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여름, 경북 경주 읍천 해안에서 부채를 활짝 펼친 듯한 주상절리가 발견됐다. 그동안 해안가에 주둔했던 군부대가 철수하면서 바깥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주상절리 하면 흔히 떠올리는 육각기둥의 모습이 아니라 더욱 신비하다. 그런데 국수처럼 휘어지고 대도시 마천루처럼 빛나는 주상절리가 있다고 한다. 바로 우리나라에 말이다.

세상을 다 가릴 만큼 거대하거나 깨알보다 미세한 자연은 얼마나 놀라운가. 사람들은 자연에 대해 때로는 크게 놀라고, 분노나 공포를 느끼기도 하며 경의와 감사를 표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비행기 위에서 험준한 히말라야나 로키 또는 알프스 산맥을 내려다보거나 거대한 그랜드캐니언을 바라보거나 홍수나 쓰나미, 지진, 화산 폭발 등을 경험할 때 말이다.
40여 년 전이었다. 친구와 함께 경기 연천군의 재인폭포로 놀러간 적이 있었다. 세찬 폭포의 정면과 양쪽 절벽에 무수히 많은 암회색 돌기둥(주상절리)이 마치 조각처럼 펼쳐져 중심을 잃어버릴 만큼 황홀했다. 지질학자로서 주상절리를 ‘용암이 지표에서 식으면서 굳을 때 만들어진 기둥 같은 쪼개짐’이라고만 정의내리기에는 너무 아찔하게 아름다운 절벽이었다.
그 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연구했던 약 35년 동안 국내 여기저기 주상절리를 찾아다녔다. 지질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이라도 이 돌병풍을 보면 자연의 위대함과 정교함,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으리라.
천천히 식을수록 큰 기둥 생겨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주상절리는 제주도 지삿개 해안에 발달한 것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6각기둥들이 저마다 키가 다르게 들쭉날쭉 솟아난 것이 재미있다. 하지만 주상절리가 모두 수직으로 발달하는 것은 아니다. 갈빗살처럼 한쪽 방향으로 드러누워 있기도 하고 꽃이 핀 모양으로 벌어져 눕기도 한다. 용암이 흐를 때 지형이 경사진 탓에 처음부터 드러누운 모양으로 발달했거나, 해변 모래사장에서 굳어진 용암이 지진, 쓰나미, 지각변동 등을 겪으면서 옆으로 쓰러진 것이다.
경북 경주시 양남면 읍천리 후동마을에는 부채를 활짝 펴 놓은 듯이 화려하게 드러누운 주상절리가 있다. 신생대 3기 말에 분출한 용암이 굳은 것이다. 이곳은 최근에야 일반인들에게 공개돼, 그 형태가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➊ 강원도 고성군 오음산 정상 부근에 발달된 주상절리. 산에 오르면서 그냥 지나칠 만한 바위에서도 주상절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➋ 지표면으로 나온 마그마(용암)는 점점 식으면서 몇몇 점들을 중심으로 수축한다. 결국 일정한 모양대로 갈라져 수많은 기둥이 된다. 가장 흔한 것이 6각기둥이다.
➌ 무등산 입석대에서 바라 본 주상절리. 바위들이 높게 솟아있어 거대한 파이프오르간처럼 보인다.]
땅속 깊은 곳에서 만들어진 마그마는 현무암질 마그마와 화강암질 마그마가 있다. 마그마가 화산의 화구로부터 뿜어져 나오면 용암이라고 부른다(각각 현무암질 용암, 유문암질 용암이 된다). 600~1000℃가 넘는 뜨거운 용암은 주위의 낮은 지역이나 계곡을 따라 마치 물처럼 흐르면서 구덩이를 메우고 대지를 덮는다. 용암이 땅 위에서 굳으면 각각 현무암과 유문암이 된다. 현무암질 마그마는 때때로 액체 상태에서 온도가 서서히 내려가 정출온도(액체인 용암에서 광물이 고체 상태로 분리되는 온도)가 높은 광물부터 암석으로 형성되기 시작한다. 그러면 마그마의 성분이 조금씩 변해 처음과 달라진다. 이런 마그마가 지표로 나와서 굳으면 안산암이나 석영안산암, 유문암 등으로 변한다.
그렇다면 주상절리는 어떻게 형성되는 걸까. 용암은 굳을 때 땅과 닿는 아랫부분과 공기와 만나는 윗부분이 안쪽보다 더 빨리 식는다. 그래서 표면에 중심점들이 생기면서 수축이 일어나 부피가 줄어든다. 용암은 굳으면서 중심점을 향하는 듯이 수직방향으로 갈라지는데, 그 선들은 서로 120°를 이룬다.
수축 중심점이 고르게 분포하면 여러 방향의 틈이 서로 만나 일정한 모양의 기둥, 즉 주상절리를 만든다. 가장 잘 알려진 6각기둥을 비롯해 4각기둥, 5각기둥, 7각기둥, 8각기둥도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용암은 천천히 식을수록 큰 기둥이 생긴다. 용암이 빨리 굳으면 수축할 때 생기는 응력이 커져 기둥 부피가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주상절리가 형성되려면 용암이 식을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있어야 한다. 용암의 점성이 작고 잘 흘러야 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주상절리는 주로 현무암질 용암에서 만들어지며, 안산암질, 석영안산암질, 조면암질 용암에서도 형성된다. 또 주상절리는 용암이 호수처럼 큰 규모로 고여 있을 때 천천히 식으면서 생긴다. 지금 주상절리가 작아 보이는 곳도 화산이 분출했던 당시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용암이 흘렀을 것이다.


[한탄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곳, 어유지리에서 임진강 건너편을 바라보니 ‘거대한 나무 뿌리’가 드러누워 있다.]
공룡시대에 연주한 거대 파이프오르간
일반인들 사이에 주상절리에 대해서 잘못 알려진 것이 많다. 주상절리가 6각기둥으로만 발달한다는 것과, 국내에서는 제주 대포동 지삿개 해안에만 있을 것이라는 오해다. 사실 화산이 분출했던 지형에는 대부분 주상절리가 발달해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제주도는 물론 앞서 소개한 경주 후동마을을 비롯해 곳곳에 주상절리가 남아 있다. 특히 중생대 말기(약 1억 년 전) 이후 만들어진 화산 지형에서는 심한 지각변동이 없었기 때문에 주상절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필자는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여러 시대의 화산암에 다양한 주상절리가 발달돼 있음을 봐왔다. 화산이 분출하던 당시를 머릿속에 그려보면서 혼자 감탄하고 두려워했다. 자연의 위대한 창조에 경외감을 느끼면서 더욱 더 겸손해지곤 했다.
중생대 말기~신생대 초기의 화산암은 주로 경상남,북도와 서,남해안에 넓게 분포돼 있다. 또 강원도와 경기도, 충청북도, 전라북도, 전라남도 그리고 서해의 도서지역에도 조금씩 있다. 신생대 중에서도 지금으로부터 약 200만 년 전 이후의 화산암은 백두산과 제주도, 울릉도, 한탄강일대, 금강산의 해금강 지역 등에 넓게 분포돼 있다.
1187m에 달하는 ‘거대한 파이프오르간’ 무등산도 주상절리 작품이다. 중생대 말 백악기 때 화산이 폭발하면서 생겼다. 몇 년 전 무등산을 찾아간 필자는 한 시간 반 정도의 잰걸음으로 입석대 턱 밑에 도착했다. 멀리서 바라본 입석대는 마치 ‘중무장한 병사들의 행진’을 연상케 했다. 입석대 바로 아래에는 한 변의 길이가 약 1m가 넘고, 둘레가 6~7m쯤 되는 정육각형 또는 정팔각형의 반석들이 잔칫집의 밥상들처럼 모여 있었다.
입석대에 오르니 넓은 앞마당이 펼쳐져 있고, 15~20m의 돌기둥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힘차게 뻗어 있었다. 정상으로부터 약 60m 아래까지 쫙 깔려 있었다. 이곳에 주상절리가 대규모로 발달한 이유는 용암이 두껍게 수평으로 쌓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 6000만 년이라는 긴 지질시대를 거치면서 암석들은 대부분 풍화돼 사라지고 지금은 소규모만 남아 있다.
화산지형을 찾아다니던 중 천연의 빌딩 숲을 발견하기도 했다. 서해 고군산군도 중 선유도 남섬의 북쪽 해변에서 카메라를 메고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기다가, 불현듯 비행기를 타고 미국 뉴욕의 상공을 지나는 듯한 착각에 빠져버렸다. 중생대 백악기 말에 생성된 반심성암(석영반암)이 지표 가까운 곳에서 냉각되면서 수직 및 수평절리를 만들었고, 이 지형은 파도로 풍화,침식되면서 빌딩 숲 같은 형상을 완성했다. 특히 바닷물이 들어왔다 나갈 때면 물에 씻긴 바위의 표면이 반짝반짝 빛난다. 크고 작은 그리고 높고 낮은 건물들처럼 내 눈 속으로 들어왔다. 대도시 전경을 내려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➊ 튀어나온 기둥을 손가락으로 누르면 쑥 들어가면서 주변 기둥들이 솟아 나오지 않을까. 제주도 대포동 지삿개 해안에는 비슷한 굵기의 현무암 육각기둥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➋ 필자가 황홀함을 느꼈었던 경기 연천군의 재인폭포. 폭포의 양 옆으로 거대한 현무암 병풍이 드리워져 있다. 긴 시간 동안 풍화와 침식을 겪으면서 곳곳이 떨어져나가 장수의 갑옷처럼 보인다.
➌ 경북 포항에 있는 ‘국수바위’. 동일한 방향과 모양대로 꿈틀거리는 모습이 국수발 같다.
누가 이렇게 탁월하게 이름을 지었을까.]
대왕 면발도, 장수들 갑옷도 용암 작품
신생대에는 더 화려하고 아름다운 주상절리들이 태어났다. 경남 울산시 북구 강동동 일대 해변에는 한 변의 길이가 약 20cm, 길이가 3~4m인 4~6각형의 주상절리가 발달돼 있다. 철도 침목을 쌓아 놓은 것처럼 수평으로 누워 있어 특이하다. 울산 12경인 강동 몽돌해변에 잇닿아 있으며, 그 풍광이 너무도 아름다워 울산시 기념물 42호로 지정됐다.
경북 포항시에는 더 특이한 주상절리, 일명 ‘국수바위’가 유명하다. 필자도 국수바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도착하자마다 눈앞에 펼쳐져 있는 광경은 높이 약 20m, 너비 약 100m인 거대 면발이었다. 어린 시절 집안에서 큰 혼사를 치르기 전에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몇 달 전부터 만들어 앞마당에 널어놓았던 국수발이 떠올랐다. 필자와 동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누군가 이름을 붙여도 참 잘 붙였다”며 환호했다.
강원도 고성군 오봉산과 오음산 일대에서는 커다란 벌집 혹은 커다란 팽이버섯다발을 볼 수 있다. 이곳 주상절리는 한 변이 약 20cm, 높이는 수십m에 이른다. 30° 가량 아래쪽으로 기울어져 있는데, 본래 그런 상태로 용암이 흘렀거나 수직이었던 주상절리가 아랫부분이 침식하면서 기울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제는 너무나도 유명한 관광지가 돼버린 제주도 서귀포시 대포동 지삿개 해안의 주상절리는 신생대 제4기(약 200만 년 전 이후)에 발달한 것이다. 이 시기에 형성된 화산 지형(백두산, 제주도, 울릉도, 강원도와 경기도에 걸친 한탄강 유역)에는 어디서나 주상절리가 발달돼 있다.
특히 제주도는 해변을 따라 다양한 규모와 모양으로 발달했다. 2004년 지형•지질 천연기념물 443호로 지정된 지삿개 해안 주상절리는 절벽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일품이다. 쪽빛 바닷물이 넘실넘실 6각기둥과 8각기둥(한 변 20~40cm, 높이 20~40m)을 때리면서 부서지는 물보라에 칠색교(七色橋)가 찬란하게 빛난다. 여기가 바로 ‘별주부전’에 나오는 용궁이 아닐까.
여기뿐이 아니다. 밥그릇을 거꾸로 엎어놓은 듯이 생긴 산방산은 제4기 초(약 80만~60만 년 전) 산성 조면암질 용암이 만든 작품으로 역시 주상절리가 발달돼 있다. 해안가 절벽에 있는 주상절리는 높이가 수백m인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지삿개 해안처럼 주상절리를 뚜렷하게 구분하기는 어렵다. 바닷바람과 바닷물에 깎이면서 둥글고 매끄럽게 문드러졌기 때문이다.
필자가 아찔한 황홀함을 느꼈던 재인폭포의 주상절리도 신생대 제4기에 생성됐다.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고문리에 있다. 휴전선보다 북쪽인 강원도 평강군 평강읍 동북쪽에서 화산이 분출했고, 그 용암이 옛 한탄강을 따라 흐르다가 이곳 재인폭포가 있는 고문리에 용암호를 이루면서 주상절리를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형은 풍화와 침식작용을 거치면서 일부 현무암층이 떨어져 나가 작은 폭포(재인폭포)가 만들어졌다. 재인폭포는 높이 약 18m, 너비 약 20m 정도다. 폭포 주변은 현무암 기둥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암벽 곳곳이 떨어져나가 장수들의 갑옷처럼 보인다. 폭포 아랫부분은 세찬 폭포수가 만든 여러 하식동굴(강물이 깎아 만든 동굴)이 관광객의 발길을 끊임없이 유혹한다.
용암으로 된 돌기둥들을 보면 아름다운 디자인에 감탄하고 장엄한 크기에 입이 떡 벌어질 뿐이다. 거대한 자연 앞에 티끌처럼 작은 한 사람이지만, 지질학자로서 국내 곳곳에 숨겨져 있는 아름다운 지형과 지질들을 일반인에게 소개하는 일은 보람된 일일뿐 아니라 매우 기쁘다. 헤아릴 수 없는 지질작용과 기후변화에 우리 강산은 끊임없이 변할 테지만 자연의 위대함과 경건함 앞에서 우리 인간은 영원히 작고 겸손해질 뿐이다.

[경북 경주 후동마을에 있는 주상절리. 부채를 활짝 펼쳐 놓은 듯이 가지런히 누워 있다.]
세상을 다 가릴 만큼 거대하거나 깨알보다 미세한 자연은 얼마나 놀라운가. 사람들은 자연에 대해 때로는 크게 놀라고, 분노나 공포를 느끼기도 하며 경의와 감사를 표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비행기 위에서 험준한 히말라야나 로키 또는 알프스 산맥을 내려다보거나 거대한 그랜드캐니언을 바라보거나 홍수나 쓰나미, 지진, 화산 폭발 등을 경험할 때 말이다.
40여 년 전이었다. 친구와 함께 경기 연천군의 재인폭포로 놀러간 적이 있었다. 세찬 폭포의 정면과 양쪽 절벽에 무수히 많은 암회색 돌기둥(주상절리)이 마치 조각처럼 펼쳐져 중심을 잃어버릴 만큼 황홀했다. 지질학자로서 주상절리를 ‘용암이 지표에서 식으면서 굳을 때 만들어진 기둥 같은 쪼개짐’이라고만 정의내리기에는 너무 아찔하게 아름다운 절벽이었다.
그 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연구했던 약 35년 동안 국내 여기저기 주상절리를 찾아다녔다. 지질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이라도 이 돌병풍을 보면 자연의 위대함과 정교함,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으리라.
천천히 식을수록 큰 기둥 생겨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주상절리는 제주도 지삿개 해안에 발달한 것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6각기둥들이 저마다 키가 다르게 들쭉날쭉 솟아난 것이 재미있다. 하지만 주상절리가 모두 수직으로 발달하는 것은 아니다. 갈빗살처럼 한쪽 방향으로 드러누워 있기도 하고 꽃이 핀 모양으로 벌어져 눕기도 한다. 용암이 흐를 때 지형이 경사진 탓에 처음부터 드러누운 모양으로 발달했거나, 해변 모래사장에서 굳어진 용암이 지진, 쓰나미, 지각변동 등을 겪으면서 옆으로 쓰러진 것이다.
경북 경주시 양남면 읍천리 후동마을에는 부채를 활짝 펴 놓은 듯이 화려하게 드러누운 주상절리가 있다. 신생대 3기 말에 분출한 용암이 굳은 것이다. 이곳은 최근에야 일반인들에게 공개돼, 그 형태가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➊ 강원도 고성군 오음산 정상 부근에 발달된 주상절리. 산에 오르면서 그냥 지나칠 만한 바위에서도 주상절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➋ 지표면으로 나온 마그마(용암)는 점점 식으면서 몇몇 점들을 중심으로 수축한다. 결국 일정한 모양대로 갈라져 수많은 기둥이 된다. 가장 흔한 것이 6각기둥이다.
➌ 무등산 입석대에서 바라 본 주상절리. 바위들이 높게 솟아있어 거대한 파이프오르간처럼 보인다.]
땅속 깊은 곳에서 만들어진 마그마는 현무암질 마그마와 화강암질 마그마가 있다. 마그마가 화산의 화구로부터 뿜어져 나오면 용암이라고 부른다(각각 현무암질 용암, 유문암질 용암이 된다). 600~1000℃가 넘는 뜨거운 용암은 주위의 낮은 지역이나 계곡을 따라 마치 물처럼 흐르면서 구덩이를 메우고 대지를 덮는다. 용암이 땅 위에서 굳으면 각각 현무암과 유문암이 된다. 현무암질 마그마는 때때로 액체 상태에서 온도가 서서히 내려가 정출온도(액체인 용암에서 광물이 고체 상태로 분리되는 온도)가 높은 광물부터 암석으로 형성되기 시작한다. 그러면 마그마의 성분이 조금씩 변해 처음과 달라진다. 이런 마그마가 지표로 나와서 굳으면 안산암이나 석영안산암, 유문암 등으로 변한다.
그렇다면 주상절리는 어떻게 형성되는 걸까. 용암은 굳을 때 땅과 닿는 아랫부분과 공기와 만나는 윗부분이 안쪽보다 더 빨리 식는다. 그래서 표면에 중심점들이 생기면서 수축이 일어나 부피가 줄어든다. 용암은 굳으면서 중심점을 향하는 듯이 수직방향으로 갈라지는데, 그 선들은 서로 120°를 이룬다.
수축 중심점이 고르게 분포하면 여러 방향의 틈이 서로 만나 일정한 모양의 기둥, 즉 주상절리를 만든다. 가장 잘 알려진 6각기둥을 비롯해 4각기둥, 5각기둥, 7각기둥, 8각기둥도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용암은 천천히 식을수록 큰 기둥이 생긴다. 용암이 빨리 굳으면 수축할 때 생기는 응력이 커져 기둥 부피가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주상절리가 형성되려면 용암이 식을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있어야 한다. 용암의 점성이 작고 잘 흘러야 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주상절리는 주로 현무암질 용암에서 만들어지며, 안산암질, 석영안산암질, 조면암질 용암에서도 형성된다. 또 주상절리는 용암이 호수처럼 큰 규모로 고여 있을 때 천천히 식으면서 생긴다. 지금 주상절리가 작아 보이는 곳도 화산이 분출했던 당시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용암이 흘렀을 것이다.


[한탄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곳, 어유지리에서 임진강 건너편을 바라보니 ‘거대한 나무 뿌리’가 드러누워 있다.]
공룡시대에 연주한 거대 파이프오르간
일반인들 사이에 주상절리에 대해서 잘못 알려진 것이 많다. 주상절리가 6각기둥으로만 발달한다는 것과, 국내에서는 제주 대포동 지삿개 해안에만 있을 것이라는 오해다. 사실 화산이 분출했던 지형에는 대부분 주상절리가 발달해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제주도는 물론 앞서 소개한 경주 후동마을을 비롯해 곳곳에 주상절리가 남아 있다. 특히 중생대 말기(약 1억 년 전) 이후 만들어진 화산 지형에서는 심한 지각변동이 없었기 때문에 주상절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필자는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여러 시대의 화산암에 다양한 주상절리가 발달돼 있음을 봐왔다. 화산이 분출하던 당시를 머릿속에 그려보면서 혼자 감탄하고 두려워했다. 자연의 위대한 창조에 경외감을 느끼면서 더욱 더 겸손해지곤 했다.
중생대 말기~신생대 초기의 화산암은 주로 경상남,북도와 서,남해안에 넓게 분포돼 있다. 또 강원도와 경기도, 충청북도, 전라북도, 전라남도 그리고 서해의 도서지역에도 조금씩 있다. 신생대 중에서도 지금으로부터 약 200만 년 전 이후의 화산암은 백두산과 제주도, 울릉도, 한탄강일대, 금강산의 해금강 지역 등에 넓게 분포돼 있다.
1187m에 달하는 ‘거대한 파이프오르간’ 무등산도 주상절리 작품이다. 중생대 말 백악기 때 화산이 폭발하면서 생겼다. 몇 년 전 무등산을 찾아간 필자는 한 시간 반 정도의 잰걸음으로 입석대 턱 밑에 도착했다. 멀리서 바라본 입석대는 마치 ‘중무장한 병사들의 행진’을 연상케 했다. 입석대 바로 아래에는 한 변의 길이가 약 1m가 넘고, 둘레가 6~7m쯤 되는 정육각형 또는 정팔각형의 반석들이 잔칫집의 밥상들처럼 모여 있었다.
입석대에 오르니 넓은 앞마당이 펼쳐져 있고, 15~20m의 돌기둥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힘차게 뻗어 있었다. 정상으로부터 약 60m 아래까지 쫙 깔려 있었다. 이곳에 주상절리가 대규모로 발달한 이유는 용암이 두껍게 수평으로 쌓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 6000만 년이라는 긴 지질시대를 거치면서 암석들은 대부분 풍화돼 사라지고 지금은 소규모만 남아 있다.
화산지형을 찾아다니던 중 천연의 빌딩 숲을 발견하기도 했다. 서해 고군산군도 중 선유도 남섬의 북쪽 해변에서 카메라를 메고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기다가, 불현듯 비행기를 타고 미국 뉴욕의 상공을 지나는 듯한 착각에 빠져버렸다. 중생대 백악기 말에 생성된 반심성암(석영반암)이 지표 가까운 곳에서 냉각되면서 수직 및 수평절리를 만들었고, 이 지형은 파도로 풍화,침식되면서 빌딩 숲 같은 형상을 완성했다. 특히 바닷물이 들어왔다 나갈 때면 물에 씻긴 바위의 표면이 반짝반짝 빛난다. 크고 작은 그리고 높고 낮은 건물들처럼 내 눈 속으로 들어왔다. 대도시 전경을 내려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➊ 튀어나온 기둥을 손가락으로 누르면 쑥 들어가면서 주변 기둥들이 솟아 나오지 않을까. 제주도 대포동 지삿개 해안에는 비슷한 굵기의 현무암 육각기둥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➋ 필자가 황홀함을 느꼈었던 경기 연천군의 재인폭포. 폭포의 양 옆으로 거대한 현무암 병풍이 드리워져 있다. 긴 시간 동안 풍화와 침식을 겪으면서 곳곳이 떨어져나가 장수의 갑옷처럼 보인다.
➌ 경북 포항에 있는 ‘국수바위’. 동일한 방향과 모양대로 꿈틀거리는 모습이 국수발 같다.
누가 이렇게 탁월하게 이름을 지었을까.]
대왕 면발도, 장수들 갑옷도 용암 작품
신생대에는 더 화려하고 아름다운 주상절리들이 태어났다. 경남 울산시 북구 강동동 일대 해변에는 한 변의 길이가 약 20cm, 길이가 3~4m인 4~6각형의 주상절리가 발달돼 있다. 철도 침목을 쌓아 놓은 것처럼 수평으로 누워 있어 특이하다. 울산 12경인 강동 몽돌해변에 잇닿아 있으며, 그 풍광이 너무도 아름다워 울산시 기념물 42호로 지정됐다.
경북 포항시에는 더 특이한 주상절리, 일명 ‘국수바위’가 유명하다. 필자도 국수바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도착하자마다 눈앞에 펼쳐져 있는 광경은 높이 약 20m, 너비 약 100m인 거대 면발이었다. 어린 시절 집안에서 큰 혼사를 치르기 전에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몇 달 전부터 만들어 앞마당에 널어놓았던 국수발이 떠올랐다. 필자와 동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누군가 이름을 붙여도 참 잘 붙였다”며 환호했다.
강원도 고성군 오봉산과 오음산 일대에서는 커다란 벌집 혹은 커다란 팽이버섯다발을 볼 수 있다. 이곳 주상절리는 한 변이 약 20cm, 높이는 수십m에 이른다. 30° 가량 아래쪽으로 기울어져 있는데, 본래 그런 상태로 용암이 흘렀거나 수직이었던 주상절리가 아랫부분이 침식하면서 기울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제는 너무나도 유명한 관광지가 돼버린 제주도 서귀포시 대포동 지삿개 해안의 주상절리는 신생대 제4기(약 200만 년 전 이후)에 발달한 것이다. 이 시기에 형성된 화산 지형(백두산, 제주도, 울릉도, 강원도와 경기도에 걸친 한탄강 유역)에는 어디서나 주상절리가 발달돼 있다.
특히 제주도는 해변을 따라 다양한 규모와 모양으로 발달했다. 2004년 지형•지질 천연기념물 443호로 지정된 지삿개 해안 주상절리는 절벽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일품이다. 쪽빛 바닷물이 넘실넘실 6각기둥과 8각기둥(한 변 20~40cm, 높이 20~40m)을 때리면서 부서지는 물보라에 칠색교(七色橋)가 찬란하게 빛난다. 여기가 바로 ‘별주부전’에 나오는 용궁이 아닐까.
여기뿐이 아니다. 밥그릇을 거꾸로 엎어놓은 듯이 생긴 산방산은 제4기 초(약 80만~60만 년 전) 산성 조면암질 용암이 만든 작품으로 역시 주상절리가 발달돼 있다. 해안가 절벽에 있는 주상절리는 높이가 수백m인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지삿개 해안처럼 주상절리를 뚜렷하게 구분하기는 어렵다. 바닷바람과 바닷물에 깎이면서 둥글고 매끄럽게 문드러졌기 때문이다.
필자가 아찔한 황홀함을 느꼈던 재인폭포의 주상절리도 신생대 제4기에 생성됐다.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고문리에 있다. 휴전선보다 북쪽인 강원도 평강군 평강읍 동북쪽에서 화산이 분출했고, 그 용암이 옛 한탄강을 따라 흐르다가 이곳 재인폭포가 있는 고문리에 용암호를 이루면서 주상절리를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형은 풍화와 침식작용을 거치면서 일부 현무암층이 떨어져 나가 작은 폭포(재인폭포)가 만들어졌다. 재인폭포는 높이 약 18m, 너비 약 20m 정도다. 폭포 주변은 현무암 기둥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암벽 곳곳이 떨어져나가 장수들의 갑옷처럼 보인다. 폭포 아랫부분은 세찬 폭포수가 만든 여러 하식동굴(강물이 깎아 만든 동굴)이 관광객의 발길을 끊임없이 유혹한다.
용암으로 된 돌기둥들을 보면 아름다운 디자인에 감탄하고 장엄한 크기에 입이 떡 벌어질 뿐이다. 거대한 자연 앞에 티끌처럼 작은 한 사람이지만, 지질학자로서 국내 곳곳에 숨겨져 있는 아름다운 지형과 지질들을 일반인에게 소개하는 일은 보람된 일일뿐 아니라 매우 기쁘다. 헤아릴 수 없는 지질작용과 기후변화에 우리 강산은 끊임없이 변할 테지만 자연의 위대함과 경건함 앞에서 우리 인간은 영원히 작고 겸손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