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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행복을 알약으로 먹는다 해피드럭

아플 때만 약 먹는다는 것은 편견

2054년 미국 워싱턴. 범죄를 예측해 단죄하는 최첨단 치안 시스템 ‘프리크라임’ 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프리크라임 시스템의 ‘예지자’ 들은 범죄가 일어날 시간과 장소뿐만 아니라 범행을 저지를 사람까지 미리 예견해낸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존 앤더튼(톰 크루즈)이 이끄는 특수경찰은 미래의 범죄자를 체포한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가 설정하고 있는 미래사회 모습이다.

그런데 프리크라임 시스템으로 일반 시민들은 안전과 행복을 얻을 수 있겠지만, 예지자는 어떤가. 이들은 미래의 모든 범죄를 미리 체험해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에 노출돼 있다. 그래서 예지자에게는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약물이 주입된다. 끔찍한 가상체험에서 겪게 되는 스트레스에 적응하도록 하기 위한 이 약물은 과연 무엇일까.

영화 속 등장인물이 먹는 해피드럭
 

‘이만큼만 날씬해지면 얼마나 좋을까.’ 현대인을 괴롭히는 불행의 원인 중 하나가 비만이다. 살을 빼고 싶은 간절한 소망을 해결해주기 위한 비만치료제도 해피드럭 시장에서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의 예지자처럼 우리 역시 매일 다양한 수준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우리 몸에서 스테로이드 호르몬과 엔도르핀 같은 물질이 분비돼야 한다. 만약 이들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으면 작은 스트레스에도 적응하지 못해 심한 경우 목숨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다. 따라서 예지자에게는 필요한 양만큼의 스테로이드 호르몬과 엔도르핀이 주입됐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스트레스처럼 질병은 아니지만 우리 생활을 불편하거나 불행하게 하는 원인들을 감소시키거나 제거하기 위해 복용하는 약물을 소위 ‘해피드럭’ 이라고 한다. 미래의 약은 이처럼 질병을 치료하는데 그치지 않고 삶의 질을 개선해주는 역할까지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의도적으로 이와 같은 약물을 많이 복용한다고 과연 더욱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예”와 “아니오” 둘 모두다.

체내에 스테로이드 호르몬을 투여하면 관절염이나 천식을 비롯한 많은 질병의 증상이 놀랍게 호전될 뿐만 아니라 기분도 좋아진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는 법. 그에 대한 대가도 혹독하다. 즉 뼈가 약해지고, 신체 조직에서 콜라겐 성분이 빠져나가 피부가 멍들고 쉽게 출혈이 생긴다. 게다가 약물을 갑자기 중단하면 생명마저 위험해질 수 있다. 스테로이드 호르몬이 해피드럭이 될지 독이 될지는 적절한 처방과 복용에 달려있는 셈이다.

엔도르핀은 그 구조가 마약으로 분류되는 모르핀과 매우 비슷하다. 따라서 “몸에서 분비되는 모르핀(morphine)”이라는 뜻을 가진 ‘엔도르핀’ (endorphine)이라고 불린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구조가 매우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둘은 체내에서 정반대의 작용을 나타낸다. 모르핀은 투약자의 심신을 망가지게 하지만, 엔도르핀은 심신을 쾌활하게 하는 것이다. 아직까지 인체에 엔도르핀을 직접 투약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복용하면 몸 안에서 엔도르핀의 분비를 촉진시키는 물질을 활발히 연구·개발하고 있다.

굳이 돈이 들여 약을 복용하지 않고도 확실하게 엔도르핀 분비를 높일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실컷 웃는 것이다. 옛말에도 ‘일소일소 일노일노’ (一笑一小 一怒一老)라고 하지 않았나. 한번 웃으면 그만큼 젊어지고 한번 노하면 그만큼 일찍 늙는다는 뜻이다. 살포시 웃는 미소보다는 큰 소리로 웃는 너털웃음이 엔도르핀 분비 촉진 효과가 더 뛰어나다. 실컷 자주 웃는 것만큼 놀라운 해피드럭도 없는 셈이다.
 

남성의 발기를 방해하는 효소를 억제하는 메커니즘으로 발기부전 치료제의 선두를 달리고 있는 화이자 사의 비아그라.


나이는 50세, 몸은 30세

얼마 전 한 일간신문에 1백세를 넘긴 한 할머니가 병을 비관해 자살했다는 기사가 실려 읽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 적이 있다. 이 할머니는 뼈가 약해져 외부 충격에 의해 쉽게 부러지는 골다공증을 앓다가 마침내 골절상을 입고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추정된다. 수명의 연장보다 삶의 질이 더욱 중요함을 깨닫게 해주는 사례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나이는 연대기적 연령이다. 즉 1980년에 태어난 사람의 연대기적 연령은 만 24세다. 부모가 “이젠 철 좀 들어라”며 충고할 때는 연대기적 연령이 아닌 정신 연령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의학에는 이와 같은 두가지 연령 이외에도 키가 얼마나 자랐나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뼈 나이가 있다. 뼈 나이를 측정하면 키가 앞으로 얼마나 더 자랄지에 대한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하나의 중요한 나이가 건강 연령이다. 건강 연령은 연대기적 연령과 무관하게 신체의 각종 기능을 종합적으로 평가함으로써 측정할 수 있다. 즉 연대기적 연령이 50세라도 심장과 허파의 기능이 왕성하고 골다공증이 없으며 근력이 강한 사람의 경우 30세의 나이에 이미 골다공증을 앓고 있는 사람보다 건강 연령이 더욱 젊다.

해피드럭은 건강 연령을 젊게 유지할 수 있는 약이라고도 할 수 있다. 뼈의 손실을 방지하고 재생을 촉진할 수 있는 골다공증 치료제뿐만 아니라 인삼의 여러가지 효능을 함유하고 있는 약, 대머리를 치료하는 약, 뇌신경세포를 보호하거나 손상된 신경세포의 재생을 촉진해 기억력을 향상시키고 치매를 예방 또는 치료할 수 있는 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약이 활발히 개발되고 있다. 그 중 일부 약들은 이미 시판돼 많은 사람들의 건강 연령을 젊게 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

마음도 약으로 다스린다
 

치료뿐만 아니라 삶의 질 개선을 위한 호르몬 제제들을 국내에 시판하고 있는 한국오가논 사의 주력 제품인 리비알. 여성의 갱년기 증상을 치료하고 골다공증을 예방하기 위한 제품이다.


요즘 홍길동씨는 직장생활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처음에는 업무에 흥미가 없어 그런 줄 알았지만 업무가 아닌 일들에도 점차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 드라마나 야구경기를 보기 위해 일찍 집에 들어가는 직장 동료, 광장에 모여 열정적으로 한국 축구팀을 응원하는 붉은악마 응원단, 여자친구와의 데이트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친구, 이들 모두가 이상하고 낯설게만 느껴진다. 과연 홍길동씨에게는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그는 ‘안헤도니아’ (anhedonia)라는 증상을 앓고 있는 것이다. 이는 어떤 일에도 도무지 쾌감을 느낄 수 없는 무쾌감증으로, 우울증의 중요한 증세 중 하나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21세기를 우울증의 세기라고 예측한 바 있다. 한 통계에 따르면 우울증 환자가 가장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나라는 다름 아닌 물질문명이 최고로 발달한 미국이다. 더불어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이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나라라는 통계도 있다. 자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우울증에 대해 사회적인 관심이 필요함을 일깨우는 통계인 것이다.

예전에는 우울증의 원인을 주변 환경이나 어렸을 때의 경험에서 찾고자 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현대의학은 우울증이 뇌에서 신호를 전달하는 신경전달물질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지 못하기 때문임을 밝혀냈다. 특히 노르아드레날린과 세로토닌은 사람의 정서를 조절하는 뇌의 부분인 시상하부에 자극을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따라서 이들이 부족하면 시상하부에 감정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우울증을 앓게 되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와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를 정상화시킴으로써 우울증 치료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는 약물들이 연구되고 있다. 그 중 일부는 개발이 완료돼 실제 임상에서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쓰이고 있다.

이처럼 미래에는 노화와 관련된 질병들을 예방 또는 치료할 뿐 아니라 마음의 상태까지도 조절하는 각종 해피드럭이 속속 개발돼 쓰일 전망이다. 이같은 추세는 최근 진행 중인 인간 유전체 해독과 더불어 그 속도가 더욱 빨라지리라고 예상된다. 곧 건강 연령이 30세인 70대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춘추전국시대 맞은 해피드럭 시장

해피드럭은 이제 제약업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부상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골다공증이나 우울증 치료제뿐만 아니라 비만, 대머리, 발기부전, 피임 관련 의약품들이 시장에서 치열하게 순위 다툼을 하고 있다.

1998년 미 화이자 사의 비아그라가 먹는 제제로서는 최초로 미 식품의약국의 허가를 취득했다. 비아그라는 음경에 피를 모아 발기시키는 물질을 분해하는 효소를 억제해 발기를 유발한다. 비아그라 이후 미 릴리 사의 시알리스, 독일 바이엘 사와 영국 글락소스스미스클라인 사의 레비트라를 비롯해 많은 발기부전 치료제가 속속 개발, 시판돼 이 시장의 춘추전국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또 최근 몸짱 열풍과 맞물려 다이어트가 현대인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비만치료제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지방을 소화, 흡수시키는 효소를 억제해 체중 감량 효과를 내는 스위스 로슈 사의 제니칼과 포만감을 빨리 느끼게 하는 미 애보트 사의 리덕틸 등이 국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한편 지난 6월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 내분비내과의 이기업 교수가 체내에서 소량 생산되는 지방산인 알파리포산이 뇌 시상하부에 있는 효소의 활성을 감소시켜 체중 감소 효과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밝힌 바 있다. 새로운 비만치료제의 등장을 예고하는 이 연구결과는 세계적인 의학전문저널 ‘네이처 메디신’ 7월호에 게재됐다.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효소에 의해 형태가 바뀌면 머리카락이 자라는 기간이 짧아지고 모낭의 크기도 작아진다. 이런 메커니즘을 이용한 탈모치료제도 해피드럭으로 각광받고 있다. 여성의 배란과 생리기간을 조절하면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피임제 시장에서도 네델란드의 오가논, 독일의 쉐링, 미국의 와이어 스 등 세계적인 제약회사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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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최종태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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