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안전등급 4등급 실험실
생물안전등급에 따라 위험한 미생물을 다루는 실험을 할 때는 감염을 막기 위한 장비가 갖춰진 실험실에서 진행해야 한다. 4등급에 포함되는 미생물은 사람이 감염되면 증세가 매우 심각하거나 치명적일 수 있고, 예방과 치료가 어려운 질병을 일으킨다. 북한이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13종의 생화학 무기 중에는 두창 바이러스가 여기에 속한다. 1층에는 폐수의 독을 제거하는 폐수 제독 시스템이, 2층에는 압력이 높은 증기를 이용해 멸균하는 장치가, 3층에는 미세먼지를 제거하는 헤파필터가 설치돼 있다. 북한은 생화학 무기를 개발하기 위해서 이와 유사한 시설을 갖췄을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하반기는 북한의 지속적인 핵 도발로 한반도가 초긴장 상태였다. 핵 도발은 다소 잠잠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북한이 핵만큼 무서운 신규 무기를 비밀리에 개발하고 있다는 내용이 최근 공개됐다. 조용한 살인자, 생화학 무기다.
美 연구소, 북한 보유 생화학 무기 13종 공개
생화학 무기는 인간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나 세균, 화학물질을 이용하는 무기를 말한다.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행정대학원) 내 벨퍼과학국제문제연구소는 북한이 탄저균, 두창(천연두) 등 13종의 생화학 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평양생물기술연구소에서 대량생산할 가능성이 있다는 50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10월 발표했다.
생화학 물질 13종에는 바이러스와 세균, 인공 화학물질이 모두 포함된다. 이 중 12종이 생물, 1종이 화학물질이다. 보고서에는 탄저균, 보툴리누스균, 콜레라균, 한타 바이러스, 페스트균, 두창 바이러스, 티푸스균, 황열 바이러스, 이질균, 브루셀라균, 황색포도상구균, 발진티푸스 리케치아, T-2 마이코톡신 등 13개 병원체 및 독소가 포함됐고, 이 중 T-2 마이코톡신이 유일한 화학물질이다.
연구진은 평양생물기술연구소의 위성 사진과 2015년 노동신문에 공개된 연구소 내부 사진, 탈북자들의 증언, 북한군이 필수적으로 두창 백신을 맞는다는 점 등을 근거로 북한의 생화학 무기 생산 가능성을 제시했다.
평양 강남군에 설립된 평양생물기술연구소는 농약 생산에 특화된 곳으로, 수천 t(톤)의 비료를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고 있다. 노동신문에 공개된 사진에서는 최신식 장비들이 눈에 띈다. 문제는 이 장비가 농약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살충제를 만드는 데 쓰이는 장비 중 일부는 생물 무기를 만들 수 있다.
이런 장비를 ‘이중 사용’ 장비라고 하며, 생화학무기의 생산 및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1985년 출범한 ‘호주그룹(Australia Group)’은 이 장비들의 수출을 제한하고 있다. 사진의 장비 중에는 부피 20리터 이상인 미생물 발효기로 추정되는 설비도 있다. 이 장치는 살충제에 필요한 미생물과 독성 물질을 생산하는 미생물을 동시에 배양할 수 있다.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38노스’는 평양생물기술연구소가 설립되던 2011년 3월부터 2014년 7월까지 위성 사진을 분석해 연구소가 생화학 무기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고 2015년에 주장했다. 거대한 저장 탱크를 지하에 1개, 지상에 2개 등 총 3개 보유하고 있고, 전력 생산을 위한 화력발전소가 포착됐다. 공사 막바지였던 2014년 7월에는 정전에 대비할 수 있는 변전소도 확인됐다.
생물 무기 12종 가운데 7종은 치명적
일각에서는 생물안전등급(Biosafety level)이 높은 미생물을 안전하게 보관, 처리할 실험실이 북한에 없다는 이유로 북한의 생화학 무기 개발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생물안전등급은 생물의 위험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4단계로 나뉜다.
젖산균, 효모와 같이 사람이나 동물에 병을 일으킬 가능성이 거의 없는 미생물이 가장 낮은 1등급으로 분류되고, 에볼라 바이러스, 두창 바이러스처럼 사람간 전염이 가능하고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이 가장 높은 4등급에 해당된다. 벨퍼과학국제문제연구소가 추정한 북한의 생물 무기 12종 가운데 7종이 3등급 이상이다.
생물안전등급에 따라 실험실에 필요한 장비나 안전시설이 다르며, 실험실 복장 역시 등급이 올라갈수록 까다롭다. 그만큼 유지 비용도 어마어마하다. 실제로 4등급 미생물을 취급하는 실험실은 설치에만 수백억 원의 비용이 투입되며, 매월 전기요금만 2000만 원 이상 나온다. 따라서 4등급 실험실은 세계적으로 50여 개에 불과하고, 국내는 질병관리본부가 올해부터 충북 오송에 1개를 운영하고 있다.
이런 지적에 대해 엘리자베스 필립 벨퍼과학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은 과학동아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탈북자들의 증언을 보면 북한이 위험한 미생물을 배양한다고 해서 높은 생물안전등급에 적합한 실험실을 만들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말했다. 즉, 3, 4등급 실험실이 없다는 사실이 곧 위험한 미생물을 배양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2015년 북한 생화학무기연구소에 재직하던 연구원이 필리핀을 거쳐 핀란드로 망명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탈북 연구원은 15기가바이트(GB)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생체 실험 자료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내용이 공개되지는 않았으나, 북한이 생화학 무기에 대한 생체 실험을 감행하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됐다.
2014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에서도 같은 문제가 제기됐다. 전직 고위 관료였던 탈북자는 당시 “함경남도에 있는 섬에서 장애가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생화학 무기 실험을 했다”는 내용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드론에 실어 살포할 수도
북한이 현재 어느 정도 양의 생화학 무기를 생산할 능력을 보유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힘들다. 다만 간접적으로 추론할 수 있다. 2017년 3월 노동신문에 따르면 북한은 수천 톤(t)의 유기 비료를 생산할 수 있는 생산 단지를 평양 강남군에 건설했다. 넓이만 수천 m2에 이른다.
필립 연구원은 “만약 유기 비료 단지가 생화학 무기를 개발하는 데 동원된다면 수 t 이상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연구원은 이미 16년 전 발간한 보고서에서 북한이 콜레라, 탄저균, 페스트 등 생물 무기를 수 주 안에 생산할 수 있으며, 연간 1000t 이상의 생산 능력을 갖췄다고 분석한 바 있다.
벨퍼과학국제문제연구소는 보고서에서 북한이 생화학 무기를 활용할 수단을 갖췄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여러 개의 포탄을 동시에 쏠 수 있는 다연장로켓발사기(방사포), 미사일, 무인항공기(드론) 등이다. 보고서는 생화학 무기 중에는 큰 압력과 열에 약한 병원체도 있는 만큼 미사일보다는 드론이나 항공기를 이용해 에어로졸 형태로 병원체를 분사하는 방법이 가장 유력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필립 연구원은 “북한은 다방면에서 생화학 무기와 관련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생물 무기 생산 설비뿐만 아니라 생물 무기 생산 기술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생물 무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일단 무기가 될 미생물을 확보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탄저병, 콜레라, 두창의 원인균을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특히 탄저균은 2005년 국제농업생명공학연구소(CABI)에 의해 북한에 건네진 것으로 보인다.
CABI는 개발도상국의 농업 발전에 기여하는 국제 비영리조직이다. 이들은 2005년 북한의 작물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살충제를 개발할 수 있는 이중 사용 장비와, 미생물 살충제로 많이 사용되는 바실루스 투린지엔시스(Bacillus thuringiensis)를 제공했다. 살충 단백질을 만드는 바실루스 투린지엔시스는 바실루스 속(屬)에 속하는 바이러스로, 같은 바실루스 속인 탄저균과는 유전적으로 매우 가깝다. CABI가 제공한 설비와 바실루스 투린지엔시스를 배양하는 방법만 알면 손쉽게 탄저균을 만들어낼 수 있다.
고위험 병원체를 무기로 만들기 위해서는 미생물 발효 기술, 미생물 포자생산 기술, 세포 및 바이러스 배양 기술, 분리정제 기술, 병원체 보존 기술 등이 필요한데, 이 중 대다수는 살충제를 개발하는 데 필요한 기술이다. 북한은 이런 기술들 역시 CABI로부터 전수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전자 조작해 생존력 높여
위협적인 생물 무기는 독성이 높으면서도 생존력이 강하고, 사람을 쉽게 감염시킬 수 있는 병원체다. 수많은 세균과 바이러스 중 생물 무기 후보로 10여 가지만 거론되는 이유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에볼라 바이러스를 예로 들며 “병독성이 큰 생물은 대체로 생존 능력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한때 치사율이 90%에 육박했던 에볼라 바이러스는 건조한 상태에서는 하루도 채 생존하지 못한다. 이 교수는 “한때 옛 소련이 에볼라 바이러스로 생물 무기를 개발하려는 연구를 진행했지만, 바이러스의 생존 능력 등 여러 가지 제약으로 수십 년간 성과를 내지 못한 채 결국 연구팀이 해체됐다”고 말했다.
만약 에볼라 바이러스의 생존 능력을 높일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생물 무기가 위험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유전자를 조작해 병독성과 생존력을 높이고, 사람 간 감염이 가능한 새로운 병원체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2년 유전자를 조작한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인 ‘H5N1’이 공기를 통해 족제비 간 감염을 일으켰다는 연구결과가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각각 게재됐다. 흔히 특정 바이러스가 인간에게도 감염될 수 있는지를 파악할 때 족제비의 감염 여부로 대신 확인한다. 포유류인 데다가 사람의 호흡기와 구조가 유사하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의 생물안보를 위한 국가자문위원회(NSABB)는 이 연구가 악용되면 엄청난 생물 테러가 일어날 수 있다는 이유로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논문의 내용 일부를 삭제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기술이 아니다”라며 “북한이 나쁜 마음을 먹으면 상상할 수 없는 기상천외한 생물 무기가 탄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1990년대부터 꾸준히 생명공학 연구에 투자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에 이미 감자 바이러스의 외피 단백질을 생산하는 유전자를 조작해 바이러스에 저항성이 있는 유전자 조작 감자를 만드는 실험을 하기도 했다.
예방의학 관점에서 대비해야
만약 북한이 생화학 무기를 이용해 공격을 감행할 경우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미 육군 준장을 지낸 윌리엄 크리스는 “생물 전쟁은 본질적으로 공중보건과 예방의학”이라고 말했다. 생화학 무기를 이용한 전쟁이 벌어진다면, 결국 예방의학이 발달한 나라가 승리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 관점에서 봤을 때 우리나라는 갈 길이 멀다. 이 교수는 “현재 국내에서 생물안전등급 3등급 이상인 고위험 병원체에 대한 진단이나 치료가 가능한 병원은 아직 없다”며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이후 국내에서도 감염 및 예방의학에 대한 투자가 늘기는 했지만 일시적”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탄저균의 생물안전등급은 3등급이다.
김익환 고려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감염 환자를 위한 음압 병동 설치, 응급실 구조 개선 등이 시급하다”며 “좀 더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원자력안전위원회와 같은 형태의 대통령 직속 생물방어위원회의 설치가 절실히 요구된다”고 말했다.
북 보유 13종 중 가장 위험한 4종
후보물질 1 탄저균(Bacillus anthracis)
탄저균은 북한이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가장 큰 고위험 병원체다. 탄저균은 살아있는 숙주 안에서는 생식세포인 포자를 만들지 않지만, 주변 환경이 척박해지면 균의 가장자리에 포자를 형성해 생존한다.
포자의 생존능력은 가히 놀라울 정도로 뛰어나다. 섭씨 8~45도, 산성도(pH) 5~9에서도 살아남는다. 감염된 동물이나 오염된 공기, 동물의 털 등에서는 수십 년을 버티고, 우유에서는 10년, 연못에서도 2년간 살아남는다.
탄저병의 증상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오염된 공기를 흡입해 감염되는 폐 탄저, 접촉을 통한 피부 탄저, 오염된 식품을 섭취해 나타나는 장 탄저다. 이 중 사람에게 치명적인 증상은 폐 탄저다.
처음 하루 정도는 목이 아프고, 가벼운 열과 근육통이 발생하는 등 감기와 유사한 증상을 보인다. 하지만 곧 증상이 심해지면 폐에 울혈이 발생하고 호흡 곤란, 청색증, 객혈, 쇼크 등을 일으킨다. 결국 고열과 호흡 곤란을 동반한 패혈성 쇼크로 24~36시간 이내에 사망한다. 항생제로 치료해도 치사율이 75%에 이르며, 치료하지 않으면 97%가 사망하는 무서운 감염병이다.
사람, 소, 양, 염소, 돼지 등 대부분의 포유류는 탄저균에 취약하며, 다행히 사람 간 전염은 보고된 바가 없다. 오염된 지역의 토양이나 오염된 동물의 가죽 등에서 포자를 흡입하는 경우 폐 탄저에 감염될 수 있다.
만약 북한이 탄저균을 이용한 생물 무기로 도발한다면 매우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 미국 국방 연구기관인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박사는 2011년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국제 심포지엄에서 “북한이 서울 상공에 10kg의 탄저균을 뿌린다면 최소 2만 명에서 최대 60만 명까지 감염될 수 있다”며 “이 중 40%는 10일 안에 사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탄저균이 위험한 이유는 탄저병의 증상이 치명적이기도 하지만, 현재 국내에 충분한 양의 탄저균 백신과 치료제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탄저균의 치료제는 미국의 제약회사 이머전트 바이오솔루션이 개발한 ‘안트라실’ 등이 있지만, 국내에서는 판매 허가가 나지 않은 상태다. 다만 시프로플록사신, 독시사이클린 등의 항생제로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다.
백신의 경우 미국에서 개발된 ‘AVA’, 영국에서 개발된 ‘AVP’, 러시아의 ‘LAAV’ 등 세 종류가 사용되고 있지만, 국내에서 개발된 백신은 없다. 현재 녹십자가 탄저병 백신을 개발하고 있으며 2~3년 내에 국산화될 것으로 보인다.
후보물질 2 두창(천연두) 바이러스(Variola)
비디오로 영화를 보던 시절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영화 시작 전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불법 영상물’이라며 합법적인 영상만 시청하자는 캠페인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마마’가 바로 두창(천연두)이다.
두창은 1980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종식을 선언한 감염병이다. 그만큼 당시에는 백신이 활성화돼 있었고, 우리나라 역시 전 국민이 두창에 대한 항체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이다. 노인층을 제외한 대다수의 국민은 두창 백신을 맞지 않아 항체가 없을뿐더러, 한 번도 두창 바이러스에 노출된 적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럴 때 집단감염이 일어나면 엄청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두창은 생물안전등급이 4등급이다. 공기로 전파돼 호흡기 감염을 일으키며, 감염되면 12~14일 뒤 갑작스런 고열과 심한 두통, 가슴 통증 등을 느끼게 된다. 그러다 얼굴이 화상을 입은 것처럼 뜨거워지고, 서서히 수포가 생기기 시작한다. 호흡기 합병증이나 뇌염에 의한 호흡 곤란 등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
타액, 호흡기 분비물, 의류 등 다양한 경로로 사람간 전염이 가능하지만, 호흡기에서 나온 비말은 2m 이상 전파되기 어려운 만큼 주로 환자 주변에 전파된다.
바이러스 중 가장 생존력이 뛰어나며, 피부 상처부위에서 떨어져 나온 딱지에서는 상온에서도 수년 동안 살아남는다. 저온에서 동결 보존할 경우에는 20년간 생존할 수 있다. 관리가 쉬워 단백질을 섞어 무기로 개발할 가능성이 크다.
두창 바이러스는 다른 나라에서 이미 여러 백신을 개발한 데다가, 우리나라 역시 CJ헬스케어가 두창 치료백신의 전임상을 진행 중이다. 다만, 같은 속의 다른 바이러스인 백시니아 바이러스(vaccinia virus)를 이용한다. 모양이 유사한 바이러스에 대해서도 교차면역이 유도된다는 것을 이용한 것이다.
이재갑 교수는 “면역 자극 방식이 너무 옛날식이라 백신 주사를 맞은 부위를 접촉하면 다른 사람에게 감염을 일으킬 수도 있고, 부작용도 발생하는 등의 문제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최근에는 두창 백신을 어떻게 투여해야 하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인력조차 많지 않다”며 “미군으로부터 투여 방법을 배워 백신 접종을 할 수 있는 인력을 늘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후보물질 3 콜레라균(Vibrio cholera)
콜레라 독소를 생성해 사람, 어류, 초식동물 등을 감염시키는 세균으로, 오염된 물을 통해 전염된다. 콜레라균에 감염되면 구토와 설사를 반복하며 탈수 현상, 저혈압 등이 발생할 수 있으며, 어린 아이나 노인의 경우 증상이 심해지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하지만 영양주사만 제때 맞으면 큰 문제를 일으킬만한 병은 아니며, 국내에서도 매년 60여 명의 감염환자가 발생하지만 아직 콜레라로 사망한 경우는 없다. 이처럼 생명에 치명적인 균은 아니지만 하루 최대 10리터의 수분이 몸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어, 생물 무기로 사용할 경우 적군의 병력을 떨어뜨리는 데 효과적일 것으로 평가된다.
콜레라균은 보통 물을 통해 전파되기 때문에 집단 발병이 쉽다. 2010년 카리브해에 위치한 아이티에서 콜레라가 창궐하면서 수십만 명이 감염됐고, 약 1만명이 사망했다. 그간 콜레라균에 노출된 적이 없던 나라였기 때문에 감염 경로에 대한 여러 가지 추측이 나왔다.
그 중 가장 유력한 가설은 아이티에 파견된 네팔 평화유지군이 강 근처에 버린 폐기물로 인해 콜레라균이 퍼졌다는 것이다. 2009년 네팔에서 유행한 콜레라와 아이티에서 발견된 콜레라의 유전자가 일치했기 때문이다. 유엔은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다가 지난해 처음으로 “(아이티 콜레라 전염은) 유엔 평화유지군의 책임이 크다”고 밝혔다.
미국이나 일본, 우리나라 등은 콜레라로 인한 집단 발병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이를 수용할 의료 시설이 갖춰져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에서는 콜레라균도 아주 위험한 생물 무기가 될 수 있다. 항생제와 수액을 투여해 치료하며, 최근 국내에서 국제백신연구소(IVI·International Vaccine Institute)와 유바이오로직스가 경구용 콜레라 백신 ‘유비콜’ 개발에 성공했다.
후보물질 4. 페스트균(Yersinia pestis)
유럽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감염병을 하나 고르라면 단연 페스트(흑사병)다. 당시 페스트균은 벼룩을 숙주로, 벼룩은 쥐를 숙주로 삼아 생존하며 인간을 감염시켰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한 번도 발생한 기록이 없고, 전 세계 발생의 98.7%는 알제리, 콩고공화국, 마다가스카르 등에서 발생한다.
페스트균에 감염되면 크게 세 가지 유형의 증상이 나타난다. 가장 위험한 증상이 패혈증 페스트다. 상처가 난 피부를 통해 감염되며, 갑작스러운 쇼크, 혼수 등의 증세를 보인다. 치료하지 않으면 2~3일 안에 몸 전체가 까맣게 변하며 사망에 이른다.
폐 페스트는 에어로졸 형태로 공기를 떠 다니다가 호흡기를 통해 감염되며, 폐렴, 고열 등의 증세를 보이다 사망한다. 치료하지 않을 경우 치사율은 90%에 이른다. 마지막으로 림프절 페스트는 인간 감염의 80~90%를 차지하며, 벼룩에게 물려서 감염되는 경우가 많다. 물린 부위의 림프절이 부으며 패혈증을 일으켜 2~3일 후 사망한다. 치료하지 않을 시 치사율은 75% 정도다.
항생제를 이용해 치료하며, 항생제를 사용하면서 페스트로 인한 사망률이 66%에서 11%로 현저히 떨어졌다. 하지만 2007년 페스트가 자주 발생하는 마다가스카르에서 무려 8가지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지닌 페스트균이 발견됐다. 이에 따라 만약 페스트균이 생물 무기로 사용될 때를 대비한 새로운 치료제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