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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간빙기가 베풀어준 천혜의 갯벌

5천년에 걸쳐 생성된 생명의 보금자리

 

서해안 갯벌은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로, 한반도 면적에 비해 매우 넓다.


발이 푹푹 빠지고 옷이고 얼굴이고 진흙투성이로 만들어버리는 서해안 갯벌은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로, 한반도 면적에 비해 매우 넓다. 서해 갯벌은 또한 생명체들의 보고이기도 하다. 세계 5대 갯벌 지역은 미국 동부, 캐나다, 중국, 북해 연안, 그리고 우리의 서해다. 이 중에서 생물 다양성 측면을 고려해볼 때 우리 서해가 단연 돋보인다.

예를 들어 방조제 공사가 진행중인 새만금에는 최근에도 어류가 약 1백55종, 저서생물이 1백41종, 규조류가 1cm2당 20만 개체가 서식하고 있을 정도다. 덕분에 우리 조상들은 그동안 서해 갯벌에서 얻어낸 동식물로 호사스런 밥상을 차려왔다.

육지였던 서해
 

오늘날과 같은 서해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만5천년 전으로, 땅의 역사에서는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이처럼 좋은 갯벌이 한반도의 서해에 넓게 형성된 까닭은 무엇일까? 여기에 답하기에 앞서 서해 바다를 먼저 얘기해야겠다. 갯벌은 서해바다가 존재하고 난 다음에야 생겨났으니까.

서해의 형성시기는 동해보다 빠르다고 할 수도 그렇지 않다고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서해를 이루는 땅은 동해보다 훨씬 역사가 깊지만 오늘날과 같은 서해바다는 동해보다 늦게 지금의 모습이 됐기 때문이다.

서해 밑바닥의 땅을 파보면 최소한 1억년 전인 중생대 백악기부터 암석이 나온다. 현재 당시는 바다가 아닌 호수가 있는 육지였다. 이후 서해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는 아직 잘 모른다. 다만 밝혀진 점은 2천만년 전쯤에도 서해에 바닷물이 들어왔던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해지역은 대체로 평평한 육지였으며 때때로 바다를 이뤘던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과 같은 서해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만5천년 전으로, 땅의 역사에서는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당시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면서 점점 기후가 따뜻해졌다. 그러면서 넓은 벌판이었던 지역에 태평양의 바닷물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까지만도 해수면은 지금보다 1백m 낮았다. 당시 우리 조상들은 걸어서 중국으로 오갈 수 있었다. 이후 해수면은 급격히 상승했고 바다는 점점 넓어져갔다.

갯벌은 약 5천년 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당시 해수면은 오늘날보다 4m 정도 낮았다. 이후 해수면이 상승하는 속도가 매우 더뎌지면서 갯벌이 형성됐다.

갯벌은 펄이나 모래로 이뤄져 있다. 펄과 모래는 육지의 강을 따라 흘러온 퇴적물이다. 따라서 갯벌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내륙으로부터 퇴적물이 바닷가로 공급돼야 한다. 그런데 이 퇴적물은 바닷물에 의해 물 속으로 쓸려 들어갈 수 있다. 또한 해수면이 높아지면 물로 쓸려 들어가는 퇴적물의 양은 늘어난다. 더 많은 양의 모래나 펄이 바닷물에 잠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수면의 상승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한 5천년 전이 돼서야 갯벌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서해에 왜 이토록 넓은 갯벌이 형성될 수 있었을까? 넓은 갯벌이 형성되기 위한 조건을 알아보자. 갯벌은 밀물 때는 바닷물에 잠기고 썰물 때는 물 밖으로 드러나는 바닷가의 습지지역을 말한다. 따라서 넓은 갯벌이 형성되려면 해안가는 넓은 폭으로 바닷물이 잠겼다가 빠져야 한다. 이를 만족하려면 2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조수간만의 차가 커야하고, 해안가의 경사가 낮아야 한다는 것이다.

서해의 독특한 지형적 특성은 바로 이 두조건을 만족시켜준다. 서해는 그 자체가 만이다. 즉 한반도와 중국의 두 육지 사이로 바다가 움푹 들어가 있는 것이다. 서해는 대양의 물이 들어오는 입구가 넓은 반면 안쪽은 폭이 좁은 만 구조라서 넓은 입구로 많은 양의 바닷물이 들어왔다 나간다. 또한 최대 수심이 90m밖에 안된다. 그래서 서해는 조수간만의 차가 3-9m 정도로 크다. 이와 함께 서해안이 경사가 완만하다는 것도 넓은 갯벌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됐다. 조수간만의 차가 같더라도 해안가의 지형이 완만하면 바닷물이 잠겼다 빠지는 폭이 넓기 때문이다.

이처럼 서해의 독특한 지형 덕분에 한반도에 넓은 갯벌이 형성됐다면 같은 서해바다를 사이에 둔 중국의 동해안 역시 갯벌이 발달하지 않았을까? 물론 그렇다. 하지만 우리의 갯벌과 중국의 갯벌은 다른 특성을 보인다.

중국과 서해 갯벌의 차이점

갯벌은 쌓여있는 퇴적물의 종류에 따라 펄갯벌, 모래갯벌, 펄과 모래의 혼합 갯벌로 나뉜다. 다양한 생물이 살기 위해서는 한 해안가에서 이들 다양한 갯벌이 혼재돼 나타나야 한다. 환경이 다양한 만큼 서식하는 생물종의 수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의 갯벌은 펄갯벌이 대다수다. 황하나 양자강과 같은 큰 강으로부터 다량의 펄이 연안으로 이동해 와서 형성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지로부터 유입되는 퇴적물의 양이 지나치게 많아서 삼각주 형태의 갯벌이 많다. 이런 경우는 다양한 생물이 살기가 힘들다.

반면 한반도 서해의 갯벌은 같은 지역에서도 다양한 갯벌이 혼재돼서 나타난다. 그 까닭은 서해로 유입되는 퇴적물의 양이 여러 형태의 갯벌을 만드는데 적절하기 때문이다. 중국에 비해 서해로는 강의 규모가 작아 적절한 양의 퇴적물이 공급된다.

또한 겨울철 북서쪽에서 불어오는 몬순계절풍으로 우리의 서해가 중국보다 파도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것도 또하나의 요인이 된다. 갯벌에 파도가 치면 가벼운 펄이 바다에 뜨게 돼 갯벌에 있는 펄의 양이 줄어든다. 그렇게 되면 한 지역에 펄, 모래, 이들의 혼재된 갯벌이 나타나기 쉽다.

그러나 이런 특성은 서해 갯벌이 환경의 변화에 매우 취약하게 만든다. 지구 온난화로 해수면이 상승하면 서해 갯벌은 급격히 후퇴할 수 있다. 중국 갯벌의 경우 해수면이 상승하더라도 육지로부터 공급되는 퇴적물이 많아서 계속 갯벌이 유지될 수 있지만 우리의 경우는 퇴적물의 양이 적어 해수면이 상승하면 갯벌을 이루고 있던 모래나 펄이 바다 속으로 잠기고 만다.

현재 지구의 해수면 상승은 연 1-4mm로 보고되고 있다. 평균 연 2mm라고 했을 때 앞으로 1백년 후 서해의 해수면은 약 20cm가 상승한다. 서해 갯벌의 경사도가 1/1000 미만이므로 계산해보면 갯벌은 약 2백m 이상 감소한다. 그런데 과거 서해 해수면의 변화 양상을 보면 갑자기 연 45-80mm 정도로 급격하게 변화하기도 했다. 최악의 경우 1백년 후에는 현재 해안선에서 무려 4-8km 까지 후퇴할 가능성이 있다. 앞으로 해수면 상승에 철저히 대비해야 서해 갯벌이 보존될 수 있는 것이다.

걸어서 서해 건너온 우리 조상
 

걸어서 서해 건너온 우리 조상


우리 조상은 언제부터 한반도에서 살았을까? 충남대 고고미술사학과 이융조 교수는 “약 2만5천년 전부터”라고 답했다. 우리 조상은 4천년 전인 청동기시대의 단군이 아니라 2만5천년 전 좀돌날몸돌이라는 석기를 이용한 구석기인이라고 한다. 2만5천년 전은 마지막 빙하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때로 중국과 한반도 사이의 서해는 육지였다. 따라서 우리 조상들은 중국으로부터 걸어서 한반도로 이주해왔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한반도에서 정착해 살면서 서해 벌판에 바닷물이 들어오는 것을 직접 목격했을 것이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우리 조상이 한반도에서 처음으로 살았던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최초 한반도인은 그 전, 수십만년 전에도 있었다. 다만 이들은 한반도에 정착하지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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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전승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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