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부터 해가 진 후 저녁하늘을 바라보면 유달리 밝은 별 하나가 빛나고 있다. 이 별은 다른 별들에 비해 훨씬 더 밝아서 매우 독특하게 보인다. 이 별이 무엇일까? 바로 금성이다. 태양과 달을 제외하고 밤하늘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밝은 천체라는 금성이 지금 하늘에 떠 있다.
4일 태양과 가장 멀리 떨어져
금성은 지구 궤도 바로 안쪽을 돌고 있는 행성이다. 또 지구와 근접했을 때 가장 가까운 행성이기도 하다. 지구와도 태양과도 가깝다는 것이 이 행성을 유달리 밝게 만든다. 밝은 만큼 금성은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에게 매우 친숙한 별이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샛별이나 미의 여신 비너스 같은 이름이 바로 이런 금성의 모습을 대변해준다.
금성은 584일에 한번씩 지구에 가까워진다. 태양, 금성, 지구가 일렬로 늘어서는 현상을 내합이라고 부른다. 내합을 중심으로 그 전후에 최대이각이 있어 금성을 볼 수 있는 최적 기간이 발생한다. 최대이각이란 지구 안쪽 궤도를 도는 내행성과 태양이 이루는 각도 가운데 가장 큰 값이다. 이번 겨울에 금성이 내합이 되기 전에 맞이하는 최대이각이 된다.
지구에서 봤을 때 금성이 태양과 가장 멀리 떨어지는 최대이각은 11월 4일에 생긴다. 최대이각 때 금성은 태양이 진 직후 지평선 위로 약 40도나 떠오르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그리 높이 뜨지 않는다. 금성의 고도는 지난 7월부터 12월 말까지 20도 남짓으로 거의 일정하다. 사실 20도 가량이면 수성의 최대 고도와 비슷할 정도로 상당히 낮은 경우에 속하지만 금성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금성이 워낙 밝아서 고도가 낮더라도 쉽게 보이기 때문이다.
금성의 밝기는 이무렵 최고에 다다른다. 금성이 최대 밝기를 보이는 시기는 12월 9일로 -4.7등급에 이른다. 11월 금성의 평균밝기는 -4.5등급 가량으로 밝기가 최대일 때와 비교해서 별 차이가 없다. 그러므로 11월부터 12월 사이가 금성 관측의 최적기라 하겠다.
천체망원경으로 보는 금성의 모습은 11월 4일 최대이각일 때 반달 모양으로 보이며, 이 시점을 지나면서 점차 크기도 커지고 초승달 모양으로 바뀐다. 이런 금성의 위상변화는 극적이어서 1주일 간격으로 계속 관측해보면 상당히 드라마틱한 변화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금성 때문에 10년간 고생한 사나이
금성에 대한 수많은 일화가 있지만 그 중에서 금성과 지독히도 궁합이 맞지 않은 한 사나이의 일화를 살펴보기로 하자. 18세기 중엽 천문학에서는 지구와 태양과의 거리가 대단히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이미 티티우스 수열에 의해 행성들 사이의 거리비는 알려져 있었지만 그 기준이 되는 지구와 태양간의 거리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당시 지구와 태양간의 거리를 정확히 알아낸다는 것은 우주의 전부라고 할 태양계의 크기를 결정짓는 문제이기도 했다.
태양과 지구 사이의 거리를 측정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프랑스의 귈롱 르장티라는 천문학자는 남들과 다른 특이한 생각을 했다. 르장티는 금성이 태양의 가장자리를 지나가는 금성일면통과의 정확한 시간을 멀리 떨어진 두 곳에서 동시에 재면 거리 또한 정확히 알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금성과 태양간의 거리를 알면 저절로 태양과 지구와의 거리도 알 수 있으니까 그의 생각은 타당성이 있었다.
마침 운이 좋았는지 르장티가 살던 시대인 1761년, 무려 100여년 만에 금성이 태양의 앞면을 지나가는 금성일면통과 현상이 예정돼 있었다. 그로서는 이 현상을 절대 놓칠 수 없었다. 무려 100년만의 일이 아닌가!
유럽에서 가급적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날씨가 맑은 지역이 필요했다. 고심 끝에 르장티는 유럽에서 수천km 이상 떨어져 있으면서 날씨가 맑을 확률이 가장 높은 인도의 퐁디셰리로 갈 계획을 세웠다. 즉 유럽과 인도 두 곳에서 동시 관측을 계획한 것이었다. 여기까지는 일이 잘 풀렸다.
관측도 못하고 재산도 잃어
하지만 이때부터 시련이 닥치기 시작했다. 원래 인도의 퐁디셰리는 프랑스 땅이었지만 하필이면 그 무렵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을 시작해 퐁디셰리를 영국이 점령해버렸다. 프랑스 사람인 르장티의 배는 그곳에 정박하는 것조차 거부돼 버렸다. 그 바람에 관측을 전혀 할 수 없게 된 상황에 빠진 그는 100년만의 기회를 그냥 날려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낙심하지 않았다. 8년 뒤인 1769년에도 금성일면통과가 예고돼 있었으니까. 다시 유럽으로 돌아갈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던 르장티는 아예 인도에서 8년을 더 기다리기로 결심한다. 무려 8년 동안 그는 인도의 모든 기후와 각종 정보를 알아내 철저하게 준비했다. 하늘의 도움인지 퐁디셰리가 다시 프랑스 땅으로 되돌아와 주변 사정마저 그를 돕는 듯했다. 만반의 준비를 다한 이번에는 실패할 확률이 전무했다.
8년 동안에 걸친 그의 철저한 준비와 계산대로라면 가장 좋은 장소는 필리핀 마닐라였다. 그러나 르장티는 유럽의 다른 천문학자들에게 인도의 퐁디셰리에서 관측을 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떠나온 사실을 상기했다. 막판에 장소를 바꾸기도 탐탁지 않아 르장티는 계획대로 퐁디셰리에서 관측할 준비를 했다. 퐁디셰리 또한 마닐라만큼은 아니었지만 나쁜 조건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다시 금성일면통과일이 됐다. 8년을 기다린 바로 그날, 예상대로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맑았다. 르장티는 천문학사에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될 자신을 생각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이게 어찌된 일일까? 금성일면통과가 시작될 무렵, 그토록 맑던 하늘에 갑자기 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그가 그토록 고대하던 금성일면통과는 결국 구름 속에서 진행되고 말았다. 당연히 그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무려 10년에 걸친 르장티의 도전은 이렇게 실패하고 말았다. 첫 번째는 전쟁 때문에, 두 번째는 구름 때문이었다. 그는 정말 운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아무런 소득도 없이 고생만 하다가 11년 반만에 다시 고향에 돌아왔을 때 그는 더욱 낙담하지 않을 수 없었다. 11년 동안 연락조차 되지 않았던 르장티를 죽은 것으로 생각한 친척들이 그의 재산을 모두 다 나눠 가져 버렸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재산을 되찾을 수 없었고 완전히 무일푼이 되고 말았다.
성공할 수 없었던 노력
과연 르장티는 운이 없는 사람이었을까? 10년 동안 수천km나 떨어진 타향에서 고생하며 노력했으나 다른 요인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그는 분명 불운한 사람이긴 하다. 그러나 설사 관측에 성공했더라도 르장티는 절대로 원하던 관측자료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금성은 대기가 두텁게 덮여 있어서 그 경계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즉 금성과 태양이 만나는 정확한 시각을 측정하는 것이 단순한 관측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금성과 태양간의 정확한 거리를 얻기란 그의 방법으로는 어렵다.
만약 당시 관측에 성공하고도 바라던 결과를 얻지 못했다면 르장티는 훨씬 더 낙담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