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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하도 충돌했다

한국천문학자들 은하형성이론에 획기적 기여

센타우루스자리 오메가 성단은 남반구 하늘에서 가장 멋진 구상성단으로 알려져 있다. 밝기는 3.7등급, 시직경이 36분이나 되는 이 천체는 맨눈으로는 별처럼 보이기 때문에 센타우루스자리 오메가별로 불리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연세대학교 자외선우주망원경연구단의 이영욱 박사팀(이영욱(38세), 손영종(36세), 이수창(32세), 주종명(30세), 이현철(31세))은 오메가 성단이 1백억년 전 우리은하와 충돌한 작은 은하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결과를 세계적 권위지인 ‘네이처’에 발표했다. ‘네이처’의 심사위원들이 “기존의 은하형성이론을 뒤바꿀 획기적인 결과”라고 할 정도로 이 결과는 한국천문학계에 쾌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영욱 박사는 이번 발견을 은하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그 과정의 비밀을 밝혀줄 ‘천문학적 로제타석’에 비유하기도 했다.

성단인가 은하인가

지금까지 세계의 수많은 천문학자들이 오메가 성단을 관측해왔다. 그리고 오메가 성단이 은하의 일부일 수도 있다는 추측들이 제기돼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관측결과는 오메가 성단이 은하라는 사실을 밝혀줄 만큼 정밀하고 정확하지 못했다. 지금까지의 관측은 사진관측이 주류를 이루었고, CCD에 의한 측광관측이라도 오차가 많았다. 따라서 이를 분석한다고 하더라도 믿을 만한 결과를 얻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때문에 정확한 관측데이터를 통해 오메가 성단이 구상성단이 아니라 은하라는 사실을 밝혀낸다면 천문학사에 커다란 이정표를 세우는 셈이다.

그렇다면 성단이 아니라 은하라는 사실은 어떻게 밝힐 수 있을까. 원리는 간단하다. 성단을 이루는 별들의 나이가 다양하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면 된다. 구상성단을 이루는 별들은 거의 같은 시기에 한꺼번에 생겨나기 때문에 나이가 모두 비슷하다. 그러나 은하에서는 별들이 생겨나고 죽는 과정이 계속되므로 은하를 이루는 별들의 나이가 매우 다양하다. 만일 어느 별 집단이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별들로 이루어져 있다면, 이는 원래 은하였던 것이 특별한 변화를 거쳐 현재와 같은 상태를 보이는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지난 97년말 연구팀의 이수창 박사와 주종명 연구원은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칠레로 향했다. 오메가 성단은 남반구에서만 보이는 천체일 뿐만 아니라, 칠레에 있는 미국 국립천문대(CTIO)의 망원경을 빌려쓰기 위함이었다. 연구원들은 2주간의 관측활동을 통해 약 6백여장의 디지털 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다.

이들이 관측한 2주간은 특별히 날씨가 좋아 그곳 천문대의 직원들이 모두 부러워할 정도였다. 일단 세계 어느 관측팀도 갖지 못한 데이터의 정확성과 신뢰성이 확보된 것이다. 그러나 수백기가바이트에 달하는 디지털 관측자료를 분석할 장비와 인력이 문제였다. 연구팀은 97년말부터 다시 방대한 관측자료를 효과적으로 분석해줄 소프트웨어 개발에 착수하고, 디지털 관측자료 자동분석 소프트웨어를 완성했다. 그리고 칠레에서 가져온 영상자료를 6개월에 걸쳐 철저히 분석했다.

신무기로 무장한 연구팀

연구팀에게는 세계의 다른 연구자들이 갖지 못한 가장 강력하고 확실한 무기가 또하나 있었다. 그것은 이영욱 박사가 수년 전에 개발한 별의 나이측정 모델이었다. 이 모델을 제시한 이영욱 박사의 논문은 한국인 학자의 논문 중 작년 한해 동안 외국학계에서 가장 인용횟수가 많은 논문으로 알려져 있다. 구상성단과 관련된 논문에서는 어김없이 인용될 정도로 별의 나이 측정문제에서는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이렇게 탁월한 모델에, 새로 개발된 소프트웨어를 갖추고, 정확한 관측데이터를 결합한 결과는 충격적이게도 오메가 성단이 구상성단이 아니라 은하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1백억년 전에 우리은하와 충돌해서 지금은 은하의 핵부분만 남아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칠레에서의 관측을 주도했던 이수창 박사는 “2년여에 걸친 연구팀의 노력이 귀중한 열매를 맺는 순간이었다”고 술회했다.


오메가성단의 색등급도


1차적인 자료 분석 결과 우선 성단 내의 별들은 20억년 정도 나이 차이를 보이는 두 집단으로 분리됐다(표1). 이것은 성단이 똑같은 형성단계를 거친 구상성단이 아니고 다양한 별 집단이 존재하는 은하라는 강력한 증거였다. 연구팀은 이어 좀더 자세한 분석에 들어가 별의 중원소 함량을 분석했다. 그 결과 성단내의 별들이 확실히 구분되는 몇몇 집단으로 분리되는 그래프를 얻을 수 있었다. 별의 진화이론으로 볼 때, 철, 니켈 등 무거운 원소가 많은 별은 젊은 별이고, 중원소가 적은 별은 늙은 별이다. 중원소 함량 그래프에서 군데군데 꼭지점을 이루고 있는 것은 오메가 성단은 나이가 다른 다양한 별들의 집합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위성은하가 1백20억년 전부터 1백억년 사이에 우리은하에 이끌리면서 충돌하는 모습(위)과 충돌의 결과로 현재 중심핵만 남은 위성은하의 모습을 재현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네모 안은 현재의 오메가 성단.


은하는 충돌하면서 성장한다

오메가 성단에 포함된 별들은 대략 1백만개. 우리은하의 별 수가 1천억개인 점에 비추어보면 상당히 작은 은하다. 지금까지 외부은하에서 거대한 은하들의 충돌은 많이 관측되고 있지만 희미한 왜소은하들이 큰 나선은하에 충돌하는 일은 관측하기가 어렵다. 때문에 이번 발견은 지난 94년 발견된 궁수자리 왜소은하와 함께 우리은하의 진화연구에 획기적인 공헌을 할 것으로 보인다. 천문학자들이 흥분하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현재 궁수자리 왜소은하는 우리은하와 충돌을 시작하고 있는 단계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오메가 성단은 1백억년 전 우리은하와 충돌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결국 이번 발견으로 은하 충돌 현상은 은하의 형성과 진화에 결정적인 요소임이 밝혀진 셈이다. 즉 은하와 은하가 충돌하면 한쪽 은하의 물질이 다른 한쪽에 흡수되면서 성장하기도 하도 반대로 물질을 빼앗기고 줄어들기도 한다는 것.

또한 이번 연구는 신뢰도 높은 별의 나이측정 모델을 통해 구상성단연구에 기여함으로써 우주의 나이측정에도 큰 몫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구상성단은 매우 오래된 별 집단으로 이들의 나이는 우주나이의 하한선으로서 큰 의미를 가진다. 우주의 나이는 가장 나이가 많은 구상성단의 나이보다 더 많아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대 천문학과 이명균 교수는 “천문학에 대한 지원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연구성과를 내놓은 것은 획기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또한 한국천문연구원의 김봉규 박사는 “우리나라 천문학 연구에서 커다란 한걸음을 내딛은 일”이라고 환영했다. 세계의 과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나아가는 우리나라 젊은 연구자들의 다음 목적지는 어디일지 자못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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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동아일보 조사부
  • 전용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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