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레라균에 감염된 동물에서 뽑아낸 혈청은 콜레라균에만 방어력을 갖는다. 혈청 속 항체가 항원 특이성을 갖기 때문이다. 이는 수많은 실험과 연구를 통해 검증된 사실이었지만, 1900년대 중반까지도 항체가 항원과 결합하는 기작은 비밀에 싸여 있었다. 당시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항원이 체내로 들어올 때마다 항체의 구조가 변형된다는 가설이 우세했다.
항체 연구는 스웨덴의 화학자 아르네 티셀리우스가 1939년 항체의 화학적 성분을 밝혀내며 물꼬가 트였다. 티셀리우스는 전기영동법(전기장에서 유기물질을 분리하는 방법)으로 혈청에서 항체의 주성분인 감마글로불린을 분리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모든 항체가 감마글로불린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항체는 ‘면역글로불린’이라 불리게 됐다.
미국의 생화학자인 제럴드 모리스 에델먼은 이런 항체의 미스터리를 한 겹 더 벗겨냈다.
미국 록펠러대에서 연구 중이던 에델먼은 1959년 ‘감마글로불린의 분리’라는 제목의 논문을 미국화학회에서 발표하며 항체가 이황화결합으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렸다. 또 그는 10년 뒤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논문에서 항체가 알파벳 대문자 ‘Y’ 모양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밝혔다.
에델먼은 메르캅토에탄올로 항체의 이황화결합을 깼다. 항체는 무거운 분자량을 갖는 H사슬 2개와 가벼운 분자량을 갖는 L사슬 2개로 분리됐다. 무거운 사슬의 총 분자량은 100kDa(킬로달톤·1달톤은 1g/mol), 가벼운 사슬의 총 분자량은 44kDa이었다. 에델먼은 실험 결과를 토대로 항체의 분자 구조를 추정했다. 그 결과 무거운 사슬은 Y자의 뼈대를 이루고 있으며, 가벼운 사슬은 Y자의 양쪽 가지 부분을 구성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같은 시기 대서양 건너편 영국 런던대에서 면역학 교수로 재직하던 로드니 포터도 항체를 연구하고 있었다. 포터는 항체가 항원과 결합하는 부위를 알아내고자 했다. 포터는 단백질을 분해하는 파파인 효소로 항체를 세 부분으로 나눴다.
이 중 두 개는 동일하며 항원과 특이적으로 결합하는 부분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항원과 결합에 관여하지 않는 부분이었다. 포터는 실험 결과를 토대로 동일한 두 부분은 Y의 가지 부분, 나머지 하나는 줄기 부분을 이룬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1994년 에델먼은 미국 잡지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과학에 종사하는 사람은 누구나 (진리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며 “과학 연구는 보물찾기(easter egg hunt)이며, 훌륭한 업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대답을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질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