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 (KSTAR·케이스타)는 ‘세계 최초’ 타이틀을 여럿 보유하고 있다. 니오븀주석합금(Nb3Sn)으로 초전도 자석을 만들어 세계 최초로 운전에 성공했고, 올해 3월에는 이온온도 1억℃의 플라스마 유지 시간을 8초까지 늘리며 세계 신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최근 다시 한번 세계 신기록 경신에 도전 중인 KSTAR연구센터를 찾았다.
“지금이면 잠시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원래 KSTAR의 플라스마 운전 실험이 진행 중일 때는 출입이 불가능한데, 실험 중간에 플라스마를 꺼둔 상태네요.”
김웅채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KSTAR연구센터 플라즈마안정화연구부 부장은 기자를 핵융합 실험동 주장치실로 안내했다. 입구에서 안전모를 착용하고 짧은 복도를 따라 들어가자 높이가 약 10m나 되는 KSTAR가 눈에 들어왔다. 사진으로는 알 수 없던 웅장함이 느껴졌다.
“KSTAR는 플라스마를 발생시켜 핵융합 반응을 유도하는 실험장치입니다. 바로 저 안에서 1억℃ 플라스마가 만들어지는 거죠.”
끊임없이 진화하는 KSTAR
“위-잉, 위-잉”.
KSTAR가 위치한 주장치실은 정체 모를 소음으로 가득했다. 1m 옆에서 KSTAR에 대해 설명하는 김 부장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김 부장은 중앙의 거대한 토카막(Tokamak)에 연결된 장치 하나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냉각수를 순환시키는 장치에서 나는 소리입니다. 당장은 플라스마를 꺼뒀지만, 다음 실험을 곧 이어서 진행해야 해서 냉각수 장치는 꺼두지 않았죠.”
김 부장은 KSTAR를 더 자세히 볼 수 있도록 장치실 벽면의 계단을 올라 2층에서 설명을 이어갔다. 높은 곳에서 바라본 KSTAR는 상상하던 것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토카막이 들어 있는 원통형 진공용기 외에도, 중성자빔 가열장치(NBI), 고주파 가열장치(RFµwave), 플라스마 진단장치 등 복잡한 기계들이 토카막에 잔뜩 연결돼 있었다.
그중 중성자빔 가열장치 2호기(NBI-2)는 2019년 새롭게 도입된 따끈따끈한 ‘신상’ 장비였다. KSTAR는 2007년 완공된 이후 계속해서 장비 성능을 개선해왔다.
핵융합 반응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연료인 중수소를 1억℃로 가열하는 장치가 필수다. 플라스마를 가열하는 방식에는 이온공명, 전자공명, 중성자빔 등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이중 가장 최근에 도입된 게 중성자빔 가열 방식으로, 수소 입자를 시속 약 1440만km 속도로 가속해 플라스마의 온도를 높인다. KSTAR는 이 방식으로 올해 3월 세계 최초로 1억℃의 플라스마를 8초간 유지하는 데 성공해 최장운전기록을 달성했다.
최적의 플라스마 운전조건을 찾아서
“KSTAR에서 플라스마를 만들고 운전할 때 이를 제어하고 데이터를 수집하는 작업은 주제어실에서 이뤄집니다.”
약 10분 뒤 KSTAR의 플라스마를 다시 가동할 시점이 되자 김 부장은 기자를 주제어실로 이끌었다. 주제어실에는 20명 정도 되는 연구원이 모여 플라스마 운전 실험에 열중하고 있었다. 전방 벽면을 가득 채운 모니터에는 알 수 없는 수치와 그래프들이 실시간으로 표시됐다.
“KSTAR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현재 플라스마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연구원들은 모니터 중앙에 띄워진 그래프를 주시했다. 그래프 수치가 조금씩 증가할 때마다 연구원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드러났다.
“지금이 가장 긴장되는 순간입니다. 앞서 꺼뒀던 플라스마를 켜는 중인데, 이때가 장치에 이상이 발생할 위험이 가장 크기 때문이죠.” 김 부장의 설명을 들으니 기자 역시 손에 땀이 나는 듯했다.
수십 초 뒤, 플라스마는 다행히 큰 이상 없이 생성됐다. 플라스마가 안정권에 진입하자 연구원들은 각자의 임무에 따라 KSTAR의 운전 상태와 데이터를 확인했다. KSTAR에서는 국제핵융합실험로(ITER·이터)에서 의뢰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ITER를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전에 최적의 운전조건을 찾는 실험이다. 이를 위해 현재 ITER 프로젝트 회원국들의 연구 경쟁이 치열하다.
핵융합 반응을 유도할 때 가장 위험한 상황 중 하나는 정상적으로 반응하던 플라스마가 갑작스럽게 사라지는 것이다. 문제가 발생해도 원자력발전소처럼 방사성 물질이 방출될 위험은 없지만, 장치 자체에 큰 충격이 가해져 장치가 손상될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현재 KSTAR는 갑작스럽게 플라스마가 멈추는 상황에 대비해 장치의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는 운전조건을 확인하고 있다. 김 부장은 “이번 실험 결과는 ITER가 가동되면 아주 중요한 데이터로 활용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KSTAR는 핵융합 발전에 필요한 연구뿐만 아니라 플라스마 등 기초과학 연구에 필요한 모든 종류의 실험도 지원하고 있다. 김 부장은 “국내외 연구진 누구나 연구 제안서를 제출하면 검토 단계를 거쳐 KSTAR와 공동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상용화 위한 기반기술 쌓아나갈 것”
KSTAR는 현재 1억℃의 플라스마를 10초 이상 운전하는 것을 목표로 자체 실험도 운영 중이다. 하지만 이것이 KSTAR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다. 김 부장은 “KSTAR의 임무는 단지 숫자로 표현되는 목표 외에도 ITER와의 협력 연구, 더 나아가 앞으로 실현될 핵융합 발전에 필요한 모든 기반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KSTAR는 ITER 건설에 필요한 핵심기술을 축적해왔다. 그전까진 아무도 시도하지 못했던 초전도 자석을 이용해 플라스마를 가두는 기술을 최초로 구현해낸 것이 대표적이다. KSTAR가 최초로 도입한 초전도 자석 기술을 활용하면 고온의 플라스마를 토카막 내부에 닿지 않게 공중에 띄워 안정적으로 운전할 수 있다.
KSTAR 이전에 유럽과 일본 등에서 상온 자석으로 구현했던 장치는 플라스마 유지에 제한이 많았다. ITER에는 상온 자석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니오븀주석(Nb3Sn) 재질의 초전도 자석을 사용하도록 설계됐다. KSTAR는 니오븀주석 재질의 초전도 자석이 적용된 최초의 장치다. KSTAR의 초전도 자석 실험 결과는 ITER 초전도 자석을 개발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KSTAR가 보유한 플라스마의 안정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3차원 자장코일 방식’도 핵융합 발전에 필요한 핵심 기술로 그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3차원으로 배치된 자장코일은 2차원 코일보다 다양한 형태의 자기장을 만들 수 있어 다양한 실험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이날 실험은 오후 7시를 넘겨 마무리됐다. 연중 실험 기간과 정비 및 준비 기간을 분리해 운영하는 만큼, 정해진 기간에 계획했던 실험을 모두 마치기 위해 연구원들은 끼니도 잊고 실험에 열중했다.
김 부장은 “한국의 핵융합 기술 역사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수십 년 이상 짧지만, 훌륭한 연구원들과 뛰어난 장치 덕에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까지 기술 수준이 성장했다”며 “미래 에너지원인 핵융합 발전을 상용화하기 위해 KSTAR가 해야 할 역할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