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중국의 경계를 이루는 장백산맥의 최고봉인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명산으로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남아있다. 특히 하늘 아래 물로 가득한 천지 때문에 백두산이 화산분출로 형성된 산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백두산이 2천7백49.5m라는 한반도 내 최고높이와 눈에 시원한 천지의 모습을 갖는데 얼마나 오랜 기간이 걸렸는지를 알고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백두산 형성 약 3천만년 걸려
백두산을 만든 최초의 화산활동은 2천8백40만년 전에 시작됐다. 그렇다면 마지막 분출은 언제였을까? 놀랍게도 지금으로부터 3백-4백년 전인 1668년 6월, 1702년 6월에 백두산에서 화산재가 분출된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나와 있다. 또한 1백여년 전인 1903년 봄에도 분출했다는 기록이 장백산강강지략(長白山江岡志略)에 나와 있다. 처음과 마지막을 계산해보면 결국 백두산은 무려 3천만년 가까운 세월 동안 형성된 셈이다. 이처럼 장구한 세월 동안 백두산은 어떤 변화를 겪어왔던 것일까?
2천8백40만년 이전까지 백두산 일대는 만주 벌판 같은 곳이었다. 그 땅속 깊은 곳, 맨틀에는 당시 마그마의 근원지인 열점(hot spot)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 마그마 중 일부가 2천8백40만년 경 백두산 일대의 갈라진 틈새를 통해 지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2천3백만년 전부터 1천9백만년 전까지 4백만년 동안 지각의 갈라진 틈새 사이로 상당한 양의 마그마가 뿜어져 나왔다. 그 결과 백두산 일대의 넓은 지역에는 용암대지가 형성됐다. 이후 백두산 용암대지에는 1천6백40만년 전과 1천3백50만년 전 두차례에 걸쳐 마그마가 추가로 분출됐다.
그런 다음 백두산은 1천만년이라는 긴 휴식기간을 갖는다. 그리고 다시 분출이 시작된 것은 4백43만년 전부터다. 이때는 용암대지 일대에 틈새 분출이 되면서 동시에 백두산을 중심으로 화산분출이 거세게 일어났다. 대지였던 땅은 이제 완만한 경사를 이룬 넓고 평탄한 용암고원으로 변했고, 백두산을 중심으로는 둥근 방패를 엎어놓은 듯 완만한 경사를 갖는 화산, 즉 백두산순상화산체가 생겨났다. 이쯤에서야 산의 모양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백두산 남서쪽에 백두산의 쌍둥이 동생인 망천아화산도 함께 형성됐다.
백두산이 장대한 산이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인 61만년 전부터 8만7천년 전까지 있었던 분출 때문이다. 이 긴 세월동안 백두산을 중심으로 화산이 간헐적으로 분출했다. 그러면서 백두산은 한층한층 높아져갔다. 이때 백두산은 원뿔처럼 경사가 급한 화산, 즉 백두산성층화산체로 변한다.
이 기간 동안 지구는 빙하시대를 여러차례 맞았다. 백두산도 혹독한 빙하기를 피하기는 어려웠다. 백두산 주변에는 빙하가 발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백두산 천지에서 정북 방향으로 U자형 빙하침식 계곡이 남겨져 있고, 빙하퇴적물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시 다음의 퀴즈를 풀어보자.
오늘날과 같은 백두산 천지(天池)를 처음 볼 수 있었던 사람은 다음 중 누구일까?
① 단군 할아버지 ② 박혁거세 ③ 고려 태조의 두아들 ④ 이성계 ⑤ 아무도 없음
독자들이 선택한 답이 어떤지 궁금하긴 하지만 이쯤에서 곧바로 답을 제시해야겠다. 정답은 4번. 백두산 천지는 삼국시대였던 573년부터 고려시대였던 1215년까지 간헐적으로 화산이 분출하면서 형성됐기 때문이다. 폭발적으로 화산이 분출하는 바람에 산꼭대기 분화구의 물질들이 날아 가버리고 함몰돼 칼데라 호수로 변해버린 것이다.
특히 1215년의 화산분출이 매우 폭발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중국 기록에 따르면 남부지역인 광동성 일대에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한여름에도 서리가 내리고 얼어죽은 사람이 나왔다고 한다. 이는 백두산 화산재가 하늘로 올라가 성층권까지 도달하면서 하늘을 덮어 태양복사가 약해졌기 때문이다.
당시의 화산분출로 발생한 화산재는 백두산 주변 지역은 물론 바다 건너 일본을 넘어 태평양에까지 날아갔다. 또 일본 홋카이도와 혼슈 북부지역에서 발견된 화산재가 일본에서 분출된 화산재가 아니라 이 시기에 백두산에서 분출한 화산재임이 1990년 밝혀지기도 했다. 천지 칼데라는 고려 중기시대인 1215년에야 완성된 것이다.
백두산 화산은 이후에도 몇차례 더 분출했다. 조선왕조실록 등의 기록에 나와있듯이 1668년 6월, 1702년 6월에, 그리고 1903년 봄에 백두산 화산이 분출했다. 이런 맥락에서 백두산은 다음 분출을 위해 현재 잠시 쉬고 있는 활화산으로 판단된다.
제주도 아래 퇴적층의 비밀
그렇다면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 한라산은 언제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한라산 역시 정상에 백록담이 있어 화산이 분출돼 형성된 산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럼 한라산을 형성한 화산 분출은 백두산보다 빠를까, 아니면 그 뒤일까?
한라산은 백두산보다 어리다. 백두산이 초기 모습을 완성할 즈음인 1백70만년 전에야 남해의 벌판 한곳에서 화산이 분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제주도는 바닥이 펄과 모래로 된 광활한 벌판이었다.
첫 분출 시기와 당시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이유는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있기 때문. 제주도 해수면 하부 1백20m 아래로는 모래와 펄로 구성된 퇴적층이 나타난다. 이 층에는 현무암이 자갈로 분포해 있는데, 이 현무암의 나이가 약 1백70만년이다. 처음으로 분출했을 때 만들어진 현무암인 것이다. 이 시기에는 해수면이 지금보다 1백30m 정도 낮았다. 따라서 제주도 일대의 땅은 당시에 해수면보다 10m 정도 높았던 것이다.
모래와 펄로 구성된 제주도 하부의 퇴적층은 아직도 굳지 않을 정도로 물을 함유하고 있다. 따라서 초기에 마그마는 두께가 2백50m 정도인 하부 퇴적층을 뚫고 나오면서 물을 만나게 된다. 이 때문에 화산분출의 모습은 매우 격렬하고, 이때 마그마가 깨지면서 많은 작은 돌 알갱이들이 만들어진다. 이 작은 알갱이들은 수증기를 많이 포함하는 화산폭풍에 의해 멀리까지 날아가게 된다. 따라서 이런 화산분출로 형성된 지층은 작은 알갱이들이 쌓이는 퇴적구조를 갖게 된다. 이런 화산분출을 수성(水性)화산활동이라고 한다.
이처럼 제주도 화산분출은 초기에 수성화산활동이 주류였다. 실제로 제주도 지하에는 이런 수성화산체가 곳곳에 분포하는 것이 시추에서 확인된다. 아마도 제주도를 이루고 있는 용암을 다 걷어낸다면 일출봉과 같은 수성화산체가 곳곳에 분포하는 제주도 형성 초기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수성화산체가 곳곳에 만들어진 뒤, 마그마가 관입하면서 물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렇게 되자 용암의 분출 형태가 바뀌게 되었다.
대부분의 용암은 지금부터 40만년 전에서 20만년 전 사이에 분출했다. 이 기간에도 빙하기와 간빙기에 따라 해수면이 오르락내리락 했다. 해수면이 높아진 시기에 분출한 용암은 물속으로 흘러 들어가 베개 모양의 암석을 만들었는데, 여러 차례에 걸쳐 물 속으로 흘러 들어간 흔적을 시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해수면 상승 하강의 흔적을 제주도는 고이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기간 동안 어느 정도 제주도는 모양을 갖추게 됐다. 빙하기가 올 때마다 육지와 연결돼 동물들이 제주도로 이동해오기도 했다. 빙하기 때는 해수면이 낮았기 때문에 바다 한 가운데 제주도가 있음에도 여러 종류의 동물들이 살게 된 것이다. 육지와 연결됐을 당시의 제주도는 지금보다 훨씬 큰 지역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약 4천-5천년 전에야 1천9백50m 높이의 한라산이 완성됐다. 이때에는 일출봉과 송악산을 형성시킨 화산도 분출했다. 아마도 우리 조상들은 한라산의 완성뿐 아니라 일출봉과 송악산이 터지는 모습을 직접 봤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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