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 시스템은 진공관에서 시작하여 트랜지트터, 집적회로, 광섬유를 사용함으로써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외적의 침입을 알리기 위해 6백여 군데에 봉화를 설치했고 파발마를 이용해 소식을 전했다. 함락돼가는 로마의 마지막 희망은 구원군을 요청하는 소식을 입에 문 비둘기였다.
진공관에서 트랜지스터로
인간이 전기를 발견하기 전의 이와같은 통신수단이 근본적으로 바뀌게 된 것은 진공관, 트랜지스터, 집적회로(IC) 그리고 광섬유가 차례로 발명되면서 부터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는 산업사회 이후의 정보화사회를 맞이하고 있다. 인간두뇌의 창조성을 바탕으로 한 지적생산물인 정보가 점점 그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는 것이다.
보다 많은 정보를 보다 빨리 처리하고 전송하는 것은 정보·통신분야의 궁극적 목표이다. 이 목표를 달성시키는 견인차는 바로 재료과학이다. 오늘날의 전자기기와 데이타베이스가 고도의 기능을 갖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전기신호를 생성하고 전송하며 이어서 신호를 제어·증폭·교환하지않으면 안된다. 이 각 단계의 신호는 신소재와 보다 세련된 처리수법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다.
3극진공관이 발명된 것은 1906년이었다. 그때까지의 철과 동에 더해 텅스텐과 트리튬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게 되었다. 진공관의 의의는 기존의 기계적 스위치보다 고속이라는 점 뿐만 아니라, 진공관이 증폭기의 역할을 해서 발신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따라서 3극진공관은 증폭기로서 근대 무선통신과 전화의 기초가 되었고 50년대까지 모든 전자회로의 주요 요소가 되었다.
그러나 진공관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열의 형태로 다량의 전기를 소비하고 그 열이 진공관의 수명을 단축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실용시스템의 신뢰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2천~3천개 정도의 진공관밖에 짜넣을 수 없게 된다. 여기서 새로운 소자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 요구에 대응해 1947년 트랜지스터가 발명되었다. 트랜지스터는 진공관의 1백만분의 1의 전력으로 동작하고 신뢰성이 높으며 스위치속도도 빠르다. 전자공업에서의 재료연구는 트랜지스터의 재료인 게르마늄과 실리콘과 같은 반도체로 촛점을 옮기게 되었다. 컴퓨터의 정보처리능력은 트랜지스터 스위치속도에 달려있다. 따라서 스위치의 개폐속도가 빠른 보다 작은 트랜지스터가 필요하게 되다. 트랜지스터 소형화의 극적인 진전은 50년대 후반 집적회로의 개발에 의해 이루어졌다. 집적회로는 트랜지스터, 저항, 콘덴서들을 연결하는 배선이 하나의 반도체칩 위에 모아진 회로를 말한다.
이때 가장 유용한 재료는 실리콘으로 판명되었다. 그리하여 과거 25년 동안 결함이 없는 실리콘결정의 성장법, 실리콘결정칩 위에 보다 미세한 회로망을 형성하는 방법이 집중적으로 연구되었다. 미세한 전자회로의 매력은 단지 그것이 작다는 것 뿐 아니라 비용이 덜 먹힌다는 데서도 찾을 수 있다. 그 결과 값싼 실리콘칩은 널리 응용되어 사람들에게 친근한 소자가 되었다. 지난 85년 미국에서 팔린 퍼스널 컴퓨터의 수가 7백만~1천만대로 추정된다고 한다. 오늘날의 퍼스널 컴퓨터는 1945년 진공관을 채용한 커다란 방 하나의 크기인 세계최초의 디지탈 전자계산기 '에니악'(ENIAC)보다 수십배의 성능을 갖고 있다.
광시스템의 등장
극히 최근까지도 통신은 단지 두 사람 사이에서 행해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요즈음 퍼스널 컴퓨터를 가지면 국내 외 데이타베이스로부터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으며, 인간의 개입없이도 컴퓨터끼리의 통신이 가능하게 되었다. 정보의 폭발이 통신이 폭발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대량의 정보를 통신하고 싶다는 이런 욕구는 새로운 기술의 개발에 박차를 가해 '광자공학'(光子工學,Photonics)을 성립시켰다. 광시스템에서 정보는 광의 펄스(지속시간이 매우 짧은 전류나 변조전파)에 의해 운반된다. 이때 광원이 되는 것은 반도체레이저나 발광다이오드이고 전송매체는 머리칼보다 가는 규소유리로 만든 광섬유이다. 광시스템의 자랑은 빠른 정보전달속도와 큰 용량이다. 오는 88년부터 운용될 예정인 최초의 대륙간 광섬유 전화케이블은 동시에 4만회선의 통화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이에 비해 70년대 중반에 부설된 최신의 동축케이블의 용량은 약 1만회선에 불과하다.
1958년 레이저가 발명된 이래 광자공학의 진보는 놀랄만큼 급속히 이루어졌다. 이 짧은 기간 동안 재료공학자들은 해저에서 동작할만큼 신뢰성 높고 내구력 있는 레이저를 개발했고, 광신호를 재생없이 수백㎞나 전달하는 순도가 높고 투명한 유리의 제조법을 알아냈다. 또 신뢰성면에서 가장 유효한 레이저는 인듐·갈륨·비소·인 등의 화합물반도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처럼 광시스템이 1세기전의 철과 동의 전기적 전송을 급속히 대체하고 있지만 아직도 정보처리기기로서 전자를 대신하지는 못하고 있다. 광집적회로와 광컴퓨터는 아직껏 개발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진공관 이전의 시대에 전기신호의 제어를 기계적으로 할 수 밖에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광신호의 제어는 전기적으로 할 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따라서 이미 전자공학이 이루어 놓은 발전을 빛에 의해 복제하고 광시스템의 기능향상을 꾀하는 일이 앞으로의 과제로 남게 된다.
새로운 재료로 한계극복
1960년 이래 칩위의 회로소자의 수는 매년 약 2배씩 늘어났다. 오늘날 2백만개 이상의 소자를 대략 5백만개의 도선으로 접속시킨 메모리칩이 시판되고 있다. 아직 마이크로 일레트로닉스(ME)가 발전하지 않았던 30여년 전이라면 공원 한 사람이 2백만 개의 개별 회로소자를 접속하는데 10년은 걸렸을것이다.
그렇다면 회로의 고집적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실리콘기술의 한계까지 접근하면 집적회로는 현재의 2백만 메모리 소자칩의 50배까지 용량확대가 가능하다고 한다. 현재의 기술진보속도로 보면 그 시기는 약10년후가 될 것이다.
실리콘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칩의 다른 재료를 찾거나 색다른 칩의 설계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전자의 예로 갈륨비소를 들 수 있다. 후자로서 3차원칩을 들 수 있는데, 이 방법을 쓰면 회로소자를 칩의 표면 뿐 아니라 중첩된 층으로 배치할 수 있다.
다가올 광자공학시대의 주역은 갈륨비소를 필두로 한 화합물반도체가 될 것이다. 그밖에 최근 주목받고 있는 것이 분자선(分子線) '에피탁시'(epitaxy)기술이다. 이 기술을 이용해 연구자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화합물 뿐 아니라 원하는 요소를 조합한 화합물 결정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분자선 에피탁시는 트랜지스터가 전기신호를 스위치하거나 증폭시키는 것처럼 광신호를스위치, 증폭하는 제어소자를 만드는 기술로서 매우 유망시되고 있다. 현재의 전자컴퓨터보다 정보처리속도가 빠르고 복수의 신호를 조작할 수 있는 광컴퓨터를 만들 가능성은 여기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상호접속'은 정보시대의 적절한 표어이다. 또 접속이 재료에 의해 이루어 진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정보시대는 재료과학의 시대이기도 하다. 재료과학은 지금까지 정보·통신산업의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도 현재 전자공학시스템만으로 행해지는 제어와 네트웍화의기능을 광자공학시스템에서도 실현시킬 것이다. 물론 재료과학에도 한계는 있다. 정보 자체는 재료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스템의 기능이 높아질수록 그에 관련된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이 늘어날 것이다. 재료과학자와 소프트웨어공학자의 협력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