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Life & Tech] 트랜스포머 엘리베이터가 온다

빌딩 오르내리는 지하철과 이층버스 콜택시⋯


미국의 발명가 엘리샤 오티스가 1854년 엘리베이터를 개발한 지 160년이 지났다. 빌딩과 아파트가 높아지는 만큼 엘리베이터도 빨라지고 있다. 하지만 속도만으로는 편리함에 한계가 있다. 일상을 바꿀 엘리베이터 혁명은 ‘새로운 아이디어’에서 탄생하고 있다.
 

 지하철
한 통로에 여러 대, 멀티 엘리베이터


발칙하고 유쾌한 상상력으로 유명한 팀 버튼 감독이 만든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는 신기한 승강기가 등장한다. 초콜릿 공장 주인인 월리 웡카(조니 뎁)가 어린 아이들을 태우고 다니는 슈퍼 승강기인데, 케이블도 없이 수직․수평으로 난 통로를 따라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기자도 ‘저런 승강기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불과 10년 만에 영화가 현실이 됐다.

독일 기업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는 작년 11월 27일 건물 내부를 순환하는 새로운 승강기 컨셉을 발표했다. 케이블에 매달려서 오르락내리락 하는 기존 승강기와는 뿌리부터 다른 발상이다. 정해진 노선을 따라 순환하는 서울 지하철 2호선에 오히려 가깝다. 수직․수평으로 난 통로에 차(cabin․엘리베이터 객차) 한 대가 지나가면 그 뒤를 따라서 다음 차가 따라온다.

케이블이 없는데 어떻게 차가 수직으로 올라갈까? 이 회사는 새로운 승강기에 자기부상열차 원리를 적용했다고 밝혔다. 자기부상열차는 전자석이 레일을 잡아당기는 정전기적 인력에 의해 위로 뜨고, 레일의 자성이 변하면서 앞으로 나가는 추력이 생긴다. 자기부상 승강기를 연구했던 김종문 한국전기연구원 창의원천연구본부 박사는 “추정이지만, 티센크루프에서는 승강기 상하좌우에 모두 리니어모터(정전기적 인력과 척력으로 자기부상열차를 움직이는 모터)를 설치해 수평․수직방향으로 갈 수 있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 통로에 한 대밖에 못 다니는 기존 승강기에 비해 확실히 에너지 효율이 좋다. 이 회사에 따르면 건물 내 승강기가 차지하는 공간이 최대 50% 줄어들고, 승강기가 움직이는 거리도 50% 줄어든다. 동시에 여러 대가 다닐 수 있다고 해서 이름도 ‘멀티 엘리베이터’다. 덕분에 대기 시간도 15~30초로 짧아진다. 티센크루프는 홈페이지를 통해 “뉴욕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이 승강기를 기다리는 시간을 모두 합치면 16.6년이고, 타는 데 5.9년이라는 IBM의 자료를 보고 이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방법을 고민했다”고 밝혔다. 기존 승강기는 케이블이 길어질수록 무거워져 초고층 건물에 적용하기가 힘들지만 멀티 엘리베이터는 그런 제약도 없다.
 
수평·수직 방향으로 건물 내부를 빙글빙글 순환하는 승강기가 있다면 건물을 요상하게(?) 지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티센크루프 영상 캡쳐)


티센크루프는 자기부상 원리를 이용해 케이블 없는 승강기를 개발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안전성이다. 케이블에 매달려 움직이는 승강기는 정전이나 화재, 자연재해 같은 비상상황에서도 제어장치가 있어 바닥으로 떨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기부상 승강기는 아직 불확실하다. 극단적으로 정전 시 바닥을 향해 자유낙하 할 위험도 있다. 기자는 티센크루프에 비상정지장치와 작동원리에 대해 질문했지만 기업 비밀이라며 알려줄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대신 티센크루프는 “내년 독일 로트바일에 위치한 240m 높이 건물에 멀티엘리베이터를 처음으로 설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때쯤 되면 승강기 연구자들의 오랜 숙제였던 안정성 문제를 정말로 해결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2층버스

더블데크는 두 배 빠를까? 두 배 느릴까?


재작년 서울 충정로 동아일보 사옥에서 일할 때는 출근시간마다 승강기 안에서 하염없이 ‘닫힘’ 버튼을 눌러야 했다(지금은 회사가 용산으로 이사했다). 1층에서 과학동아가 있던 16층까지 올라가는데 거짓말 안 보태고 승강기가 16번 선 적도 있다. 특히 문이 닫힐 때 간신히 올라타서 ‘15층’을 누르는 사람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3월에 문을 여는 LG유플러스 용산 신사옥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더블데크 엘리베이터가 운행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문득 그때의 악몽이 떠오른 건 왜일까. 더블데크는 두 칸을 위아래로 붙여서 함께 움직이는 승강기다. 2층 버스처럼 더블데크도 한 번 움직일 때 승객을 최대 두 배 많이 실어 나를 수 있다. 출퇴근 또는 점심시간에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돼 좋긴 하지만, 각자 가려는 층이 다르므로 승강기는 그만큼 자주 멈출 것이다. 꼭대기층에서 일하는 사람은 인내심이 최대 두 배 필요하지 않을까?

“더블데크만 운영해서는 당연히 의미가 없죠!” LG유플러스 사옥에 더블데크를 설치한 현대엘리베이터의 조찬호 홍보팀장은 웃으며 말했다. 더블데크와 싱글데크(일반적인 승강기)를 함께 설치하고 동시에 행선층 예약시스템도 운영해야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말이다. 행선층 예약시스템은 컴퓨터가 승객들의 출발 층과 도착 층을 계산해 각자에게 알맞은 승강기를 지정해주는 시스템이다. 현재 서울 구로구의 디큐브시티 등 새 건물에 설치돼 있다.

“한번 시험해보시죠.” 조 팀장이 기자를 테스트타워로 안내했다.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현대엘리베이터 본사의 테스트타워에는 국내에서 가장 빠른 분속 1080m급 승강기를 비롯해 더블데크와 행선층 예약시스템 등이 갖춰져 있다. 7층을 키패드에 입력하자 ‘2호기를 탑승하세요’라는 안내문구가 화면에 떴다. “1호기가 먼저 도착하면 1호기를 타면 안 되나요?” 기자가 묻자 “안 됩니다. 미리 예약된 층으로만 운행되거든요.” 조 팀장이 딱 잘라 말했다.

“승강기 내부에 아예 버튼이 없는 경우도 있어요.

선택의 자유가 떨어지니까 불만을 나타내는 고객들도 처음에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이 편이 훨씬 시간을 단축할 수 있습니다.” 현대엘리베이터의 분석에 따르면, 행선층 예약시스템은 평균 대기시간은 24%, 승차시간은 40% 줄여줬다. 같은 층으로 가는 사람들을 묶어 멈추는 시간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행선층 예약시스템 아래서 운송효율을 최대한 높일 수 있는 방법이 더블데크다. 더블데크는 승객이동이 많은 로비층을 기준으로 주로 움직인다. 1층과 2층에서 동시에 승객을 싣고 출발해 1층에서 탄 승객은 홀수층, 2층에서 탄 승객은 짝수층에 내려주는 식이다. 싱글데크에 비해 절반만 멈추고도 모든 층을 다 운행할 수 있다. 지하 7층, 지상 21층 규모의 LG유플러스 건물에는 더블데크 2대를 비롯해 승강기 총 12대가 운영된다. 더블데크를 타보고 싶으면 3월에 용산을 방문하자(공사 중인 제2롯데타워에도 설치 중이다). 아, 더블데크 승차감은 일반 승강기와 똑같다. 실망하진 말길.



 콜택시

스마트폰으로 엘리베이터 부른다


“어, 이제 들어가는 길이야. 엘리베이터 좀 보내줘.” 전화를 끊고 차에서 내려 아파트로 들어가자 1층에 엘리베이터가 문을 열고 딱 기다리고 있다.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3월부터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원격으로 움직일 수 있는 승강기가 1만 대나 생긴다. 현대엘리베이터에서는 최근 자체 개발한 원격제어시스템인 ‘HRTS’로 자사의 승강기를 ‘콜’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고장이력, 운행정보 등 승강기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는 앱은 이미 출시가 돼 있고, 3월 말 승강기 호출이 가능하게 앱을 업데이트할 예정이다.

“미리 한번 해보세요.” 우명제 현대엘리베이터 서비스기술부장이 스마트패드를 넘겼다. 앱에는 승강기가 현재 몇 층에 있는지, 상태는 어떤지 정보가 빼곡했다. 1층 버튼을 클릭하자 ‘승인되었습니다’라는 문구가 떴다. 3초 뒤, 화면에서 진짜 승강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기자에게 우 부장이 말을 이었다. “기자님이 오셔서 승강기가 긴장했나 보네요. 원래는 2초도 안 걸립니다.”

이제 승강기도 버스나 지하철처럼 언제 올지 예측하고 시간 맞춰 나갈 수 있게 됐다. 택시처럼 호출을 할 수도 있다. “비서가 하나 생긴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우 부장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혹시 이걸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이 생기진 않을까. “그럴까봐 세대 연동시스템으로 만들었습니다. 한 사람이 승강기 하나만 움직일 수 있게 할 겁니다.”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승강기가 개발될까. 고영준 한국 승강기대 교수는 “사물인터넷이 화두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자동차와 아파트 정문, 승강기가 연동된다고 생각해보세요. 자동차가 들어오는 걸 정문이 감지하고 승강기에 신호를 주는 거죠. 사람이 지하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내려서 승강기까지 가는 시간이 있을 것 아닙니까. 그 시간까지 계산한 다음 때맞춰 승강기를 보내주는 세상, 그런 세상이 올 겁니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5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변지민 기자

🎓️ 진로 추천

  • 전기공학
  • 컴퓨터공학
  • 메카트로닉스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