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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도 모르는 장맛의 비밀

홀쭉이 강원도메주, 뚱뚱이 전라도메주



안녕하세요. 새해 첫날을 밝히는 ‘6시 내 고향맛’!

오늘 맛볼 음식은 바로 한국의 맛, 된장입니다. 어린 시절 까치발을 들고 폴짝~폴짝~ 집 뒤에 있는 장독대에 뛰어가 항아리 뚜껑을 쫘악~ 열면 하얗게 피어 있던 곰팡이! 엉겨 붙은 곰팡이를 뚜껑처럼 열어 들어내면 구수~한 된장내가 풍기던 때가 기억나십니까? 오늘은 ‘곰팡이 아빠’ 홍승범 박사님을 모시고 갓 띄운 메주처럼 구리구리~ 신선한 된장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최근 한국 된장에 대해 새로운 비밀을 알아내셨다고요?

“곰팡이를 알면, 장맛을 안다! 안녕하세요, 농촌진흥청 농업미생물팀에서 곰팡이를 연구하고 있는 홍승범 박사입니다. 어느 날 문득 된장국을 한 입 떠 넣다가, 어떤 곰팡이가 이렇게 진득하고 구수한 맛을 만들었을까! 궁금해지더라고요. 지금까지 메주곰팡이라고 하면 일본 미소에 들어 있는 황국균(Aspergillus oryzae, 누룩곰팡이)으로 알려져 있었는데요. 미소보다는 된장국이 훨씬 감칠맛 나잖아요? 메주곰팡이의 신상을 캐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바로 신발 끈을 묶었습니다.”

네, 그럼 슈퍼로 된장을 사러 가셨겠네요?

“아뇨, 된장의 주재료인 메주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 안에 곰팡이와 세균이 득실득실 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2009년부터 3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된장 맛으로 우리나라 최고라 불리는’ 맛집과 농가는 죄다 찾아갔습니다. 제가 모아온 메주만 323개고요. 그 안에서 곰팡이를 1508개나 분리했습니다. 황국균 뿐 아니라 푸른곰팡이와 접합균류, 유사빗자루곰팡이 등 엄청나게 많은 곰팡이가 메주를 먹여 살리고 있다는 걸 알아냈죠.”




구수한 장맛 살리는 곰팡이 4총사

“옛날에는 일본도 우리처럼 메주를 만들어 장을 담갔습니다. 하지만 기후가 너무 습해 메주가 쉽게 상했죠. 결국 일본인들은 메주를 발효시키는 미생물 중에 세균인 낫토균(Bacillus natto)과 곰팡이인 황국균을 골라 콩에 직접 접종하게 됐습니다. 바로 낫토죠. 하지만 우리는 메주를 그대로 만들어 먹었죠. 당연히 메주에는 곰팡이가 많을 것이라 생각했답니다.”

그럼 메주가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으로 갔다는 말씀인데요. 도대체 메주는 몇 살일까요? 메주는 고릿적보다 훨씬 옛날인 삼국시대 때부터 만들었다고 합니다. 콩은 원래 중국 만주와 우리나라 북쪽이 원산지이고, 고구려는 발효음식이 발달한 나라였거든요. 고구려 후손이 세운 발해 때 기록된 ‘설문해자’에는 ‘콩을 소금과 함께 어두운 곳에 두어 삭혀 먹었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하네요. ‘삼국사기’에는 이보다 더 직접적으로 간장과 된장을 뜻하는 ‘밀장시’라는 단어가 나온다고 합니다.

“기록에 남겨진 역사만으로도 1500년이 넘는데 정작 메주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었습니다. 메주에 들어 있는 미생물, 특히 곰팡이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죠. 메주에 들어 있는 곰팡이들이 각각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밝혀내면 더 맛있고 건강한 된장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곰팡이 아빠’인 제가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하하.”

와~, 그래도 1500가지가 넘는 곰팡이를 일일이 관찰하셨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우리 전통음식의 자존심을 살려준 연구실이 바로 여기군요! 연구실 치고…. 쾌쾌한 시골 창고 냄새가 나는 게 왠지 정겹네요. 혹시 오랫동안 청소 안 하신 것 아녜요?

“하하, 고향음식을 그렇게 찾아다니고도 모르세요? 메주에서 나는 냄새입니다. 여기 쌓여 있는 플레이트는 메주곰팡이 집입니다. 이건 꽃이 아니고 곰팡이에요! 상한 음식에서처럼 점점이 나타나는 것도 있지만, 보세요. 실처럼 아리아리~ 올라와 마치 우담바라를 보는 것 같죠. 여기 버섯처럼 모자를 쓰고 있는 것도 곰팡이예요.”

아하! 곰팡이를 따로 떼어내 보관을 하신 거군요.

“우리나라 메주곰팡이를 대표할 수 있는 ‘신상명세서’를 만들려면 가능한 한 많은 지역에서 다양한 된장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 경기도 지방을 시작으로 슬슬 발동을 걸다가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제주도까지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메주에게도 ‘인생’이 있는 거예요! 막 태어난 11월부터 12월, 1월…. 시간이 흐를수록 메주가 성숙해졌습니다. 메주 배를 가르고 나서야 곰팡이의 업적이었음을 알았어요.”

그럼 우리 된장 맛을 살리고~ 살리는 주요 곰팡이들을 소개해 주시겠어요?

“네, 첫 번째는 좁쌀곰팡이(Eurotium repens)입니다. 현미경으로 보면 좁쌀이 모여 있는 것처럼 생겨서 이런 이 름을 붙였죠. 이 곰팡이는 메주의 곳곳에서 많이 나옵니 다. 일본의 가다랭이 우동을 만들 때 좁쌀곰팡이를 접종합 니다. 활용하기가 수월하다는 얘기죠. 두 번째로 소개할 곰팡이는 털곰팡이(Mucor circinelloides)예요. 우리나라 된장의 깊고 구수한 맛을 낼 것으로 많은 과학자들이 지목하는 녀석이죠. 가장 촉망 받는 기대주라고나 할까요?

둥근 털 뭉치처럼 생긴 솜사탕곰팡이(Lichtheimia ramosa )와 일본 미소균으로 알려진 황국균도 중요해요. 이 네 종류의 곰팡이는 전통 메주곰팡이 종균으로서 개발 가능성이 많습니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뚱뚱해지는 메주

전국 방방곡곡 안 간 데가 없이 다니셨다니 정말 사서 고생하셨네요! 메주라는 게 삶은 콩을 발효시킨 건데, 서울에서 만든 거나 전라도에서 만든 거나 똑같지 않나요?

“아. 닙. 니. 다!! 메주 여행을 다니면서 가장 신기했던 게 뭔지 아세요? 지역마다 메주를 빚어놓은 모양이 다르다는 사실이었어요. 강원도에서는 메주를 납작하게 빚는데, 전라도와 제주도에서는 통통하게 빚더라고요. 지역마다 메주를 빚는 스타일이 다른 건가 싶었지만, 자세히 알아보니 기후때문이더라고요. 기후에 따라 발효 과정도 달라집니다.”

메주라고 하니 처마 아래에 줄줄이 달아놓은 메주덩어리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요. 그때 발효가 시작되는 것 맞죠?

“네, 맞습니다. 메주가 완성되면 2~3일 정도 겉을 말립니다. 표면이 꾸덕꾸덕해지면 짚으로 묶어 처마에 매달아 1~2달 가량 말리죠. 메주를 온도가 20℃보다 낮은 서늘한 곳에서 말리면 1차 발효가 일어납니다. 이 때에는 메주곰팡이 중에서도 저온성 볏짚곰팡이가 잘 자랍니다. 녹
점곰팡이(Cladosporium spp.)와 털곰팡이, 푸른곰팡이(Penicillium solitum ) 같은 것들이에요.”

짚에서도 곰팡이가 전해진다고 하더라고요. 여기 메주에서 짚으로 엮었던 부분이 하얗게 변한 것 보이시죠? 이게 바로 곰팡이에요. 처마에서 내린 메주는 어떻게 하나요?

“처마에서 내린 메주는 온돌방처럼 따뜻한 곳에 짚을 깔고 겹겹이 쌓아놓습니다. 일반적으로 ‘메주를 띄운다’고 말하는 과정입니다. 이때에는 30~40℃에서 잘 자라는 발효곰팡이(Aspergillus spp.)와 좁쌀곰팡이, 유사빗자루 곰팡이(Scopulariopsis spp.), 솜사탕곰팡이의 세상이 펼
쳐지죠. 이놈들이 2차 발효를 일으켜요.”

그런데 왜 지역마다 다른 모양으로 메주를 빚죠?

“기후에 따라 발효과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추운 지역에서는 납작한 메주를, 따뜻한 지역에서는 두꺼운 메주를 빚죠.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추운 강원도는 납작하게 만듭니다. 메주를 처마에 매달아도 곰팡이가 잘 피지 않고 바짝 마릅니다. 2월이 되어 메주를 내리면 온돌방에서 2차 발효를 시키죠. 하지만 건조 기간에 곰팡이가 잘 피지 않았기 때문에, 2차 발효기간을 늘려서 발효를 충분히 시켜야 한답니다. 그래서 강원도에서 만든 메주에는 2차 발효를 일으키는 곰팡이가 많이 나왔습니다.”

여기 박사님이 가져오신 ‘설악산 메주’가 있네요. 이게 오색약수터 부근에서 뜬 메주라고 하셨죠? 정말 말씀하신대로 아주 바짝 말랐습니다.

“메주 표면 바로 아래층에 황색계열의 곰팡이가 보이죠? 이게 좁쌀곰팡이예요. 메주 바깥쪽과 표면 바로 안쪽은 물기가 적당히 있어서 곰팡이가 잘 자라요. 메주의 가장 깊숙한 부분은 공기가 통하지 않아서 곰팡이가 자라질 못합니다. 공기가 없이도 자랄 수 있는 세균이 자랍니다. 강원도메주는 쪼갰을 때 곰팡이와 세균이 3개 층으로 나뉜 것이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그렇다면 전라도나 제주도처럼 비교적 따뜻한 곳은 강원도와 정반대 특징을 보이겠네요?

“전라도는 따뜻한 지역이기 때문에 메주를 처마에 매달아 놨을 때 곰팡이가 아주 많이 핍니다. 발효시키기가 좋기 때문에 메주를 두툼하게 빚는 거죠. 특히 1차 발효가 충분히 일어납니다. 이 지역 메주에서 많이 발견되는 곰팡이는 1차 발효를 시키는 것들입니다. 경기도메주는 강원도메주보다는 두툼하고 전라도메주보다는 얇아요. 기후가 따뜻하니까요. 1차 발효와 2차 발효가 모두 일어나 곰팡이도 고루고루 자랍니다.”





곰팡이로 전통맛을 복원한다

와, 지역마다 왜 메주를 다르게 빚는지 곰팡이를 통해 알아내셨으니 이제는 ‘곰팡이 아빠’가 아니라 ‘메주 아빠’가 되셨네요? 호호.
“아직은 아닙니다. 메주와 곰팡이에 대해 알아낼 것이 많이 남아 있거든요. 지금 저희 연구팀에서는 곰팡이마다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관찰하고 있습니다. 각각 곰팡이가 어떤 맛과 향을 내는지 알면, 입맛에 따라 된장을 만들어 먹을 수 있을 테니까요.”

와! 그러면 글로벌 입맛에 맞는 된장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겠네요?

“곰팡이를 알면 장맛을 조절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대대손손 물려줄 수 있어요. 메주곰팡이를 연구하기 전, 일본에 있는 미생물은행을 방문했다가 ‘우사기’라는 일본 전통 술을 마셨답니다. 이 술은 1900년대 초반 일본에서 인기있는 술이었는데요. 전쟁 중에 공장이 망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어요. 그런데 1996년 도쿄대 과학자들이 잠들어 있는 우사기의 영혼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이 술을 만들 때 사용했던 곰팡이인 흑국균(Aspergillus niger)으로 우사기를 복원한 거예요.”

와~, 곰팡이 덕분에 격동의 세월을 지나 50년 만에 전통을 부활시킨 셈이네요. 곰팡이만 잘 보관해도 우리 전통과 맛을 보존할 수 있다는 얘기군요!

“네, 메주를 집에서 빚어 장을 담그던 세대가 사라지기 전에 메주곰팡이들을 모두 찾아 우리 장맛을 지키고 싶어요. 옛날에는 지난해에 왔던 ‘맛있는 곰팡이 씨앗’이 올해에도 찾아오기를 바라면서 메주를 처마에 달았지만, 지금은 기후와 환경이 많이 변하면서 곰팡이도 점점 달라지고 있어요. 메주곰팡이의 신상을 빨리 밝혀야겠다는 의지가 불끈 돋습니다!”

몇 년 뒤에는 깊은 맛 된장, 담백한 맛 된장, 구수한 맛 된장, 단맛 된장처럼 다양한 장맛을 골라 먹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벌써부터 입 안에 침이 고입니다! 메주곰팡이들의 정확한 이름을 지어주고 각자 하는 일을 밝혀내면, 된장을 다양하게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훨씬 매력적인 건강식품으로 알려질 거라고 합니다. 여러분, 곰팡이가 만든 메주의 깊은 맛과 향이 안방까지 전해졌나요? 다음 이 시간에도 맛있고 소중한 우리의 맛을 찾아오겠습니다. 지금까지 리포터 이정아였습니다!

2012년 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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