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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알면 태풍이 보인다

바람 강하면 빨리 소멸할 수도

올해도 어김없이 태풍의 영향으로 인명과 재산피해가 속출했다. 보통 태풍을 기상현상이라고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태풍은 발생부터 소멸까지 바다와 끊임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결국 태풍 예측의 열쇠는 바다가 쥐고 있는 셈. 세계 해양·대기과학자들은 끊임없는 해양관측을 통해 태풍과 바다가 주고받는 ‘비밀대화’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르고’(ARGO, Array for Real-time Geostrophic Oceanography) 프로젝트도 그 노력 가운데 하나다.

아르고와 인공위성의 합동작전

아르고는 2000년에 시작돼 올해로 6년째인 지구 해양관측 국제공동 프로젝트다. 이 프로그램에서 사용하는 관측장비 ‘아르고 플로트’는 바다 속 2000m까지 자유롭게 떠다니며 수온과 염분을 관측한다. 아르고 플로트는 길이 1.5m, 무게는 25kg 정도다. 내부에 압력센서가 있어 원하는 압력에 해당하는 수심까지 부력을 스스로 조절해 내려가고 올라올 수 있게 설계돼 있다. 이 장비를 바다에 던져놓으면 대략 1000m 수심에서 9일 동안 돌아다닌다. 그러다가 수심 2000m까지 하강했다 다시 올라오면서 수온과 염분을 측정해 해수면으로 떠오른다. 관측값과 위치정보를 인공위성으로 송신한 다음 이 과정을 반복한다.

태풍 예측이 어려운 이유 가운데 하나가 태풍 발생시기에 해양에 대한 정보가 없다는 점이다. 아르고가 시작되기 전 해양관측은 대기관측에 비해 수십 배나 어려웠다. 대기분야에서는 관측기기가 발달하면서 정밀한 지상관측이 가능해졌고, 전세계 900여개의 관측소에서 라디오존데가 매일 2회 고층기상을 관측하고 있다. 이 관측값은 긴밀한 국제협력을 통해 컴퓨터를 이용한 수치예보의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전통적인 해양관측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서 여러 가지 장비를 이용해 수온과 염분, 해류를 조사하는 것이었으며, 지금까지도 해양관측의 가장 기본적인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방법은 엄청난 비용과 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태풍 같은 극한 기상환경에서 해양관측은 1970년대 이후 시작됐는데, 주로 연안의 바닥에 부착한 계류장비에서 얻은 자료를 분석하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태풍이 계류장비가 있는 지점을 관통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다. 가끔 항공기에서 관측기기를 투하해 해양 상층부 수온을 간헐적으로 관측하기도 했고, 태풍이 지나가기 전과 후 직접 배를 타고 나가 관측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관측은 특정 태풍에 제한된 결과를 얻을 수밖에 없다.

인류는 1960년대 이후 인공위성을 발사해 해양의 넓은 영역을 관측하기 시작했다. 계류장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986년 미국의 스트라마와 코닐론 박사팀은 태풍이 지나가기 전과 후 인공위성이 관측한 해수면 온도를 비교함으로써 태풍의 우측 반경에서 해수면 온도가 비대칭적으로 더 낮아진다고 보고했다. 또 2002년 9월 태풍 ‘엘르’ 시기에 아쿠아(AQUA) 인공위성이 관측한 해수면 온도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태풍의 오른쪽이 왼쪽에 비해 2℃ 이상 낮은 경향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막대한 피해를 줬던 2002년 태풍 ‘루사’ 시기에 퀵스캣(QuikSCAT) 인공위성이 관측한 해상풍은 태풍의 눈에서 약하고 우측에서 강하게 나타났다.


바다에 띄운 측정장비 1966개

인공위성 덕분에 소용돌이, 한류와 난류를 비롯해 다양한 바다의 표정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과거에는 상상도 못했던 극지방 해빙의 분포도 이제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할 수 있다. 그런데 인공위성 정보는 모두 해수 표면에 관한 것이지, 정작 중요한 바다 속 변화에 대한 것은 아니다. 결국 해양기상에 영향을 받지 않고 광범위한 지역에서 수년간 관측할 수 있는 아르고 플로트가 최적의 관측기기라고 할 수 있겠다.

바다는 표층뿐 아니라 수천m의 심층에도 활발한 흐름이 있다. 따라서 표층과 더불어 바다 속 깊이까지의 변화를 알아야 기후변화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다. 이런 요구가 바로 아르고 프로젝트를 탄생시킨 것이다. 현재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세계 15개국이 참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기상청과 해양연구원이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 기상청은 매년 동해에 5개, 북태평양에 10개의 아르고 장비를 띄우고 있다.

아르고의 초기 목표는 대략 위도 3°, 경도 3° 넓이의 영역에서 수온과 염분의 수직 분포를 매달 한 가지씩 얻는 것이었다. 2005년 8월 5일 기준 전세계 해양에 아르고 장비 1966개가 떠 있으며 10일 간격으로 계속 관측하고 있다. 아르고 관측량은 전통적인 관측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미국지구물리연합이 발행하는 주간지 ‘EOS’에 따르면 2004년 3월 한 달 동안 해양연구조사선에서 얻은 수직관측은 좁은 선박 항로를 따라 2329개점에서 이뤄졌으나, 아르고 장비는 이보다 훨씬 많은 3526개의 수직관측 자료를 보내왔다.

이렇게 얻은 자료로 해양의 수온, 염분과 해양의 흐름 변화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다. 지난 50년 동안 대기, 육지, 해양의 기후시스템에서 열용량이 증가해 지구온난화가 진행됐는데, 이런 열적 증가의 90% 이상이 해양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따라서 전지구 열적 평형상태를 가장 효율적이고 경제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는 아르고는 전지구 기후시스템에서 해양이 차지하는 역할을 더 잘 이해시킬 것이다.
 

2005년 8월 5일 현재 전지구 해양에는 아르고 장비 1966개가 떠있다. 검은 점이 아르고 장비의 위치다.


해양 표층 뒤흔드는 태풍

태풍은 해양 혼합층에 큰 변화를 초래한다. 혼합층은 깊이에 따라 밀도가 일정한 바다의 표층으로 해양과 대기의 상호작용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아르고 플로트에서 2000~2003년 북서태평양에서 발생한 모든 태풍에 대해 태풍 전과 후의 관측자료를 받아 혼합층의 깊이, 수온, 염분의 변화를 살펴봤다.

바다는 깊어질수록 온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태풍의 강력한 바람은 표층의 따뜻한 물과 아래의 차가운 물을 위아래로 강하게 섞어 혼합층의 온도를 떨어뜨리거나, 해면에서 증발을 일으켜 열을 잃게 해 수온을 떨어뜨린다. 계산 결과 아르고 플로트의 자료 가운데 89% 정도가 태풍이 오기 전보다 최고 4℃까지 혼합층의 수온이 떨어졌다. 평균적으로는 1℃ 정도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혼합층에서 1℃의 변화는 태풍을 약화시키기에 충분히 큰 값이다. 과거 해양 전문가들은 혼합층의 수온이 2.5℃만 떨어져도 태풍이 완전히 없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해 여름 태풍 '민들레'의 피해에 대처하기 위해 비상근무에 들어간 중앙재해대책상황실의 모습.


태풍시기의 혼합층은 바람에 의한 수직혼합으로 60% 정도 두꺼워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얇아지는 경우도 있다. 이는 주로 태풍의 중심에서 발견된다. 반시계방향으로 바람이 발산하면서 심층의 물이 위로 올라오는 용승류가 생겨 혼합층이 얇아지는 것이다. 아르고 플로트 자료 분석 결과 대부분의 수온 저하는 혼합층이 두꺼워지는 반응과 동시에 일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태풍에 의해 해양의 수온이 떨어지는 것은 태풍이 증발과정을 통해 열을 빼앗는 정도보다 강한 바람에 의해서 발생하는 수직혼합이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태풍이 지나감에 따라 해양 상층부의 염분도 상당한 변화를 겪는다. 태풍시기의 염분 변화는 두 가지 물리적 과정으로 일어난다. 태풍이 동반하는 강한 비에 의해 표층이 싱거워지는 저염화와 강한 바람에 의한 증발로 표층이 짜지는 고염화가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 북서태평양의 경우 태풍이 지나간 뒤 분석한 아르고 자료의 약 78% 정도에서 저염화가 나타났다. 따라서 태풍시기의 강수가 해양의 염분에 더 지배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짐작할 수 있다.
 

인공위성에서 바라본 태풍의 눈. 인공위성은 넓은 영역을 한번에 관측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염분보다 수온에 더 민감

수온과 염분의 저하가 태풍의 세기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태풍은 저위도의 바다에서 탄생해 육지에서 소멸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중위도 바다에서 생을 마감한다. 고위도로 갈수록 바다 온도는 낮아지고 해면 가까이에 수증기량이 적어지기 때문에 태풍은 해면으로부터 에너지를 더이상 공급받지 못한다. 이에 태풍은 북위 40。 부근에서 급격히 소멸하게 된다.

미국 MIT 엠마뉴엘 교수는 강한 태풍은 해양의 상층부 온도를 급격하게 낮추며, 이렇게 낮아진 해양 수온은 다시 역으로 태풍의 강도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게 된다고 했다. 태풍이 통과하기 전 바다의 온도가 충분히 낮은 상태라면 태풍이 발생해도 급격히 소멸할 것이고, 반대라면 더 강력한 태풍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또 태풍은 반경이 800km에 달할 때도 있어서 태풍의 중심에 아직 도달하지 않더라도 진행방향의 수백km 앞에 강력한 바람과 강우로 인해 바다는 이미 많은 부분 냉각돼 있고, 이 위를 태풍 중심이 지나가면 세기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해양의 수온이 태풍을 약화시키는데 반해 염분 농도가 낮은 바다는 역으로 태풍의 약화를 어느 정도 저지할 수 있다. 많은 비가 내려 해양 혼합층의 염분 농도가 낮아지면 밀도가 작아진다. 가벼운 물이 위에 있으므로 해양이 수직적으로 안정상태가 된다. 이런 상태는 표층의 해수가 수직으로 섞이는 것을 방해해 이에 따른 수온 저하를 막게 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강수와 저염화로 인한 밀도 하강이 수온 하강에 의한 밀도 상승의 30%밖에 되지 않아서 태풍은 염분 변화보다 수온 변동에 좀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따라서 해양이나 대기의 상태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비가 많이 내리는 태풍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태풍 세기의 변화가 적게 나타나고, 바람이 강한 태풍의 경우에는 그 세기가 상대적으로 더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바다는 지구에서 가장 큰 열의 저장고다. 열용량이 다른 바다 위로 태풍이 지나가면 수온 변화로 인해 대기의 안정도마저 변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는 허리케인이 발생할 경우 대기와 해양의 수직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비행기에서 대기관측기기를 부착한 아르고 플로트를 허리케인 속으로 직접 던져 모니터링함으로써 허리케인 예측력을 높이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런 단기간 관측과 아울러 대양에서 수년간 축적되고 있는 아르고 자료를 통해 열용량의 장기 변동을 조사하면 태풍 예측에 상당히 기여할 것으로 판단된다.

아르고 프로젝트의 목표는 장기적인 전지구 기후예측력 향상이다. 영화 ‘투모로우’에서 소개됐던 것처럼 지구온난화로 인해 해양의 수직 열순환이 바뀜으로써 급격한 빙하기가 도래하게 된다는 내용은 이미 오래된 학설이다. 이처럼 해양이 기후 변동에 차지하는 역할을 규명하고, 자료를 공유해 미래 기후를 예측하기 위한 첫 걸음이 바로 아르고다. 전세계 과학자들은 10년씩 3단계로 총 30년 동안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밖에도 아르고 자료는 인공위성 자료와 더불어 해류 변동, 수괴 변동, 해양의 표층과 심층 순환, 해양의 운동에너지 평형 연구에도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

인류는 끊임없이 진보해왔으나 지구환경은 지속적으로 퇴보하고 있다. 퇴보된 환경은 다시 해양-대기-육지-동물의 연결고리를 통해 우리와 후손에게 고스란히 그 고통을 되돌려줄 것이다. 급변하는 기후와 지구온난화, 그리고 점점 더 강력한 태풍을 만들어내는 지구의 몸부림 속에서 우리의 살길은 어디에 있을까. 인류와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길은 바로 아르고와 같은 끊임없는 관측에서 나온다. 전지구의 70%를 차지하는 해양의 변화를 제대로 읽어내고 대처하는 것만이 그 길로 가는 첩경이 될 것이다.
 

태풍이 자나가면 바다 상층의 염분농도가 변한다. 지금까지는 염분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잘 알려지지 않았기에 아르고로 관측한 염분자료가 더 큰 의미를 갖는다.


라디오존데 | 대기 상층에서 기압, 온도, 습도 등을 측정해 전파로 지상에 송신하는 기상관측 장비.

수괴 | 해양에서 수온이나 염분이 비슷하게 나타나는 물 덩어리. 바다 속에서는 그 특성이 계속 유지되기 때문에 해류의 흐름 등을 유추하기 위한 추적자료로 활용된다. 우리나라 동해에도 대양과 흡사한 여러 수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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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박경애 연구교수
  • 박종진 박사과정
  • 김구 교수
  • 윤용훈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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