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핵융합 반응을 그대로 재현해 무한한 친환경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핵융합 에너지. 과학계에선 그 중요성이 오랫동안 강조돼 왔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여전히 생소한 에너지입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던 핵융합 에너지에 대한 궁금증에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이 직접 답했습니다.
태양 또는 항성에서 일어나는 핵융합 반응과, 핵융합 반응로에서 일어나는 핵융합 반응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는 온도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KSTAR·케이스타)는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기 위해 1억 ℃의 온도가 필요합니다. 반면 태양 중심의 온도는 수천만 ℃에 불과하죠.
이유는 중력의 차이 때문입니다. 핵융합 반응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양전하(+)를 가진 두 개의 원자핵이 서로 밀어내는 힘을 극복해야 합니다. 핵융합 반응로는 온도를 1억 ℃까지 올려 원자핵의 운동에너지가 증가하게 함으로써 더 많은 원자핵들이 충돌할 기회를 만들어냅니다.
반면 태양은 강력한 중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력에 의해 두 개의 원자핵이 물리적으로 가까이 위치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에서도 핵융합 반응이 일어납니다.
이외에도 태양에서는 수소 원자 4개가 결합해 헬륨을 만드는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고, 핵융합로에서는 중수소와 삼중수소가 결합해 헬륨이 되는 등의 차이도 있습니다.
핵융합은 반드시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이용해야 하나요? 다른 물질로는 에너지를 얻기 힘들까요?
현재 개발되고 있는 모든 핵융합로는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이용해 핵융합 반응을 유도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철보다 가벼운 원소는 모두 핵융합 반응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수소에 집착하는 이유가 궁금할 법합니다.
수소의 가장 큰 장점은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기 쉽다는 점입니다. 핵융합의 가장 큰 장애물은 원자핵이 가진 양전하입니다. 원소가 무거워질수록 더 강한 양전하를 띠기 때문에 핵을 융합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잘 알려진 것처럼 수소는 우주에서 가장 가벼운 원소입니다.
게다가 수소는 구하기 쉽습니다. 우주 전체는 물론 지구상에도 정말 풍부합니다. 특히 바다는 지구의 수소 저장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핵융합에 쓰이는 중수소는 바닷물에서 분리할 수 있고, 삼중수소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리튬도 바닷물에서 얻어냅니다.
수소 외에 핵융합 연료가 될 수 있는 물질로 연구자들은 헬륨의 동위원소인 헬륨-3을 꼽습니다. 지구상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달에는 풍부하고, 무엇보다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면서 중성자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성자와 핵융합로가 부딪쳐 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이 생성될 수 있는 작은 위험성까지 없앨 수 있습니다.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려면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가요?
답은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입니다. 형광등을 예로 들어 보죠. 형광등 내부에 들어있는 전자의 온도는 무려 수천 ℃에 달합니다. 그렇다고 형광등을 켤 때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진 않습니다.
비밀은 무게에 있습니다. 플라스마는 원자핵과 전자가 분리된 상태입니다. 원자핵과 전자는 엄청나게 가벼운 물질이고, 이것들은 가열하기가 쉽습니다. 거대한 바위보다 작은 조약돌을 달구기 더 쉬운 것처럼요.
물론 아무리 가벼운 물질이라도 1억 ℃로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양성자의 질량은 전자보다 1800배가량 큽니다. 양성자의 온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죠. 그래서 플라스마의 온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중성자의 충돌에너지를 이용합니다. 중성자를 고속으로 발사해 수소 원자핵과 충돌시키면 원자핵의 온도가 올라갑니다.
다른 나라는 우리나라에 비해 핵융합 에너지 연구가 얼마나 진행됐나요?
전 세계적으로 핵융합 연구를 선도하는 국가는 국제핵융합실험로(ITER·이터) 프로젝트에 참여한 7개 국가입니다. 이들은 각각 KSTAR와 같은 핵융합연구장치를 보유하고 있죠.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핵융합 반응로는 영국에 있습니다. 유럽연합(EU)이 운영하는 유럽연합 공동핵융합연구장치(JET)인데 크기와 자기장의 세기, 플라스마 전류 강도가 모두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JET는 핵융합 연료와 로봇운전 기술을 중점적으로 개발하고 있습니다. ITER에서 본격적으로 실험하려고 하는 중수소-삼중수소 핵융합 반응을 현재 구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반응로가 바로 JET입니다.
미국은 ‘DⅢ-D’라는 반응로를 갖고 있습니다. JET만큼 거대하지는 않지만 역시나 뛰어난 성능을 자랑합니다. 일본에는 마치 3단 변신 로봇 같은 핵융합 반응로도 있습니다. ‘JT-60SA’가 그 주인공인데, 상전도 토카막 반응로였던 JT-60U를 분해, 재조립해 초전도 토카막으로 재탄생시켰습니다. 그밖에도 중국, 러시아, 인도 등이 각각 특징 있는 핵융합로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낮은 온도에서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는 저온 핵융합(상온 핵융합)도 있다고 들었는데요. 실현 가능한 기술인가요?
현재 과학계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주된 의견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혀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상온 핵융합 연구의 역사는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미국의 전기화학자 스탠리 폰즈와 마틴 플라이슈만이 상온 핵융합 실험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당시엔 ‘저온 핵융합(cold fusion)’이란 표현을 썼습니다.
하지만 이후 실험 과정에서 많은 오류가 발견됐고, 결국 이들의 실험 방법으로는 상온 핵융합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이후에도 수많은 연구자가 상온 핵융합에 성공했다는 연구를 발표했지만 모두 거짓임이 밝혀졌죠.
사실 상온 핵융합은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두 개의 핵이 융합하기 위해서는 강한 전기적 반발력을 이겨내야 하는데, 상온에서는 이뤄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일부 과학자들은 여전히 상온 핵융합을 연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