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생물공학부는 화학공학, 공업화학, 생물공학의 세 학문을 합친 학부입니다. 대부분 물리학을 가장 많이 배우고 활용하는 공대 내에서 화학생물공학부는 유일하게 물리학, 화학, 생물학 지식을 전부 활용하는 전공입니다.”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학부장을 맡고 있는 김재정 교수는 화학생물공학부에 대해 이같이 설명하며 “세 과목을 골고루 잘해야 해서 힘들지만, 그만큼 배우는 범위가 넓고 진로도 다양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화학생물공학부의 연구 분야는 계속 확대되고 있다. 정유, 석유화학, 유기합성, 공장 설계 및 자동화 등 화학 산업에 필요한 기초기술뿐만 아니라 환경보존, 에너지 공급, 인류의 건강과 복지를 책임지는 기술 등도 연구하고 있다. 생물공학, 환경공학, 나노기술, 신재생에너지 등 첨단 분야로 학문의 경계가 넓어진 셈이다.
교수진 2년 연속 전공 평가 세계 16위
화학생물공학부 교수진은 다양한 연구 분야만큼 면면도 화려하다. 총 33명에 이르는 교수진이 공정시스템, 무기 및 전기전자 소재, 고분자 및 유기 소재, 생물환경 등 크게 네 가지 연구 분야에서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 교수 한 명이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저널에 연간 평균 8편 이상의 논문을 게재하고 있다.
활발한 연구 성과 덕분일까.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는 QS 세계대학평가 전공 순위에서 2017년과 2018년 2년 연속 세계 16위에 올랐다. QS 세계대학평가는 영국의 글로벌 대학평가기관인 QS(Quacquarelli Symonds)가 1994년부터 매년 전 세계 대학 순위를 매기는 시스템이다. 김 학부장은 “학계 평판, 논문 인용횟수, 산업계 평판, 교수의 평생 연구실적 등을 종합해 평가를 내리는데, 화학생물공학부가 2년 연속 서울대 공대에서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고 말했다.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진 중 5명이 ‘젊은과학자상’을 수상한 경력도 있다. 젊은과학자상은 1997년 제정된 대통령상으로, 자연과학 부문과 공학 부문에서 매년 번갈아 가며 분야별 수상자를 선발한다. 만 40세 미만의 과학자를 대상으로 연구개발 업적이 뛰어나고 성장 잠재력이 큰 젊은 과학자에게 주어지는 영예로운 상이다. 김 학부장도 1999년 제3회 젊은과학자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는 “보통 한 학과에 수상자가 한 명 나올까 말까 한데, 화학생물공학부에만 수상자가 다섯 명이나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현택환 교수는 학술정보분석기업인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2017년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자’ 중 한 명에 들어갈 만큼 나노 소재의 제조와 응용 분야에서 세계적인 석학으로 꼽힌다.
현 교수는 균일한 나노입자를 합성하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고, 나노입자를 생체의학에 적용하는 연구로 지금까지 300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했다. 한국연구재단이 최근 10년간 노벨 과학상 수상자 77명의 총 논문수와 총 피인용수, 논문 1편당 인용수 등을 한국 과학자들과 비교해 9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현 교수는 노벨 과학상 수상자급에 가장 근접한 연구 성과를 창출한 것으로 분석됐다.
휘어지거나 늘릴 수 있는 전자 소자 및 시스템을 연구하는 김대형 교수는 2014년 12월 ‘스마트 인공피부’를 개발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김 교수팀은 의수 안에 투명한 초박형 실리콘 나노입자를 심어 온도, 압력, 습도는 물론 힘에 의한 피부 변형까지 감지하는 전자피부를 개발했다.
김 교수는 같은 해 피부에 부착할 수 있는 웨어러블 나노소자도 제작했다. 이 나노소자는 마치 반창고처럼 얇아 피부에 붙일 수 있고, 파킨슨병, 간질 등 운동 장애 질환의 발병 여부를 모니터링해 측정 결과를 저장하며, 약물을 투여해 치료까지 가능하다. 김 교수는 2011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가 발행하는 ‘MIT 테크놀로지리뷰’에서 ‘세상을 바꿀 젊은 과학자 35명’에 한국인 과학자로는 두 번째로 선정되기도 했다.
박태현 교수는 생명공학 기술과 나노 기술을 융합해 바이오 전자 코, 바이오 전자 혀, 인공 망막 등을 개발하고 있다. 박 교수팀은 2015년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공동으로 그래핀에 특정 냄새 분자를 맡는 인공 후각수용체를 결합해 바이오 나노 전자 코를 만들었다. 바이오 나노 전자 코는 사람의 코를 대체해 유독가스처럼 인체에 해를 끼치는 물질을 감지하는 등 응용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교육 프로그램 물리학, 화학, 생물학 이수 필수
화학생물공학부는 세부 전공을 별도로 나누지 않는다. 김 학부장은 “졸업 이후 어떤 연구 분야든, 어떤 산업이든 모두 선택할 수 있도록 기초를 닦아주는 것이 화학생물공학부의 교육 목표”라며 “학문의 깊이를 유지하면서도 최대한 많은 과목을 가르쳐 다방면에서 활약할 수 있는 인재를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화학생물공학부 1학년은 서울대 공대에서 유일하게 화학과 생물학, 물리학 등 3개 과목을 필수로 수강해야 한다. 김 학부장은 “고등학교에서 과학 Ⅰ, Ⅱ를 모두 배우고 오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에 1학년 교과과정에서 다시 가르친다”며 “물론 여기서 수학은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1학년 때 기초 과학 과목을 수강하고 나면, 유기화학, 물리화학, 공학생물, 공정유체역학, 열 및 물질전달 등의 전공과목을 이수해야 한다. 이론뿐만 아니라 각종 실험도 병행해 배운다. 김 학부장은 “전공필수 과목의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다양한 분야의 전공이 전공필수 과목으로 지정돼 있어 폭넓게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진로 지원 15주간 기업 현장 실습
화학생물공학부는 공부 못지않게 현장 실습도 중요시한다. ‘창의연구’라는 과목에서는 LG화학, 에쓰오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다양한 회사에서 2~4주간 현장 실습을 진행한다. 해당 회사의 직원처럼 직접 근무하며 현장 경험을 쌓으면 3학점을 인정해주는 프로그램이다.
기업이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고 학점을 주는 강의도 있다. ‘공학기술과 경영’이라는 과목이다. 김 학부장은 “예를 들어 LG화학이 15주 동안 연구, 생산, 기획, 재무, 마케팅 등 분야에서 강의를 열어, 학생들이 강의를 듣고 시험을 치르게 하는 방식”이라며 “회사 입장에서는 자신의 회사를 소개하고 향후 좋은 인재도 뽑을 수 있는 만큼 서로 강의를 하려고 경쟁을 벌인다”고 말했다.
화학생물공학부의 진로는 다양하다. 정유, 석유화학, 반도체 등 화학 및 생물산업이나 그 이외의 모든 산업체에 지원할 수 있다. 좀 더 심화 연구를 하고 싶은 학생은 분야를 정해 대학원에 진학하는 경우도 많다. 김 학부장은 “대학원 정원이 150명으로, 88명인 학부생보다 많다”고 말했다.
인재상 관심 분야에 열정 있어야
김 학부장은 화학생물공학부에서 원하는 인재상으로 가장 먼저 열정을 가진 사람을 꼽았다. 김 학부장은 “부모 손에 이끌려오는 학생들보다 자신이 화학생물공학부에 오고 싶은 동기가 큰 학생들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서울대에 지원하려면 성적도 중요하지만, 지원하려는 학과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게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입시에서 화학, 물리학, 생물학을 두루 잘하는 학생을 눈여겨본다. 김 학부장은 “수학, 화학, 물리학, 생물학의 기본이 탄탄한 학생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그래야 입학한 뒤 어려움이 덜하기 때문이다.
조언 공학자는 나라 먹여 살리는 직업
김 학부장은 처음에는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위해 무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화학생물공학부에 진학했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서 사람을 해치는 무기를 만들기보다는 세계 인류를 이롭게 하는 무언가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김 학부장은 “화학생물공학부에서는 그런 결과물을 여러 방면에서 다양하게 만들 수 있다”며 “반도체 장비를 개발하는 게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유학 이후 LG에서 10년 간 반도체를 연구하다가 서울대 교수로 부임했다.
공대 진학을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김 학부장은 “공학자는 세계를 선도하고 나라를 먹여 살리는 직업이다”며 “한국 공학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인 만큼 국제적으로 경쟁하며 수많은 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