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혼자 있는데 갑자기 배가 아프다. 전화로 도움을 청하기도 전에 호흡이 가빠지면서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해진다. 이때 집안 곳곳에 있는 센서가 주인의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을 감지해 병원으로 즉시 연락한다. 호흡과 혈압 등 몸 상태를 측정한 자료도 자동으로 담당 의사에게 전송한다.
이처럼 일상생활 중에 건강 상태를 점검할 수 있는 기술이 머지않은 미래에 등장할 전망이다. 어떤 방법으로 몸 상태에 대한 정보를 알아낼 수 있는 것일까.
우리 몸은 자신도 모르게 수많은 신호를 내보내고 있다. 체온, 호흡에서부터 혈액 내의 혈당 농도를 나타내는 신호들까지 생체신호(biosignal)는 무궁무진하다. 이를 측정해 건강 상태가 어떤지, 질병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심전도나 혈압 신호를 통해 심장의 활동 상태를, 근전도 신호를 통해 근육의 활동 상태를 점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생체신호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유비쿼터스 헬스케어
생체신호는 지금도 병원에서 환자의 건강 상태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정보로 이용된다. 대부분의 의료기기들은 우리 몸 각 부위의 상태를 나타내는 생체신호를 어떻게 하면 환자에게 고통을 주지 않으면서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을까 하는 관점에서 연구돼 왔다. 이미 현대의학에서는 생체신호를 이용한 진단과정 없이는 거의 진료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만큼 생체신호를 측정, 분석하는 기술이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경제 수준이 높아지고 삶의 질에 관한 관심이 증대하면서, 이미 몸에 이상을 느낀 다음 치료를 받기보다 건강이 나빠지는 조짐을 보일 때 미리 조치를 취하는 방향으로 건강관리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 이에 발맞춰 생체신호의 이용도 더이상 병원에서만 한정되지 않고, 일상생활 곳곳에서 건강 상태를 지속적으로 점검해 주는 이른바 ‘유비퀴터스 모니터링’으로 변하고 있다. 특히 최근 의료공학 분야의 센서기술, 컴퓨터기술, 통신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유비쿼터스 모니터링의 실현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몸 각 부위의 활동 상태를 나타내는 신호를 좀더 정확하고 자연스럽게 측정할 수 있다면, 과연 이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생체신호로 컴퓨터, 자동차, 실내조명 같은 주위의 여러가지 생활도구와 환경을 자동으로 제어하는 것이 그 중 하나다. 눈동자가 움직이는대로 컴퓨터 화면에서 커서가 이동하기도 하고, 운전 중에 졸음이 몰려오면 자동차가 스스로 가까운 주차장으로 이동한다. 또 사람의 심리 상태에 따라 방의 조명과 배경 음악이 알아서 조절된다.
또한 생체신호를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면 신체적, 정신적 건강 상태를 관리하는데 활용할 수 있다. 모든 질병은 대부분 초기 단계에 진단하면 치료가 가능하다. 이 때문에 건강 상태를 꾸준히 점검해 질병을 초기에 알아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즉 진료의 개념이 ‘이상상태’(illness)를 진단해 회복시키는 차원에서, ‘건강상태’(wellness)를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차원으로, 즉 웰빙시대에 적합한 형태로 발전하는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일상생활을 방해하지 않고 쉽게 생체신호를 측정하는가다. 수많은 생체신호 중에서 어떻게 진단에 유용한 정보만을 추출해낼지, 외부 인터페이스에 어떻게 그 정보를 전달할지도 중요한 문제다. 이런 문제의 해결이 웰빙을 위한 생체신호 모니터링의 핵심 기술인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일상생활 동안 자연스럽게 생체신호를 측정하는 문제에 초점을 맞춰 많은 연구와 기술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가구나 전자제품이 생체신호 감지
생체신호를 측정하기 위해 몸에 항상 전극을 부착하고 다녀야 한다거나, 별도의 측정장치를 잊지 않고 항상 휴대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자. 측정된 생체신호를 활용해 얻게 되는 편리함보다, 생체신호를 얻는 과정에서 감수해야 하는 부담감과 불편함 때문에 사용을 거부하거나 포기할 것이다. 따라서 가능한 별도의 장치를 몸에 부착하거나 휴대하지 않게 하면서 사용자가 거의 모르는 사이에, 측정에는 신경쓰지 않고 생체신호를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미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여러가지 생활 도구나 항상 휴대하고 다니는 것들에 측정기술을 삽입하는 방법이 각광받고 있다. 침대, 변기와 욕조, 식탁과 의자, 자동차의 운전대, 컴퓨터의 키보드 등이 좋은 예다. 또 셔츠를 비롯한 의류, 구두·반지·넥타이·허리띠 같은 액세서리, 휴대폰·MP3플레이어·PDA 같은 전자제품도 항상 휴대하고 있으니 측정기술을 삽입하는데 안성맞춤이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이미 이와 같은 도구나 휴대제품에 생체신호 측정 기술을 적용하는 연구가 상당히 진척돼 있다. 미 조지아공대의 연구결과를 센사텍스에서 상품화한 ‘똑똑한 셔츠’가 대표적인 예다. 이는 전도성이 있는 섬유와 광섬유를 혼합해 짠 재료로 만든 옷으로 심박수, 체온, 호흡수, 자외선 노출도, 지방지수, 소모 칼로리 등을 측정하는 센서가 달려 있다. 군인, 응급환자, 노인처럼 위급한 상태를 신속히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비보메트릭스에서도 ‘라이프 셔츠’란 이름으로 신체의 기능을 모니터링하는 제품을 출시했다. 이 셔츠에는 심전도, 흉부 호흡, 복부 호흡, 자세를 측정할 수 있는 센서들이 내장돼 있다. 따라서 활동 중에 몸 상태를 나타내주는 생체신호의 파형을 기록할 수 있다. 이는 주로 운동선수들이 운동할 때 몸 상태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파악하는데 활용되고 있다.
일본은 세계 최고령 국가로 65세 이상의 인구가 20%를 상회하고 있다. 노인의 건강관리를 위한 의료 인력의 부족이 사회적인 부담으로 대두되면서, 이를 기술적 관점에서 해결하려고 건강 모니터링 기술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혼자 사는 노인의 건강 상태를 생체신호를 이용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연구가 활발하다.
도쿄대 지능화시스템연구실에서는 침대에 압력센서를 장치해 환자의 움직임을 모니터링하고, 천장에 집음판과 고성능 마이크로폰을 장착해 호흡소리를 측정하며, 벽에 장착된 적외선 카메라로 수면 중의 영상을 기록해 매일밤 건강 상태를 기록하고 분석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또 장수과학연구소에서는 화장실 변기에 심전도나 체중 변화를 측정하는 센서를 장착해 매일 사용자의 건강 상태를 자동으로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내놨다. 이를 실제 주택에 설치해 장기간 실험 연구도 진행 중이다.
접촉 없이 심신 모니터링
국내에서도 이와 같은 연구가 몇몇 대학과 연구소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서울대 생체계측신기술연구센터에서는 심전도를 측정하는 전극과 체온을 측정하는 센서를 침대 시트에 삽입하고, 침대 다리에는 하중을 측정하는 로드셀을 장착했다. 그래서 자는 동안 심전도와 호흡을 측정하고 체온이나 신체 움직임 변화를 모니터링하는데 성공했다.
이렇게 측정한 생체신호로 수면 중 무호흡증이 나타나는지와 그 빈도수를 진단할 수 있다. 또 측정된 체온을 바탕으로 방안의 온도를 최적 상태로 자동 조절할 수 있을 것이다. 사용자는 생체신호 측정에 전혀 관심을 둘 필요 없이 평소와 똑같이 침대에서 잠을 자기만 하면 된다.
또한 욕조에 별도의 전극을 설치해 목욕하는 동안 심전도를 자동으로 측정하는 기술도 개발했다. 물이 전기를 전도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욕조에 사람이 들어가 있는 경우 전극과 사람 사이를 전기적으로 연결하면 이와 같은 측정이 가능하다.
사람의 정신적 건강 상태를 모니터링하기 위해서는 뇌파 신호가 필요하다. 그런데 뇌파는 신호가 미약한데다가 별도의 전극을 부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측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이를 위한 연구도 계속되고 있어, 앞으로는 우리 몸의 신체적 상태뿐만 아니라 심리적, 정신적 상태까지 자연스럽게 모니터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아직까지는 대부분의 생체신호 모니터링 방법들이 인체와의 물리적인 접촉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와 달리 센서가 인체와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원하는 신호를 측정하는 무접촉 모니터링 기술에 관한 연구도 국내외 연구기관에서 시도되고 있다.
생체신호 연구의 상당 부분은 이미 개발이 완료된 상황이다. 미래에는 이를 좀더 응용한 다양한 형태의 제품이 등장해 웰빙시대를 이끌어 나갈 것으로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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