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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기후위기] 페이스트리처럼 변한 기둥, 흰개미가 파고든 목조 문화재

1월 10일, 경북 봉화 두릉서당. 임진왜란 때 왜적을 물리칠 방책을 건의한 물암 김륭이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유서 깊은 학문 기관에, 어울리지 않는 첨단 측정 장비로 무장한 사람들이 들어섰다. 경북북부문화재돌봄센터 전문모니터링팀이었다. 이들은 내시경과 고무망치, 온·습도 측정기, 함수율 측정기 등을 들고 서당 구석구석을 조사하며 20여 개의 체크리스트를 하나씩 점검했다. ‘두드렸을 때 텅 빈 소리가 나는가?’ YES  ‘목부재에서 창살 모양의 긴 구멍이 보이는가?’ YES  ‘건물에서 흙길이 발견되는가’ YES . 서광호 경북북부문화재돌봄센터 전문모니터링팀장은 “서당을 지탱하는 목재 내부에 흰개미가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흰개미는 약 3000종에 달하는 흰개미아목의 곤충을 이르는 말이다. 국내엔 일본흰개미 종이 가장 널리 발견된다. 이 종은 나무를 갉아먹는다. 특히 목조 문화재의 기둥과 대들보 속으로 파고들어 목재를 텅 빈 상태로 만든다. 


서 팀장이 수풀이 우거져 그늘진 서당의 왼쪽 편으로 안내했다. 서 팀장이 가리킨 목재 기둥 중간이 마치 겹겹이 쌓은 페이스트리처럼 얇게 갈라져 있었다. 기둥 끝은 나무를 부러트린 것처럼 뾰족했다. 


“흰개미가 섭식한 흔적입니다. 흰개미는 습한 곳을 좋아하기 때문에 문화재를 모니터링할 때 이런 곳을 더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두릉서당에는 2019년부터 계속 흰개미가 발견되고 있다. 겨울에는 흰개미가 따뜻한 곳을 찾아 땅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육안으로 볼 수 없지만, 3월 즈음에는 내시경을 넣어보면 흰개미가 관찰된다고 했다.

 

흰개미에 의한 문화재 피해는 1990년대부터 보고된, 이미 오래된 일이다. 그런데 최근 그 피해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기후변화 때문이다. 흰개미는 따뜻한 환경을 좋아하는데, 한반도가 급격한 온난화로 더워져 흰개미가 기승을 부리게 됐다는 설명이다.

 
서 팀장은 “수 년 간 경북 지역을 모니터링 했는데 흰개미가 늘고 있다”며 “이 지역은 목조 문화재가 많은 편이라 방제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아직은 조심스럽다. 박지희 국립문화재연구소 복원기술연구실 학예연구사는 “일본흰개미는 12~30℃에서 왕성한 활동을 한다”며 “겨울철 최저기온이 높아지며 한반도 전 지역에서 흰개미가 확인됐고 비교적 따뜻한 남쪽 지역에서 좀더 많이 발견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흰개미 피해가 증가한 것은 지구온난화뿐만 아니라 교역 증가와 같은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 결과”라며 “한국에서 흰개미 개체수 증가를 막기 위해선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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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과학동아 정보

  • 봉화=박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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