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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미래형 족집게 진단장비 생체자기센서

지구자기장 10억분의 1까지 잡아낸다

“축하합니다. 2개월이네요.”
첫 아기를 임신한 신혼부부. 산모와 태아의 건강을 점검하기 위해 산부인과를 찾는다. 생체자기장 검사로 태아의 여러 장기에 이상이 있는지를 진단한다.

“초음파 검사로는 태아의 외부 모습 정도만을 볼 수 있습니다. 생체자기센서가 일반화되기 전에는 태아의 뇌나 심장의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뇌파나 심전도를 측정했는데, 신호가 미약해 검사가 어려운 경우가 많았죠. 진단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한 셈입니다.”

의사의 설명이다. 태아 장기의 자기장을 측정하면 산모로부터 영양분을 제대로 공급받고 있는지, 각 장기가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래에는 이처럼 인체의 자기장을 측정하는 장비가 진단에 유용하게 사용될 전망이다.

안전하고 정확한 차세대 뇌영상
 

뇌 주변 자기장 분포도인 뇌자도를 얻기 위해서는 고감도 자기센서 여러개가 배열돼 있는 다채널 센서가 필요하다.


사람의 몸 주위에는 자기장이 분포한다. 인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생명활동이 모두 전기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뇌가 전기신호를 발생시켜 다리 근육세포에 전달하면 근육이 수축하면서 걷게 된다. 그렇다면 인체 주변에 형성돼 있는 자기장을 눈으로 볼 수는 없을까. 자석 주위에 철가루를 뿌리면 철가루가 자기장 모양에 따라 늘어서는 것처럼 말이다.

과학자들은 활발하게 전기활동이 일어나는 인체 부위이자 생명유지에 없어서는 안될 뇌에 주목했다. 대뇌 표면을 둘러싸고 있는 피질에는 약 1백억개 이상의 신경세포가 연결돼 신경망을 형성하고 있다. 각 신경세포에서 발생한 전기신호가 신경망을 통해 다른 신경세포에 전달되면서 그 주변에 자기장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뇌신경세포 하나에서 발생하는 자기장은 너무 미약해 측정이 불가능하다. 다행히 어느 한곳에서 나온 전기신호가 주변의 수만개 신경세포에 전달돼 이들이 동시에 활동하기 때문에 자기장이 측정할 수 있을 만큼 세진다. 예를 들어 피아노 소리를 들을 때는 건반의 음 하나마다 약 5만개의 청각신경세포가 동시에 반응한다. 이때 머리 위 2cm 높이에 약 2백fT(펨토테슬라, 1fT=${10}^{-15}$T) 정도의 자기장이 형성된다고 한다.

그렇다 해도 뇌 자기장은 수십-수백fT 정도로, 약 50μT(마이크로테슬라, 1μT=${10}^{-6}$T)인 지구자기장에 비하면 그 세기가 10억분의 1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처럼 약한 생체자기장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저항이 없는 초전도 상태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양자간섭소자(SQUID)를 이용한 고감도 자기센서가 필요하다.

초전도양자간섭소자를 인체 가까이에 놓으면 자기장 신호를 포착해 내부 코일에서 증폭시켜 그 크기에 비례하는 전압을 발생시킨다. 이를 표시한 것이 뇌의 자기장 분포도, 즉 뇌자도다. 뇌자도는 지도에서 산의 높이를 표시하는 등고선과 비슷하다. 곡선의 모양이나 각 부분의 색깔을 보고 뇌 신경회로에 전류가 어떻게 흐르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뇌자도는 정상인과 환자에서 다르게 나타난다. 셋째 손가락의 촉각, 입술의 움직임 등 여러 기능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각각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이에 따라 전류가 발생하는 위치도 다르다. 뇌수술 환자의 경우 수술 부위 주변의 뇌자도를 측정하면 그 부위가 뇌의 어떤 기능과 관련되는지 판단할 수 있다. 따라서 수술 후 뇌 기능과 관련된 후유증을 줄일 수 있다.

간질 환자의 경우 뇌 특정 부위에서 정상인에 비해 10배 정도 강한 전기신호가 발생하기 때문에 특유의 자기장 분포가 나타난다. 이를 환자 뇌 단면을 촬영한 MRI(자기공명영상) 사진과 비교하면 간질이 발생한 뇌의 정확한 위치를 알아내 수술 부위를 결정할 수 있다.

1998년 일본에서는 진짜문자와 가짜문자를 혼합해 제시했을 때 실험자의 뇌에서 자기장 분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조사하기도 했다. 이처럼 실어증, 학습 장애 등 고차원적 인지기능에 문제가 있는 질병을 진단, 연구하는데도 뇌자도를 이용할 수 있다.

현재 뇌를 진단할 때는 fMRI(기능성 자기공명영상)나 PET(양전자방사단층촬영)을 사용한다. 이들은 고자기장이나 방사선에 노출되는 단점이 있지만, 뇌자도는 인체와 접촉하지 않고 물리적 변화만을 측정하기 때문에 안전하다.

또한 뇌에서 발생한 전기신호 중 일부가 머리 표피까지 도달한 것이 뇌파다. 머리에 전극을 부착하면 뇌파를 측정할 수 있지만, 전기신호가 표피까지 나오는 동안 왜곡될 가능성이 많아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다. 이에 비해 생체자기장은 전류가 발생한 부위의 주변 구조에 영향을 덜 받아 실제 발생한 신호만이 측정될 수 있기 때문에 뇌파보다 정확하다.

뇌 다음으로 주목받고 있는 부위는 심장이다. 심방 윗부분에서 발생한 전기신호가 심방에 흐른 다음 심실로 이동하면서 심장은 수축과 이완을 반복한다. 이것이 온몸에 혈액을 공급하기 위한 심장 박동이다. 이때 심장에서 발생하는 자기장의 세기는 수십 pT(피코테슬라, 1pT=${10}^{-12}$T) 정도로 뇌 자기장보다 약간 세다.
 

MRI(자기공명영상) 장비로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를 촬영하고 있다. 미래에는 뇌의 MRI 영상과 자기장 분포도를 비교∙분석함으로써 더욱 정확한 진단이 가능해질 것이다.


암과 심장병도 눈으로 확인한다

뇌와 마찬가지로 심장에서도 전기신호 흐름에 이상이 생기면 심장질환이 생긴다. 전기신호가 심실에 제때 도착하지 못하면 심장 박동이 불규칙해지는 부정맥이 된다. 또 전기신호가 잘 발생하지 않으면 심장마비가 일어나기도 한다. 지금까지는 심장질환을 진단할 때 심전도를 이용했다. 심장에서 발생한 전류 중 일부가 가슴 또는 팔다리까지 도달해 형성된 전압을 측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심전도만으로는 심장질환이 발생한 정확한 위치를 알아내는데 한계가 있다. 심장 자기장 분포인 심자도가 각광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심자도 측정에도 뇌자도와 마찬가지로 고감도 자기센서를 이용한다. 단 심자도를 측정할 때는 바닥이 평평한 장치에 센서를 평면으로 배치하고, 뇌자도를 측정할 때는 반구형이나 머리 모양과 비슷한 헬멧형 장치 속에 센서를 부착한다.

미래에는 뇌와 심장 이외에도 인체 여러 부위에서 생체자기장을 측정해 진단에 활용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척수 주위 자기장을 측정하면 신경계에 이상이 있는지 알 수 있다. 손발이 움직이거나 자극을 받았을 때 근육에서 발생한 전기신호가 척수를 통해 신경계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또 위는 전기신호로 근육을 움직여 음식물을 소화시킨다. 그런데 위에 암세포가 자라고 있다면 비정상적인 전기신호가 발생할 것이다. 따라서 위 주변의 자기장을 측정하면 암세포가 있는 부위를 알아낼 수 있다.

인체 전류가 만드는 건강지도
 

이 박사팀이 개발한 뇌자도용 40채널 자기센서. 머리 모양에 맞게 센서들이 오목한 모양으로 달려있다.


미래 진단기법으로 주목받고 있는 생체자기장은 인체에 흐르는 전류를 바탕으로 만든 건강지도인 셈이다. 하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다. 자기장은 거리가 멀어질수록 세기가 급격히 줄기 때문에 센서가 인체에 최대한 가까워야 한다. 또 생체자기장은 자동차, 엘리베이터 등이 작동할 때 발생하는 외부 자기신호에 비해 매우 약하다. 때문에 자기잡음을 차단한 차폐실 안에서 측정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또 자기장은 발생한 지점과 그 주위에 걸쳐 분포하기 때문에 가급적 넓은 부위를 짧은 시간 내에 측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수십-수백개의 자기센서를 촘촘히 배열한 다채널 센서가 세계 각국에서 연구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1998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생체자기계측센터 이용호 박사 연구팀이 40채널 자기센서를 개발한 바 있다. 미국, 일본, 캐나다, 핀란드, 독일, 이탈리아에 이은 세계적인 성과다. 생체자기계측센터는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과 함께 뇌에서 간질이 발생하는 부위를 찾는 연구를, 고려대 심리학과와 언어인지기능 연구를, 건양대병원 심장센터와 심장질환 진단 연구를 진행 중이다.

한편 지난 4월 말 이 박사 연구팀이 개발한 60채널 심자도 측정장비가 연세의료원 심장혈관병원에 설치돼 실제로 임상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이 박사는 “2년 정도 지나면 생체자기장 진단기술이 fMRI나 PET처럼 상용화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며 “어떤 자기장 분포가 어떤 질환에 해당되는지 정확하게 구분하기 위해 질환별로 표준화된 자기장 분포 기준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앞으로의 연구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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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임소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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