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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무공해 식단 꾸리는 생물 농약

자연의 힘으로 병충해 퇴치한다

 

유럽 최대의 농업국 프랑스 세르봉에 있는 베크랄씨의 유기농장. 파리에 있는 유기농전문슈퍼마켓과 연계해 도시인들에게 신선한 채소를 공급하고 있다.


요즘 웰빙이란 말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자연스럽고 건강한 삶을 추구하려는 소비문화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민감하고 빠르게 소비 패턴을 바꾸고 있는 분야는 먹거리 문화인 듯하다. 자연산, 토종, 우리농산물과 같은 1차농산물을 비롯해 신농법으로 재배한 각종 유기농 식품이 우리의 식탁을 더욱 건강하고 풍성하게 하고 있다. 이제 고급스럽게 포장된 유기농 채소에 손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 됐다.


늘어나는 생물 농약
 

01 해충이 몰려드는 원인이 되는 성분 감소 02 성장촉진 03 뿌리 조직 강화 04 유해 병원균 파괴


이런 상황에서 생태계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병·해충 억제 효과와 농산물 생육 촉진 기능이 있는 생물농약이 새롭게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생물농약(Biopesticides)은 농작물에 피해를 입히는 병이나 해충,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 자연에 있는 생물로 만든 천연농약을 뜻한다. 이같은 생물농약의 기능은 친환경농업생산과 차별화된 고품질의 안전농산물 생산의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1992년 리우 세계환경회의는 농약사용량의 20%를 생물농약으로 대체하도록 결의했다. 이 때문에 각국은 정부 차원에서 화학농약의 사용량을 제한하고 생물농약 개발을 촉진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세균, 곰팡이, 바이러스 등 5종의 생물농약의 특허가 등록돼 있다. 특허청에 따르면 지난 2000년 이후 생물농약의 출원비율이 급속히 증가해 1990년대 초반 전체 농약특허출원 중 8.9%였던 비중이 2000년대 들어서는 18%로 2배 가량 높아졌다. 농업대국 미국에서도 1백80여종에 이르는 성분들이 생물농약으로 등록된 상태며 제품 가지수만 해도 7백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된다. 지금은 세계 농약시장규모(2백51억달러)의 3%에 불과하나 2010년 경이면 4백50억달러의 전체 농약시장의 10%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된다. 국내의 경우 현재 생물농약 사용비중은 전체 농약시장의 1% 내외 수준이지만 2010년에는 10%(1천2백20억원)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해충의 허를 찌르는 미생물 이용

현재 전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생물농약은 나비목해충을 죽이는 세균 바실러스 써린젠시스(Bacillus thuringensis)를 이용한 비티(BT)제. 이 균이 서식하는 식물을 해충이 먹게 되면 균에서 나온 독소로 소화기관이 파괴돼 결국 목숨을 잃게 된다. 현재 이 균주는 외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일반 농가에 널리 보급돼 있다.

미생물을 이용한 생물농약이 개발된 것은 흙속에 사는 병원균으로부터 식물을 보호할 목적에서였다. 뿌리를 공격하는 병원균이 땅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증상이 잘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농약을 직접 흙속에 주입해 치료하기도 어렵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게다가 화학농약의 경우 그 성분이 토양에 달라붙어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식물 성장과 항균 작용을 할 수 있는 미생물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때문에 생물농약으로 쓰이는 미생물은 식물 뿌리나 잎에 살면서 식물과 공생관계나 종속관계를 맺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이들 미생물은 식물 성장을 돕는 성질을 포함하고 있다. 미생물이 만든 항균물질은 농작물 뿌리에 침입하려는 곰팡이나 병원균의 생장을 억제하거나 죽게 한다. 이와 같은 항생작용은 농작물에 사용되는 생물농약의 기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처럼 생물 성장을 돕고 항균 작용을 하는 미생물집단을 ‘근권미생물’ 이라고 한다. 여러 종류의 근권미생물 중 농약으로 쓰기에 가장 좋은 것은 뿌리에 잘 달라붙는 것들이다.

근권미생물의 입장에서 뿌리 주변은 사막의 오아시스와 비슷한 조건이다. 뿌리 주변에서 멀리 떨어진 흙은 거의 먹을 것이 없는 황량한 지역인데 반해 뿌리 주변은 뿌리에서 공급되는 양분과 안락한 서식 환경을 제공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뿌리 주변에서는 좋은 위치를 선점하기 위한 미생물간에 치열한 싸움이 벌어진다. 그 결과에 따라 식물 생육에 중요한 결과를 미치게 되는 것이다. 얼마나 뿌리에 잘 정착하느냐는 생물농약에 사용되는 미생물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기준인 셈이다.

해충 쫓고 잡초만 없애

미생물 농약을 사용한 여러 사례 가운데 오이의 경우는 흥미롭다. 근권미생물을 오이 뿌리에 정착시켰을 때 세균에 감염돼 오이가 시드는 사례가 크게 준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 세균성 시들음병을 전파하는 오이딱정벌레가 현저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딱정벌레는 오이가 내는 큐커비타신(cucurbitacin)이라는 화학물질로 먹이를 감지하는데 뿌리에 붙어있는 미생물이 그 함량을 줄였던 것이다.

생물농약은 유해 병원균이나 해충을 직접 공격하기도 한다. 미생물 중 병원균이나 곤충, 선충에 기생하는 종들을 생물농약에 사용하는 방식이다. 한 예로 농작물에 발생하는 흰가루병은 대부분의 채소에 발생하는 곰팡이균으로 농작물을 잘 자라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농산물의 품질을 떨어뜨린다. 암펠로마이세스 퀴스콸리스(Ampellomyces quisqualis)라는 곰팡이균은 흰가루병균에 기생하며 서서히 고사시킨다. 흰가루병은 화학농약에 대한 내성이 강해 계속 사용하게 되면 효과를 거두기 점점 어려워지는 특성이 있다. 생물농약은 화학농약에 비해 지나친 농약사용에 대한 소비자들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도 유리한 면이 많다.

이밖에 특정 식물에만 병을 일으키는 곰팡이를 이용해 잡초를 없애는 생물제초제도 화학약품 대신 미생물을 이용한 경우다.

식물에 기생하는 어떤 곰팡이는 한 종류의 식물에만 선택적으로 병을 일으키는데 이런 성질을 이용하면 특정 잡초만을 효과적으로 없앨 수 있는 무공해 식물제초제를 제조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적용 사례가 유엔(UN) 주도의 국제마약퇴치프로그램에서 사용되고 있는 생물성제초제다. 콜롬비아정부는 마약인 코카인의 원료가 되는 코카나무재배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코카나무만을 선택적으로 죽이는 곰팡이균을 남부의 코카나무 숲에 뿌려서 코카인생산을 원천봉쇄하는 임무를 수행 중이다. 현재 수년째 프로그램을 진행한 결과 코카인 생산량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미생물은 생물농약뿐 아니라 식물의 성장을 촉진하는 토양미생물제로도 많이 쓰이고 있다. 이런 생물군을 식물생육촉진세균(Plant Growth Promoting Rhizobacteria)이라고 하는데 이것 역시 뿌리표면이나 내부에 기생하면서 성장을 저해하는 균이나 병원체의 침입을 억제하기도 한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 항생작용에 기초했던 생물농약은 뿌리에 사는 생육촉진근권세균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면서 전기를 맞게 된다. 생육촉진세균이 기생하는 식물은 곰팡이는 물론 세균,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각종 질병에 강하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그동안 생물농약의 단점인 적용범위가 한정된다는 문제점을 해결하게 된 것이다. 또 그 효과가 식물 전체에 미친다는 점, 특정 병원균이 아닌 다양한 외부병원균과 불량환경에 맞선다는 점에서 기존의 생물농약과는 구별된다.

최근 한국농업과학기술원이 개발한 바실러스 아밀로리퀴화시엔스 EXTN-1이라는 미생물농약은 바로 이같은 특성을 잘 활용하고 있다. 이 미생물의 균주는 식물이 가진 방어능력을 활성화해 식물 스스로 병 저항성을 갖게 하는 한편 식물 성장을 촉진하는 효과도 지녔다.

개발비는 화학농약의 1/10 수준
 

병충해 예방을 위해 한해 66만t 이상의 화학농약과 비료가 국내에서 사용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의 농업은 화학농약과 비료를 사용한 생산성 향상에만 초점을 맞춰왔다. 1960-1970년대에는 식량부족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고 이를 위해 화학 농약과 비료를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세계무역기구(WTO)가 주도하는 농업협상이 농산물 전면 수입 개방과 함께 전통적인 농업구조의 전면 개편을 요구하면서 선진 농법의 도입은 불가피하게 됐다.

특히 노동집약형이며 경지면적이 좁아 외국농산물과의 가격경쟁력을 가지지 못하는 국내 농업에 불똥이 떨어진 것이다. 그런 가운데 생태계보전과 무공해 농산물 생산에 대한 욕구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최근 사회 전반으로 번지고 있는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소비패턴은 차별화된 농산물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런 까닭에 미생물농약은 안전하고 품질 좋은 농산물의 생산은 물론 생태계 복원, 농약 사용량 감축을 이끄는 주역으로 주목받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시간당 비료사용량은 4백6kg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네덜란드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농약투입량에서도 시간당 12kg로 일본 다음으로 높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올해말까지 토양과 수질오염을 최대한 줄여 전체 농약과 화학비료 사용량을 현재의 30% 이하로 떨어뜨린다는 계획이다. 결과적으로 화학농약과 비료 사용량의 급격한 감축에 따른 농산물 생산량 감소와 농민 소득저하를 막을 유일한 수단은 생물농약이 될 것이다.

생물농약은 본래 자연상태에 있는 토착화된 미생물을 이용하기 때문에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다. 또 화학농약과는 반대로 생물농약은 계속 사용해도 약효가 감소하지 않아 반복사용에 따른 공해 문제나 해충의 내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없다. 게다가 개발비도 기존 화학농약 개발비의 1/10 수준에 머물기 때문에 경제적 측면에서도 유리한 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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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박경석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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