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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바다에서 육지로 떠오른 강원도

사라진 미스터리의 고생대 1억3천만년

5억6천만년 전 고생대가 시작되면서 지구에는 동식물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지구역사상 대변혁의 하나인 ‘캄브리아기 폭발’인 것이다. 한반도에도 당시 기록을 강원도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다.

강원도는 한반도에서 고생대를 대표하는 곳이다. 특히 남부지역인 태백, 영월, 정선, 평창 일대에는 고생대 지층이 켜켜이 쌓여있어서 한반도가 당시 어떤 환경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지질학자들은 태백일대의 지층에서 세계적으로 매우 드문 특징을 발견했다. 차곡차곡 쌓여있는 고생대 지층에서 1억3천만년이라는 매우 긴 시간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고생대는 5억6천만년 전부터 2억2천만년 전까지 약 3억4천만년 동안의 기간이다. 한반도 지층에는 이 기간 중 약 4억4천만년 전부터 약 3억1천만년 전까지 1억3천만년 동안의 것이 없다. 즉 한반도 고생대 지층은 두 지층 사이에 시간적 공백이 나타나는 부정합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당시 한반도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강원도의 힘, 석회암과 석탄

우선 사라진 시기 이전과 이후에 쌓인 지층을 통해 당시 환경에 대해 유추해볼 필요가 있다. 태백일대 고생대 지층에서는 우리나라 고생대 화석의 최대보고라고 할 만큼 화석이 많이 발견돼 당시 환경을 쉽게 알 수 있다.

화석은 1억3천만년 동안의 공백기 이전에 강원도가 바다에 잠겨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지층 에서 바다생물의 화석이 대량 발견됐기 때문이다. 사라진 시기 이전 지층에서는 삼엽충, 완족동물, 연체동물의 두족류와 여러 종류의 조개류 등 다양한 무척추동물화석이 나온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발굴되는 화석이 삼엽충이다.

삼엽충은 고생대의 초기에 출현했는데 이 시기 강원도 지층에서 발견되는 화석의 80%를 차지한다. 따뜻하고 수심이 깊지 않은 연안의 바다에 살았던 삼엽충 화석은 당시 한반도의 환경이 따뜻하고 얕은 바다였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이들 고생대 화석은 바다생물의 흔적을 가장 많이 보존하고 있는 석회암에 묻혀 있다. 석회암은 당시 번성했던 조개류나 산호 등의 몸을 보호하는 껍데기나 골격 등이 바다에 퇴적된 암석이다. 이런 까닭에 우리나라에서 산출되는 석회석은 강원도의 산악지대인 태백, 사북, 영월 등지에 가장 넓게 분포하고 있다. 세계적 시멘트 산업을 일군 ‘강원도의 힘’이 이때 처음 생겨난 것이다.

흥미롭게도 사라진 시기 이후에는 한반도가 육상환경으로 바뀌어있다. 강원도에서는 1억3천만년의 긴 시간적 공백을 깨고 3억1천만년 전인 고생대 석탄기 말기부터 새로운 지층이 쌓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바다생물이 묻혀있는 석회암층과 식물과 곤충의 흔적이 남아있는 육성층이 반복적으로 퇴적됐다. 이는 당시 강원도가 바닷물 속에 잠겼다 떠오르기를 반복했던 것을 의미한다.

온전히 육상으로 바뀐 것은 석탄기 다음 지질시대인 페름기. 페름기는 고생대 제일 마지막 지질시대로 2억8천만년 전부터 시작됐다. 페름기에 들어서면서 한반도에서는 육상의 소택지(습지)에 1m에 이르는 원시 양치류를 비롯한 석송류, 유절류 등의 커다란 식물들이 숲을 이뤘다. 그리고 여기에는 다양한 곤충이 생활했다는 것이 화석상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특히 고사리류나 속새류 같은 습지식물이 많았던 것으로 보아 지형이 낮은 호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바로 이때 오늘날의 석탄산업을 이끈 강원도의 두번째 ‘힘’이 등장했다. 당시 울창했던 식물이 지층에 묻히면서 석탄을 형성했던 것이다. 이처럼 고생대에 한반도는 바다에서 육지로 거듭나면서 현대 산업의 기반이 되는 자원을 가져다줬다.
 

고생대 후기 양치식물 화석. 당시 양치류를 비롯한 식물들이 지층에 묻히면서 석탄을 형성했다.


땅이 솟았나? 바다가 낮아졌나?

그렇다면 어떤 이유에서 한반도가 고생대에 바다였다가 육지로 환경이 바뀐 것일까? 그리고 이같은 환경 변화가 1억3천만년 동안의 시간적 공백을 두고 나타난 것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한반도 1억3천만년의 시간적 공백에는 특이한 점이 있다. 사라진 시기 이전과 이후의 지층이 나란하다는 것이다. 마치 땅이 어디론가 솟았다가 것처럼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은 듯 지층이 나란하게 나타난다. 이를 ‘평행부정합’이라고 한다.

보통 부정합은 퇴적층이 바다 속에서 쌓였다가 육상으로 노출되면서 쌓였던 지층이 깎이고, 그 뒤 바다나 호수환경에 놓이게 되면서 다시 지층이 쌓여서 만들어진다. 이때 땅이 융기하면서 영향을 받아 습곡과 같은 형태로 변형되기 때문에 쌓였다가 깎이는 흔적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강원도의 부정합에서는 이런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또한 1억3천만년 동안 지층이 실제로 쌓이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쌓였다가 깎인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다.

현재로서는 1억3천만년의 공백을 상상을 통해 유추해볼 수밖에 없다. 당시를 설명해줄 수 있는 기록인 지층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지자기학의 연구결과를 통해 당시 한반도가 어디에 위치해 있었는지는 알 수 있다.

지층이 사라진 시기 이전에 한반도는 거대대륙인 곤드와나대륙의 변두리로 남위 10-20도 근방에 위치해 있었다. 대륙의 변두리에 위치했던 까닭에 고생대 초기에 대륙붕과 같은 수심이 낮은 천해환경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지층이 사라진 시기 이후에는 한반도는 적도에 있었다. 사라진 기간 동안 한반도는 남반구에서 적도로 이동을 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지질학자들은 몇가지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첫번째 시나리오는 사라진 시기동안 땅이 솟았다는 것. 땅이 이동하려면 땅 아래에서 힘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당시 곤드와나대륙의 연변부에 있던 한반도는 땅 아래에서 힘을 받아 이동을 했다고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이때 땅이 해수면 위로 융기했다고 본다. 즉 사라진 시기동안 한반도는 적도까지 이동을 하면서 융기했던 것이다. 이때 지표면이 해수면 위로 융기했기 때문에 퇴적물이 쌓이지 않았다고 설명할 수 있다.

적도까지 온 후에도 한반도는 점차 북상을 하면서 다른 땅덩어리와 충돌을 하게 된다. 그래서 한반도는 더욱 융기해 온전한 육지가 될 수 있었다. 이때는 대륙 충돌로 주변에 산맥이 형성되고 비교적 고도가 낮았던 한반도에는 많은 퇴적물이 이동해 와서 육상환경에서 지층이 형성된 것으로 본다.

두번째 시나리오는 사라진 시기동안 바다의 해수면이 낮아졌다는 것. 이 주장은 땅이 융기했다면 외부로부터 힘을 받기 때문에 평행부정합이 생겨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외부의 힘을 받았다면 사라진 시기 이전과 이후의 지형이 그렇게 나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땅은 가만히 있고 바다의 해수면이 낮아졌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수면이 낮아졌을까. 당시는 초대륙인 판게아가 형성되던 때였다. 즉 떨어져있던 대륙들이 한군데로 모이는 시기였다. 이는 바다 지형이 매우 단순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바다산맥인 해령도 매우 단순한 구조를 이루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해령의 길이가 줄어들었다는 의미인데, 이로 인해 해수면이 낮아졌다는 주장이다.

해령은 바다 속 산맥으로, 해령이 길수록 바다속 공간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해령이 짧아진다면 바다 속 공간이 넓어져서 해수면이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라진 시기 동안 해수면이 낮아지면서 바다에서 육상에 노출됐다고 본다. 이 시기에 쌓였던 지층도 깎였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땅이 솟았건, 해수면이 가라앉았건 간에 이들 주장은 어디까지나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 한반도에서 사라진 1억3천년의 미스터리는 아직 풀리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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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김유봉 책임연구원
  • 전희영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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