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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최대 교통사고 은하 충돌은 새로운 별이 무리 지어 태어나는 창조적인 일면을 가진다. 또 은하 자체가 성장하고 진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은하도 이웃은하를 잡아먹거나 충돌하며 몸집을 불려 왔다. 은하 충돌의 또다른 얼굴을 만나보자.

은하들이 충돌한다고 해서 교통사고 현장을 떠올리며 은하들이 깨지고 부서지는 피비린내 나는 모습만 상상할지 모른다. 하지만 오해다. 은하와 은하가 충돌하는 현상은 은하의 본래 모습을 상당히 낯설 정도로 바꾸는 파괴적인 일이지만, 새로운 별들을 탄생시키는 창조적인 일면을 지니고 있다.

또 은하 충돌은 은하 자체의 진화를 설명하던 밑그림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최근 과학자들은 은하들끼리 충돌하는 사건이 우주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며, 대부분의 은하는 일생 동안 수차례 정도씩 다른 은하와 충돌하거나 상호작용하며 자신의 구조를 바꾸고 성장을 가속화시킨다고 생각한다. 은하 충돌은 은하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은하도 예외는 아니다.

은하가 충돌할 때 어떻게 별들이 탄생할까. 은하끼리 충돌해서 병합하면 은하는 어떻게 바뀔까. 우리은하가 다른 은하와 충돌한 흔적은 어떤 것일까. 은하 충돌의 관점에서 우리은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조망한다.
 

두 나선은하가 이제 막 충돌하려는 현장.


별 아닌 가스가 충돌

은하가 충돌하는 동안 수많은 별들이 탄생한다는 증거는 1983년 우주공간으로 발사된 ‘적외선 천문위성’(IRAS)에 의해 명백히 드러났다. 적외선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은하들은 여지없이 충돌하거나 상호작용하는 은하들임이 밝혀졌던 것이다. 그런데 새롭게 탄생한 별들이 적외선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새로 태어나는 아기별은 강보에 싸인 아기처럼 항상 먼지와 가스 안에 잠겨 있다. 폭발적으로 태어난 별들은 원래 자외선과 가시광선을 방출하는데, 새로운 별들을 감싸고 있는 먼지가 별에서 나온 빛을 흡수한 뒤 다시 적외선만을 밖으로 내놓는 것이다.

은하들이 충돌할 때 새로운 별들은 어떻게 태어날까. 은하가 충돌하더라도 은하에 속한 별들은 충돌하지 않지만, 대신 별과 별 사이에 있는 가스와 먼지는 충돌을 피할 수 없다. 성간가스와 성간먼지는 두꺼운 성간구름으로 찌부러지며 압축된다. 성간구름은 자체 중력으로 여러 덩어리로 붕괴되며 각각의 덩어리는 더 작게 뭉친다. 이때 성간구름 곳곳에서 새로운 별들이 무리지어 태어난다. 새로운 별들의 탄생은 갑작스럽고 폭발적으로 일어난다. 어떤 경우에는 조달 가능한 가스가 수백만년(천문학적 관점에서는 매우 짧은 시간) 내에 소모될 만큼 별들이 활발하게 탄생하기도 한다.

충돌하는 은하에서 새로 탄생한 별들은 무리 지어 많은 성단을 이룬다. 각 성단은 많게는 1백만개의 별들을 품고 있으며, 뜨거운 젊은 별에서 나온 파란 빛으로 빛난다. 일단 형성된 성단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점점 더 붉게 변한다. 성단의 파란 별들이 연료를 다 써버리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 성단은 우리은하의 헤일로(은하 외곽을 둥그렇게 감싸는 구조)에서 발견되는 늙고 붉은 구상성단(10여만개의 별이 구형으로 밀집된 무리)과 비슷해진다. 그렇다면 은하들이 충돌하는 동안 젊은 구상성단이 대량으로 탄생하는 셈이다. 대표적인 충돌은하인 더듬이은하에 대한 허블우주망원경 관측에서 1천개 이상의 새로운 성단이 확인됐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최근에는 충돌하는 은하에서 발견된 젊은 구상성단들의 색과 밝기를 관측해 은하 충돌이 얼마나 오래 전에 일어났는지를 추정하고 있다. 이들 성단은 은하의 진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밀집 은하군의 하나인 HCG87. 네 은하가 중 력이라는 지휘자에 맞춰 상호작용이라는 춤을 추고 있다.


나선은하 둘을 더하면?

은하들이 충돌한 후 하나로 합병될 때 결국 나중에 남는 은하는 어떤 모습일까. 1970년대부터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두개의 나선은하가 충돌하면 결국 하나로 합쳐져 타원은하와 비슷한 별 덩어리가 만들어진다는 점이 알려져 왔다. 1977년 알라 투므어는 모든 은하들의 10% 정도(현재 우주에서 관측되는 타원은하의 수와 대략 일치하는 비율)가 은하 충돌의 결과로 합병된 잔해라고 추정하기도 했다. 과연 나선은하들이 충돌해 타원은하가 형성된 것일까.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나선은하에는 가스가 가득하고 구상성단의 수가 적은 반면, 타원은하에는 가스가 드물고 구상성단이 많은데, 어떻게 나선은하들이 합쳐져 타원은하가 될 수 있느냐는 주장이 있었다. 물론 이 문제에는 충돌하는 나선은하의 가스에서 태어나는 대량의 젊은 구상성단들이 해결책이었다. 즉 가스를 줄이면서 구상성단을 늘려 실제 타원은하를 설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충돌하는 은하 NGC7252를 허블우주망원경으로 자세히 관측하자 충돌로 새로 탄생한 젊은 성단이 5백개 이상 드러났다.

또한 두 나선은하가 충돌해 합병을 일으킨 후 타원은하가 될 때 컴퓨터 시뮬레이션의 결과와 실제 관측결과가 맞지 않는 측면이 있었다. 컴퓨터에서 만들어진 타원은하가 실제 타원은하에서보다 훨씬 더 빨리 회전한다는 점이 한때 문제였다. 이 문제는 1990년대부터 컴퓨터 시뮬레이션에서 은하의 헤일로에 있는 암흑물질을 고려함으로써 해결됐다. 실제 은하의 헤일로에는 빛을 내지 않지만 중력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암흑물질이 상당히 존재한다. 암흑물질이 고려된 컴퓨터 시뮬레이션에서 은하의 암흑물질이 은하의 회전에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 타원은하의 느린 회전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었다.

결국 우주 초기에 나선은하들이 먼저 탄생하고 나중에 나선은하들이 충돌해 타원은하를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최근 허블우주망원경의 관측결과를 보면 은하의 진화는 이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큰 은하들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작은 왜소은하들이 부수적으로 생성되기도 했다. 우주가 더 젊었을 때는 지금보다 더 비좁은 공간에 은하들이 바글거렸기 때문에 은하들의 충돌이 지금보다 더 빈번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두개의 은하뿐만 아니라 셋 이상의 은하들이 충돌하는 일도 많지 않았을까. 예를 들어 적외선에서 굉장히 밝은 은하 1백23개를 허블우주망원경으로 3년 동안 관측한 결과를 보자. 놀랍게도 지구로부터 30억 광년 이내에 위치한 이들 가운데 30%의 은하가 예상을 깨고 셋 이상의 은하가 병합된 결과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심지어 5개의 은하가 충돌해 합쳐진 모습도 있었다. 우주에서 조그만 천체가 합체돼 더 큰 천체가 되는 계층적 진화의 마지막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이웃은하가 흘리고 간 별무리

은하 충돌은 우리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일까. 최근 몇년 사이에 밝혀지기 시작한 결과에 의하면 우리은하에도 은하 충돌과 관련된 다양한 흔적들이 남아있다. 은하 충돌의 역사에서 우리은하는 피해자라기보다 오히려 가해자의 입장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은하는 주변의 왜소은하들을 집어삼키는 ‘괴물’인 셈이다.

1994년 영국 왕립그리니치천문대의 천문학자들이 지구로부터 거리가 2만2천광년에 지나지 않는 작은 은하를 발견했다. ‘궁수자리 왜소은하’라 불리는 이 은하는 우리은하에서 제일 가깝다던 대마젤란은하보다 훨씬 더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것이다. 10만광년이라는 우리은하의 크기를 감안한다면 궁수자리 왜소은하는 우리은하 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우리은하가 이 은하를 잡아먹고 있는 셈이다.

1999년 영국의 과학저널 ‘네이처’에 실린 연세대 이영욱 교수팀의 연구결과는 그 동안 구상성단으로 알려졌던 ‘오메가 센타우리’(센타우루스자리 오메가천체)가 우리은하에 잡힌 왜소은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구상성단을 이루는 별들은 보통 동시에 탄생돼 나이나 화학조성이 동일한데 비해, 오메가 센타우리를 구성하는 별들은 화학조성이 서로 다른 네 종류로 구분되고 별들의 나이 차이가 최대 20억년으로 나타났다. 화학조성이 다양하고 나이 차이가 최대 20억년일 수 있는 천체는 다름아닌 은하였던 것이다.

올해 7월 말 미국의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된 연세대 윤석진 연구원과 이영욱 교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그 동안 우리은하에서 나이가 가장 많다고 알려진 7개의 구상성단이 사실 우리은하보다 10억년 젊은 이웃은하에서 왔다. 이들 7개의 구상성단이 한 평면 내에 존재하고 평면의 한쪽 끝에 대마젤란은하가 위치하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즉 이들 구상성단은 대마젤란은하가 우리은하를 지나가며 흘려놓았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대마젤란은하와 우리은하 사이의 상호작용이라는 인연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1973년 호주의 천문학자들이 대마젤란은하에서 우리은하까지 연결된 30만여광년 길이의 흐름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마젤란 흐름’이라 불리는 이 흐름은 약 2억년 전 우리은하와 직접 충돌하는 일을 가까스로 모면했을 때 대마젤란은하에서 떼어진 꼬리라는 설명이 가장 유력하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대마젤란은하와 우리은하는 다시 충돌해 결국 하나의 은하로 합병될지도 모른다.

우리은하 대충돌의 시나리오

우리은하의 형제 안드로메다은하는 현재 시속 48만km의 속도로 우리은하에 접근중이다. 이 거대한 나선은하가 우리은하에 정면으로 충돌할지 스치듯 지나갈지 아직 확실치 않다. 좀더 강력한 망원경으로 세밀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 만일 두 은하가 정면 충돌한다면 결국 거대한 타원은하가 하나 탄생할 것이다.

충돌하는 다른 은하들을 연구하고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하면 우리은하에 일어날지 모를 대충돌 과정을 예측할 수 있다. 대충돌은 50억년 후에야 일어난다. 이때쯤이면 태양도 다 타버리고 지구도 생명이 살기 힘든 곳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혹시 인류는 우리은하 어디론가 보금자리를 옮겨가지 않았을까. 안드로메다은하와 우리은하가 정면으로 충돌한다면 벌어질 시나리오를 만나보자.

현재 안드로메다은하는 지구에서 2백20만광년 떨어져 있어 북쪽하늘에 희미한 얼룩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은하에 접근할수록 빛의 검처럼 점점 더 밝아질 것이다. 안드로메다은하가 우리은하와 충분히 가까워지면 크기가 수천광년인 거대 성간구름들이 압축된다. 압축된 덩어리들은 크리스마스트리의 전구처럼 수백만개의 별들로 빛을 발한다. 대부분 푸른 성단을 이룬다.

먼지와 별들로 구성된 은하 원반도 상대편 은하의 기조력으로 인해 찢어진다. 안드로메다은하가 우리은하를 지나갈 때 하늘에는 먼지, 가스, 밝은 별과 성단으로 뒤범벅이 될 것이다. 너무나 많은 별들이 태어나 밝은 별들은 극적으로 늘어나고 이 별들은 불꽃놀이처럼 연달아 초신성으로 폭발한다.

안드로메다은하는 우리은하를 지나친 후 1억년만에 다시 천천히 U턴하며, 우리은하 핵으로 충돌을 감행한다. 이때 많은 별들이 폭발적으로 태어나는 장관이 벌어지고, 남은 가스와 먼지는 초신성 폭발로 생긴 바람에 실려 우리은하에서 쓸려나간다. 두 은하의 별들은 뒤섞여 하나의 타원모양이 된다. 별들이 역학적으로 안정되면, 거대한 타원은하가 탄생한다. 먼 미래에 어떤 천문학자가 밤하늘을 관측한다면 새로운 타원은하의 핵을 만나게 될 것이다.

2002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이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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