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대 말인 약 2억6천만년 전 적도. 곤드와나대륙의 북쪽 가장자리에서 조용하지만 큰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땅속 수백km의 깊은 맨틀로부터 거대한 열기둥이 대륙지각으로 올라온 것이다. 대륙 여기저기가 조각으로 갈라지고, 그 갈라진 대륙의 틈사이로 깊은 계곡이 형성되고 바닷물이 들어온다. 바닷물이 들어온 계곡이 점점 커져가다 결국 새로운 바다, 테티스가 형성됐다. 그 와중에서 미래 한반도를 이루는 조각들은 곤드와나대륙과 이별을 고하고 북쪽으로의 여행을 떠난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젊은이를 모두 만나보겠네.” 이 노래를 한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노래가사에서처럼 여행하는 땅덩어리들은 필시 지구 어딘가에서 또다른 땅덩어리와 만나게 된다. 한반도는 바로 이처럼 땅덩어리들의 여행 과정에서 형성됐다.
우리는 지금 곤드와나대륙에서 떨어져나온 대륙조각들 가운데 2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북중한판이고 다른 하나는 남중한판이다. 이 두개의 판에는 한반도를 구성하는 3개의 작은 조각이 있기 때문이다.
고지자기 블랙박스
북중한판에는 한반도의 남동쪽에 해당하는 영남지괴, 그리고 북한에 해당하는 낭림지괴가 있다. 물론 여기에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북중국지괴가 포함돼 있다. 그리고 남중한판에는 남중국을 포함해 한반도의 가운데 부분인 경기지괴가 있다. 처음에는 곤드와나대륙에서 북중한판이 떨어져 나오고, 이후 남중한판이 분리됐다. 그리고 이 둘은 곧바로 북반구로 향했다.
이윽고 중생대 초기인 2억4천만년 전, 먼저 출발한 북중한판은 서쪽 귀퉁이에서 로라시아대륙(초대륙 판게아는 남반구의 곤드와나와 북반구의 로라시아대륙으로 구성된다)과 부딪치게 된다. 이로 인해 북중한판은 이동을 멈칫거리고, 그 사이에 뒤따라 북상하던 남중한판이 다가온다. 결국 이 둘은 충돌하고 마는데, 이는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의 퍼즐조각들이 만나는 극적인 순간이었다.
이 충돌로 북중한판은 북중국지괴-낭림지괴(I)와 영남지괴-서남일본지괴(II)의 두조각으로 나눠진다. 그런 다음 북중한판I은 반시계방향으로 북중한판II는 시계방향으로 급격히 회전한다. 이때 남중한판에 속해있는 경기지괴가 낭림지괴와 영남지괴 사이에 끼게 된다. 그러면서 점차 오늘날과 같은 한반도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그때가 쥐라기 중기인 약 1억8천만년 전이었다. 중생대에 한반도는 주변의 땅덩어리들의 움직임과 복잡하게 얽혀서 형성된 것이다.
이 시나리오는 고지자기 자료들로부터 계산된 시뮬레이션을 근거로 만들어졌으며, 한반도가 한덩어리의 땅이 아니라 여러개가 충돌한 사건으로 완성된 땅임을 말해준다.
한반도의 대륙충돌설은 마치 자가 접히는 모양과 유사하다고 해서 ‘접힘자’ 모델이라고 한다. 1992년 이 모델이 국제지질학술회의에 처음 발표됐을 때만 하더라도 큰 반향을 얻지 못했다. 당시에는 작은 한반도에서 그렇게 극적이고 엄청난 사건이 있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후 이를 지지하는 구조지질학, 변성암석학, 고생물학, 고지자기학, 암석화학 분야의 연구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결과들을 바탕으로 현재는 한반도가 충돌에 의해 형성됐다고 학계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충돌의 위치에 대해서는 세부적으로 아직 이견이 존재한다.
또한 아직 한반도에서 대륙충돌이 일어났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즉 충돌을 좀더 명확히 증명할 수 있는 지질학적 증거가 더 발견돼야 하는 것이다. 대륙충돌의 증거로는 과거 암석 속에 숨어있는 초고압 광물이 있다.
충돌 증거 찾기
두개의 대륙이 충돌하면 충돌부가 압축된다. 그래서 두 대륙의 지각물질은 땅 위로는 히말라야와 같은 거대한 산을 형성하며 솟아오르고, 땅 아래로는 이보다 훨씬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이때 지각물질이 들어가는 깊이는 1백km 이상의 맨틀 깊이 수준. 초고압 광물은 바로 이곳에서 형성된다. 따라서 초고압 광물은 보통의 지각 물질에서는 볼 수가 없다.
다이아몬드나 코어사이트와 같은 고밀도 광물이 초고압 광물이다. 땅속 깊은 곳에서 형성된 이들 초고압 광물은 오랜 시간에 걸쳐 드물게 지표로 올라오기도 한다. 이때 압력이 낮아지기 때문에 이들 광물은 변성돼 다른 광물로 변해버린다. 이들이 지표까지 무사히 올라오려면 화강암질 편마암에서 지르콘이나 석류석과 같은 광물에 가둬져야 한다. 따라서 실제로 지질학자들은 초고압 광물 자체를 찾기보다 초고압 광물이 다른 광물 속에 갇혀있는 변성암, 즉 에클로자이트를 대륙충돌의 결정적인 증거로 찾고 있다. 에클로자이트는 대륙충돌로 인해 깊이 들어간 지각물질이 지하 약 50km 이상 깊이의 높은 압력에서 만들어진다.
암석학적으로 한반도 충돌설이 제기된 것은 1995년 고압변성광물조합이 임진강습곡대에서 발견되면서부터다. 북중국지괴와 남중국지괴의 충돌대 경계가 산둥반도의 초고압변성대인 수루조산대를 지나기 때문에, 동쪽의 한반도로 연장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우선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우리나라에서 거의 보고된 바 없는 고압 각섬암이다. 각섬암은 현무암질 암석으로부터 만들어진 변성암으로, 주로 각섬석과 사장석으로 이뤄진다. 고압 조건에서는 이들 광물과 함께 석류석이 산출되며, 더 높은 압력에 놓이면 에클로자이트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즉 고압 각섬암 주변에는 대륙충돌의 증거인 에클로자이트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에클로자이트를 찾지 못했지만, 석류석으로 이뤄진 각섬암은 임진강대와 춘천 및 홍성-청양 부근의 서부 경기육괴에서 산출된다. 특히 충남 홍성에서는 에클로자이트의 주요 구성광물인 옴파사이트가 발견됐다고 언론에 보도돼 눈길을 끈 적이 있다. 하지만 홍성의 옴파사이트는 그 자체가 갖는 전형적인 성분을 갖고 있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앞으로 계속 에클로자이트 암석 자체를 발견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석류석 각섬암은 중국의 대륙충돌대에서도 흔히 발견되며, 깊은 곳에서 만들어진 에클로자이트가 지표 쪽으로 올라올 때 각섬암으로 바뀌었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석류석 각섬암 역시 초고압 조건을 경험했을 가능성이 있다. 주목할 점은 우리나라 고압 각섬암의 생성 시기는 약 2억3천만-2억5천만년 전으로 밝혀졌다는 것이다. 중국의 대륙충돌대에서 보고된 나이와 엇비슷한 결과다. 이는 한반도의 임진강대와 경기육괴에 걸친 지역에서 트라이아스기에 큰 지각변동, 즉 대륙충돌 사건이 일어났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한반도의 충돌에 대해 많은 지질학자들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에서 대륙충돌대의 존재를 밝히는데는 국제적인 규모에서 수많은 학자들이 10년 이상 가세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한반도의 대륙충돌사와 진화사에 관해 좀더 정밀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앞으로 국민들의 더 많은 관심, 젊은 과학자들의 패기와 도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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