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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에이즈와 자궁경부암 바이러스를 발견하다

Chapter 05. 노벨상┃바이러스 파헤친 수상자들

자궁경부암은 인유두종바이러스(HPV· Human papillomavirus)에 의해 발병하며 현재 백신으로 예방할 수 있는 유일한 암이다. 독일의 바이러스 학자 하랄트 추어하우젠은 HPV를 발견한 공로로 200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했다. 


독일에서 의학 박사학위를 받은 추어하우젠은 196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부설 필라델피아 아동병원 연구소에서 본격적인 바이러스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바이러스 감염의 기초 기작을 발견한 베르너 헨레와 거르트루트 헨레 부부의 실험실에 합류했다. 당시 연구소의 지침은 ‘페트리 접시에서 응용으로’였다. 바이러스 연구가 질병 치료 등 인류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독일 뷔르츠부르크대 바이러스연구소로 자리를 옮긴 추어하우젠은 엡스타인-바 바이러스(EBV·Epstein-Barr virus)를 연구했다. EBV는 헤르페스바이러스과에 속하는 바이러스로, 대부분 일생에 한 번쯤 감염되지만 별다른 증상 없이 지나간다. 


추어하우젠은 헨레 부부가 1969년 미국 국립암연구소 저널에 발표한, 버킷림프종 환자가 EBV 항체를 많이 갖고 있다는 연구 결과에 주목했다. 버킷림프종은 B림프구에서 발생하는 암으로 당시 아프리카 아이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었다. 추어하우젠은 버킷림프종 암세포에서 EBV의 DNA를 발견하고 EBV가 버킷림프종을 유발한다는 결과를 1970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이후 추어하우젠은 자궁경부암으로 연구 주제를 바꿨다. 1974년 자궁경부암의 원인을 주제로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참석해 HPV가 자궁경부암을 일으킨다는 가설을 발표했다. 
당시 학계에서는 추어하우젠의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다수가 성기에 수포를 만드는 단순헤르페스바이러스 2형(HSV-2)이 원인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자궁경부암 조직에서 HSV-2의 DNA를 발견한 과학자는 아무도 없었다. 추어하우젠은 HPV가 자궁경부암을 일으킨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암 조직에서 HPV의 DNA를 찾아내려 거듭 시도했다. 

하지만 실패였다. 


추어하우젠은 HPV가 자궁 상피세포에 감염돼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면 바이러스의 DNA를 숨기는 휴면 상태로 접어든다는 가설도 세워봤지만 결국 증명하지 못했다. 나중에 밝혀진 실패 원인은 HPV가 워낙 여러 종류의 유전자가 존재하는 바이러스였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지금까지 밝혀진 HPV의 종류는 130여 가지다. 


1979년 추어하우젠이 이끄는 연구팀은 HPV 6형과 11형의 DNA를 확인했다. 그리고 1983년 자궁경부암 조직에서 HPV 16형을, 이듬해 HPV 18형을 발견했다. 꾸준한 실험 결과 자궁경부암의 70%가 HPV 16형(50%), HPV 18형(20%)에 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덕분에 결국 HPV가 자궁경부암을 일으킨다는 추어하우젠의 주장은 정설로 받아들여졌고, 오늘날 백신 개발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한편 추어하우젠과 공동으로 200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프랑수아즈 바레시누시와 뤼크 몽타니에는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AIDS·에이즈)을 일으키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human immunodeficiency virus)를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198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의대에서 연구 중이던 마이클 고틀리브는 뉴모시스티스 폐렴을 앓고 있는 33세 남성의 사례를 학계에 보고했다. 뉴모시스티스 폐렴은 영유아나 면역억제제를 사용하는 환자들에게서만 발견되는 질환이었다. 


그런데 이 환자는 이상하리만큼 면역력이 결핍돼 있었고, T림프구 (T세포)의 수치가 현저히 떨어져 있었다. 1982년 이 질병은 에이즈로 명명됐다. 연구자들은 에이즈가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하며 성 접촉이나 혈액을 통해 감염된다고 추측했다. 


당시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에 있던 몽타니에는 에이즈의 원인으로 레트로바이러스를 의심하고 있었다. 몽타니에는 에이즈 환자의 림프절에서 림프구를 추출해 실험실에서 배양했다. 바이러스가 T림프구를 파괴한다면 림프구가 풍부한 림프절에 병원체가 존재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몽타니에가 배양한 림프구는 파스퇴르연구소 동료 연구자였던 바레시누시에게 전해졌다. 바레시누시는 림프구에 역전사효소가 존재하는지 확인했다. 역전사효소는 레트로바이러스가 RNA로 DNA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물질이다. 


10일 후 바레시누시는 림프구 배양액에서 역전사효소를 발견했다. 바이러스는 효소 농도가 정점을 찍은 이후 서서히 죽기 시작했지만, 사람의 혈액을 배양액에 주입하자 다시 증식했다. 
두 과학자는 이 바이러스가 이미 발견된 바이러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두 과학자는 역시 T림프구를 감염시킨다고 알려진, 미국 국립암연구소 로버트 갤로 박사팀이 발견한 ‘인간T세포백혈병바이러스(HTLV· Human T-lymphotropic virus)’에 대한 항체를 바이러스에 투입했다. 


하지만 두 과학자가 발견한 바이러스는 HTLV가 아니었다. 몽타니에는 에이즈를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새로운 레트로바이러스 종일 것이라고 보고 ‘림프절종 관련 바이러스(LAV· lymphadenopathy associated virus)’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이름이 훗날 HIV로 바뀌었다. 


하지만 당시 몽타니에가 이끌던 파스퇴르연구소 연구팀은 에이즈 바이러스의 발견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1984년 4월 갤로가 이끌던 연구팀이 바이러스가 자신들의 발견임을 주장하며 바이러스의 이름을 ‘HTLV-3’으로 명명했고, 미국 특허상표청은 에이즈 바이러스 진단 시약에 대한 특허권을 갤로 연구팀에게 부여했다. 전 세계 언론은 갤로 연구팀을 에이즈 바이러스의 최초 발견자로 보도하면서 상황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런데 9개월 뒤 갤로 연구팀이 발견한 HTLV-3의 유전체 염기서열이 몽타니에가 발견한 LAV와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상황이 역전됐다. 해당 바이러스는 변이 속도가 굉장히 빠른 바이러스이기에 염기서열이 일치한다는 사실은 곧 같은 환자에게서 얻은 바이러스라는 걸 의미했다. 


이 문제는 결국 소송으로 이어졌다. 소송은 합의로 끝났다. 1987년 프랑스와 미국은 에이즈 진단 시약의 특허권과 특허료를 각각 절반씩 차지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2008년 노벨위원회는 몽타니에와 바레시누시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노벨위원회는 “갤로 박사도 에이즈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분리하는 데 성공했지만, LAV와 매우 유사함을 보여주는 데 그쳤다”고 설명했다. 


바레시누시는 2015년 CNN과의 인터뷰에서 “HIV를 발견할 당시 순진했던 우리는 바이러스와 신체의 상호작용이 이처럼 복잡하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고 치료제와 백신이 금방 개발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과학은 놀라운 발전을 이뤘지만, 오늘날 HIV를 완전히 퇴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여전히 HIV 환자들은 수많은 편견 때문에 과거처럼 시련을 겪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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