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공장에서 일하던 청각장애자가 용접기가 잘못 작동하는 바람에 두눈을 크게 다쳤다. 급히 응급실로 실려갔지만 상태는 매우 심각하다. 두눈의 기능이 모두 손실돼 아예 실명한데다가 얼굴 피부까지 많이 손상됐다. 손상된 피부는 피부이식 수술을 받아 어느 정도 복구됐지만, 실명한 눈은 예전 상태로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아 절망한다.
그러나 다행히 시신경이 살아 있어 인공눈을 이식하는 수술을 받는다. 또 전부터 잘 들리지 않았던 귀에도 인공청각 칩을 삽입한다.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나보니 극소형 디지털 비디오카메라가 장착된 안경을 쓰면 눈앞에 있는 물체의 형상을 알아볼 수 있다. 디지털 비디오카메라가 포착한 영상이 이식된 인공망막으로 전송되고, 인공망막이 이를 다시 시신경에 보내는 것이다.
소리를 청신경까지 전달해주는 인공청각 덕분에 가족의 말도 알아들을 수 있다.
미래에는 이처럼 불의의 사고로 시각이나 청각을 잃은 사람, 시각 장애자나 청각 장애자도 보고 들을 수 있는 기술이 상용화될 전망이다.
물체 상 대신 맺는 인공망막
시각과 청각은 빛과 소리를 통해 인간이 환경을 인지하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는 중요한 감각 기능이다.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지식이나 정보를 습득하는 과정의 80% 이상이 눈(시각)과 귀(청각)를 통해서 이뤄진다고 한다.
눈과 귀는 이렇게 매우 중요한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들면서 노화돼 성능이 퇴보한다. 또는 사고로 인해 아예 시력이나 청력 자체를 잃어버리는 불행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웰빙은 커녕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의 시각과 청각 기능은 매우 복잡한 정보처리과정을 거친다. 따라서 인공 시청각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우선 인간의 시청각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야 한다.
눈은 각막, 수정체, 망막, 유리체, 공막, 시신경 등으로 구성돼 있다. 각막은 눈의 가장 바깥쪽에 있는 투명한 무혈관 조직이다. 안구를 보호하고, 광선을 굴절시켜 망막으로 보낸다. 수정체는 양면이 볼록한 돋보기 모양의 무색투명한 구조로, 각막과 함께 눈의 주된 굴절 기관이다. 탄력성이 있어 가까운 곳을 볼 때는 수축하고, 먼 곳을 볼 때는 확장돼 굴절력을 증가시킨다. 눈의 가장 핵심 부분인 망막은 투명한 신경조직으로, 카메라의 필름에 해당한다.
눈동자를 통과한 빛은 수정체에 의해 초점이 맞춰져서 망막의 감각신경 상피조직에 도달한다. 그러면 크기가 줄어들고 상하가 바뀐 물체의 상이 망막의 가장 바깥층에 있는 1억3천만개의 광수용체 세포에 투영된다. 광수용체 세포 중 원추세포(cone cell)는 고해상도의 컬러 영상, 간상세포(rod cell)는 상대적으로 어두운 저해상도의 흑백 영상을 감지한다.
광수용체 세포에 투영된 밝기와 컬러를 비롯한 시각 정보는 전기적, 화학적 신호로 바뀐 다음, 1천2백만개의 초정밀 말초 신경세포가 형성하는 시신경망을 통해 대뇌피질의 시각을 담당하는 부위로 전달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우리가 물체를 알아보는 것이다.
빛이 각막을 통과해 망막의 시신경을 거쳐 대뇌의 시각 피질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부분이라도 손상되면 시각 처리에 문제가 생긴다. 이 중 특히 망막이 손상돼 실명하는 경우가 전체 실명 환자의 50%를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망막이 손상된 환자를 위해 인공적으로 망막을 만들어 삽입하는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인공시각 구현 기술은 10여년 전부터 미 존스홉킨스대,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대, 캘리포니아공대, 매사추세츠공대, 하버드대에서 활발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아직은 소수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실험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중 세계 최고의 기술을 자랑하는 존스홉킨스대에서는 인공망막 칩을 맹인의 눈에 이식해 시력을 회복시키는 연구가 한창이다. 아직까지는 간단한 문자와 기호를 겨우 알아볼 수 있는 수준이지만, 오래지 않아 맹인의 시력 회복에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외에도 독일, 일본 등지에서 개발 중인 인공망막도 몇년 이내에 기능 테스트를 위한 초기 임상실험에 들어갈 예정이다.
소리 대신 전달하는 인공달팽이관
인간의 귀는 외이, 중이, 내이로 구성돼 있다. 외이와 중이는 소리를 모아 증폭시키고 기계적 진동으로 바꿔 내이 안의 달팽이관으로 전달한다. 청신경과 연결된 달팽이관은 사람이 소리를 듣는데 필요한 핵심 기관으로, 림프액으로 채워진 두개의 긴 관이 달팽이 껍데기처럼 말려있는 모양이다.
달팽이관 통로를 따라 진동이 전달되면 이 에너지에 의해 림프액이 움직이고 두 관 사이에 있는 기저막이 떨리게 된다. 기저막이 진동하면 코르티기관이라는 청각수용체가 이를 감지해 전기적, 생화학적 신호로 변환한다. 이 신호가 청신경을 통해 대뇌피질의 청각을 담당하는 부위로 전달돼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청각 상실의 원인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외이나 중이에 있는 기관에 문제가 생겨 청각을 상실한 경우는 대개 소리의 진동을 증폭해주는 보청기로 어느 정도 치료가 가능하다. 그러나 시각을 상실하는 절반 가량의 원인이 시각의 핵심 기관인 망막 손상 때문이듯이, 청각 상실도 핵심 기관인 달팽이관에 문제가 생겨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인공달팽이관 개발을 위해 많은 연구가 진행됐다.
호주 멜버른대가 1967년 연구하기 시작한 인공달팽이관은 미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아 1980년 이후 시술에 사용되고 있다. 이 인공달팽이관을 시술받은 환자는 실제로 단어나 문장을 알아듣는 능력이 향상됐다. 1990년 초부터 국내에도 호주 코클리어 사의 인공달팽이관인 뉴클리어스가 수입돼 최근까지 환자들이 시술 받고 있다. 이를 이식받으면 사용자가 활동하면서도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다. 이 외에도 미국 회사 바이오닉과 오스트리아 회사 메델의 인공달팽이관도 가까운 미래에 실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청각 능력의 회복과 뇌의 반응과의 관계에 대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6년 동안 과학기술부 중점연구과제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 뇌과학연구센터를 중심으로 뇌신경정보학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5개 과제 중 인공시각과 인공청각에 대한 연구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 연구에서는 인간 시청각의 뇌신경정보처리 메카니즘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인공시청각시스템 구현이 진행 중이다. 2004년부터 2009년까지 진행될 3단계 연구가 완료되면 그 결과를 최종 시청각 칩으로 완성해 상용화할 계획이다. 이 외에도 여러 대학이나 연구기관에서 인공시청각시스템을 현실화하기 위한 연구 성과들을 속속 내놓고 있다.
이와 같은 인공시청각 기술 개발의 어려운 점 중 하나는 사람들이 몸에 이물질을 부착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최대한 불편을 적게 느끼면서 신체에 필요한 이물질을 삽입, 제거, 고정할 수 있는 기술이 뒷받침돼야 한다.
또 지금까지 개발된 인공망막이나 인공달팽이관은 대뇌피질로 통하는 시신경이나 청신경이 손상되지 않아야 사용할 수 있다. 시신경이나 청신경이 손상된 환자에게는 인공시청각 기술이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대뇌의 시청각 작용까지 구현해내야 한다. 그러나 대뇌의 인식이나 인지 영역까지 인공적으로 처리하는 것은 아직까지 불가능한 실정이다.
인공시청각 기술 개발을 위해서는 의학, 생물학, 뇌과학, 심리학, 전자공학, 컴퓨터공학 등 다양한 분야의 공동연구가 필수적이다. 이들 간의 유기적인 협조가 원활히 이뤄진다면 언젠가는 시신경이나 청신경이 손상된 장애도 극복될 수 있을지 모른다.
멀리 보고 작은 소리도 듣는다
인공시청각 기술은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에게 시각을,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사람에게 청각 기능을 복원시켜 줄 수 있다. 미래의 인공시청각 기술은 손상된 시청각 기관을 복원할 뿐만 아니라, 영화 ‘6백만불의 사나이’ 에서처럼 정상인의 시청각 능력을 획기적으로 증가시키는 방향으로도 이용될 수 있다. 실제 ‘바이오닉스’ 라는 연구 분야에서 각종 신체 기관을 인공적으로 구현해 대체함으로써, 사이보그형 인간을 만드는 기술 개발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또한 인공시청각 기술을 컴퓨터, 가전제품, 게임기 같은 IT 장비에 적용하면 장비가 사람을 보거나 소리를 들어 적절히 반응하게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공망막 칩과 인공달팽이관이 장착된 게임기의 캐릭터는 사용자의 움직임과 반응을 감지해 그에 따라 조종된다. 가전제품도 눈이나 목소리로 조종할 수 있고, 인공망막 칩이 장착된 카메라로 윤곽이 좀더 선명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집안 곳곳에 설치돼 있는 인공시각 카메라는 주인의 행동을 관찰, 분석해 각 상황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인공달팽이관이 장착된 문이 사람의 목소리나 잡음 섞인 소리를 명확히 구분해 낼 수 있기 때문에 미래에는 더이상 열쇠를 많이 갖고 다닐 필요가 없을 것이다. 개인용 컴퓨터도 음성인식을 통해 사용자를 확인함으로써 다른 사람이 마음대로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로봇이나 컴퓨터의 인터페이스로도 인공시청각 기술이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얼굴이나 표정을 인식해 사용자가 누구인지, 기분이 어떤지를 파악하거나 사용자의 몸짓을 인식해 원하는 작업을 수행하도록 한다. 미래에는 로봇 스스로 주인과 대화하고, 작업을 보조하며, 함께 춤과 노래도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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