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은 중생대 첫번째 지질시대인 트라이아스기 후기에 처음 지구상에 출현해 중생대를 마감하면서 모두 멸종했다. 이 기간 동안 알래스카에서 남극까지 모든 대륙에서 공룡이 번성했다.
하지만 모든 나라에서 공룡 화석이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공룡이 살았다는 사실과 화석으로 산출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이기 때문이다.공룡화석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공룡이 살던 시기에 육상 환경에서 쌓인 퇴적암이 존재해야만 한다. 공룡은 육지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비록 공룡이 살았던 땅이라도 그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지층이 없다면 어떤 공룡이 살았었는지 아니 공룡이 이 땅에 존재했었는지조차도 알 방법이 없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의 중생대 퇴적층은 모두 육지 퇴적암으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한반도에서는 공룡이 지구상에 출현한 트라이아스기 후기 때부터 존재했는지를 알 수가 없다. 트라이아스기와 쥐라기에는 한반도에서 화성활동이 심했던 까닭에 지표 퇴적층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 쥐라기 전기에는 우리나라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에서 루펭고사우루스 같은 원시용각류와 딜로포사우루스 같은 원시수각류가 번성했던 점으로 미뤄 한반도에도 이런 공룡들이 서식했을 가능성이 있다. 곧 우리나라에도 쥐라기 공룡의 존재가 알려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쥐라기에 격렬했던 화성활동이 일어난 후, 한반도는 잠시 화성활동의 휴식기에 접어들었다. 백악기로 넘어가면서 한반도의 공룡기록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당시 경상남북도를 거의 포함하는 경상분지에 커다란 호수들이 형성됐고 이 호수로 들어가는 하천들이 발달하면서 이곳에 공룡들이 많이 살았다. 이 백악기 지층을 ‘경상누층군’이라고 하는데 경상누층군은 우리나라 중생대를 대표하는 지층으로서 남한 전체 면적의 1/4을 차지하며 퇴적층의 총 두께도 9km에 이른다. 경상분지는 지금까지 알려진 대부분의 공룡화석과 공룡발자국, 공룡알이 발견된 공룡화석의 산실이다.
경상누층군의 공룡 화석을 근거로 그 당시 환경을 복원해보자. 트라이아스기와 쥐라기의 격렬한 화성활동이 끝나고 백악기가 시작되자 한반도는 공룡들의 낙원이 된다. 따뜻한 기후 덕분에 풍부한 식물들이 번성했다. 경상도 강변의 부드러운 모래는 공룡들의 산란지로 안성맞춤이었다.
강변의 숲에는 목긴공룡인 용각류들이 집단으로 서식하고 있었다. 목긴공룡들은 쥐라기 후기에 가장 번성한 후 백악기로 접어들며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한반도에서는 카마라사우루스류와 브라키오사우루스류 같은 쥐라기 후기 공룡들이 살아남아 백악기를 대표하는 목긴공룡인 티타노사우루스류와 사이좋게 서식지를 공유하고 있었다.
사족보행의 용각류와 더불어 이족보행의 조각류 공룡도 맛있는 소철류와 속새류, 그리고 새롭게 진화한 꽃피는 식물들을 먹으며 자기 영역을 구축해 나가고 있었다. 조각류는 질긴 식물을 씹기 위해 8백개 이상의 이빨로 채워진 턱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원시적인 오리주둥이공룡들이었는데 이들은 집단적으로 이동하며 함께 강가에 모여 알을 낳고 새끼를 길렀다. 새끼를 키우는 산란지는 여러가지 식물 썩는 냄새와 공룡들의 배설물 냄새가 진동하고, 이 냄새를 맡고 파리와 모기의 조상들인 곤충들이 달려들어 공룡을 괴롭히고 있었다.
강가에는 길이가 20cm 밖에 안되는 원시악어들이 살고 있었고, 강과 제방에는 다양한 거북과 자라들이 따스한 중생대 백악기의 햇볕을 쬐고 있었다. 이런 초식공룡의 서식지에는 호시탐탐 먹이를 노리는 육식공룡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는데 이들은 알로사우루스나 메갈로사우루스와 비슷한 공룡들이었다.
이 중에는 이빨 길이가 9cm나 되는 거대한 수각류도 있었다. 이만한 이빨을 가진 백악기 전기 육식공룡으로 잘 알려진 아크로켄소사우루스는 몸 길이가 13m에 이르는 거대한 육식공룡이었다. 이는 백악기 후기에 잘 알려진 공룡의 제왕 티라노사우루스와 같은 크기다. 즉 우리나라에도 티라노사우루스에 버금가는 거대 육식공룡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맑은 호수 속에는 크기가 10cm 내외인 여러 종류의 민물고기가 또 하나의 물속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었다. 이를 먹이로 삼는 익룡들도 호숫가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키우고 있었다. 백악기에 주로 번성한 익룡은 프테로닥틸루스류에 속하는 꼬리가 짧고 이빨이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때 경상호수에 살았던 익룡은 이빨이 잘 발달한 익룡으로 이빨 길이가 7cm나 됐다. 이들은 호숫가 절벽에 살면서 긴 날개를 이용해 높새바람을 타고 활강해 내려와 호수 수면 위를 낮게 날다 수면에 가까이 있는 물고기를 길고 날카로운 이빨을 이용해 재빠르게 낚아챘다.
백악기 전기가 끝날 무렵 경상호수는 빠르게 침강하기 시작하면서 동쪽으로 그 범위를 넓혀나갔다. 이와 함께 다시 화산활동이 서서히 시작됐다. 호수의 크기가 계속 변하자 호숫가의 수면이 계속 변했고 호숫가를 찾는 공룡들이 수분을 함유한 호숫가 퇴적물에 반복해 발자국을 남겼다. 이런 발자국들이 경남 고성지역에서만 4천족이 넘는다.
떼지어 나타나는 공룡의 보행열
화산활동으로 공룡들은 더 안전한 곳을 찾아 떠나기 시작했다. 이때 숲보다는 이동이 편한 호숫가를 따라 집단적으로 이동해갔다. 발견되는 공룡발자국을 보면 오리주둥이공룡 발자국이 가장 많다. 발자국의 크기는 20cm부터 50cm까지 다양하나, 30cm인 것이 가장 많다. 이들 오리주둥이공룡 발자국 보행열은 서로 평행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오리주둥이공룡들이 군집 이동을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길이 5m의 오리주둥이공룡들이 떼를 지어 피난길에 오른 것이다.
용각류 역시 세계에서 가장 작은 용각류 발자국으로 생각되는 뒷발 길이 9cm의 것부터 가장 큰 1백15cm에 이르는 것까지 매우 다양하다. 덩치 큰 용각류 역시 자연의 재해에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이들도 오리주둥이공룡들과 함께 새끼들을 뒤에 세우고 이동을 시작했다. 이를 뒤쫓는 육식공룡들은 병든 공룡이나 어미에게서 뒤쳐진 새끼들을 노렸다.
그러다 백악기 후기에 이르러 화성활동은 또한번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렇게 되자 경상분지에서는 공룡이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백악기 후기에 한반도의 공룡은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 등 전국에 분포하는 10개 이상의 소규모 분지에서 발견된다. 경상분지 외에 공룡화석이 가장 잘 알려진 곳이 해남분지와 시화분지이다.
백악기 후기 어느날 전남 해남의 호숫가에 몸 길이 15m의 거대한 용각류들이 얕은 호숫가를 건너고 있었다. 호수는 그리 크지 않았으며 주위에 화산이 간헐적으로 폭발하고 있었다. 용각류들은 물이 점점 깊어지자 부력에 의해 엉덩이 부분이 먼저 떠 앞발만 사용해서 조심스럽게 호수를 건너갔다. 이 호숫가에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진화한 물갈퀴를 가진 새들이 떼를 지어 호숫가에서 먹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 저어새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새도 부리를 좌우로 저으며 갯벌 속에서 조그만 조개와 지렁이들이 찾아냈다. 격렬한 화산활동을 피해 공룡들은 경기도의 강변까지 이동했다. 이곳에서 공룡들은 종족번식을 위해 많은 알을 낳았다. 하지만 빈번하게 일어나는 홍수에 의해 불행이도 알들은 부화하지 못하고 깨지고 말았다. 그런 공룡알이 시화호에서 수백개나 발견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한반도에서 화산활동은 점점 더 심해지고 공룡들이 피신할 곳은 자꾸 줄어들고 있었다. 공룡들은 점점 더 생존하기가 어려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이 백악기 말기까지 살아남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 백악기 말 공룡멸종의 원인을 운석충돌과 화산활동에서 찾고 있다. 하지만 한반도에서 공룡은 백악기 후기에 일어난 격렬한 화산활동에 의해 이보다 훨씬 일찍 자취를 감추고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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