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염 백신은 과연 믿을만한 것인가. 전국민의 10%선이 B형간염바이러스의 보균자로 알려진 국내에서는 간염백신을 맞으려는 사람들이 병원에서 줄을 잇고 간염백신의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접종방법에 대해 논란이 벌이지기도 했다.
간염은 약물이나 술로 인해서 또는 바이러스가 우리몸에 침입해서 간세포가 파괴되고 간에 염증이 생기는 병을 통틀어서 말한다. 이같은 간염은 특히 B형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일어날 때 문제가 된다.
간염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현재 A형B형, A형도 B형도 아닌 非A非B형 등 세가지가 알려져 있지만 B형바이러스는 전국민의 9%에 이르는 많은 사람의 몸안에 침입해 있고 만성간염을 거쳐 간경화 간암 등의 치명적인 과정을 밟게 함으로써 목숨을 빼앗기 때문에 사전에 예방해야 한다는 게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부각되어 왔다.
A형간염은 주로 10세 미만의 어린이에게 나타난다. 바이러스성 간염중에서 가장 전염성이 강한 반면 잘 낫고 만성간염으로 발전하는 일이 없다. A형 간염은 한번 걸렸다가 낫고 난 뒤에는 다시 걸리지도 않으므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非A非B형은 주로 수혈을 통해 전염이 되나 발생빈도가 매우 적다. 만성화되는 경우도 없지 않으나 간경변증이나 간암으로 발전하는 예는 극히 적다는 것이다.
B형간염바이러스에 감염돼 급성간염에 걸린 환자는 10~15%가 완전히 치료되지 않고 만성간염으로 발전하며 이중 절반 정도는 간경변이 되고 간경변환자의 25%는 간암으로까지 발전된다는 것.
이같이 무서운 B형간염을 막기 위해서는 B형간염에 걸린 사람의 혈액이나 침 정액같은 체액에 접촉되지 않도록 해야 하지만 백신을 맞아 체내에 B형바이러스를 스스로 물리칠 수 있도록 면역력을 길러두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신생아의 경우에는 출생직후나 젖먹이시절에 B형간염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만성간염 간경화 간암의 가능성이 많아지므로 B형간염바이러스에 대한 예방접종의 필요성이 매우 크다고 지적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시판되고 있는 간염백신은 세가지가 있다. 미국 프랑스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서울대의대 김정룡교수(내과)가 77년에 개발, 녹십자에서 생산 판매하는 제품과 미제 및 프랑스제 수입품이다.
이들 제품은 모두 만성B형간염에 걸린 사람이나 보균자의 혈청을 사용해서 제조한 것. B형간염바이러스는 동물의 조직내 배양이 되지 않으므로 실험동물을 이용해 생산하는 소아마비나 일본뇌염의 백신과는 제조원리가 사뭇 다른 것이다.
B형간염환자나 보균자의 혈액을 채취해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등 혈구성분을 없앤 뒤 남는 맑은 액체인 혈청을 전자현미경으로 살펴보면 막대기형 구형 도너츠형 등 여러가지 모양의 B형간염바이러스를 볼 수 있다.
이중 도너츠모양으로 두겹의 껍질을 가진 것을 데인(Dane)입자라고 부르는데 바로 이 데인입자가 생명력과 감염력을 갖춘 완전한 형태의 B형간염바이러스이다. 지름이 42나노m(1나노m는 1백만분의 1mm)인 데인입자의 맨 바깥껍질을 B형간염 표면항원이라고 부르고 이 입장의 안쪽부분에 있는 핵의 껍직은 핵항원, 핵의 내부구성 성분은 e항원이라고 부른다.
하나의 B형간염바이러스에는 세가지 항원이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B형간염바이러스가 우리몸에 침입하면 체내에서는 몸을 보호하기 위해 이 세 항원에 대해 각각의 항체가 만들어진다. 이 세 항체는 차례로 B형간염표면항체 핵항체 및 e항체라고 불린다.
이들 세 항체중에서 B형간염바이러스의 재감염을 막아내는 것은 오직 B형간염 표면항체 뿐이다. 간염백신은 다름아닌 이 표면항체가 체내에서 만들어져 B형간염바이러스에 대해 면역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표면항원은 생명력이나 감염력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몸속에 침입하더라도 표면항체만 만들어지도록 할 뿐 B형간염바이러스를 일으키지 않는다. 간염백신은 바로 이 점 때문에 B형간염바이러스 중에서 표면항원만을 정제 분리해서 만든 것이다.
B형간염바이러스중 막대기형과 구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 순수한 표면항원이다. 문제는 표면항원만을 순수하게 분리하는 과정에서 백신중에 데인입자가 섞여들어와 B형간염이 전파되는 것. 이같은 위험을 없애기 위해서는 반드시 백신은 불활성화처리를 하게 된다. 불활성화 과정은 가열처리나 포르말린처리 또는 이 두가지 처리를 함께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현재 국내에서 시판되고 있는 세가지 간염백신은 효과와 안전성에서 서로 비슷한 결과를 보이고 있다.
가톨릭의대 정환국교수팀(내과)이 국내의 녹십자제품과 미식품의약국(FDA)의 판매허가를 얻은 MS&D사(통칭머크사)의 제품을 비교검토한 결과, 두 백신은 효과면에서 항체생산능력이 서로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두 백신을 정상 건강인에게 1개월 간격으로 2회 주사하고 5개월 뒤 다시1회 주사해 모두 3회의 백신접종을 마친 뒤 항체생산비율을 보면 녹십자제품은 80%, MS&D사제품은 87.5%로 나타났다는 것. MS&D사의 제품은 82년 7월 중외제약에서 수입판매를 시작했으나 현재는 럭키에서 이를 맡았다.
일반적으로 의료계에서는 항체생산율이 80%이상이면 양호한 백신으로 여긴다. 서울대의대 김정룡교수팀의 임상실험보고로는 같은 방법으로 92%의 항체생산률을 보였다. 다만 부작용으로 녹십자제품의 경우 주사맞은 자리에 통증과 발열이 57%, 발열이 8%, 전신쇠약감이 6%로 나타났다.
지난 83년 10월 서울 호텔신라에서 열린 B형간염 심포지움에서 B형간염에 대한 세계적인 권위자의 한 사람인 미국 뉴욕 혈액센터 '앨프리드 프린스'박사는 미국 프랑스 한국의 간염백신은 침팬지를 이용한 테스트 결과 효과와 안전성에 서로 큰 차이가 없다고 밝혔다. 간염백신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아직도 값이 비싸다는 것. 82년과 83년 외제와 국산백신이 각각 팔리기 시작할 때보다 값이 절반 정도나 그 이하로 떨어졌지만 아직도 간염백신 1회접종비는 제품에 따라 1만원에서 2만5천원 정도가 든다.
지난8월말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대한의학협회주최 간염대책세미나에 참석한 '매너드'박사(세계보건기구 간염협력연구센터소장 및 미 질병퇴치센터 자문위원)는 간염백신은 1달러선이나 그 이하의 값으로 내려가야 한다며 다양한 제조방법의 도입에 따라 실제 지난 2,3년 사이에 간염백신값이 크게 내려갔고, 앞으로 1,2년내에는 1회접종비가 1달러 이하로 내려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매너드'박사는 미국에서 현재 1회접종비가 35달러인 MS&D사의 간염백신이 자유중국에서는 4달러에 팔리고 있고 한국에서는 녹십자제품이 7달러선에서 팔리고 있다는 사실로 자신의 전망을 뒷받침했다. 백신제조방법을 달리하는 백신제조회사간에 서로 경쟁하게 되면 백신값은 내려갈 수밖에 없다는 것.
한편 국내의 간염백신값은 85년말이나 86년초를 고비로 한차례 값이 내려갈 전망이다. 간염백신시장에 뒤늦게 뛰어든 제일제당이 미국현지연구소를 통해 개발한 간염백신을 1회접종비 3천5백~4천원(출고가) 선으로 시장에 내놓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제일제당의 간염백신은 1회주사량에 간염표면항원의 양이 3마이크로g(1마이크로g은 1백만분의 1g)으로 종래의 녹십자와 럭키(MS&D사)제품의 20마이크로g, 동아제약(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제)제품의 5마이크로g보다 훨씬 적은 양으로도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 아뭏든 국내에서도 간염백신의 제조 및 판매원이 다양화할수록 경쟁에 따른 간염백신 판매값의 인하가 촉진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