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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비틀즈 혁신에 수학을 더하다

우리나라에 BTS가 있다면 영국에는 비틀즈가 있다! 비틀즈는 세계 음악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는 전설적인 그룹으로,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아이콘 중 하나다.

 

비틀즈는 1961년 영국 리버풀에 있는 캐번 클럽에 등장한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영국 최고 스타가 된다. 3년 뒤, 비틀즈는 바다를 건너 미국을 점령하러 떠난다. 미국에 도착한 지 이틀 뒤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하는데, 스튜디오 안은 젊은 팬들의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우연히도 비틀즈가 TV에 나오는 동안 뉴욕시의 범죄 건수는 0건이었다. 이는 뉴욕시가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로, 뉴욕 시민 모두가 비틀즈가 나오는 방송을 보느라 범죄를 저지를 틈이 없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생겼다. 

 

2015년 조각가 앤디 에드워즈가 영국 리버풀에 설치한 12t 무게의 비틀즈 동상이다. 비틀즈 팬들이 동상을 보러 끊임없이 이곳을 방문해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했다.

 

그 뒤에도 미국에서 전례 없던 현상이 연이어 벌어지며, 비틀즈에 열광하는 팬들을 지칭하는 ‘비틀마니아’라는 신조어도 생긴다. 비틀즈 열풍이 영국을 넘어 미국까지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명곡이 만들어지는 동안 멤버 사이에 의견 충돌은 끊이지 않았다. 특히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의 의견 대립은 첨예했다. 두 사람이 작곡한 노래를 들어보면 이해가 된다. 둘의 색깔이 굉장히 달랐다. 

 

결국 비틀즈는 8년 만에 해체한다. 그러나 해체 이후에도 비틀즈에 대한 팬들의 관심은 식을 줄 몰랐다. 비틀즈 곡을 분석하는 팬들도 있었다. 

 

함수로 푼 비틀즈 코드

 

‘프라라라랑!’ 화려한 기타 화음으로 시작하는 비틀즈의 곡 ‘A Hard Days Night’는 곡이 발표됐을 때부터 첫 화음 제작 비법이 미스터리에 싸인다. 두 명의 기타리스트와 한 명의 베이시스트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사운드 변형이 여러 번 있었을 거로 추측할 뿐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이 악보를 복제하지 못했으며, 비틀즈 또한 이 복잡한 소리의 제작 비법을 밝히지 않아 미스터리는 계속됐다.

 

노래가 발표되고 40년 뒤인 2009년에 비틀즈의 열렬한 팬이자 수학자인 제이슨 브라운은 수학으로 이 화음의 비밀을 해독해낸다. 곡의 비밀을 푸는 데 브라운이 사용한 수학은 ‘이산 푸리에 변환’이다. 푸리에 변환은 수학에서 시간에 대한 함수를 분해하는 것으로, 이산 푸리에 변환은 복잡한 신호를 더 간단한 함수로 분해하는 수학적 기법이다.

 

그는 디지털 장비로 곡의 코드를 초당 수만 개의 숫자로 나타냈다. 그리고 이산 푸리에 변환을 이용해 코드를 초당 수십 개로 단순하게 바꿨다. 수십 개의 주파수를 분석하자 마침내 코드가 드러났다. 일부는 배경 소음이었는데, 소음을 걷어내자 그 속에 묻혀 있던 또 다른 악기 소리가 나타났다. 바로 피아노 음 다섯 개였다.

 

한편 레논은 스스로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Strawberry Fields Forever’ 작곡을 뽑았다. 어린 시절 집 근처에 있던 보육원 ‘스트로베리 필드’를 떠올리며 쓴 곡이다. 브라운은 이 곡에도 혁신적인 제작 방법과 편집 기술이 쓰였다고 주장했다. 다른 박자와 다른 음의 높이로 곡을 여러 번 녹음하고, 그중 두 개의 녹음을 합쳐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곡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음의 높낮이와 박자를 각각 조정하는 게 불가능했던 1960년대 기술적 한계를 획기적인 방법으로 해결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브라운은 수학자 로버트 도슨과 함께 이에 관해 연구했고, 그 결과 수학 공식을 도출해 2011년 캐나다 수학학회 소식지에 소개했다. 

 

명곡을 만들어내기 위해 수학은 필수인 걸까? 브라운은 그렇다고 말한다. 스스로 인지했든 못했든, 위대한 작곡가들은 늘 수학을 이용한다고 각종 인터뷰에서 소개했다. 현재 브라운은 비틀즈 음악을 수학적으로 연구하면서 자신의 분석을 적용해 비틀즈 풍의 음악을 작곡하고 있다. 물론 브라운의 주장에 대해 팬들 사이에서 논란은 여전하다. 

 

이외에도 비틀즈는 인도 전통 악기 시타르 연주가 들어간 ‘Love You To’를 작곡하는가 하면, 온갖 효과음이 집약된 ‘Revolution 9’처럼 이전에는 설명할 수 없던 기법이 담긴 실험적인 곡을 만들었다. ‘Eleanor Rigby’에서는 장르와 범주를 뛰어넘는 음악이 무엇인지 보여 준다. 

 

 

 
체코 프라하에 있는 ‘레논 벽’. 1980년대 공산주의에 반대하던 체코 사람들은 자유과 평화의 메시지가 담긴 레논의 노래 가사를 벽에 적으며 자유에 대한 갈망을 표출했다. 그 이후 레논에게 영향을 받은 예술가들이 벽에 그라피티를 덧칠하며 현재에 이르렀다.

 

비틀즈 작곡자 논쟁, ‘In My Life’ 누가 작곡했을까?

 

너무나도 많은 명곡을 남긴 탓일까. 비틀즈 안에서는 작곡한 노래를 둘러싼 심각한 갈등이 있다. 바로 작곡자 논쟁이다. 

 

비틀즈의 6집 ‘Rubber Soul’은 미국 음악 잡지 <롤링스톤>에서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500장의 앨범 중 5위를 차지한 앨범이다. 이 앨범에는 비틀즈의 작곡 콤비 레논과 매카트니의 역작 중 하나로 불리는 ‘In My Life’가 수록돼 있다. 따뜻한 기타 선율과 보컬의 목소리만으로도 감동을 전하는 아름다운 노래다.

 

비틀즈는 레논과 매카트니로 이뤄진 작곡 콤비의 활약으로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작곡 콤비이니 둘의 작곡 스타일이 비슷할 것 같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둘의 작곡 스타일은 완전히 달랐으며, 음악에 대한 의견 대립은 첨예했다. 

 

레논이 개성적인 음악을 지향했다면, 매카트니는 대중적이고 듣기 좋은 음악을 추구했다. 서로 다른 음악 스타일에 다툼도 많았으나 둘은 서로에게 신선한 자극을 줬고, 수많은 명곡을 탄생시켰다. 

 

‘In My Life’는 아름다운 노래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레논과 매카트니의 작곡 논쟁으로도 유명하다. 레논은 이 곡의 작사뿐 아니라 작곡까지 모두 자신이 했다고 주장했지만, 매카트니는 자서전을 통해 레논이 쓴 가사에 자신이 곡을 썼다고 밝히면서 주장이 엇갈렸다. 이 외에 ‘I Dont Want to Spoil the Party’도 논쟁이 되고 있다. 

 

이 논쟁의 진실을 본인들에게 직접 확인하면 좋으련만, 그건 어려워 보인다. 레논이 1980년 40살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매카트니의 말만 듣고 진위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과연 진실을 밝히기는 힘든 걸까?

 

 

2018년 8월 1일에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북미 통계학회에서 브라운과 통계학자 마크 클리크만은 ‘In My Life’의 원작곡자가 통계학적으로 봤을 때 레논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데이터 통계 분석 기법을 활용해 원작곡자를 식별하는 방법을 소개했다. 

 

연구팀은 작곡자가 확실하게 알려진 레논과 매카트니의 곡 70개와 비틀즈의 곡에서 발췌한 여러 부분에서 총 149개의 음악적 특징을 뽑아내 통계 모형을 만들었다. 여기서 음악적 특징이란 곡에서 으뜸화음이 몇 번 쓰였는지, 멜로디에서 음이 한 옥타브 이상 바뀌는 경우는 얼마나 있는지 등으로 음악의 3요소 중 화음과 멜로디만 분석했다. 

 

그 결과 ‘In My Life’의 작곡자는 98% 이상의 확률로 레논으로 나타났다. 매카트니가 이 곡을 썼을 확률은 1.8%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걸로 ‘In my Life’의 작곡자가 확실히 밝혀졌다고 할 수 있을까? 연구 결과가 통계적인 확률로 나오기 때문에 100% 확정하기는 어렵다. 또한 이 연구는 악보만을 기반으로 연구했다는 한계가 있다. 만약 악보를 실제로 연주한 오디오 신호까지 분석한다면 작곡자를 더 정교하게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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