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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바이러스의 복제 과정을 밝히다

Chapter 05. 노벨상┃바이러스 파헤친 수상자들

바이러스는 스스로 증식할 수 없다. 다른 생명체의 세포 안으로 들어가 유전체를 복제한다. 194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바이러스의 복제 기작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막스 델브뤼크, 앨프리드 데이 허시, 살바도르 에드워드 루리아가 이를 밝혀내며 바이러스 연구는 한 단계 도약했다.  


세 과학자는 박테리아(세균)를 숙주로 삼는 바이러스 그룹인 박테리오파지를 연구했다. 이들은 1940년대부터 박테리오파지를 연구하는 미국의 비공식연구단체 ‘파지 그룹(phage group)’을 결성했다. 


박테리오파지는 1915년 영국 브라운동물연구소의 미생물학자인 프레더릭 트워트가 처음 발견했다. 그는 박테리아의 일종인 포도상구균을 배양할 때 군집 일부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현상을 발견하고 포도상구균을 죽이는 미지의 성분이 있을 것으로 추측했다. 이후 그 미지의 성분이 박테리오파지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박테리오파지는 생물학자들에게 유용한 실험 재료로 자리매김했다. 박테리오파지를 박테리아 배양액으로 쉽게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짧은 시간에 증식해 실험 결과를 곧바로 얻어낼 수 있다.
델브뤼크와 루리아는 박테리오파지 증식 과정을 이론적인 방법으로 분석했다.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델브뤼크는 박테리오파지 연구에 푸아송 분포와 같은 통계학적인 도구를 도입했다.

1940~1945년 그는 감염이 지속된 시간, 감염된 박테리아에 의해 생성된 박테리오파지의 수 등을 분석해 박테리오파지가 박테리아에 침입해 증식하고 방출되는 세포 주기를 완성했다. 
루리아는 박테리오파지에 감염된 숙주 박테리아에서 일어나는 형질 전환을 연구했다. 루리아의 연구는 이후 암을 유발하는 바이러스 연구로 이어졌다.


1952년 미국 워싱턴에 있는 카네기연구소에 근무하던 허시는 박테리아에서 박테리오파지가 복제될 때 단백질과 DNA의 역할에 의문을 품었다. 허시는 실험실 조수였던 마사 체이스와 함께 역사에 길이 남을 실험을 했다. 박테리오파지를 두 그룹으로 나눈 뒤 한 그룹은 단백질을 황 동위원소(35S)로 표지하고, 다른 한 그룹은 DNA를 인 동위원소(32P) 표지한 뒤, 두 그룹을 대장균에 감염시켜 박테리오파지를 복제했다.


이들은 박테리오파지를 감염시킨 박테리아 현탁액을 원심분리했다. 그 결과 황 표지는 상층액에서, 인 표지는 박테리아 세포가 포함된 침전물에서 각각 발견됐다. 단백질은 박테리아 세포로 들어가지 않고 DNA만 세포 내로 침투해 새로운 바이러스를 만들어낸다는 뜻이었다. 


이 실험은 바이러스의 복제 과정을 밝힌 동시에 DNA가 유전물질이라는 사실도 최초로 알아냈다. 이후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내는 데 바이러스 연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1978년 델브뤼크는 캘리포니아공대의 ‘오럴 히스토리 프로젝트’에 참가해 자신의 생애를 인터뷰로 남겼다. 당시 자료에 따르면 델브뤼크는 “과학이 어떤 방법보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일찍 깨달았다”며 “노벨상을 받았을 때 기뻤지만 영광에 압도당하지 않았으며, 루리아와 허시의 가족과 스웨덴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고 수상 당시를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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