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6일 미국은 신종플루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미국 정부는 10월 중순까지 총 1140만 명분의 백신을 각급 의료기관에 공급했다. 나아가 미국 보건당국은 올해 안에 어린이, 청소년, 임산부, 만성질환자 등 우선 접종 대상자 수천만 명에 대한 접종을 끝낸다는 계획이다. 일본도 지난 10월 19일 신종플루 환자의 진료를 담당하는 의사와 간호사를 중심으로 백신 예방접종을 시작했다.
우리도 10월 말 의사와 간호사부터 백신 접종에 들어갔다. 녹십자는 화순공장에서 지난 7월 초부터 신종플루 백신을 생산하고 있다. 녹십자가 제조한 신종플루 백신(그린플루-에스)을 고려대 구로병원과 안산병원,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에서 1, 2차 임상시험한 결과 백신에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11월 중에는 초·중·고생을 우선 접종할 예정이다. 신종플루 백신은 어떻게 만들며 몸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 1회 접종으로 충분한지, 위험성은 없는지도 살펴보자.
유정란에서 바이러스 배양하는 이유
신종플루 백신을 만드는 법은 계절 독감 백신을 만드는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선 외부와 격리된 깨끗한 양계장에서 항생제나 백신을 투약하지 않은 유정란을 수거한다. 유정란은 신종플루 바이러스를 증식하는 일종의 배지로 쓰인다. 하루 약 13만 개의 유정란이 녹십자 화순 공장에 공급되고 있다.
바이러스를 배양할 때 유정란을 사용하는 이유는 뭘까. 바이러스는 유정란이 세포분열할 때 함께 증식한다. 하지만 수정이 되지 않은 무정란은 세포분열이 일어나지 않아 바이러스가 거의 증식하지 못한다.
건강한 유정란을 골라 부화기에 넣어 세포분열이 충분히 일어나도록 한다. 부화시킨 지 10일이 지나면 유정란 윗부분에 신종플루 균주를 접종한 뒤 다시 부화기에 넣는다. 이때 바이러스도 함께 증식하면서 양이 크게 늘어난다.
유정란에 바이러스를 접종한 지 3일이 되면 달걀의 윗부분을 잘라낸 뒤 배양한 바이러스를 자동채독기로 뽑아낸다. 바이러스를 뽑아내는 과정을 거치고 남은 유정란은 수분을 제거한 뒤 75℃에서 5분간 가열해 바이러스를 제거한 뒤 폐기처분해 바이러스가 퍼지는 일을 막는다.
뽑아낸 바이러스는 정제시설로 보낸다. 원심분리기에서 수분을 제거한 뒤 다시 분당 4만번 회전하는 초고속 원심분리기로 바이러스 입자만 분리해낸다. 이렇게 정제된 바이러스는 독성이 강한 유전자를 제거하는 약독화(藥毒化) 과정을 거치거나 클로로포름이나 아세톤 같은 유기용매로 바이러스를 사멸시키는 불활성화(不活性化) 과정을 거치면 백신 원액이 된다.
주사 1회분당 15μg(마이크로그램, 1μg=10-6g) 비율로 희석해 유리병에 담아 보관한다. 그런데 신종플루 백신과 달리 독감 백신을 만들 때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그해 유행할 것으로 예측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3종류를 배양한 뒤 섞어 만든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변종이 빨리 생겨 어떤 바이러스에 감염될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WHO는 그해 전 세계에서 유행하는 독감의 패턴을 분석해 독감 백신에 들어갈 바이러스 후보군을 결정한다.
체내에 기억세포 만드는 백신
백신은 크게 생(生)백신과 사(死)백신으로 나눌 수 있다. 생백신은 약독화 과정을 거쳐 말 그대로 바이러스가 살아 있는 백신이다. 천연두 백신과 소아마비 백신, 홍역 백신을 생백신으로 만들었다. 반면 사백신은 불활성화 과정을 거쳐 만든 백신이다. 신종플루 백신과 독감 백신을 사백신으로 만든다.
생백신은 미생물 또는 바이러스를 그대로 체내에 투입하기 때문에 몸에서 면역 반응이 활발히 일어난다. 투여하는 양이 워낙 적어 몸에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지만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은 병에 감염될 수도 있다. 반면 사백신은 안전하지만 생백신보다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데 오래 걸리고 반응성도 약하다.
백신을 체내에 주사하면 몸에서는 어떤 반응을 일으킬까. 백신은 일종의 이물질이다. 우리 몸은 이물질이 들어오면 이를 제거하기 위해 백혈구의 일종인 림프구가 작동한다. 림프구는 크기가 6~15μm(마이크로미터, 1μm=10-6m)이며 전체 백혈구의 약 25%를 차지한다. 림프구에는 후천성면역반응을 담당하는 B세포와 T세포가 있다. B세포는 바이러스 같은 항원을 인식한 뒤 항체를 생산해 항원을 제거한다. 이를 ‘체액성 면역’이라 하는데, 항체가 혈액을 타고 돌며 항원을 제거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일반적으로 항체는 면역글로불린이라는 당단백질로 이뤄진다. 면역글로불린에는 면역글로불린G(IgG), 면역글로불린M(IgM), 면역글로불린A(IgA), 면역글로불린D(IgD), 면역글로불린E(IgE) 등이 있는데, 아미노산 배열이 조금씩 다른 가변부위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각각의 면역글로불린은 가변부위에 따라 서로 다른 항원에 대응해 특이적으로 결합한다. T세포는 세포 표면에 있는 단백질 분자에 따라 킬러 T세포(killer T cell), 도움 T세포(helper T cell), 조절 T세포(regulatory T cell) 세 가지 종류로 나뉜다. 항원이 들어오면 도움 T세포가 일종의 신호물질인 사이토카인을 분비해 킬러 T세포와 B세포의 활성을 증대시킨다.
킬러 T세포는 세포독성 물질을 분비해 병원체에 감염된 세포를 죽이거나 식균작용으로 항원을 직접 제거한다(세포성 면역). B세포는 항체를 분비해 항원의 활성을 저해한다(체액성 면역). 이때 조절 T세포는 이런 면역 과정을 적절히 조절한다.
백신 예방접종은 몸에서 1차 면역반응을 일으켜 기억세포를 만드는 과정이다. 림프구는 항원을 모두 제거하면 대부분 사라진다. 하지만 림프구 중 일부는 기억세포가 돼 혈액을 돌아다닌다. 기억세포는 수명이 길어 오랫동안 체내에 존재하며 같은 항원이 침입했을 때 처음보다 더 많은 항체를 빠르게 생산하도록 만든다. 일종의 ‘촉매’인 셈이다.
신종플루 백신 1회 접종으로 충분해
최근 국내에서 독감 백신을 맞고 사망하는 사례가 증가하며 신종플루 백신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지난 9월 15일 미국 뉴욕주 의료기관 종사자들은 신종플루 백신 접종을 중단해 달라는 소송을 워싱턴 연방법원에 제기했다. 사멸시킨 바이러스를 사용해 신종플루 백신을 제조하지만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이나 특이 체질의 사람에게 과도한 면역반응을 일으켜 쇼크사를 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백신을 생산할 때 사용하는 계란이 문제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독감 백신을 맞고 사망한 사람들이 계란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으로 사망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바이러스를 배양하는 과정에서 계란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오발부민(ovalbumin)이라는 단백질이 백신에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은 지난 10월 15일부터 녹십자 화순 공장을 점검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독감 백신이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확인된 사례는 없었다. 보건당국은“역학조사결과 사망자 대부분이 고혈압이나 당뇨병, 뇌경색을 앓고 있었다”고 밝혔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바이러스감염대응연구단 부하령 박사도“신종플루가 유행하면서 독감 주사를 맞는 고위험군 노인층이 증가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통계적인 착시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65세 이상 고령자층에서 독감 백신을 접종한 사람이 2005년 170만 명에서 올해 10월 현재 350만 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한편 국내 신종플루 백신 임상시험 결과는 양호한 편이다. 지난 9월 7일부터 고려대 구로병원, 고려대 안산병원, 가톨릭대 수원 성빈센트병원은 녹십자가 생산한 신종플루 백신 ‘그린플루-에스’의 임상시험을 했다.
각 병원은 19세~64세 사이의 성인 임상시험 참가자와 65세 이상의 노인 참가자 총 474명을 대상으로 백신의 적정 용량을 알아보기 위해 연령에 상관없이 2개 그룹으로 나눠 백신을 주사했다. 한 그룹에는 15μg씩 주사했고 다른 그룹에는 30μg을 주사했다. 임상시험 참가자들은 1차 접종 후 21일이 지난 9월 28일 같은 양의 백신을 다시 한 번 접종받았다. 2차 접종은 1차 접종만으로 항체가 제대로 생기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조치였다.
그러나 1차 임상시험 결과 19세~64세 사이의 성인은 94% 가량 항체가 생겼으며 65세 이상의 노인도 항체 생성률이 75%에 이른 것으로 확인됐다. 신종플루 백신을 한 번만 접종해도 충분하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면역력이 약한 노인층에서 항체 생성률이 60%를 넘으면 백신이 효과가 있다고 본다. 2차 임상실험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으며 부작용도 발열이나 근육통 등으로 나타나 경미한 것으로 밝혀졌다. 앞서 임상시험을 시행한 미국이나 일본과 비슷한 결과다.
면역세포 '낚는' 면역증강제 위험성은?
식약청은 현재 스쿠알렌 성분의 면역증강제(adjuvant) ‘MF59’를 넣은 신종플루 백신을 임상시험하고 있다. 면역증강제를 사용하면 백신 1회 접종분을 만들 때 필요한 백신 원액(항원)의 양(15μg)을 2분의 1(7.5μg)이나 4분의 1(3.75μg)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정된 항원을 사용해 백신을 2~4배 더 만들 수 있어 접종대상자를 늘릴 수 있는 셈이다.
식약청 생물제제과 강석연 과장은 “면역증강제는 항원처럼 몸에서 이물질로 인식돼 몸의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일종의 첨가제”라고 설명했다. 몸에 백신을 주사하면 면역세포인 T세포와 B세포가 항원을 제거하기 위해 백신이 주사된 부위로 몰려든다.
만약 백신에 면역증강제를 첨가하면 항원 외에 몸에 투입되는 이물질이 늘어나 더 많은 면역세포가 몰려들게 된다. 그만큼 투입되는 항원의 양을 줄이면서 항원이 면역세포와 접촉하는 횟수는 늘릴 수 있다. 면역증강제는 면역세포를 불러들이기 위해 던지는 미끼인 셈이다. 강 과장은 “면역증강제를 사용하면 1회 주사에 필요한 항원의 양은 줄어들지만 오히려 효과는 더 크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면역증강제에 대한 위험성을 제기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한나라당 유재중 의원은 지난 9월 3일 “신종플루 백신에 면역증가제를 사용할 경우 부작용이 늘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면역증강제를 함유한 계절 독감 백신 ‘플루아드’를 접종받은 사람들에게서 기존 백신보다 부작용이 2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는 것. 플루아드는 일반인보다 면역 기능이 떨어지는 노인층이 쉽게 면역력을 얻도록 하기 위해 만든 백신이다. 플루아드를 접종받은 2100여 명을 조사한 결과 일반 독감 백신보다 통증은 18%, 붉은 반점은 5%, 염증과 출혈로 피부가 딱딱해지는 증상(경결)은 5% 더 나타났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우려는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일축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부하령 박사는 “백신에 면역증강제를 첨가할 경우 일시적으로 근육통이나 발열 같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지만 안전성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강석연 과장도 “신종플루의 면역증강제로 쓰인 스쿠알렌은 계절 독감 백신에도 계속 사용해 왔다”며 “지금까지 4500만 도즈(1회 주사분) 이상을 사용했지만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가 제작하는 계절 독감 백신 플루아드는 1997년 유럽에서 최초로 허가된 뒤 우리나라를 비롯한 26개국에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