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바다의 물을 거둬내고 그 안을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3천m 깊이 아래로 넓은 분지가 있고, 분지 안에 툭 튀어나온 돌출부가 있다. 이 돌출된 부분과 한반도 동해 해안선의 윤곽을 맞춰보자. 잘 들어맞는다. 그런 다음 굽어진 일본을 쭉 펴서 그 옆에 갖다 붙여보자. 동해는 사라지고 한반도와 일본이 붙어있는 모양이 된다.
이는 단순한 조각맞추기가 아니다. 과거에 일본이 아시아대륙에서 떨어져나가 동해가 형성됐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동해 바다 속 돌출 부위가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이에 존재했던 대륙의 조각이라는 사실이 이미 밝혀졌다. 러시아와 일본 지질학자들이 이 돌출 부위에서 대륙지각 기원의 화강암이나 변성암류를 발견했던 것이다. 이들은 동해가 형성되면서 대륙지각이 함몰된 것들이다.
떨어져 나간 일본열도
동해는 동서 폭이 약 1천1백km이고 남북 폭이 최대 2천km이다. 일본열도가 아시아 대륙에서 멀어진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동해는 언제 어떤 이유에서 생겨난 것일까?
동해의 형성 시기와 원인 규명은 과거 지질학자들에게 논란거리였다. 1960년대에 고지자기를 연구한 일본 학자들은 일본열도 암석의 잔류자화 방향을 측정했다. 이를 통해 백악기부터 신생대 제3기 초까지 서남일본은 시계방향으로, 동북일본은 반시계방향으로 휘어졌다고 해석했다. 일본열도는 ‘거울로 본 ㄴ자’처럼 굽어져 있고 동서와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는데, 이를 각각 서남일본과 동북일본이라고 부른다.
그 직후인 1970년대에는 지질학자들이 동해의 바닥이 해양지각과 유사한 특성을 갖는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지구과학의 혁명을 일으킨 판구조론의 열풍에 힘입어 동해가 확장됐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1980년대 초에는 일본열도의 암석에 대해 더욱 정밀한 고지자기 자료와 연대측정자료, 그리고 미화석연구가 보태졌다. 그러면서 곧게 뻗어있던 일본열도가 휘어진 것은 약 1천5백만년 전이었다고 밝혀졌다. 그때 태평양판이 일본열도 아래로 들어가면서 화산열 뒤쪽, 즉 일본과 아시아대륙 사이의 지각 하부에 대량의 마그마가 만들어졌다고 봤다. 이 마그마가 대류를 일으키면서 일본열도를 태평양쪽으로 밀어낸 결과, 서남일본과 동북일본이 각각 시계방향과 반시계방향으로 회전하면서 동해가 열렸다는 것이다.
이를 ‘부채꼴식 확장모델’이라고 하는데, 이는 2개의 부채 끝을 서로 일직선상으로 맞닿게 한 다음 바깥쪽으로 두 부채를 펼쳤을 때와 모양이 흡사하다고 해서 붙여졌다. 이 모델에 따르면 서남일본은 약 1천5백만년 전에 1백만년도 못되는 짧은 기간 동안 시계방향으로 회전한 반면, 동북일본은 대략 2천만-1천2백만년 전에 반시계방향으로 회전했다.
하지만 이 모델은 여러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확장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점, 일본열도와 대륙조각들을 복원했을 때 일부분이 겹쳐진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동해 해저 시추 결과 동해 확장 초기에 형성된 화산암의 연대들이 2천만년 전후로 나타난다는 점을 설명하지 못한다.
1980년대 중반 확장시기와 복원의 문제점에 관한 해결의 단서가 우리나라 포항일대의 화산암류와 퇴적암류에서 구한 고지자기 연구에서 포착됐다. 포항서쪽에는 양산 단층이 발달하는데, 한반도는 이 단층을 경계로 동쪽의 지층이 서쪽에 비해 20-30km 남쪽으로 어긋나 있다. 1990년대 접어들면서 우리나라와 일본 학자들이 중심이 돼 포항지역의 신생대 지층에 대해 고지자기 연구를 실시한 결과, 약 1천7백만년 전 이전의 암석에서 구한 잔류자화 방향이 지금보다 동쪽으로 약 40-50°나 치우쳐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는 양산단층이 움직인 시기를 나타내주는데, 동해가 적어도 1천7백만년 전에 확장하고 있었다는 증거를 제공한 것이다. 따라서 일본열도가 회전하기 이전에 동해는 이미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 대륙이 갈라질 때 흔히 녹색응회암이라는 화산암이 분출된다. 일본열도에서 발견되는 녹색응회암의 연대는 약 2천3백만년 전인데, 이를 동해가 확장하기 시작할 때의 시기로 봤다. 이에 따라 일본열도가 약 2천3백만년 전부터 남쪽으로 평행하게 떨어져 나가다가, 1천5백만년 전 돌연 부채꼴 형태로 벌어졌다는 두단계 확장설이 등장했다.
동해가 두단계로 확장하게 된 이유로는 남쪽에서 북상하던 필리핀해판과 서남일본이 큐슈 부근에서 충돌한 것을 꼽았다. 필리핀해판과 서남일본이 충돌하면서 평행하게 떨어져 나가던 일본열도가 회전하게 됐다는 것이다. 두단계 확장설은 미국과 영국 고지자기 학자들의 필리핀해판에 대한 고위도변화 연구결과들에 의해 확립돼 왔다. 그러나 이 가설 역시 일본열도 중앙부의 화살처럼 휘어져 있는 구조를 설명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인도판이 눌러서 열렸다
한편 동해확장에 대한 또다른 가설로, ‘늘여펴기설’(pull-apart)도 있다. 인도대륙과 유라시아대륙의 충돌로 인해 2천5백만년 전후에 유라시아 극동연변부에 응력의 변화가 일어나, 그 결과 남북방향의 경계 단층을 따라 서남일본이 미끄러져 남하하면서 동해가 열렸다는 것이다. 1980년대 중반 프랑스와 일본학자들이 제시한 이 주장은 동해 확장의 동력이 외부로부터 비롯됐다는 점에서 부채꼴 확장설이나 두단계 확장설과 큰 차이가 있다. 부채꼴 확장설이나 두단계 확장설은 화산열 뒤편에서 만들어진 마그마의 자체 동력에 의해 동해가 확장됐다고 본다.
연구자들은 이 주장의 근거로 한반도와 일본에 있는 2개의 단층을 제시했다. 하나는 일본 북쪽에 위치한 일본의 히다카-타타르 전단대, 다른 하나는 한반도 남쪽에 위치한 양산단층이다. 수제비용 밀가루반죽을 잡아당겨서 떼어내면 그 사이에 공간이 생긴다. 마찬가지로 히다카-타타르 전단대와 양산단층을 잡아당겨져서 그 사이에 동해가 형성됐다고 본다. 그리고 이를 잡아당겼던 힘은 인도와 유라시아대륙의 충돌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 역시 단층이 이동한 시기가 동해 확장시기와 일치하지 않고, 서남일본과 동북일본의 급격하고 큰 회전을 잘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이처럼 동해의 열림 과정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가 존재한다. 그만큼 동해 확장이 단순하지 않고 복잡한 과정을 겪었다는 의미다. 지질학자들에게 동해는 여러 면에서 미스터리한 존재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지질학자들이 앞으로 해야 할 연구과제는 산적해 있다. 이를테면 동해에는 태평양판이 삽입되면서 분출한 화산암과 동해가 확장할 때 분출한 화산암이 모두 공존하는데, 이 둘을 구별하는 암석화학적 연구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밖에 화산암의 연대측정이라든가, 동해 지각구조를 알기 위한 탄성파탐사, 중력탐사, 자력탐사 등의 연구도 시급하다.
동해의 형성과정을 밝히려면 많은 분야들이 종합적으로 어우러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동해 연구 인력과 그 성과는 이웃 일본에 비해 수십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북한 바로 아래 접하고 있는 일본분지의 명칭에서 보듯이, 이름도 그들에게 선점당했다. 그나마 동해와 울릉분지의 이름을 국제적으로 쓸 수 있는 것도 그동안 국내 지질학자들의 헌신적인 연구와 노력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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