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해문제 석유자원고갈 등을 감안하면 전기자동차의 개발은 필연. 그러나 기술적 난제가 쌓여 있다.
지난 4월 11~12일 서울올림픽 마라톤코스에서 벌어졌던 제2회 월드컵마라톤대회는 세계수준의 마라토너들이 참여, 큰 관심속에 경기가 치러졌다. 그런데 이번 마라톤대회는 경기 자체뿐 아니라 대회진행에 동원된 각종 기자재가 어느 때보다도 많아 이채로 왔다. 특히 무공해의 전기차를 표방한 진행 및 취재용 차량이 4대나 선보여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전기자동차가 국내의 마라톤대회에 나타난 것은 작년의 아시안게임 때와 금년 3월의 동아마라톤대회 때였는데, 이번에는 한국나이키에서 수입, 육상경기연맹에 기증한 전기자동차 1대와 기아산업에서 만든 3대가 모두 동원돼 본격적인 ‘무공해 마라톤시대’에 돌입한 셈이다.
이날 취재용 및 선도차 계시차 등으로 전기차가 나옴에 따라 선수들은 종전처럼 대회진행차량이 뿜어대는 배기가스를 마시지 않아도 되었다.
아직은 마라톤대회 같은 특수한 경우에 전기자동차가 이용되고 있지만, 외국에서는 여러 분야에 실용화되고 있다는 것이고 보면, 공해없고 소음없는 자동차시대가 가까와지고 있는 느낌이다. 과연 전기자동차는 어떤 차이며, 언제쯤 실용화될 수 있을 것인가.
축전지로 모터를 작동시키는 게 원리
전기 자동차는 말그대로 전기를 동력원으로 해서 움직이는 자동차다. 즉, 기존의 자동차가 가솔린으로 엔진을 움직여 가는데 비해 전기의 힘으로 모터를 작동시켜 차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가솔린 대신 전기를 쓰게 됨에따라 전기자동차의 구조와 작동방식은 가솔린 자동차와는 약간 다르게 돼있다(그림1참조).
전기자동차의 작동과정을 보면, 우선 충전기를 이용해 차내에 장착된 축전지에 직류전기를 충전시킨다. 축전지로부터 나오는 전기에너지는 제어장치(controller)를 통해서 모터(電動機)로 보내지고, 모터의 동력은 동력전달장치와 차바퀴에 의해서 자동차를 주행시키게 된다.
전기자동차의 구조를 가솔린차와 비교하면 가솔린탱크 대신에 축전지가, 기화기(氣化器, carburetor) 대신에 제어장치가, 기관(engine) 대신에 모터가 각각 사용되는 셈이다. 앞으로 어떤 전기 자동차가 나오더라도 차체구조는 가솔린자동차와 비슷하겠지만 기관 윤활 냉각 흡배기 연료계통이 없어지고 대신 모터 제어장치 전원계통이 가해지게 되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전기자동차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단연 축전지. 여기에다가 얼마나 많은 양의 전기를 비축할 수 있느냐에 따라 스피드 등판능력 등 자동차의 성능이 결정된다. 현재 쓰이고 있는 납축전지의 경우 5백~1천kg의 중량이 되어야 제구실을 할 수 있어 전기자동차의 가장 큰 취약점이 되고 있다. 가솔린차의 경우 50ℓ안팎의 연료탱크면 족하므로 상대적으로 수십배의 공간이 필요하고 엄청난 무게를 달고 다니는 셈이다.
아직까지 전기자동차가 특수용도에만 주로 쓰일 뿐, 일반승용차로는 별로 각광받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처럼 엄청난 축전지의 무게 때문이다.
제어장치는 가속페달에 의해 전압이 조작, 전동기의 동력제어가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전기자동차에는 클러치와 변속기가 필요없이 가속페달에 의해 주행을 조절하는 게 원칙이다. 한편 계기(計器)를 보면 가솔린차에는 없는 전압계와 전류계가 있다. 전압은 전동기의 회전수에 비례하며 전류는 토크(torque, 비트는 힘)에 비례하는 관계가 있으므로 이들 계기를 보면 주행상태를 알 수 있다.
에너지효율 높은 무공해차
이상과 같은 원리와 구조에 의해 움직이는 전기자동차는 가솔린차에 비해 장점과 단점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전기자동차의 가장 큰 장점은 무공해 차라는 점이다. 대기오염의 주범이라 할 배기가스가 전혀 발생하지 않으므로 특히 도시의 대기오염을 결정적으로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는 약 1백30여만대의 차량이 전체석유 소비량의 16%를 사용, 일산화탄소 질소 산화물 탄화수소 등의 유해가스를 내뿜고 있다.
배기가스와 함께 자동차가 유발하는 또 하나의 공해현상은 소음이다. 교통혼잡지역의 소음은 말할 것도 없고, 차안에 있는 운전자나 승객의 경우도 주행시의 소음은 안락함을 빼앗아가기 일쑤다. 시내버스의 경우, 대화에 곤란을 줄정도로 시끄러운 소음이 날 때도 있다.
그런데 전기자동차는 소음이 거의 없다. ‘윙’하며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나지막히 들릴 뿐 적막할 정도로 조용한 주행이 가능하다. 만약 거리의 차가 모두 전기차로 바뀌고 경적사용을 금한다면 차량이 넘치는 한낮의 도심지라 할지라도 조용하기 그지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전기자동차의 특징은 다양한 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으며, 에너지의 효율도 가솔린차보다 훨씬 높다는 것이다.
가솔린차의 경우 한정된 석유자원에 의존하고 있는데 비해 전기자동차는 수력이나 석탄화력 원자력 풍력 태양에너지 등을 모두 에너지원으로 할 수 있다. 요컨대 전기만 만들 수 있는 에너지원이라면 모두가 이용될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석유자원이 고갈돼가고 있음을 감안하면 다양한 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는 전기자동차의 특성은 커다란 장점이 아닐 수 없다.
에너지효율이라는 측면에서는 (그림2)에서처럼 전기자동차가 가솔린자동차에 비해 2배의 효율을 가지고 있다. 전기자동차의 경우 연료가 가진 원래의 에너지가 발전, 충전을 거쳐 최종적으로 모터를 작동시키는 데까지 오면 21%가 남는데 비해 가솔린차에서는 정제, 수송 및 급유과정까지는 비교적 양호하나 엔진관 전달기구에서 크게 떨어져 불과 11%의 효율에 그치고 있다.
운전하기가 쉽고 안전성이 높다는 점도 전기자동차의 장점이다. 운전조작은 바깥기온에 관계없이 스위치 1개로 확실하게 시동된다. 기아변속장치가 없으므로 조작이 간단하고 모터의 고장이 거의 없다. 안전성이 높은 것은 연료를 탑재하지 않으므로 가연물(可燃物)이 적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전기자동차는 구조가 간단하고 엔진의 진동이 없기 때문에 차량의 수명이 길다. 물론 고장도 적고 보수하기도 용이하다.
전기자동차의 유지비는 전력생산원가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가솔린보다 훨씬 쌀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기가 남아돌고 있는 데다가 한밤에는 싼 가격으로 여유전력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승용차는 아니지만 국내 전기차의 대표적인 차종이라 할 지게차(forklifter)의 연료비는 가솔린차나 디젤차보다 훨씬 저렴한 것으로 산출되고 있다.
전기지게차(대우중공업 제품기준)의 1일 전기소비량을 1천4백W, 가솔린지게차의 1일 가솔린소모량을 18ℓ로 잡을 경우, 연간연료비는 전기지게차가 42만원, 가솔린지게차가 3백8만원이 든다는 것(연간 3백일 사용시).
시속 80km에 불과한 최고속도
그러나 전기자동차에도 단점은 많다. 무엇보다도 차의 성능이 기존의 가솔린 차에 비해 뒤떨어진다.
차에 따라 다르기는 하나 보통의 전기차라면 1회 충전으로 1백여km 남짓 달릴 수 있을 뿐이며 최고속도는 약 80km 정도에 불과하다. 등판능력은 30%의 경사도 이상은 힘들고, 가속능력도 정지상태에서 시속 40km에 이르기까지 약 8초나 돼 기존차보다 2, 3초 늦다.
월드컵마라톤대회에 사용됐던 기아산업의 전기차는 가능주행거리 1백 20km에 최고속도가 시속 70km였으며, 한국 나이키가 수입한 영국제 마라톤 선도용 전기차(W & E Vehicles사 제작)는 최고속도가 시속 75km였다. 미국의 대표적인 전기승용차인 ‘실버 볼트’도 최대 속도가 80km 수준에 그치고 있다.
차량의 가격이 비싸고 축전지의 수명이 짧은 것도 큰 결점이다. 아직 대량생산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가격이 비싼데, 4인승 소형차라면 약 1만2천~1만5천달러이므로 한화로 1천만원이 넘는다는 계산이다. 앞에 나온 실버볼트는 5인승의 승용차인데 가격이 1만4천5백달러로 약 1천2백만원선. 가솔린차에 비해 2~3배는 비싼 셈이다.
한번 충전해서 운행할 수 있는 거리가 짧은 까닭에 충전을 자주 해야 하고 또 충전시간이 긴 것도 문제점의 하나다. 전기자동차의 축전지에 완전히 충전하려면 5~8시간이 걸리므로 활동중인 대낮보다는 심야시간을 이용해야 한다. 주행가능거리 등의 여건으로 미루어 이틀에 1회꼴로 5시간 이상 충전을 해야 하므로 가솔린차에 비해 훨씬 번거로운 셈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전기자동차는 가솔린차에 비해 뚜렷한 장단점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이 같은 특징을 살릴 수 있는 분야에서만 이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수용도에 폭넓게 이용돼
전기자동차는 마라톤이나 실내작업 등 저공해성이 요구되는 분야에 특히 바람직하며 구동방식이 간단하고 연료낭비가 적은 까닭에 자주 정차해야 하는 분야 예를 들어 우편배달차 같은 용도에 유리하다. (표1)은 전기자동차의 이용 가능한 분야가 예상외로 많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전기차의 발달과정과 국내외의 개발현황을 살펴보자.
전기자동차의 역사는 요즘 일반화된 가솔린차보다 오히려 더욱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초의 자동차는 증기자동차였는데, 1769년 프랑스의 ‘큐노’가 처음 만들었다. 전기자동차가 발명된 것은 1830년으로 독일의 ‘다이믈러’가 가솔린차를 만든 것보다 55년이나 앞선 때였다. 전기차가 실용화된 것은 1870년대로서 역시 가솔린차가 등장하기 전이었다. 당시만해도 내연기관의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으므로 비교적 구조가 간단한 전기차가 우위를 점하고 있었던 것이다. 1894년세계 최초의 자동차경주가 벌어졌는데 여기에 전기자동차가 참가했으며 1899년에 벨기에에서 전기자동차로 시속 1백6km의 스피드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내연기관이 빠른 속도로 발달하자 전기차는 관심의 대상에서 멀어지고 정체상태를 면치 못했다. 세계적인 자동차메이커들이 앞다투어 가솔린차의 성능개선에 나서면서 전기차는 상대적으로 퇴보해버린 격이 됐다.
전기자동차가 다시금 주목을 받게 된것은 근래의 일로서, 오일쇼크와 배기가스공해 소음공해 등이 심각하게 인식되면서부터다. 또 급격한 전자기술의 발달도 전기차의 개발을 각국에서 서두르는 한 원인이 됐다.
현재 전기자동차의 제작과 보급에서 앞선 나라로는 미국과 영국 일본 등이 꼽히고 있다. 미국의 전기자동차 현황을 조사한 한 자료에 의하면 승용차만 33종, 버스 15종, 트럭류 47종으로 돼있는데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은 종류의 전기차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영국에는 약 6만여대의 버스 우유배달 및 우편배달차가 전기차로 돼있어 어느 나라보다도 많이 이용하고 있다. 공장에서 짐을 운반하는 지게차의 경우는 50%가 전기차이고 이밖에도 구내자동차 일반차 유람차 등도 많다. 영국의 전기 자동차에 대한 제작기술은 세계 최선두로 평가되는데 세계최초로 대규모 생산라인(Bedford CF Van)을 가동하고있다.
일본에는 지게차 9만5천대 구내자동차 1만3천대 일반승용차 6백50대 유람차 5백대 등 약 11만대의 전기차가 보급돼 있다. 현재 11개 회사가 연구조합을 결성해 90년대에 1회충전주행거리 1백50km, 가격은 가솔린차의 1.5배 정도 하는 전기자동차를 개발할 계획이라고 한다.
국내 개발현황과 전망
국내의 전기자동차 역사는 1975년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연구용 전기자동차를 제작한 때로부터 비롯된다. 코로나 차체에 3백70kg의 납축전지를 탑재, 최고 속도가 시속 50km를 기록한 차였다.
실용적인 전기차의 등장은 대우중공업에서 만들어낸 전기지게차. 1978년 처음으로 개발, 시판과 수출을 했는데 현재는 대우 이외에도 인천조선 동명중공업 수성산업 등에서 전기지게차를 생산하고 있다. 전기지게차의 국내보급은 2,3천대 수준으로 15%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마라톤용 전기차량 3대를 제작한 바 있는 기아산업은 전기자동차의 연구·개발에 가장 열심인 기업으로 꼽힌다. 이는 기아산업이 봉고 베스타 등 차체가 승용차보다 큰 차들을 주로 생산해왔기 때문에 전기자동차에 관심을 쏟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5년 전부터 전기자동차를 연구 해오고 있는 기아산업은 비록 축전지 충전기 제어장치를 수입해왔으나 국내 최초로 국산 전기자동차를 만들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참고로 기아에서 제작한 마라톤용 전기차는 베스타의 차체에 7백52kg의 축전기를 탑재, 총중량이 3천kg짜리였다.
한편 효성스즈끼에서는 골프장용 전기차를 외국으로부터 주문받아 생산, 전량 수출한 바 있으나 현재는 중단상태에 있다.
자동차메이커는 아니지만 한국전력에서도 금년부터 전기자동차 전담팀을 구성, 의욕적인 조사·연구사업을 벌이고 있다. 전기자동차가 일반화되면 그만큼 많은 전기가 이용될 것이므로 한전측으로서는 새로운 수요를 개발하게 되는 셈이다.
앞으로 전기자동차는 과연 어떻게 될까. 전문가들은 공해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고, 석유자원이 점점 줄어들고 있으므로 전기자동차 혹은 새로운 자동차의 개발은 필연적이라고 보고 있다.
전기자동차가 특히 승용차로서 각광받을만큼 되려면 축전지 기술을 개발, 주행성능을 크게 향상시켜야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지금처럼 5백kg이 넘는 축전지를 싣는 한 소형승용차를 전기차화하기는 극히 어렵다는 것이다. 가능하면 작은 용량의 전지에 많은 양의 전기를 담는 에너지밀도의 향상이 지상과제인 셈이다.
축전지의 종류를 살펴보면 현재 많이 쓰이고 있는 납축전지는 40Wh/kg인데 비해 철·니켈 알칼리전지는 60Wh/kg, 니켈·아연전지는 70Wh/kg, 아연·염소전지는 170Wh/kg, 나트륨·황전지는 200Wh/kg 등으로 에너지밀도가 높다.
납축전지 이외의 축전지들은 가격이 비싸다든가 실용화 기술의 미흡 등 원인으로 아직 일반화되고 있지 못하나 조만간 에너지밀도가 높은 이들 전지들이 실용화된다면 전기자동차의 성능은 크게 향상될 것이 틀림없다.
전기자동차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기아산업기술연구소의 전형석과장은 “국산 전기차개발을 서두르고 있으나 우선은 밴(van) 종류의 차에 축전지가 탑재될 것”이라며 전기승용차는 90년대 말에나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레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