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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은하] 우주 끝에서 온 별 빛의 주인을 찾다

2015년 1월 5일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허블 우주망원경으로 완성한 역대 최고 해상도의 안드로메다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 전체가 무려 15억 픽셀! 사진 속 영역의 규모는 약 4만 광년에 달한다. 한 장에 1억 개가 넘는 별, 수천 개의 성단이 담겼다. 별 하나하나가 구분되는 안드로메다 은하의 모습은 조르주 쇠라의 점묘화를 연상시킬 정도다. 


안드로메다 속 별을 이렇게 세세히 구분해서 볼 수 있는 이유는 그나마 가장 가까워서다. 빛의 속도로 250만 년. 아주 멀지만, 우주에선 제일 가까운 옆집 은하다. 더 먼 은하로 갈수록 그 속의 별을 구분해서 보기는 굉장히 어렵다. 


그런데 지난해 천문학자들은 허블 우주망원경 관측으로 우주 끝자락에서 홀로 빛나는 별을 포착했다. 이 별빛은 129억 년 전의 과거에서 날아왔다. 우주가 시작된 지 10억 년도 되지 않았을 때의 별빛이다! 안드로메다보다 조금만 멀어도 별을 구분하기 어려운데, 대체 어떻게 이 먼 별빛을 구분했을까? 최근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이 놀라운 현장을 다시 관측하며 허블 관측에서 놓쳤던 예상치 못한 비밀까지 밝혔다.

 

가장 먼 별빛까지 끌어당기는 마법, 중력렌즈


우주 끝자락에 숨은 별빛은 너무 어둡다. 하지만 우주에선 그 어두운 별까지 볼 수 있는 마법이 펼쳐지기도 한다. 먼 우주의 별빛과 지구 사이에 거대한 은하단이 끼어든다면 말이다. 은하단의 강한 중력으로 주변 시공간이 휘고, 그 주변 별빛은 휜 시공간을 따라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이때 별빛 중 일부는 지구에 다시 모이기도 한다. 마치 볼록렌즈로 햇빛을 모아 증폭시키는 것처럼. 이런 ‘중력렌즈’ 현상 덕분에, 너무 멀어서 아주 어두웠을 별빛도 증폭시켜서 훨씬 밝게 볼 수 있다.
제임스 웹은 거대한 은하단 WHL0137-08 주변의 하늘을 관측했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서 아주 길고 둥글게 비친 중력렌즈의 허상을 포착했다. 이 허상은 둥근 지구의 지평선 위로 햇빛이 떠오르는 모습과 비슷해, 선라이즈 아크(Sunrise arc)라고도 불린다. 훨씬 먼 배경에 있는 은하의 빛이 극단적인 중력렌즈로 확대되며 만들어진 허상이다. 이 빛은 129억 년 전의 우주에서 날아온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 거리로 따지면 이 은하는 더 멀어진다. 빛이 날아오는 동안에 우주 공간도 팽창했기 때문이다. 현재 이 배경 은하까지의 거리는 무려 약 280억 광년이다!


이 선라이즈 아크 속엔 유독 더 밝은 작은 점들이 있다. 첫 발견에서 천문학자들은 이것이 은하 속의 밝은 별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빅뱅 직후의 암흑을 밝게 비췄을 이 별에, 천문학자들은 J. J. 톨킨의 판타지 소설 속 등장인물 에아렌딜(‘바다를 사랑하는 자’라는 뜻)을 본딴 ‘에렌델’이란 이름을 붙였다.


에렌델 관측은 우연들이 겹쳐 극단적인 중력렌즈가 형성돼서 가능했다. 그 덕에 별빛들이 평균 4000배나 밝아졌고, 가장 크게 증폭된 영역은 4만 배나 밝아졌다. 하지만 허블의 첫 발견에선 이 점이 밝은 별 하나인지, 여러 별이 좁은 영역에 모인 성단인지 구분이 어려웠다. 허블의 분해능이 부족했던 탓이다.


더 정확한 판단을 위해 제임스 웹이 같은 곳을 겨냥했다. 허블 관측보다 훨씬 선명하게, 같은 중력렌즈의 허상을 담았다. 제임스 웹은 에렌델의 밝은 점이 퍼진 영역이 최대 4000AU(천문단위·1AU는 지구와 태양 사이의 평균 거리)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는 불과 0.06광년으로, 천문학적으로 아주 좁은 영역이다. 이 좁은 영역에서 빛난다는 것은 이 지점이 독립된 별 하나임을 보여준다. 에렌델은 정말 별이었다!


에렌델은 표면온도가 1만 3000~1만 6000K(절대온도)에 달하는 거대하고 푸른 B형 별로 보인다. 그런데 에렌델의 별빛 색깔, 스펙트럼을 더 세밀히 분석하자 흥미로운 점이 발견됐다. 여러 적외선 파장으로 관측한 에렌델의 스펙트럼을 가장 잘 재현한 모델은, 뜨겁고 푸른 B형 별과 훨씬 미지근하고 밝기는 비슷한 동반성이 붙은 경우였다. 실제로 우리은하에서 가까운 B형 별은 옆에 작은 별을 거느린 경우가 많다. 에렌델은 정말 쌍성일까? 제임스 웹으로 두 별을 따로 볼 순 없겠지만(쌍성의 두 별은 겨우 1~2AU 떨어져있다) 상상만 해도 흥미롭다.


에렌델이 쌍성인지는 몇몇 의문이 있다. 보통 쌍성의 두 별은 처음부터 질량과 진화 속도가 다르다. 질량이 더 크고 더 빨리 진화한 별은 온도가 미지근해지고, 팽창하며 더 밝아진다. 그런데 이번 에렌델 관측을 가장 잘 설명하는 모델은, 쌍성의 두 별이 표면온도는 많이 달라도 밝기가 비슷하다. 이것은 우리은하 주변의 쌍성과 크게 다른 점이다. 또한 이 연구가 쌍성을 이룬 각 별에 대한 중력렌즈의 효과가 똑같다고 가정한 점도, 에렌델을 이룬 각 별의 성질을 계산할 때 오차를 일으킨 요인일 수 있다.
 


휘어진 시공간 속에 구상성단이 있다면?


이번 관측에서 제임스 웹은 에렌델 주변의 선라이즈 아크 은하 곳곳에서 빛나는 어린 별 탄생의 흔적도 분석했다. 빅뱅 직후에 거의 처음 탄생한 은하에서 최초의 별, 종족 III(Pop III·1세대 별이라는 뜻) 별들이 한꺼번에 태어나는 영역일지 모른다!


천문학자들은 초기 우주에서 아주 밝고 큰 별들이 폭발적으로 탄생하며 그 주변이 순식간에 이온화된 시기가 있었다고 추정한다. 초기 우주의 재이온화 시기다. 선라이즈 아크 은하 곳곳에서 확인된, 둥글게 찌그러진 빛 얼룩들의 주변 영역을 분석한 결과는 놀라웠다. 우주의 나이가 10억 년도 되기 전에, 갓 탄생한 별빛이 주변 우주 공간을 이온화시켰다는 징후를 확인했다. 이 격렬했던 시기에 일부 별들은 짧은 삶을 살다 폭발했을 것이다. 비교적 진화가 느리고 가벼운 별들은 천천히 버텼다.


그렇게 살아남은 별들과, 다시 주변에서 반죽된 어린 별들이 모여 별의 큰 무리, 성단을 이뤘다. 지금 우리은하의 헤일로를 떠도는 100여 개의 구상성단도 오래전 이렇게 형성됐을 것이다. 아직 정확히 목격된 적 없는, 구상성단의 탄생에 가장 가까운 순간이 이 선라이즈 아크 은하의 허상 속에 존재할 수 있다.


 
항성 진화 연구의 새로운 막이 오르다


최근 제임스 웹은 극단적인 중력렌즈 덕에 제2, 제3의 에렌델도 찾았다. 천문학자들은 은하단 주변들에서 각각 1000배에서 10만 배에 이르는 아주 강한 중력렌즈 현상을 겪은 작은 빛의 허상을 두 개 찾았다. 물론 이들이 독립된 별 하나인지, 별 두셋이 모인 쌍성, 삼중성인지, 성단인지는 결론짓기 어렵다. 제임스 웹에서 이미지를 촬영하는 NIRcam만 관측했기 때문이다. 여러 파장에서 더 선명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NIRspec의 추가 관측으로, 이 새로운 에렌델들의 정체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허블, 그리고 제임스 웹과 함께 천문학자들은 130억 년 전의 먼 우주에서도 독립된 별과 성단의 모습을 연이어 구분하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수백만, 수천만 광년 떨어진 비교적 가까운 은하만 이런 구분이 가능했다. 별과 성단의 진화를 연구하는 항성진화 분야도 수천만 광년의 우주에 갇혀(?!)있었다. 제임스 웹의 대발견과 함께 머나먼 우주 끝자락도 항성 진화를 연구하는 천문학의 새 무대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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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지웅배 연세대 은하진화연구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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