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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강력 텐트’와 ‘우리 몸’의 공통점은 뭘까? 텐트는 얇은 금속으로 이뤄져 있지만, 강풍이 불어도 그 힘을 견딘다. 또 우리 몸의 근육과 뼈는 그 자체의 무게에 비해 무거운 체중이나 힘을 잘 견딘다. 두 가지 모두 가볍고도 견고한 성질을 갖는다. 비밀은 ‘텐세그리티’다.


텐세그리티는 완벽한 밀당의 고수?!

흔히 사람들은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는 ‘밀당’을 잘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밀당이란, ‘밀고 당기기’의 줄임말로 밀어내는 행동과 당기는 행동을 적절히 유지해야 연인 관계가 잘 유지된다는 뜻이다. 마치 남녀 사이에 어떤 힘이 있어서, 그 힘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적절히 평형을 이뤄야 되는 것처럼 말이다.

텐세그리티 구조를 쉽게 말하면 ‘밀당의 고수’라고 할 수 있다. 텐세그리티는 ‘긴장 상태의 안정성(Tensional Integrity)’을 뜻하는 말로, 팽팽한 긴장 상태에서도 힘의 평형을 이루는 안정적인 구조를 뜻한다. 이를 위해 모든 텐세그리티는 모양에 상관없이 ‘인장재’와 ‘압축재’라는 두 가지 요소로 이뤄져 있다. 여기서 인장재는 미는 역할을 하고, 압축재는 당기는 역할을 한다. 인장재와 압축재의 서로 밀고 당기는 힘이 완벽하게 평형을 이룬 구조가 바로 텐세그리티다.

텐세그리티의 구조에서 힘의 평형이 이뤄지는 것은 벡터의 합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림➊은 가장 간단한 2차원 텐세그리티를 나타낸 것이다. 점A에서는 2개의 압축재와 1개의 인장재로부터 힘을 받는다(그림➋). 여기서 압축재와 인장재의 힘의 방향은 서로 반대로 작용한다. 그 결과 벡터의 합에 의해 점A에서는 힘의 평형을 이룬다. 텐세그리티는 모든 점에서 이와 같은 힘의 평형상태가 되어야만 그 형태가 유지된다.
 

3차원 텐세그리티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림➌은 가장 간단한 3차원 텐세그리티 구조로, 3개의 인장재와 9개의 압축재로 이뤄져 있다. 이 구조에서 인장재의 끝 점인 6개의 점에서 밀고 당기는 힘이 완벽하게 평형을 이룬다.

3차원만 되더라도 인장재의 모든 끝 점에서 힘의 평형을 이루게 하려면 복잡한 계산 과정을 거쳐야 한다. 3차원 공간좌표에서 놓인 각도와 방향, 길이가 다른 벡터의 합을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건축에서 탄생한 텐세그리티

‘텐세그리티’란 개념은 언제 시작됐을까? 텐세그리티를 처음 정의하고 발표한 사람은 미국의 건축학자이자 수학자인 벅민스터 풀러다. 지오데식 돔을 발명한 사람으로도 유명한 그는 공학과 수학, 예술 등 다방면에 재능이 있어 ‘20세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도 불린다.

풀러는 텐세그리티를 명명하기에 앞서 1957년에 이미 가볍고, 견고하며, 경제적인 지오데식 돔을 발명했다. 그러나 지오데식 돔은 말 그대로 반구(돔)의 모양으로 정해져 있어, 다양한 모양을 만들 수는 없었다. 그래서 연구한 끝에 탄생한 구조가 바로 텐세그리티다. 1962년 풀러는 텐세그리티를 미국 특허로 등록했고, 그 이후 많은 사람들이 텐세그리티를 연구하고 있다.

텐세그리티를 연구한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단연 풀러의 제자인 케네스 스넬슨을 들 수 있다. 케네스 스넬슨은 1968년에 세계 최초로 텐세그리티 구조를 적용해, 워싱턴 D.C의 허시혼 박물관 조각공원에 ‘니들 타워’와 ‘트리플 크라운’이라는 두 가지 구조물을 만들었다. 이 밖에도 텐세그리티를 대표하는 구조물로는 호주 브리즈번 강에 있는 쿠릴파 다리와 미국 아틀란타의 조지아 돔 등이 있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모두 인장재와 압축재가 잘 드러나 있어 독특한 아름다움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는 아직 완벽한 텐세그리티 건축물은 없다. 다만 서울올림픽 체조경기장의 지붕이 텐세그리티 구조를 응용한 가이거 돔★으로 되어 있다.

가이거 돔★ 미국의 데이비드 가이거 박사가 개발한 돔이다. 텐세그리티와 비슷한 구조를 띄고 있으나, 돔(반구) 형태로 그 모양이 정해져 있다.

"압축재는 장력의 바다에 띄운 작은 섬과 같다." _ 케네스 스넬슨
 
한편 건축에서 쓰이는 여러 가지 구조 중에서도 텐세그리티는 다른 여러 구조물과는 다른 독특한 성격을 갖고 있다. 대부분의 건축 구조가 그 모양 자체로 안정된 상태를 갖는 반면, 텐세그리티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텐세그리티 구조를 만들려면 힘의 평형을 이루는 상태를 찾아야만 그 모양이 완성된다. 그렇다면 적절한 텐세그리티의 형태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텐세그리티의 형태를 찾으려면 모든 점에서 힘의 평형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복잡한 계산과 시뮬레이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래서 텐세그리티를 연구하는 건축학자들에게 텐세그리티 형태를 찾는 것은 중요한 연구 주제입니다.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만 그 형태를 찾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텐세그리티 연구가 가치 있는 것은 텐세그리티만이 갖고 있는 장점 때문입니다. 텐세그리티는 건축 구조물 중에서 가장 적은 재료를 쓰면서도 하중을 잘 견디는 경제적인 구조물입니다. 또 크기나 모양에 관계없이 다양한 구조물을 만들 수 있습니다."
 
_이재홍(세종대 건축공학과 교수)


내 몸에 텐세그리티 있다!

텐세그리티를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 있을까? 텐세그리티는 건축학에서 탄생했지만, 건축물이 아닌 다양한 곳에서 쓰일 만큼 활용도가 높다. 그 중에서도 우리와 가장 가까이에 있고, 매일 매순간 체험하고 있는 텐세그리티가 있다. 바로 ‘우리 몸’이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요소로는 크게 ‘뼈’와 ‘근육’이 있다. 여기서 뼈가 텐세그리티의 인장재 역할을, 근육이 압축재 역할을 한다. 흔히 뼈가 근육을 지탱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오히려 그 반대다. 근육이 끊임없이 잡아당기는 힘에 의해 뼈가 그 형태를 이루며 지지되고 있다. 이때 근육이 당기는 힘과 뼈가 미는 힘이 균형을 이루면, 뼈에 직접적으로 실리는 하중은 절대적으로 크지 않게 된다. 이 때문에 뼈가 굵지 않더라도, 체중을 지탱할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에서도 텐세그리티를 찾을 수 있다. 오랫동안 생물학자들은 세포를 풍선 속의 밀가루 반죽과 같이 세포막에 둘러싸인 끈끈한 액체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뒤엎은 현상을 관찰하게 됐다. 평평한 판에 세포를 놓으면 납작해지지만, 말랑말랑한 고무판 위에 놓으면 세포는 오히려 공처럼 더 동글동글해지는 것이었다. 이런 현상을 보고 의문을 품은 하버드대 도널드 인그버 교수는 세포가 텐세그리티 구조로 돼 있기 때문이라고 추측하고, 실험을 해 보았다.

서로 직각을 이루는 세 쌍의 막대기의 끝을 고무줄로 연결해 텐세그리티 구조를 만든 다음, 평평한 바닥과 신축성 있는 바닥 위에 두는 실험이었다. 그 결과 바닥에 놓은 텐세그리티 구조는 세포처럼 납작해졌고, 신축성 있는 바닥에 놓았을 때는 공처럼 둥글해졌다. 이 실험 이후 생물학자들은 세포가 텐세그리티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텐세그리티로 만든 물건 Best 3

가볍고, 튼튼한 구조인 텐세그리티의 성질을 이용해 만든 생활 속 물건들이 있다. 텐세그리티의 원리를 톡톡히 살려 만든, 아이디어 물건 3가지를 소개한다.

텐트 tent
1975년 아웃도어브랜드인 노스페이스에서 세계 최초로 돔 모양의 텐트 ‘오벌 인텐션(Oval Intension)’을 출시했다. 오벌 인텐션이란, ‘장력에 의해서 강도를 지탱하는 알’이란 뜻이다. 텐세그리티의 원리로 만들어진 이 텐트는 가볍지만 견고해 히말라야와 같은 극지를 체험하는 등반가들이 주로 사용한다. 2011년 무한도전 오호츠크 해 특집에서 텐세그리티 텐트가 등장하기도 했다.

자전거 bicycle
보통의 자전거 휠은 트러스트 삼각형 구조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이오누트 프레데스쿠가 디자인한 자전거의 휠은 텐세그리티 구조로 이뤄져 있다. 텐세그리티로 만든 자전거 휠은 일반 자전거보다 적은 금속을 사용해 가볍지만, 튼튼해 외부의 압력과 무게를 잘 견딜 수 있다.

탁자와 의자 table and chair
불가리아의 디자이너 콘스탄틴 아치코브가 만든 탁자와 의자다. 기하학적 구조 중에서도 특히 텐세그리티 구조에 관심이 많아 텐세그리티를 이용한 탁자나 의자와 같은 가구를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텐세그리티를 활용해 동물의 뼈와 근육의 구조를 모형으로 만드는 일에도 몰두하고 있다.

2013년 03월 수학동아 정보

  • 장경아 기자
  • 사진 및 도움

    이재홍 교수
  • 사진

    포토파크닷컴, 위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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