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열하는 태양은 지구와 태양계 전체에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공급한다. 에너지의 근원은 태양 내부에서 일어나는 핵융합 반응이다. 핵융합은 가벼운 두 원자가 결합해 무거운 원자를 만드는 과정으로, 무거운 원자가 가벼운 원자로 쪼개지는 핵분열과 반대다. 전 세계 연구자들은 핵융합을 재현해 지구 위에 또 하나의 태양을 만들고 있다.
배경 │ 질량 변화가 에너지를 만든다
1905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질량(m)과 에너지(E), 그리고 빛의 속도(c)의 관계를 설명하는 방정식 ‘E=mc2’을 발표했다. 이 방정식은 질량이 에너지로 바뀔 수 있음을 예견했다. 즉 질량이 사라지면 그만큼의 에너지가 만들어진다는 의미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학반응은 질량의 변화가 미미하다. 다양한 물질이 전자를 교환하며 결합하고 분해되는 화학반응이 일어날 때, 참여한 물질의 질량이 소모되고 에너지가 발생한다. 하지만 그 양은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작다. 이런 경우 질량은 근사적으로 보존된다고 본다.
하지만 원자의 세계에서 더 깊게 들어간 핵의 세계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원자핵이 융합하고 분열하는 반응에서는 질량이 상대적으로 크게 변한다. 실제로 핵융합 과정에서는 0.5%가량의 질량이 사라진다. 여기에 빛의 속도의 제곱이라는 매우 큰 양을 곱하기 때문에 상당히 큰 에너지가 발생한다.
핵이 융합하거나 분열하는 반응의 목적은 안정해지기 위해서다. 가장 안정한 원소인 철을 기준으로, 원자량 56의 철동위원소(Fe-56)보다 가벼운 원소는 원자핵이 서로 융합할수록 안정해지고, 무거운 원소는 원자핵이 분열하면서 안정해진다. 수소처럼 가벼운 원소의 원자핵을 융합시켜 에너지를 얻으면 핵융합, 우라늄처럼 무거운 원소의 원자핵을 분열시켜 에너지를 얻으면 핵분열이라고 부른다.
물론 원자는 아무 조건 없이 안정한 상태로 변하지 않는다. 원자핵은 양전하(+)를 띠고 있기 때문에 서로 밀어내는 힘을 갖고 있다. 이를 극복하고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 과정은 와인잔에 들어있는 탁구공을 바닥에 떨어뜨리는 일에 비유할 수 있다. 탁구공을 바닥에 떨어뜨리기 위해서는 탁구공을 먼저 와인잔 입구 높이만큼 들어올려야 한다. 이를 문턱 에너지라고 한다.
핵분열 반응에서는 중성자가 문턱 에너지를 제공한다. 우라늄이 분열하는 과정에서 튀어나오는 강력한 중성자가 주변의 우라늄에 충돌해 핵을 분열시키고, 여기에서 나온 중성자는 또 다른 우라늄을 분열시킨다. 이런 핵분열 연쇄 반응은 원자량이 235인 우라늄(U-235)만을 모아 농축한 상태에서만 일어난다.
핵분열 반응은 한번 시작되면 가만히 둬도 에너지가 쏟아져 나오는데, 때론 이 점이 문제가 된다. 반응을 멈추고 싶어도 쉽게 멈출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핵분열 반응을 이용하는 원자력 발전소는 이런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여러 단계의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원리 │ 원자핵과 원자핵을 충돌시킨다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우선 원자핵을 둘러싼 전자껍질을 벗겨내고, 이들을 충돌시켜야 한다. 이때는 원자핵끼리 서로 만날 기회를 높이는 방법을 쓴다. 기체를 가열해 온도가 수만 ℃에 이르면 원자핵과 전자가 분리된 플라스마 상태가 된다. 주 연료인 중수소와 삼중수소의 원자핵이 둘 사이에 작용하는 전기적 반발력을 이기고 충돌하려면 각각의 기체를 1억℃ 이상으로 가열해 플라스마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
이처럼 높은 온도를 구현하기 앞서 이 온도를 버틸 수 있는 적당한 그릇이 필요하다. 이때 대기보다 밀도가 1만분의 1인 플라스마의 체감온도는 1만℃쯤 된다.
1만 ℃나 되는 온도를 버틸 수 있는 그릇은 흔치 않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아무리 뜨거워져도 녹지 않는 자기장을 이용해 플라스마를 담는 묘책을 떠올렸다. 플라스마는 원자핵과 전자가 분리된 상태인 만큼 전하를 띠고 있다. 따라서 전하에 강력한 자기장을 걸어 주면 전하를 띤 물질들은 마치 꼬치에 꿰인 것처럼 자기장 주변을 빙글빙글 돈다. 고온의 플라스마를 자기장 주변에 붙잡아둘 수 있는 셈이다. 연구자들은 도넛 모양으로 꼬치를 만들어 빙글빙글 도는 플라스마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했다.
여기에 기술이 하나 더 들어간다. 플라스마가 자기장을 타고 돌다 보면 힘을 많이 받는 부분과 적게 받는 부분이 생긴다. 그 결과 플라스마가 불균형해지고 결국은 소멸하게 된다. 이를 막으려면 도넛 형태를 타고 도는 플라스마가 이동방향의 수직으로도 움직여 잘 섞어야 한다. 그러자면 나선 형태의 자기장이 필요한데, 플라스마의 회전으로 추가적인 자기장을 만들어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바로 ‘토카막(tokamak)’이다.
장점 │안전과 친환경, 두 마리 토끼 잡는다
핵융합 반응은 원할 때면 언제든 멈출 수 있다. 핵융합 발전소는 연료 공급이 중단되면 플라스마가 사라지며 자동으로 운전이 차단된다. 핵분열처럼 통제할 수 없는 연쇄 반응 때문에 원자로가 녹고 방사성 물질이 새어 나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핵융합은 그야말로 ‘꿈의 에너지’다. 다양한 종류의 친환경 에너지가 개발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친환경 에너지가 인류에게 충분한 양만큼 에너지를 뽑아내려면 기어이 환경을 훼손하고 만다.
핵융합은 제한된 장소에서 주변 환경에 최소한의 영향을 주며 대량의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1g의 중수소와 삼중수소는 핵융합 반응을 통해 시간당 약 10만kW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중수소 100kg과 삼중수소 150kg으로 전기를 만들면 화력발전소에서 300만t(톤)의 석탄을 태우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원자력발전소와 비교해도 같은 양의 연료가 있다면 핵융합 발전소는 7배 이상의 에너지를 낸다.
핵융합 발전은 다른 친환경 에너지와 함께 발전할 수 있다. 핵융합 발전이 성공해 에너지 수요의 상당 부분을 채우고, 지역 환경에 맞는 소규모 친환경 발전, 에너지 절약이 병행된다면 인류는 비로소 화석연료의 굴레를 끊고 지구에서 문명을 지속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필자소개
남용운. 서울대 원자핵공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KSTAR연구센터 책임연구원으로 핵융합 플라스마의 상태를 측정하고 제어하기 위한 진단장치를 연구하고 있다. yunam@kfe.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