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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바이러스를 시험관에서 배양하다

Chapter 05. 노벨상┃바이러스 파헤친 수상자들

20세기 초 미국과 유럽에서는 소아마비가 수차례 대유행했다. 미국에서는 1916년 한 해에만 2만7000여 명이 감염됐고, 이 중 6000여 명이 숨졌다. 미국의 제32대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스벨트까지도 1921년 소아마비를 앓고 하반신이 마비될 정도로 유행은 심각했다. 


소아마비는 폴리오바이러스에 감염돼 생긴다. 폴리오바이러스는 중추신경계 중 운동을 담당하는 부위에 급성 감염을 일으키고, 일시적 또는 영구적으로 신체 손상을 유발한다. 당시 바이러스로 인한 질병인 황열병 백신이 효과를 보이자 과학자들은 소아마비 백신 개발에도 착수했다. 


1930년대 중반 미국 뉴욕대 연구원이었던 모리스 브로디는 최초로 소아마비 백신 개발에 성공한 듯 보였다. 브로디는 폴리오바이러스에 감염된 원숭이의 신경 조직을 액화시킨 뒤 포르말린을 섞어 바이러스를 죽인 사백신을 개발했다. 임상 시험 결과 백신을 접종한 7000명 중 3명(0.04%)이 감염됐다. 그런데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4500명 중에서도 5명(0.11%)이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백신 접종으로 감염률이 줄긴 했지만 효과는 기대에 못 미쳤고 결국 실패로 결론 났다. 


동물의 체내에서 배양된 바이러스의 한계를 깨달은 과학자들은 시험관에서 바이러스 배양에 도전했다. 바이러스는 박테리아(세균)와 달리 인공적으로 번식시킬 수 없었다. 오직 살아있는 세포 내에서만 증식하기 때문이다. 


1948년 미국 보스턴아동병원 교수였던 존 프랭클린 엔더스와 토머스 허클 웰러 그리고 프레더릭 채프먼 로빈스 박사는 유행성이하선염(볼거리)을 일으키는 멈프스바이러스를 연구하고 있었다. 그들은 닭의 양막(배아를 덮고 있는 막) 조각을 떼어 낸 뒤 식염수를 공급해 세포를 배양했다. 이는 19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프랑스 생물학자 알렉시 카렐이 고안해낸 조직배양 방법을 응용한 것이었다.


연구팀은 이 세포에 멈프스바이러스가 감염된 소의 혈청을 주입한 뒤 멈프스바이러스의 당단백질 중 하나인 헤마글루티닌의 양을 측정했다. 측정 결과, 시험관의 헤마글루티닌 양은 뚜렷하게 증가했다. 바이러스를 시험관에서 증식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연구팀은 곧바로 폴리오바이러스에도 도전했다. 인간 배아의 팔과 다리에서 분리한 피부, 근육 조직세포를 채취해 배양한 뒤 폴리오바이러스를 접종했다. 67일 뒤 배양액을 실험쥐에 접종하자, 실험쥐에서 마비 현상이 일어났다. 이는 폴리오바이러스를 시험관에서 증식시킨 최초의 연구이자, 폴리오바이러스가 신경 조직에서만 증식한다는 학계의 정설을 뒤집는 결과였다.


세 과학자의 연구는 소아마비 백신 개발로 이어졌다. 또 다양한 표본 조직에서 바이러스를 배양하고 분리하는 기술은 바이러스 연구를 한 단계 발전시켰다. 엔더스와 웰러는 1954년 12월 노벨상 수상 기념 연설에서 “연구 결과는 우리 셋만의 노력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다”며 “우리가 연구할 때 마음과 힘을 합친 수많은 사람도 이 상에 기여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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