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당한 군인이 속출하는 아비규환 전쟁터. 부상 정도에 따라 치료 순서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때 ‘똑똑한’군복이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군복에 현재의 위치, 혈압이나 맥박 같은 신체 상태를 측정할 수 있는 센서가 부착돼 있어 이 자료가 상황실에 자동으로 전송된다. 상황실에서는 이를 분석해 군의관에게 보내 좀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이는 그렇게 먼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 미국에서는 군복에 이런 개념을 도입하는 연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최근 이처럼 옷에 단순한 의류 이외의 기능이 추가되면서 ‘스마트 의류’ 또는 ‘똑똑한 섬유’ 라는 개념이 등장하고 있다. 이는 환경조건 또는 외부 자극을 감지하고 그에 반응하는 섬유제품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미래의 옷은 과연 어떤 기능을 갖추게 될까.
음악 들려주고 사진도 찍는 옷
스마트 의류는 섬유산업이 IT산업과 접목된 사례다. 그 한 예가 수년 전 과학기술계에 소개된 ‘입는(wearable) 컴퓨터’ . 말 그대로 모자, 팔찌, 허리띠 등에 컴퓨터 기능이 내장된 것이다. MS, IBM 등 세계적인 IT기업들이 이 분야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여기서 발전한 개념이 스마트 의류의 한 분야인 디지털 섬유제품이다. 디지털 섬유제품의 소재는 디지털 신호를 전달하는 전도성 물질이어야 하고, 의복을 구성하는데도 지장을 주지 않아야 한다. 독일 인피니온 사는 금속사를 만들었고, 일본 후꾸이대도 금속사와 일반섬유를 복합해 니트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다. 전자파 같은 외부 신호를 차단하는 섬유도 연구되고 있다.
디지털 섬유제품의 기능 중 하나는 인체의 생체신호를 전달하고 질병을 진단하며 약품을 공급하는 것이다. 미 테네시대는 옷에 부착돼 생체신호를 처리하는 센서를 개발했고, 필립스사, 오리건대도 이같은 기능의 의류를 제작한 바 있다. 응급상황에서 의복이 인체에 약품을 공급할 수 있는 기술은 현재 연구 중이나, 개발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섬유제품의 또다른 용도는 특수기능복이다. 아직 일반인을 대상으로는 상업화되지 못했고 군복, 소방복, 산업안전복, 치매노인복, 유아복과 같이 특수한 기능을 갖는 형태로 활발히 개발되고 있다. 위치감지기능을 갖춘 의복을 유아나 치매에 걸린 노인이 입으면 길을 잃더라도 위치를 쉽게 알아낼 수 있다. 군복이나 소방복에는 위치감지기능뿐만 아니라 온도감지기능, 무선통화기능 등을 내장하는 기술이 연구되고 있다.
디지털 의류의 경우 신호를 전달하는 전선을 의복 안에 어떻게 넣느냐가 관건이다. 예를 들어 옷을 만들 때 조각조각을 봉제한다면 직물에 전선을 넣어도 연결이 쉽지 않다. 또 전선을 넣었다 하더라도 어떻게 빨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무봉제기술이나 세탁이 가능하도록 하는 기술, 필요한 신호만 선택적으로 감지하고 전달하는 기술들이 연구되고 있다.
2002년부터 디지털 섬유제품이 국제 시장에 출시되기 시작했지만 현재는 시장성이 극히 미비하다. 그러나 휴대폰, MP3와 CD플레이어, PDA, 디지털카메라, GPS 등을 부착하고도 의복의 기능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옷이 향후 10년 이내에 상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 칩이 작아지고 가벼워짐에 따라 미래에는 더욱 수요가 증가할 것이다.
몸 상태 조절하는 제2의 피부
스마트 의류는 스포츠나 레저용 의류 소재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스포츠나 레저용 섬유제품은 패션보다는 기능이 더욱 요구된다. 통풍이 잘 되고, 가볍고, 방풍이나 방수 기능이 뛰어나며, 빛이나 열에 강한 섬유 등 용도에 따라 기능도 크게 다르다. 최근에는 스포츠 의류와 거리 패션의 구분이 거의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따라서 스포츠나 레저용 의류 소재에 대한 소비자의 수요가 점점 더 다양화, 고기능화되고 있다. 땀을 신속히 흡수하는 면제품이 스포츠 의류의 주종을 이루고 있을 때 섬유 연구자들은 면의 단점인 건조의 어려움을 해결하면서 신속한 수분 흡수 기능을 갖춘 흡한속건성 섬유제품을 만들어냈고, 이는 스포츠 의류의 기본소재로 이용되고 있다. 투습발수 소재는 땀을 발산하고 비는 침투하지 않는 직물로서 이미 일반화돼 있다. 미 고어 사의 고어텍스가 이같은 직물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일본과 국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기능을 갖는 여러가지 직물이 개발됐다. 이런 제품을 입는 등산객은 그 효과를 충분히 느낄 것이다.
앞으로는 이런 차원을 넘어 섬유 스스로 인체 상태를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제품이 필요하다. 그 중 하나가 최근 연구되고 있는 것으로 ‘제2의 피부’ 기능을 하는 제품을 들 수 있다. 즉 수분이나 열을 스스로 조절해 생리적인 쾌적 상태를 유지하는 피부와 같은 역할을 하는 새로운 지능 소재다. 그 예로 최근 상변화물질(Phase Change Materials)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상변화물질은 상온에서 고체상태로 존재하다가 온도가 높아지면 액체로 변하면서 열을 흡수한다. 반대로 온도가 낮아지면 고체로 변하면서 열을 발산한다. 이 원리를 섬유소재에 적용하면 체온을 스스로 조절하는 옷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세계적인 골프 선수 타이거 우즈는 최근 새로운 장타자들이 나오자 매스컴에 골프채를 검사할 필요가 있다고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다. 섬유기술의 발전으로 반발력이 극대화된 ‘슈퍼 탄성 소재’ 등장해 골프채나 골프공, 테니스 라켓 등에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에는 공이 맞는 순간 맞는 위치나 강도를 감지해 선수가 원하는 방향과 거리로 갈 수 있는 스마트 골프채나 테니스 라켓도 등장할 것이다.
내 몸은 내 옷이 지킨다
인체의 건강을 증진 또는 회복시키고 일상생활에 편안함을 더하기 위한 건강용 스마트 섬유제품도 각광받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메디컬 섬유다.
미국 1백33개 대학에서 메디컬 섬유 연구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며 독일에서도 많은 연구소가 메디컬 섬유를 연구하고 있다. 메디컬 섬유는 조직의 기능을 대신해 인체의 기능을 보완한다. 예를 들어 손상된 피부 대신 이식하는 인공피부, 혈액 속 불순물을 걸러주는 혈액필터에 쓰인다. 인공뼈, 수술용 봉합사, 인공혈관에 쓰여 조직을 재건하는데도 이용된다. 또 하이드로젤과 같은 상처 치료용 섬유제품도 있다. 그러나 메디컬 섬유의 대부분이 법적 인허가를 받아야 하므로 실용화까지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
세균이나 인체에 해로운 물질이 생기는 것을 스스로 억제하는 위생성 섬유도 건강용 스마트 섬유 중 하나다. 유아용 의류나 환자복에 쓰이는 항균성 섬유제품, 알레르기를 방지하거나 피부미용에 좋은 인체 친화성 섬유제품, 자외선을 받아 유기물을 분해할 수 있는 촉매를 포함한 광촉매 섬유제품, 방향성 섬유제품이 개발되고 있다. 최근에는 전염병 예방을 위한 위생용 섬유, 그리고 장 출혈성 대장균인 O157, 레지오넬라균, 내성포도상구균에 항균 효과가 있는 섬유제품도 연구되고 있다. 정신적 안정감을 줄 수 있는 방취 기능 섬유제품도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천연물을 원료로 만들어 인체에 해롭지 않은 생분해성 섬유도 건강용 스마트 섬유로 주목받고 있다. 21세기 신섬유로 각광받고 있는 폴리유산(PLA) 섬유는 옥수수를 원료로 만든다. 이는 흡수성 봉합사나 인공피부에 이용되고 있다. 2002년 미 카길 사와 도우 사는 연간 14만t의 PLA 생산 공장을 가동한 것을 시작으로 생분해성 섬유 개발과 생물자원 이용이라는 두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고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 항균이나 방취 기능을 갖는 키틴 키토산 섬유소재도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 스마트 의류 전문가 내한
지난 5월 영국 헤리엇-와트공대와 섬유 관련 기업의 스마트 의류 전문가들로 구성된 방문단이 내한했다. 섬유와 전자산업이 발달한 한국과의 교류를 통해 영국 스마트 의류 분야의 연구 방향을 잡는데 도움을 얻기 위해서다. 5월 23일 방문단장인 헤리엇-와트공대 섬유 및 디자인학과의 조지 K. 스타일리오스 교수를 만났다.
■ ‘스마트’ 라는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옷이 주변 환경이나 상황과 스스로 상호작용해 어떤 기능을 제공할 수 있음을 뜻한다. 예를 들어 길을 걷는 중 옷에 부착된 센서가 위험을 감지해 ‘그쪽으로 가지 마시오’ 고 경고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전통적인 섬유산업과 정보기술의 융합인 셈이다. 최근 등장한 접거나 말 수 있는 전자제품에 섬유기술을 적용해 옷으로 만드는 것도 좋은 예다.
■ 영국의 경우 언제쯤 스마트 의류가 상용화되리라고 예상하는가?
영국에서는 1980년대에 이 연구가 시작됐다. 현재는 헤리엇-와트공대를 비롯한 3-4개 대학과 여러 기업체를 중심으로 무선통신이 가능한 의류, 의학용 섬유, 형상을 기억하는 의복소재 개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10년 정도 지나면 실용 가능한 제품이 많이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 빠르면 1년 안에 상용화될 제품도 있다고 본다.
■ 스마트 의류 연구의 핵심기술은 무엇인가?
처음 컴퓨터 기능이 내장된 옷이 나왔을 때는 마치 곳곳에서 기계가 튀어나오는 만화 주인공 가제트의 옷처럼 보였다. 착용에 불편이 없으려면 옷에 부착하는 센서를 전도성을 갖게 하면서 얼마나 작고 유연하게 만들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또 옷과 사람, 옷과 외부 간 정보가 전달되는 무선 네트워크가 형성돼야 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 가격이 매우 비쌀 것 같다.
CD나 MP3플레이어 같은 첨단 디지털 기능이 내장돼 있는 스키복 자켓의 경우 2백만원 정도로 예상된다. 하지만 비싼 만큼 제값을 하고 시장이 커지면 가격은 내려갈 것이다.
■ 현재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가?
노인이나 장애자에게 도움을 줄 스마트 의류를 개발 중이다. 옷을 입으면 움직이는 동안 일어나는 신체 반응이 자연스럽게 측정돼 이를 건강관리에 이용하게 하는 것이 목표다. 현재 각기 다른 기능을 하는 센서를 옷 하나에 12개까지 내장하는 기술을 개발한 상태다.
방문단은 서울과 대구에서 국내 섬유 관련 학계와 산업계 전문가들을 만나 한국과 영국의 기술을 비교·분석하고 상호교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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