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46억년 전 태양계의 수많은 미행성들이 충돌해 뭉치면서 탄생했다. 불덩어리였던 원시지구가 점점 식으면서 44억년 전쯤에는 육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암석은 40억년 전의 것이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땅덩어리는 언제 생겨난 것일까?
한반도는 그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자연사 박물관이다. 수십억년 전인 선캄브리아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질시대의 온갖 암석이 망라돼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좁은 면적에 이만큼 다양한 시대의 암석이 공존하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그만큼 한국 지질학자들은 할일도 많다. 미국 텍사스주나 중국 화북평야처럼 한반도보다 넓은 지역이 제3기나 제4기의 짧은 지질시대 동안에 형성된 단일 지층으로 이뤄져 있는 곳도 있다.
시생대부터 존재했다
과학동아와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한반도의 지질역사상 첫번째 사건으로 한반도 땅의 탄생을 꼽았다. 과연 그 시기는 언제일까?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돌덩어리는 언제 만들어진 것일까?
몇년 전 KBS에서 ‘한반도 탄생 30억년의 비밀’이라는 특집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적이 있다. 프로그램 제목에서 이미 한반도가 30억년 전에 태동했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30억년 전이라고 하면 선캄브리아 시대 중에서 40억년 전부터 25억년 전까지의 시생대에 속한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에 자문도 하면서 직접 출연해 사회를 맡았던 암석학자 조문섭 서울대 교수에게 한반도에서 시생대의 기록이 남아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조 교수는 “당시 30억년이라고 했지만 이에 대한 근거가 부족했다”며 “이 점이 마음에 걸려 최근 이를 확인하는 연구를 했다”고 답했다. 조 교수는 만족스런 답을 얻었다고 한다.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땅의 흔적으로 29억년 전의 것을 찾아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30억년이라고 얘기한 것이 전혀 근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간접적인 증거였을 뿐이다.
길어야 1백년을 사는 인간에게 돌덩어리는 변하지 않는 굳건함의 상징이다. 그 돌 속에는 자신이 형성됐던 당시의 기록이 남겨져 있다. 덕분에 인간은 상상하기도 힘든 먼 과거의 비밀을 밝혀내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돌에 남아있는 기록은 점점 희미해진다. 특히 지구표면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뜨거운 열이 기록을 사라지게 한다. 따라서 수십억년 전의 암석이 오늘날까지 출생기록을 간직한 채 살아남았다는 것은 기적적인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까닭에 과학자들은 지각의 나이를 구하는데 간접적인 방법을 쓰기도 한다. 원시지구의 표면에는 딱딱한 지각이 없고 펄펄 끓은 액체상태의 맨틀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가 맨틀이 식어서 지각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렇다면 맨틀에서 잘 식는 성분들이 지각을 형성했을 것이다. 따라서 처음의 맨틀과 현재 지각 바로 아래에 숨어있는 맨틀은 구성성분에서 차이가 난다. 바로 이 점을 이용하면 연령을 구하고자 하는 오래된 암석이 언제 맨틀로부터 분리됐는지를 추정할 수 있다. 한반도 30억년의 나이도 바로 이 방법으로 얻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맨틀로부터 분리된 시기를 알려줄 뿐, 정확하게 언제 돌이 됐는지를 말해주지 못한다. 그래서 그동안 과연 한반도의 뿌리가 시생대인지가 의문으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지난해 2월 조문섭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중국 북경 지질과학원에서 한반도 최고연령의 직접적인 증거를 얻었다. 그는 지르콘 광물을 이용해 한반도 내 최고연령이 29억년임을 밝혀냈다.
암석은 다양한 종류의 광물로 구성돼 있다. 이 중에는 열이나 화학반응, 침식 같은 악조건에 잘 견디는 광물이 있는데, 지르콘이라는 광물이다. 처음에 같이 만들어졌던 다른 광물이 변성되거나 녹아버려도 지르콘은 꿋꿋이 남아있을 수 있다. 따라서 지르콘은 그가 속해있는 암석의 최초 사건에 대한 기록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지르콘을 이용해 지구 최초의 육지지각물질이 44억년이나 됐다는 점이 밝혀져 2001년 ‘네이처’에 발표되기도 했다.
조 교수는 한반도 내 오래된 지층 속 암석 가운데에서 지르콘의 연대를 측정하기로 했다. 한반도 내 고(古)지층은 남한에는 경기도 강원도 지역과 영남 지역에 분포해 있다. 조 교수는 이 지역에서 오래된 돌덩어리를 깨냈다. 그런 다음 이 돌덩어리 속에 있는 지르콘의 연령을 측정했다. 29억년 된 지르콘이 숨어있는 암석은 강원도 화천군 대이리의 석류석-흑운모 편마암이었다. 한반도가 오랜 시생대 이래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백령도에 숨어있는 고지도
지금까지 한반도의 땅이 언제 생겨났는지를 알아봤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이 시나리오는 ‘한반도’에 해당되지 않는다. 즉 지금 우리가 딛고 있는 땅은 한반도가 아닌 다른 곳에서 생겨났다는 얘기다. 지구의 맨틀내부에서는 대류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이 에너지 순환 때문에 지각은 지질시대 동안 모였다가 흩어지고 다시 어딘가에서 만나는 운동을 되풀이해 왔다. 따라서 태초 지구에 대한 연구에서 핵심 중 하나는 정밀한 고지도를 복원하는 일이다.
고지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당시의 주요 대륙에 대한 고지자기학, 암석학, 지구화학, 연대측정학, 고생물학 분야 등의 신뢰성 있는 자료가 고르게 축적돼야 한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이윤수 박사는 “복원이 가능한 가장 오래된 시기는 약 8억년 전이며 전세계에서 많은 지질학자들이 이에 도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아직 미완성 단계지만 8억년 전 지표에는 판게아 이전의 초대륙 ‘로디니아’가 있었다는 것이 조심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10여년간 중국대륙의 8억년 전후의 고지자기 연구 결과들이 나오면서, 로디니아의 복원된 모습이 조금씩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한반도는 불행하게도 중생대의 극심한 변동으로 인해 고지도 복원에 긴요한 자료들을 얻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우리의 땅이 30억년이나 되는 역사를 가졌음에도 그 땅에는 고지도를 복원하는데 필요한 기록들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박사는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고지도를 복원할 수 있는 최고 상한선은 약 5억년 전까지”라고 말했다.
당시 한반도는 적도 20도 아래 남반구에 있었다. 그런데 이 박사는 “최근에 한반도에서 초대륙 로디니아의 숨겨진 지구 역사의 실마리를 풀어줄 수 있는 단서들이 제시되고 있다”고 말한다. 백령도에서 당시의 기록이 남아있는 오래된 암석을 찾아낸 덕분이다. 백령도 지층에는 주로 선캄브리아 시대 얕은 바다 환경에서 형성된 퇴적암이 놀랍게도 변성이나 변형을 거의 받지 않은 채로 보존돼 왔던 것이다. 이곳에서는 가장 오래된 화석인 스트로마톨라이트도 나온다. 뿐만 아니라 백령도 일원은 중국에서 북한까지 연결된 지층에 속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는 이미 8억년 전후의 고지자기가 밝혀진 중국과의 연관성이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당시 한반도 주변의 상황을 얻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백령도 지층의 발견은 말하자면 고조선 당시 쓰여진 역사서를 찾아낸 것과 같은 셈이다. 앞으로 백령도 지층에 대한 연구를 통해 한반도가 초대륙 로디니아의 어디에 위치해 있었는지가 밝혀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지질학적 측면에서 한반도는 역사가 깊은 곳임이 다시 한번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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