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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기사][새책] 과학동아 에디터와 함께 읽는 이달의 책

    ▲은행나무, Adobe, 이형룡

     

    현대 일본을 대표하는 음악가 중 한 사람으로 지난 2023년 세상을 떠난 류이치 사카모토(일본식 표기로는 사카모토 류이치)는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다. 이 책 ‘음악과 생명’은 사카모토와 20년 가까이 교분을 맺은 일본의 중견 생물학자 후쿠오카 신이치 일본 아오야마가쿠인대 교수의 대담집이다. 일본 NHK에서 방송(2017년 6월)된 TV 프로그램이 기반인 까닭에 분량은 길지 않다. 하지만 두 사람이 상대의 분야인 음악과 생물학, 과학에 관심이 깊은 덕분에 대화의 흐름은 자연스럽고, 그 밀도가 높다. 교향곡 같은 울림의 바이올린 소나타인 셈이다.


    두 사람이 생명 진화와 음악이 반복되지 않는 일회성을 공유한다는 점을 말하다가, 후쿠오카가 사카모토의 콘서트에서 그가 피아노의 금속 현을 다른 금속 물질로 문질러서 연주했던 장면을 떠올린다. 이에 사카모토는 피아노를 이루는 나무나 금속 등의 소재로 직접 소리를 내는 내부주법의 개념을 소개한다. 이어서 자신이 피아노란 악기로 재현 가능한 완벽한 연주보다 피아노를 이루는 나무, 자연의 예측 불가능한 울림에서 찾아가는 의미를 전하는 식으로 대화가 전개된다.


    이미 사카모토는 에세이집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에서 자신의 피아노를 집 밖의 정원에 그대로 오래 두고서 어떻게 자연으로 돌아가는지 지켜보고 싶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피아노와 뗄 수 없었던 삶의 끝에서, 사카모토는 피아노를 더 이상 완성된 악기가 아닌 나무와 금속 등의 자연이 잠시 거쳐가는 하나의 ‘물질’로 바라본 것이다. 이 책 ‘음악과 생명’에선 생물학자인 후쿠오카와의 대화 속에서, 사카모토의 이런 전환이 생명과 예술의 본질, 즉 단 한 번뿐인 일회성에 대한 그의 통찰에서 비롯됐음을 엿볼 수 있다.   
    ‘음악과 생명’에서 예술가 류이치 사카모토와 과학자 후쿠오카 신이치는 자연이자 소음인 피시스(physis)와 언어이자 신호인 로고스(logos)의 관계에 주목한다. 이들은 예측 가능하고 반복적인, 즉 정확한 로고스만 추출하고 잊혀지는, 피시스의 의미를 강조한다. 특히 로고스의 재현성과 대칭성에 만족하고 피시스에서 로고스가 나왔다는 사실은 잊는 지식의 함정을 각자의 시선으로 짚는 흐름이 인상적이다. 재현성과 동일성은 목적이 아니기에, 과학과 예술이 만나는 셈이다. 


    오간 지 곧 1년이 되는 출근길에 벚나무가 있다. 벚꽃이 며칠 만에 만개해 골목 곳곳에 점을 찍고서야, 그렇게 큰 나무가 구석에서 봄을 기다린 걸 알았다. 류이치 사카모토가 끝까지 자연에서 찾아다녔던, 이제 그는 들을 수 없는 자연의 울림이 무엇인지 조금 알 듯하다.

     

    ▲더숲, GIB

     

    ‘갈 수 없지만 알 수 있는’은 2023년 1년 동안 인기리에 연재된 ‘최애은하’로 과학동아 독자들에게도 친숙한 지웅배 세종대 자유전공학부 교수의 신간이다. 최애은하 연재를 아껴 읽은 독자들이라면 특히 흥미로울 우주의 ‘거리 재기’로 천문학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이젠 민간인의 자유로운 우주 비행도 그리 멀지 않은 미래처럼 보이지만, 아직 우주는 인류가 자유롭게 활동하거나 가까이에서 직접 감각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다양한 우주망원경으로 예전보다 훨씬 정확한 영상을 포착하는 현재도 이렇다면, 아직 ‘멀고 흐린’ 우주를 과거의 천문학자들은 대체 어떻게 보고 이해했을까? ‘갈 수 없지만 알 수 있는’은 이 질문이 지구에서 우주까지의 ‘거리 재기’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묻는다는 점을 포착한 데서 출발한다. 한국 대중의 눈높이에서 현대 천문학의 연구 성과를 공유해온 지웅배 교수다운 감각이 돋보인다.


    이 책 ‘갈 수 없지만 알 수 있는’엔 천문학자들이 우주의 거리를 헤아리느라 잠들지 못했던 긴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시간 위로 이 천문학자들이 해낸 거리 재기에서 비롯된, 우주 공간의 생생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45억 년 전의 지구는 지금보다 훨씬 빨리 자전했다는 사실에서 2025년의 우리보다 더 바빴을 공룡의 하루를 상상할 수 있으며, 금성의 태양면 통과를 포착한 생생한 사진은 이젠 우주와의 거리를 많이 줄였다는 성취감까지 전해준다. 


    많은 망원경은 본격적인 관측에 앞서서 우선 플레이아데스 성단을 겨냥한다. 이 성단까지의 거리를 얼마나 정확하게 측정했는지로, 새로 제작한 망원경의 성능을 점검한다. 그런데 천문학자들은 여전히 플레이아데스 성단까지의 정확한 거리는 알지 못한다. 관측 방식과 망원경에 따라 이 성단까지의 거리가 조금씩 달라서다. 우주의 거리 재기가 여전히 우리의 숙제란 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갈 수 없지만 알 수 있는’는 우주와의 거리를 한 걸음씩 좁혀온 천문학의 섬세한 여정을 ‘거리 재기’라는 독창적인 시선으로 풀어서, 인류의 존재 이유와 시간의 흐름을 재구성하는 천문학의 매력을 전해준다. 

     

    ▲돌고래

     

    거북이 알려주는 삶의 복원법

     

    저명한 동물 생태학자이자, 저서인 ‘아마존 분홍돌고래를 만나다’ ‘유인원과의 산책’으로 큰 사랑을 받은 사이 몽고메리가 거북구조연맹에서 활동하며 겪은 에피소드들을 한 편의 영화처럼 담았다. 아프고 다친 거북을 구하고 돌보는 생생하고 감동적인 드라마, 거북의 생명력과 회복력에 대한 경이로운 증언, 두 종 간의 아름다운 연대가 생생하게 펼쳐진다. 동물의 단편적 특성을 부각해 교훈을 전하는 단순한 우화를 넘어, 생태적 현실을 오롯이 담은 깊이 있는 기록이다.

     

      거북의 시간    사이 몽고메리 지음 〡 맷 패터슨 그림 〡 조은영 옮김 〡 돌고래 〡  412쪽 〡 2만 원  

     

    ▲김영사

     

    왜 기억하는지부터 생각하라

     

    오랫동안 우리가 믿어왔던 기억에 대한 고정관념을 정면으로 뒤집으며, 기억의 메커니즘을 심층적으로 탐구하는 책이다. 25년 넘게 기억의 작동 방식을 연구해온 차란 란가나스는 “곧이곧대로 기억하는 것은 놀라울 정도로 중요하지 않다”고 단언한다. 이 책의 저자는 “왜 자꾸 잊어버리는가?”라는 질문 대신 “우리는 왜 기억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강조하며, 독자를 기억의 놀라운 세계로 안내한다.
     

      기억한다는 착각    차란 란가나스 지음 〡 김승욱 옮김 〡 김영사 〡 420쪽 〡 2만 2000원  

     

    ▲문학동네

     

    지구와 인간을 연결시킬 목소리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믿어보겠다”고 노래했던 나희덕 시인이 소외되고 침묵을 강요받은 존재들의 맨얼굴과 목소리들을 불러내는 무대를 연다. 이 무대에서 거미불가사리, 닭, 지렁이, 버섯 등 비인간 존재들이야말로 실은 지구와 인간을 지탱해온 주인공이라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서로 다른 모습과 마음을 가진 존재들이 비로소 연결되는 방법을 되묻는 목소리들이 담겨 있는 시집이다.

     

      시와 물질    나희덕 지음 〡 문학동네 〡 148쪽 〡 1만 2000원  

     

    ▲을유문화사

     

    인류의 얼굴을 찾아서

     

    5억 년 전 최초 척추동물의 얼굴부터 오늘날 현대 인류의 얼굴까지, ‘얼굴 진화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다루고, 인간의 얼굴과 인간의 본질 사이에 얽힌 촘촘한 그물망을 밝히면서 인간의 진화에서 얼굴이 갖는 중요성을 규명한다. 시간적으로 5억 년 전 최초 척추동물의 얼굴에서 가장 최근에 형성된 인류 조상의 얼굴로 이어지는 진화사를 조명하고, 공간적으로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등 전 지구를 넘나든 동물과 인류의 이동을 추적했다. 2018년에 나온 초판의 개정판이다.

     

      인간 얼굴    애덤 윌킨스 지음 〡 김수민 옮김 〡 김준홍 감수 〡 을유문화사 〡 632쪽 〡 2만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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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5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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