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세계 최대 인공태양이 프랑스 남부 카다라슈에 뜬다. 이 태양의 이름은 국제핵융합실험로(ITER·이터). 지금까지 진행된 인류의 과학 연구 역사상 가장 오래 공들인 프로젝트다. ITER는 핵융합 에너지의 실용화 가능성을 직접 대규모 장치를 건설해 검증하는 것이 목표다. ITER는 올해 7월 본격적인 부품 조립 작업에 돌입했다.
ITER 개발에 7개 나라가 힘을 합친 이유
‘ITER’는 라틴어로 ‘길’이라는 뜻이다. 인류의 미래 에너지를 향한 길을 내는 ITER 프로젝트의 성격과 잘 맞아떨어지는 이름이다.
현재 ITER에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 유럽연합(EU), 러시아, 인도, 중국, 일본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처럼 대규모 국제공동개발 사업으로 진행되는 이유는 핵융합 에너지를 실현하는 데 그만큼 기술적인 어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1950년대 과학기술 선진국들은 비밀리에 독자적인 핵융합 연구를 진행했지만, 핵융합은 핵분열과 달리 실현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에 1958년 미국, 영국 등은 핵융합 기술을 전 세계에 공개하며 국제적인 기술 교류를 촉구했고, 1961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산하에 핵융합에너지 국제학회가 설립됐다. 선진국들의 연구개발과 기술 교류는 1960~1980년대 핵융합 에너지 생산에 필요한 기술 조건들을 찾는 데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이를 실현할 핵융합로 개발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1985년, 냉전은 한창이었으나 미국과 옛 소련은 정상회담에서 ‘핵융합 공동연구’ 안건에 합의했다. 당시 회담에서 유일하게 합의된 안건이었다.
1988년 미국과 옛 소련, EU, 일본 등 4개국은 ITER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한국도 미래 대용량 에너지원의 원천 기술을 확보한다는 원대한 목표로 2003년 ITER의 회원국이 됐다. 같은 해에 중국이, 2년 뒤에는 인도까지 합세했다.
실험로 조립 착수…첫 부품은 한국산
ITER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매우 엄격한 기술심사를 통과해야 했다. 한국이 이를 통과한 데는 1995년부터 개발해온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KSTAR)의 역할이 컸다. 국내 산업체들과 함께 건설한 초전도 자석과 진공용기 등은 기존 회원국들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우수한 기술을 적용한 장비였다.
회원국이 된 후 실제로 한국은 ITER의 핵심 부품들을 조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초전도 도체, 진공용기뿐만 아니라 1억 5000만℃의 고온 플라스마에서 초전도 자석으로 열전달을 막는 열차폐체, 핵융합 반응으로 나오는 중성자를 막는 블랭킷 차폐벽 등을 담당한다. 그외 다수의 조립장비, 삼중수소 저장공급시스템, 전원석장치, 진단장치까지 핵융합 반응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다양한 부품도 ITER에 공급한다.
올해 7월 28일 본격적인 조립 착수 기념식과 함께 첫 조립에 들어간 부품도 한국산이었다. ITER에서 핵융합 현상을 발생시키는 속이 빈 도넛 모양의 용기인 ‘토카막(Tokamak)’은 9개의 똑같은 D자 모양의 진공용기를 이어 만든다. 이날 첫 조립에 들어간 진공용기의 6번 섹터가 한국에서 조달됐다.
진공용기 6번 섹터는 폭 6.6m, 높이가 11.3m, 무게가 400t(톤)인 초대형 스테인리스(철강) 구조물이다. ITER 부품 중 가장 엄격한 제작 요건과 프랑스 법령을 만족시켜야 한다. 우리나라는 초정밀 용접, 변형제어, 비파괴검사(위상배열 초음파검사, 원격내시경검사) 등의 기술을 개발해 회원국 중 최초로 진공용기 섹터를 완성해 공급했다.
초전도 도체도 한국이 ITER 회원국 중 최초로 공급을 완료했다. 초전도체는 플라스마를 가둘 수 있는 거대한 자기장을 생성하는 부품으로, 지름 0.82mm의 초전도 선재 수천 가닥을 꼬아서 지름 43.7mm의 초전도 도체를 만든다. 한국이 제작한 초전도 도체 전체 길이는 18.62km에 달한다.
ITER 넘어 더 큰 목표를 향해
그동안 어려움을 겪던 ITER의 건설이 점점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회원국들은 ITER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핵융합실증로(DEMO·데모) 건설을 위한 기술개발 로드맵을 세우고 있다. DEMO는 핵융합 반응을 일으켜 실제 전기 생산까지 실증 가능한 시설이다.
우리나라는 KSTAR를 이용해 고온의 중수소 플라스마를 안정적으로 장시간 유지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동시에 ITER 운전을 통해 핵융합 연료인 중수소와 삼중수소가 고온 플라스마 상태에서 스스로 연소하도록 하는, 즉 핵융합 반응을 지속적으로 일으키는 기술을 검증할 계획이다.
ITER가 완공되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7개 회원국의 연구진이 ITER에 파견돼 실험을 수행하며 핵융합 연소장치의 다양한 운전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후 확보된 ITER 핵심기술을 바탕으로 실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동력 변환 장치가 포함된 한국형 핵융합실증로(K-DEMO)를 건설할 계획이다.
한국은 비록 핵융합 에너지 연구에 뒤늦게 뛰어들었지만, KSTAR 프로젝트와 함께 엄청난 성장을 거뒀다. 그리고 현재는 핵융합 연구의 중심인 ITER에서 전 세계 연구자들과 나란히 핵융합 에너지 상용화라는 꿈을 향해 뛰고 있다.
※필자소개
이현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부원장과 ITER 한국사업단 기술본부장을 맡고 있다. 고온 플라스마를 진단하는 기술 등을 연구해왔으며, 현재는 ITER 등 핵융합 실험로에 필요한 핵심기술 개발을 총괄하고 있다. hglee@kfe.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