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면적의 1/3 이상은 화강암 지대다. 동네 야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이 화강암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이 화강암을 여러 방법으로 사용해 왔다. 맷돌, 절구와 같은 생활용품뿐 아니라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을 비롯해 석굴암, 첨성대도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이렇듯 다용도로 사용된 화강암은 대부분이 중생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화강암은 화성활동을 통해 만들어지는 암석이다. 화성활동은 지구 깊숙한 곳에서 녹아있는 마그마가 지각의 약한 틈을 뚫고 지표로 분출하거나 지하에서 굳어져 암석을 만드는 과정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지하에서 서서히 굳어져 만들어지는 암석이 화강암이다.
그리고 화성활동은 지진과 같은 격렬한 지각변동을 수반한다. 따라서 중생대 지층이 화강암이란 것은 한반도가 아주 격렬한 지각변동을 겪었다는 말이 된다. 과연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중생대 초기에 일어났던 북중국판과 남중국판의 충돌은 당시 유라시아대륙에서 가장 큰 지질학적 사건이었다. 이 무렵 충돌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은 한반도는 오랜 잠에서 깨어나 새로운 변동을 맞게 된다.
땅이 꿈틀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 충돌은 다가올 2억년 동안의 변동의 전주곡이었다.
충돌로 땅이 녹다
중생대 초기인 트라이아스기에 중국에서 일어난 대륙 간 충돌은 엄청난 에너지를 땅에 전달하고 땅의 온도를 올려놓았다. 지각 물질이 녹아 마그마가 되고, 마그마는 위의 지층들을 뚫고 올라오면서 그 족적을 남겼을 것이다. 충돌의 직접적인 결과로 만들어진 트라이아스기의 화강암을 현재 남한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지층에 남겨진 변성과 변형의 증거들은 한반도가 충돌의 영향을 받았음을 가늠케 한다.
한편 이 시기에 한반도는 충돌 사건과는 별도로 또다른 형태의 지각변동을 경험하고 있었다. 트라이아스기에 한반도는 대륙의 가장자리 위치해 있어 해양판(파랄론 판)의 침강에 의한 영향을 부분적으로 받았다고 추정된다. 해양판이 대륙판 아래로 침강하는 환경에서는 맨틀로부터 유래된 현무암질의 마그마가 지각으로 솟아올라 지각의 온도를 상승시켰다는 것이다. 그 결과 트라이아스기의 화강암이 된 마그마가 만들어졌다. 이 화강암은 맨틀에서 유래된 물질과 지각 하부의 물질이 혼합된 조성을 가지며 충청북도와 경상북도 일원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트라이아스기의 지각변동은 그 다음 지질시대인 쥐라기까지 이어졌다. 쥐라기 화성활동은 당시 침강하던 해양판(이자나기 판)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기 보다는 지각 온도의 상승과 같은 간접적인 효과나, 트라이아스기의 지각변동 이후에 지속적으로 일어난 지각 내부의 온도와 압력 변화 때문에 일어나면서 지각물질을 용융시켰을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쥐라기 화강암을 만든 마그마의 조성에는 맨틀물질의 성분이 거의 없고 대부분 지각물질의 성분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쥐라기의 화성활동은 한반도 지각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쥐라기 화강암은 한반도에서 그 분포 면적이 가장 넓게 나타나는 심성암이다. ‘대보화강암’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 쥐라기 화강암이야말로 당시 아주 격렬하게 일어났던 화성활동을 대변해주는 거울인 셈이다.
보통 화강암의 노출 면적이 1백km2 이상이 되면 ‘저반’이라고 부르는데, 쥐라기의 화강암은 북동-남서 방향의 거대한 저반을 형성하며 분포한다. 화강암의 형성이 지각 물질의 용융으로부터 유래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당시 한반도의 지하는 마치 거대한 용광로와 같은 것이었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대표적인 쥐라기 화강암이 북한산의 바위봉인 백운대, 인왕봉, 그리고 관악산 등이다.
땅위에서는 화산분출?
그렇다면 땅속이 이처럼 불구덩이였던 당시 땅위는 어떤 상황이었을까? 트라이아스기와 쥐라기의 화성활동은 분명 심성암의 형성과 더불어 마그마의 지표 분출로 인한 화산암의 형성에도 기여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지표에서는 당시의 화산암을 발견할 수 없다. 왜 그럴까?
지하에서 만들어진 마그마가 지표에 나와 식으면 화산암이 되지만 지하에서 식으면 화강암이 된다. 이 두 암석은 매우 가깝게 나타나지만, 형성 깊이에 차이가 있다.
현재 지표에 화강암이 노출돼 있다면, 당시의 지표는 모두 깎여 없어졌다고 봐야 한다. 하물며 트라이아스기와 쥐라기 화강암과 같이 평균 지하 10km 내외에서 만들어진 화강암이 노출돼 있다면, 그 상부에 있던 두꺼운 물질들이 모두 침식돼 사라진 것이다. 따라서 당시의 화산암이나 지표 퇴적층을 찾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쥐라기의 격렬했던 화성활동이 일어난 후, 한반도는 잠시 화성활동의 휴식기에 접어들게 된다. 잠시라고는 하나 쥐라기 말에서 백악기 초까지 무려 5천만년 정도의 긴 세월이다. 이 기간이 바로 한반도 자연사에서 공룡천국의 시기였다.
하지만 백악기 후기가 되면서 한반도는 또한번 화성활동이 시작됐다. 해양판(태평양 판)이 맹렬하게 한반도 아래로 침강했고, 그로 말미암아 맨틀 기원의 마그마들이 지각을 뚫고 올라왔으며, 그들과 더불어 지각이 녹으면서 방대한 양의 마그마가 다시금 만들어졌다. 엄청난 양의 화산 분출물들이 지표 위를 뒤덮고, 뜨거운 용광로가 지표 바로 아래까지 육박해 왔다.
이 무렵 쌓인 화산 분출물의 퇴적층이 경상분지 가장 상부의 유천층군을 이룬다. 그리고 지하의 용광로가 ‘불국사화강암’이라 불리고 있는 백악기의 화강암을 만들었다. 이 불국사화강암을 이용해 신라는 세계적으로 뛰어난 석조작품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불국사화강암을 만든 불구덩이의 크기는 쥐라기 화강암보다는 크기가 작아 보통 암주(stock, 노출 면적이 1백km2 이하)로 나타난다. 또한 관입한 땅속의 깊이 역시 대개 2km 이하로 매우 얕다. 이처럼 얕은 곳에 위치한 화강암과 지표의 화산암을 동시에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 백악기 화성활동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경상분지 이외의 지역에서도 백악기의 화성활동은 관찰된다. 속리산과 월악산 일대에도 백악기 화성활동의 잔재가 남아있다. 또한 전라남도의 남해안 지역에서도 당시의 화산암과 화강암을 쉽게 볼 수 있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한반도 자연사 10대 사건
01. 맨틀에서 탄생한 한반도
02. 바다에서 육지로 떠오른 강원도
03. 두 대륙이 충돌해 한반도 형성
04. 땅속 불구덩이가 화강암 절경 이뤄내
05. 백악기 경상도는 공룡 천국
06. 일본 떨어져 나가 동해 열리다
07. 2천m 높이 해산에 솟아난 독도
08. 백두산 화산재 일본을 뒤덮어
09. 간빙기가 베풀어준 천혜의 갯벌
10. 2억년 후 한반도는 초대륙의 중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