 행사에 참가한 관람객들 사이에서도 추천영화로 꼽혔다.

애니메이션도 빼놓을 수 없는 화젯거리였다. 올해는 ‘아키라’의 오토모 감독이 10년 만에 내놓은 ‘스팀보이’가 진원지였다. ‘스팀보이’는 티켓 발매가 시작된 지 24시간 만에 매진돼 급히 추가 상영분을 편성하는 소동을 낳았다. 100억원의 제작비가 든 국산 대작 ‘원더풀데이즈’도 ‘스카이블루’라는 제목으로 이 영화제에 소개됐다.

이 영화제의 또다른 특징은 심야 프로그램. 행사 첫해부터 꾸준히 마련된 심야 프로그램은 짧은 행사기간에 많은 영화를 걸고 싶은 주최측과, 의미있는 영화를 묶어서 한꺼번에 보고 싶은 마니아의 요구가 딱 맞아 떨어진 프로그램이다. 금년에는 모두 3가지의 심야 프로그램이 준비됐다. 1999년 개봉해 전 세계적으로 초록색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매트릭스 시리즈와, 4년째 계속되는 애니메이션 시리즈, 그리고 쇼브라더스 헌정 시리즈로 밤을 잊은 올빼미족에게 크게 환영받았다.

런던 중심가에서 스크린 하나를 빌려 시작한 런던 SF 영화제는 이제 올해를 시작으로 지방 순회에 나선다. 에든버러, 리버풀, 요크, 그리고 엑스터에서 차례로 관객들을 만나는 것. 행사가 4년째 이어지면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한 것이다. 행사를 기획한 루이스는 이번 지방 행사를 통해 런던 SF 영화제가 영국의 명실상부한 국제 행사로 거듭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작은 소망에서 시작한 영화제가 이제 큰 꿈을 이룰 날도 멀지 않은 듯하다. 소박한 열정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궁금하면 런던 SF 영화제에 가볼 것을 권한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05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이현 기자

🎓️ 진로 추천

  • 문화콘텐츠학
  • 연극·영화
  • 미술·디자인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