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별이다.
지극히 무덤덤한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잠시 동안 내게 집중된 카메라들을 보고 이야기의 맥락을 놓친 건가 싶었다. 그 즉시 로그 파일을 띄우고 되짚어 본 결과 생각하던 바가 밖으로 흘러나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나는 별이다.’
로그 파일에는 분명 그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분명히 그 시점에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생각하던 바가 외부로 송출된 이유도 알 수 있었다. 너무 오랜만에 외부 사람을 맞이한 터라 송출 모드를 끄고 켜는 순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조사관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번거로워질 뿐이라 나는 말을 이었다.
‘그런 생각이 든 건 오래 전부터입니다.’
조사관을 담은 원격 드론은 바퀴 여섯 개를 움직여 몸을 반 바퀴 돌리고 말했다.
‘우리를 구성하는 물질은 별을 구성하는 물질과 똑같다, 그런뜻에서 한 말인가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말 오랜만에 듣는군요. 그 말이 유행한 건…, 인류가 태양계를 벗어나기도 전일 텐데요.’
거짓으로 답할까 말까 잠시 망설인 다음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아뇨. 그런 뜻이 아닙니다. 설명을 드려도 될까요?’
조사관을 담고 있는 드론의 카메라 셋이 서로 간격을 조금 벌렸다. 마음대로 하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는 내 말한 마디 한 마디를 분석할 것이다. 애초에 그는 케플러 64 항성계 3 행성의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왔으며, 행성의 상태란 나의 상태도 포함하고 있었으니까.
‘지금 저와 함께 걷고 계시는 이 통로를 짓던 때의 일이었습니다. 통로에는 일정 간격으로 투명한 창이 있는데, 마침 바깥에서는 기온이 급히 떨어지며 수분이 응결된 참이었습니다. 사방이 안개였죠. 탁한 물 속에 잠긴 것처럼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는데, 그 대신 통로의 조명을 받은 제 그림자가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밖에 서 있었습니다. 외부 카메라나 탐사용 드론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마침 제 초점은 통로 공사용 드론에 있었고, 이 행성에 지적인 존재라고는 나와 내 그림자뿐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던 겁니다. 만약에 지성을 가진 존재가 있어야 별의 의미가 완성된다면, 제가 곧 이 별인 셈이죠.’
‘엄밀하게 따진다면 여긴 행성이지 별은 아닙니다만.’
나는 조사관의 딱딱한 반응에 다소 마음을 놓았다.
‘이를 테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조사관이라는 직업에는 검색으로 드러나지 않는 기준이 있음에 분명했다. 그는 내가 케플러 64 항성계에 근무하면서 세 번째 맞이하는 조사관이었는데, 전임자들과 마찬가지로 모순된 기대를 품고 있었다.
행성의 기지는 순전히 나 혼자의 힘으로 운영되고 있다. 내가 원격으로 조종할 수 있는 드론은 47대, 그 중 내가 직접 탑승할 수 있는 드론이 12대다. 세 번째 조사관이 방문한 지금, 나는 그 12대 중 한 대를 금속 육체 삼아서 안내를 하고 있다. 나머지 11대는 창고에서 안전하게 절전 상태에 들어가 있으니 나는 총 36대의 드론을 실시간으로 관리하는 셈이었다. 물론 그 가운데 35대는 잠시 내 의식의 초점 밖에 있기 때문에 간단한 인공지능 프로그램들이 알아서 관리하고 있었다. 따라서 나는 늘 조사관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편집 상태’에 있어야 한다.
모순된 표현이기는 하지만 그보다 적합한 표현을 찾을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전송 받은 소식에 따르면 나와 같은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다섯 명에 불과하고, 편집 상태로 생활하는 사람도 그 다섯뿐이기 때문이다. 누구든 마음만 먹는다면, 아주 독하게 마음을 먹는다면 편집 상태로 살 수는 127있다. 나처럼. 하지만 그럴 필요가 있을까? 삶이란 무릇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생물학적인 육체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떠날 수 있게 된 것이 벌써 수천 년 전의 일이긴 하지만, 기계 몸에 싣는 정신 코드에도 얼마든지 감정을 담을 수 있다. 비록 단백질 사이를 오가는 전기 신호나 호르몬의 변덕이나 혈압의 변화는 없을지라도. 하지만 여기 케플러 64의 3행성에서는 엄격한 편집 상태가 필요하다. 나는 곧 별이기 때문이다. 이 행성에, 이 항성계에 지성을 가지고 사는 존재는 나뿐이기 때문이다.
감정은 사치이고 자칫 일의 효율을 떨어뜨릴 수 있는 장애이다. 나는 그 모든 사실에 동의했기 때문에 지금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런데도 조사관들은 올 때마다 모순된 질문을 던진다. 이번 조사관도 예외는 아니었다.
‘육체는 잘 보관되고 있죠?’
조사관은 신분만 입력하면 3행성 기지의 모든 정보와 상황을 곧장 다운로드 받아 분석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질문을 송신했다. 일종의 압박이다. 나는 무덤덤하게, 실시간으로 냉동 탱크의 상태를 재확인한 다음 대답했다.
‘예. 세 개의 육체가 아무 이상 없이 보존돼 있습니다. 필요한 상황이 되면 여섯 시간 만에 해동할 수 있습니다. 제가 육체로 돌아가는 데에 세 시간 정도가 걸리니까 열 시간쯤이면 모든 과정을 끝낼 수 있습니다.’
조사관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만족했다는 뜻이다. 그의 관심은 이제 내게서 떠나 케플러 3행성 기지가 존재하는 이유, 다시 말해서 통로의 끝에 있는 ‘등대’로 향했다.
등대는 인류가 유인원 시절부터 품었던 공포와 호기심과 기대와 어리석음을 모두 상징하고 있었다.
어리석다는 건 ‘등대’라는 단어 그 자체 때문이다. 나도 이 일에 자원하면서 검색을 거듭해 알게 됐지만, 등대란 수면 위로 이동하는 교통 기관을 불빛으로 인도하는 원시적인 장치를 가리킨다. 우리가 육체를 마음대로 들락거릴 수 있게 된 때보다 최소한 1000년은 더 과거에 사용했던 장치다. 지금은 장거리 여행을 하려면 교통 기관에 올라 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곧 그 교통기관이 된다.
정신 코드만 제대로 복사해 넣으면 우주선을 수족처럼(이것 역시 아주 오래된 관용 표현이지만) 부리면서 직접 우주를 떠다닐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 작동원리마저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기계를 ‘등대’라고 부른다니, 비록 뜻하는 바가 뭔지 안다고 해도 어리석은 호칭이라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공포란 당연히 등대의 주인이 누군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생겼다. 등대의 외부 구조로 보아 주인의 대략적인 외형은 짐작할 수 있었다. 등대는 지상으로 30m 가량 돌출되어 있는 합금 구조물이다. 꼭대기에는 강력한 신호를 보내는 일종의 송신부가 있다. 지상 구조물은 송신부를 포함한 길다란 탑과, 넓은 원형 건물로 이뤄져 있다. 건물에는 네 개의 입구가 있다. 지상을 이동하는 교통 기관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입구의 크기가 등대 주인을 짐작하는 첫 번째 단서가 되었다. 만약 등대 주인이 어떤 형태로든 보행을 하는 생물이라면, 또는 우리처럼 정신을 코드로 바꿔 기계 몸에 탑승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면, 그의 육체나 기계 몸체는 최소한 3m 보다는 작을 것이다. 입구의 높이가 3m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등대 주인이 속한 종족은 과학과 기술을 상당한 수준까지 발전시켰을 것이다. 등대의 존재 이유는 아직까지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지하 1500m까지 뻗어 있는 등대의 뿌리가 동력을 제공하고 있는 건 분명했기 때문이다. 주변의 지형과 암석 변형을 분석한 결과 주인은 열과 진동을 이용해 지면을 파고 등대를 세웠다. 그게 약 3000년 전의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기지를 세우고 살기 전까지 케플러 64에 지적인 존재가 세운 인공 설비는 등대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현재 케플러 64에 살고 있는 지적인 존재는, 그 등대를 어떻게 켜고 끄는지도 모르는 나 한 사람뿐이었다. 조사관은 투명한 통로 끝에서 더 나아갈 생각이 없었는지, 드론의 카메라로 등대를 한참 동안 관찰하다가 물었다.
‘분해파였습니까, 관찰파였습니까?’
뜻밖의 질문이었다. 예전에 방문했던 조사관들은 이런 걸 묻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준비해놓은 대답이 없었다. 등대를 부숴서 주인의 기술 수준과 등대의 용도를 알아보자는 쪽이었느냐, 그렇지 않으면 인내심을 갖고 관찰만 하자는 쪽이었느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조금이라도 생각할 시간을 벌기로 했다.
‘저는 당시 표결에 참가할 권한이 없었습니다.’
‘만약 권한이 있었다면요?’
이 정도면 충분했기 때문에 나는 감정 코드를 최대한 걸러 낸 다음 대답했다.
‘관찰파였을 겁니다. 그쪽이 덜 파괴적이니까요.’
나는 두 번째 문장을 송신하고 나서야 조사관의 의도를 알아챘다.
‘당신 이력을 생각한다면 다소 의외군요.’
나는 탑승 중인 드론을 우로 90° 회전시켜 조사관의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군인도 한 종류만은 아닙니다. 직업으로는 하나지만 사람으로는 그렇지 않죠.’
조사관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군인을 그만둔 지도 벌써 200년이 넘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까?’
이 질문에는 금세 답할 수 있었다.
‘예.’
조사관의 카메라가 제 몸에 달린 바퀴를 내려다보았다.
‘여기서 이렇게 원시적인 드론을 사용하는 이유는 잘 압니다. 그래야 고장이 적고, 유지 보수도 쉽기 때문이죠. 말하자면 당신은 다른 사람들과 세계로부터 한없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쁘게 말하자면 시대와 기술로부터 유폐되다시피 살고 있는 거죠. 그런데 아직도 관찰파임에는 변함이 없다는 겁니까? 지금 당장 저 등대를 분해하자는 결론이 나고 기술 요원들이 몰려오면 유폐를 끝내고 돌아갈 수 있는데도요?’
내용만 보자면 날이 잔뜩 서 있고 함정이 도사린 얘기였지만 이상하게도 조사관은 별 악의가 없는 것 같았다. 연극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다시 같은 대답을 했다.
‘예. 나는 이렇게 기다리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애초에 지원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조사관이 카메라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가 얼마나 답답할지 생각해보니 즐거웠다. 아마도 고개를 끄덕인답시고 그런 모양인데, 여기서 사용하는 원시적인 드론에는 그처럼 섬세한 감정을 표현하는 기능이 없었다.
‘나는 당신을 선발할 당시 심사위원이었습니다. 그러니 과거에 어느 편이었냐고 물어본 건 그냥 수사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해주면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변함없이 관찰파라는 사실을 확인해서 기쁩니다. 이제 바깥 세상 얘기를 조금 해드려도 될 것 같군요.’
‘잠시만요.’
나는 비상 신호를 받고 잠시 초점을 조사관에게서 드론들에게로 돌렸다. 광물을 캐고 있던 7번 드론이 조난 신호를 마지막으로 연락을 끊었다. 7번 드론은 바퀴가 아니라 다관절 다리를 사용해 이동하는 모델이었다. 마지막으로 전송된 화면으로 보건대 7번은 돌풍을 맞고 돌을 잘못 밟아 갱도 깊은 곳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 나는 비행형인 9번 드론을 확인차 보낸 다음 내 기계몸으로 초점을 회수했다.
‘사소한 문제가 생겨서 처리했습니다. 바깥 세상 얘기라고 하셨던가요?’
‘예. 본래대로라면 이미 정기 통신을 통해 당신도 알고 있어야 할 얘기인데, 이번에는 내가 직접 전달하러 왔습니다. 이곳과 똑같은 등대가 넷 더 있잖습니까. 그 가운데 하나는 행성의 지각 변동으로 파괴됐습니다. 파괴되기 직전에, 평상시와는 다른 신호를 개미굴로 보냈다고 하더군요. 아마 방금 당신이 129처리한 7번 드론처럼 비상 신호를 보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세 등대가 있는 행성들이…, 분쟁에 휘말렸습니다.’
반사적으로 편집 상태가 강화되고 감정 절제 코드가 작동했다. 하지만 내 질문은 코드가 작동을 완료하기 직전에 송신됐다.
‘전쟁이 벌어졌다는 겁니까?’
‘예. 자세한 얘기가 궁금한가요?’
전쟁. 내가 인류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케플러 64의 근무를 자처한 건 전쟁으로부터, 비유적으로든 현실적으로든 가장 멀리 떨어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뇨. 어차피 정기 다운로드를 검색하면 알게 될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여하튼 지금 그 일대에선 세 항성 국가가 치열하게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그 세 국가는 등대 보존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적극적으로 등대를 파괴하자고 주장하는 나라도 있고요. 등대 주인 종족이 돌아온다면 새로운 위협이 될 거라는 얘깁니다. 잊을 만하면 돌고 도는 주제죠.’
나는 옛 기억을 조금 복기하고 말했다. ‘그걸 전쟁의 빌미로 삼기도 했겠죠.’
‘비슷합니다. 그래서 케플러 64의 등대가 중요해졌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찾아낸 것 중에서는 마지막 등대니까요. 나는 돌아가서 보고를 하고 의견을 내야 합니다. 아마
내 의견이 곧장 결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직 기회가 있을 때 등대를 분해해 볼 것인가, 아니면 지금처럼 관찰하고 기다릴 것인가. 내 의견은 당신과 얘기를 나눈 다음에 정하기로 했었고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살아 있는 동물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3행성에서, 실시간으로 감정을 편집하고 배제할 수 있는 군용 코드의 도움을 받아가며, 그리 길지 않은 기간마다 드론을 수리하거나 새로 만들어 가면서, 개미굴을 향해 주기적으로 날아가는 등대의 신호와 함께 200년을 산 나로서는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래서 돌아가기 전에 한 번 더 확답을 받아야겠습니다. 별 다른 일이 생기지 않는 한 계속 케플러 64의 등대를 관찰할 생각인가요?’
*
먼 옛날 인류가 암흑물질이라고 대충 명명한 새 입자들의 토양에는 수많은 미세 웜홀이 있었다. 공식 명칭은 따로 있었지만 군대에서는 미세 웜홀을 개미굴이라고 불렀다. 개미굴을 통해 함대를 보낼 수는 없었지만, 작은 우주선과 정보를 전달할 수는 있었다. 그 덕분에 인류는 좁디 좁은 태양계에서 벗어나 우주로 진출했다. 그 과정은 케플러 64의 3행성에 등대를 관찰할 기지를 세운 과정과 다르지 않았다. 먼저 우주선보다는 드론에 가까운 무인기들을 보내고 관찰한다. 그 다음 코드 중계기와 공장 설비를 보낸다.
공장 우주선은 정해진 원칙에 따라 코드 수신장치를 만들고, 해당 항성계에서 필요한 자원을 모은다. 나는 그처럼 기본적인 시설이 모두 만들어진 다음에 마지막으로, 개미굴을 통해, 코드의 형태로 3행성에 도착했다.
행성의 공전 주기로 20여 년 전에 방문했던 세 번째 조사관은 계속 관찰하자는 의견을 냈고, 의견은 받아들여졌다. 적극적으로 수용됐다기보다는 무관심의 결과였다고 보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조사관은 그 뒤로 잊을 만하면 정기 통신에 여러 정보를 실어 보내주었다. 이유는 분명히 알 수가 없지만 20년 전에 방문하면서 무언가를 봤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나에게서.
하지만 조사관을 제외한 인류가 케플러 64에서 관심을 가질 만한 것은 등대뿐이다. 등대는 주기적으로 개미굴에 신호를 보냈다. 해독은 불가능했고, 그 신호는 수억 개에 달하는 개미굴의 어느 입구를 통해 주인에게 무언가를 전달했을 것이다.
이렇게 은하계 속으로 뛰어들었건만 인류는 아직도 외계인을 직접 만나지 못했다. 과학이 상당히 발달한 외계 문명이 있었다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그들이 살던 행성도, 찬란하게 피었다가 진 문명의 흔적도 찾아내지 못했다. 증거는 단 하나, 등대와 어느 개미굴로 날아가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130신호뿐이었다.
우리는 외계인과 만나기를 바라고 있을까? 항성 간 여행의 자유를 어느 정도 확보한 지금에 와서 그 문제는 무의식 수준으로 외면당하고 있었다. 더 현실적인 문제, 거주 가능한 행성 및 자원의 확보와 우주 전쟁이 더 급하기 때문이다.
나는 절전 상태에서 깰 때마다 그런 사실을 상기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사람이 살지 않는 고급 휴양지에서 눈을 뜬 것 같은 안락함에 빠지기 때문이다. 전쟁에 몸을 담고 있을 당시 내 소망은 단 하나였다. 인간의 손가락이 거미줄처럼 끌어당기지 않은 어느 장소에서, 허물어져 가는 집을 보수하고, 무한하게 반복될 것 같은 밤하늘의 회전을 멍하니 감상하며 살고 싶었다. 하지만 내 연봉으로는 그 정도의 자원과 기회를 확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전역을 앞두고 개미굴 네트워크를 미친 듯이 검색했고, 그 결과 등대지기 자리를….
고독을 확보하고 지키기 위해서는 보수하고, 반복하고, 케플러 64 3행성의 풍화작용에 맞서 일을 해야만 한다. 감상 코드들이 벌레처럼 터를 잡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편집 상태를 작동시키고 일에만 집중해야 한다. 절전 상태를 끝내기 위한 회상은 그 정도면 충분했다. 작년에 보내 두었던 탐사용 드론이 철광맥을 새로 찾아냈으니 당분간은 광산 설비를 갖추는 데에 전념해야 했다.
*
맑디 맑았던 밤하늘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눈보라가 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쏟아붓고 있었다.
눈이 쌓여가는 설원에서 잠시 마음의 준비를 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비행 드론은 이용하지 않았다. 나는 다관절 드론의 기억장치를 최대한 확보한 다음 정신 코드를 복사하고 눈구름이 있는 지역으로 여행을 했다. 드론의 추진 장치가 과열되면 잠시 눈 속에 몸을 묻어 식히기를 반복하면서. 하나의 항성계 안에 혼자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 무엇보다도 내게 행복이었다. 하지만 나는 별이고, 별과 똑같은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 우주는 무한하지 않고, 별은 영원할 수 없다.

나는 여덟 개 다리의 무릎까지 쌓인 눈더미에서 사흘을 서 있다가, 나흘 전에 조사관과 나눈 통신 기록을 복기했다.
‘계약에서 가장 중요한 항목이 뭔지 기억하고 있지요?’
저장된 자료는 퇴색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어제 일처럼 또렷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예.’
‘복제 육체는 잘 보존되고 있습니까?’
‘마지막으로 방문하셨을 때와 똑같습니다.’
‘내가 코드 전송으로 직접 찾아가지 않고 통신하는 이유를 짐작하시겠습니까?’
짐작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개인적인 염원과는 무관하게, 내가 광산 일곱 개와 발전소 다섯 개를 지으며 대기해왔던 임무 실행의 순간이 다가왔다는 뜻이었다.
‘인류가 만들지 않은 우주선이 개미굴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목적지는 마지막 등대가 있는 행성으로 보이고요.’
그 행성이란 바로 내가 있는 케플러 64의 3행성이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아낸 걸 정리해보죠. 전쟁 중에 등대가 일부 파괴된 덕분에, 과연 우연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등대가 단순한 신호 발생기이고, 그 중심부에는 어떤 자료가 보관되어 있을 뿐이라는 건 알아내지 않았습니까. 그게 무언지는 여전히 해독할 수 없지만 말입니다.’
‘그렇죠.’
‘등대 주인의 의도가 무엇인지, 등대에 보관된 자료가 무엇인지 이제는 더 이상 추측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곧 알게 될 테니까요.’
과연 말처럼 그렇게 쉬울지는 의심이 들었다. 등대 주인이 보관해 둔 자료도 해독하지 못하는데, 정말로 행동의 의미나 의도를 금세 알아낼 수 있을까? 나는 짐작 가는 바가 있었지만 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러니까 모든 항성 국가들은 개미굴과 케플러 64에서 최대한 물러서 있기로 했습니다. 오해를 사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따라서 주인이 방문할 때 등대에는 당신 혼자 있게 될 겁니다.’
오해를 사고 싶지 않다는 말에는 여러 가지가 함축되어 있었다. 공포와 호기심과 어리석음이…. 하지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봐도, 최초로 외계인과 만나는 자리는 조용하고, 고독하고, 한적할수록 좋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등대 주인과 처음으로 만나는 방법에 대해서도 최초에 정했던 원칙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가장 먼저 복제 육체의 상황을 물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조사관은 잠시 말을 끊었다. 나는 그 공백을 가속해서 다음 대화로 곧장 넘어가지 않고 실시간으로 기다렸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지 않더라도 해야 할 일이잖습니까.’
‘생물학적 육체로 돌아가는 작업은 결과를 예측하기 힘듭니다. 아무리 정밀하게 조절하고 코드를 맞춘다고 해도, 음, 옛 인간은 그런 존재였으니까요.’
나는 거기서 통신 복기를 멈추고 드론의 머리를 한 바퀴 돌려 주변을 보았다. 광각 렌즈로 단숨에 보는 게 아니라, 시야각이 150° 밖에 되지 않던 옛 육체의 한계를 흉내내듯 일반 렌즈로 천천히, 돌아가면서. 영원과 행복을 끝내는 일이 쉬울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나 역시 등대 주인을 만나며 확인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결국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
첫 번째 복제 육체는 관자놀이에서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었다. 나는 두 시간 뒤에 가까스로 두 번째 육체에 탑승하고 다가가서 첫 육체의 생명 활동이 끊어졌다는 걸 확인했다. 드론들과 연결이 완전히 끊어질 것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코드로 만든 감정은, 그게 인간의 뇌활동을 완전히 복사한 코드라고 해도 육체와 결합된 감정과는 달랐다. 육체로 들어오고 두뇌가 작동을 시작하는 순간, 전장에서 내가 파괴했던 기계 몸체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르면서 그 하나하나마다 살인이라는 이름표가 붙었다. 두 동강이 나 불그르스름한 빛을 뿜으며 흘러가는 전함은 대량살상의 다른 이름이었다. 복수심과 명예심처럼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러운 감정이 여과 장치 없이 샘솟는 바람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리고 온도 감각이 널을 뛰면서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질 것 같은 위기감이 나를 휩쓸었다.
나는 심하게 몸부림을 쳤고, 무언가 날카롭고 강한 것이 귀 위쪽을 강타했고, 잠시 뒤 두 번째 육체에 들어와 있었다. 일단 옛 육체에 들어가게 되면 드론이나 기지의 컴퓨터와 직접 연결할 수 없기 때문에, 간이 인공지능에 복구 절차를 입력하고 제어를 일임한 덕분이었다.
첫 번째 육체는 뾰족한 철제 탁자의 모서리에 관자놀이를 심하게 부딪혔고 과다 출혈로 정지했다. 기계 몸체에 살았을 때는 별 문제가 되지 않던 모서리였지만 육체에겐 위험했다. 반면에 정신의 적응력은 대단했다. 아직도 체온이 오르내리기는 했지만 방금 전과 같은 감정의 폭풍은 몰아치지 않았다. 그 대신 편집 상태로 감정을 자르고 붙일 수가 없었기 때문에 자기 합리화를 있는 대로 쥐어짜야 했다. 나는 아무 이유 없이 인간을 죽인 살인자가 아니다. 전쟁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활약이었고, 수많은 죽음의 132책임은 사령부와 국가에 있었다. 내가 케플러 64에서 모든 인간과 동떨어져 살려했던 것도 그 책임의 일부를 인정하고,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벌을 주려 한 결과였다. 그 합리화가 어디까지 진실이든 간에 효과는 있었다. 육체 속에 살던 인류는 본래 합리화를 통해 정신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생물이었으니까.

하지만 탁자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한 번 죽고, 육체를 가진 인류의 역사상 거의 모든 정치인들이 발휘했던 더러운 자기 합리화와 변명의 연극을 한 바탕 벌이고 나서, 나는 한 가지 의문에 대한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무 증거도 없었고, 뿌리가 조금도 겹치지 않은 완전히 다른 종족의 행동 이유를 짐작한다는 건 터무니 없는 짓이긴 했지만. 나는 온도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고 불필요한 움직임이 많은 옛 육체를 욕하면서, 체온저하 현상을 막기 위해 미리 준비해 둔 보온복을 걸쳤다.
*
3 초마다 습기를 유지하기 위해 눈꺼풀로 닦아줘야 하는 안구는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시야는 터무니없이 좁았고, 무엇보다 다양한 드론과 카메라를 통해 실시간으로 상황을 관찰할 수 없다는 게 갑갑하고, 불안했다.
물론 기지의 인공지능은 내가 육체에 들어와 있는 동안 대부분의 임무를 문제 없이 수행할 것이다. 그리고 조사관은, 수많은 항성 국가의 주민들은, 기계 몸체에 살고 있는 인류는 거의 실시간에 가깝게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나는 상황을 중계하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는 드론 네 대와 함께 통로의 끝에 섰다. 등대 주인의 우주선은 파도를 타듯 구름을 넘었고, 썰매를 타듯 눈발 사이를 가로지르더니 등대 위에 정지했다.
그리고 모종의 신호와 정보가 오가기에 충분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 등대가 3000년에 걸친 잠을 깨고 지금까지와 다른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드론들은 카메라를 연신 움직이며 촬영하기에 바빴고, 등대의 전자기 변화는 기지를 경유해서 전 인류에게 전달되었다.
추후에 변동 사항을 고지하기 전까지는, 만약 등대를 세운 외계인과 만날 경우 반드시 옛 육체를 이용할 것.
계약서의 중심 조항을 만든 이들이 정말로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명목상으로는 학자들의 제안이었다고 한다. 우리 은하계에서 최초로 외계인과 만날 때는 본 모습이어야 한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본 모습이란 무언가. 진화를 거친 직립 보행 동물이 우리의 본 모습일까? 이제 우리에게 옛 육체란 언제든지 물질을 조합해 다시 만들 수 있는 옛 옷에 불과한 것 아니었나? 어쩌면 군부의 겁쟁이들이 혹시나 등대 주인에게 우리의 과학 수준을 들킬까봐 겁이 나서 그런 조항을 강요한 건 아니었을까?
그 둘 다였을 것이다. 그렇게 등대는 공포와 어리석음과 호기심을 동시에 불러들이는 제단이었다. 정작 오래 전 감마선 폭발의 여파로 생물이 멸종하기에 이른 불모의 행성에 그 제단을 세운 주인은 무얼 염두에 뒀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인류는 오래 전에 퇴역한 기계 몸뚱이 군인에게 그렇게 민감한 임무를 맡겼다.
아마도 그 퇴역 군인이 욕망과 감정을 버리고 죽음과 한없이 가까운 고독을 벗삼는 자였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3000년 동안 열려 있던 등대 건물의 문이 닫혔다. 그리고 세 시간 뒤에 열렸다. 나는 그 세 시간 동안 쥐가 나는 다리를 주물러가며, 카메라와 개미굴의 뒤에 숨은 인류를 대표해서 기다렸다. 마침내 문이 개방되자 지금까지 그 누구도 본 적이 없는 생물의 그림자가 휘청거리면서 등대를 나왔다.
피부가 번들거리고 키는 3미터 가량 되는 생물과 나는 한참을 말없이 마주하고 서 있었다. 과학자와 군인들이 전혀 다른 사실을 밝혀낼지도 모르지만, 나는 첫 번째 육체를 죽이고 두 번째 육체에 들어간 순간에, 등대가 무엇이고 등대 주인이 어떻게 등장했는지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등대 주인의 문명은 우리처럼 기술적 특이점에 도달했고 더 먼 우주로 나아갔을 것이다. 그리고 등대에 저장되어 있던 자료란 아마도,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역사에서 완전히 지워버리지 못한 옛 육체를 재조립할 수 있는 정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등대 주인과 나는 지금 생물학적 육체가 주는 생존의 쾌감과 구속력을 동시에 맛보면서, 서로 외계 지성체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마음껏 우주를 날아다니는 우리에게 고향이 있다면 그건 우주에서 발생한 생물학적 육체일 수밖에 없었다.
등대 주인과 나는 귀향한 자의 복잡한 감정을 맛보며, 근육이 한계에 도달할 때까지 한 자리에 서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