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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 어긋난 팀플레이, 난임의 과학

    정자와 난자가 천신만고의 노력을 기울여도, 여러 이유로 생명이 탄생하지 않을 수 있다. 어려울 난(難)에 임신할 임(妊), 우리는 이를 ‘난임’이라 부른다. 현대 과학은 어떻게 난임을 극복하고 새 생명을 선물할까. 난임 극복을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차병원에 찾아가 이야기를 들어봤다.

     

    istockphoto, 박주현

     

     

    2023년 전 세계 성인 6명 중 1명은 난임 

     

    꽉 닫힌 회색 통의 뚜껑을 돌리자, 하얀 연기를 내뿜는 액화질소가 퍼져 나왔다. “실제 난자를 냉동하는 방식입니다.” 12월 4일, 서울 강남에 위치한 차병원 기초의학연구소에서 만난 윤숙영 기초의학연구팀장은 긴 슬레이트를 꺼내 들며 기자에게 난자 보관 기구를 보여줬다. “난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본적인 발생학을 연구하는 것이 제 일이죠.” 그는 말했다.

     

    난임은 피임을 하지 않고 정상적인 부부 관계를 이어갔음에도 1년 이상 임신이 되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를 질병으로 정의한다. 2023년 WHO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성인의 약 17.5%가 난임을 경험하며, 이는 성인 6명 중 1명에 해당하는 수치다. 

     

    우선 난임은 크게 남성 난임과 여성 난임으로 나뉜다. 남성 난임은 정자 문제로 발생한다. 정자의 수가 적거나 운동성이 떨어지는 경우, 정자의 형태가 비정상적인 경우, 또는 특정 유전자의 결함이 원인이 될 수 있다. 여성 난임은 그 원인이 더 다양하고 복잡하다. 먼저 난포가 성숙하지 않아 배란이 이뤄지지 않는 난포 성숙 장애가 있다. 수정에 필요한 난자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설령 수정이 이뤄진다 해도 자궁 내막 문제로 인해 임신이 실패할 수 있다. 자궁 내막이 지나치게 얇으면 수정란이 착상되지 못한다. 

     

    노화된 난자 역시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나이 든 난자는 염색체 이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고, 이로 인해 정상적인 수정란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이렇게 만들어진 비정상적인 수정란은 난임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이상 염색체는 기형아 출산의 주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윤 교수의 이야기를 듣던 중, 기자는 묵혀뒀던 질문이 불쑥 떠올랐다.

     

    “정상적인 수정란이 만들어지지 않는 건 남자와 여자 중 누구의 책임인가요?”

     

    당시 취재 중이던 기자는 임신 14주 차였다. 2주 전, 다운증후군 선별 검사에서 고위험 판정을 받았고, 곧바로 융모막 검사를 통해 태아의 염색체 이상 여부를 확인해야 했다. 다행히 1차 검사에서 정상이라는 결과를 받았지만,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5일은 기자에게 감당하기 힘든 불안을 안겨줬다. ‘혈압이 높은 게 문제였을까?’ ‘임신 초반에 모르고 술을 마셔서 그런가?’ 스스로를 끊임없이 탓했다. 불안감에 찾아본 인터넷 글에서는 난임과 기형아 출산의 원인이 여성에게 있다는 글이 많았다. 그래서 전문가에게 묻고 싶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이었지만, 엄진희 차병원 난임연구실장은 기자의 이야기를 듣고 차분히 답했다.

     

    “난임과 수정란 이상은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 여러 다양한 원인 때문에 수정란에 문제가 생기는 건 누구의 잘못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어요. 이런 불확실성 탓에 여전히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많죠. 다만 원인이 명확한 난임이 있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치료법이 발전해 온 겁니다.”

     

    정자와 난자 만남 주선하는 3단계 시술법

     

    엄 실장의 말처럼, 난임 치료가 가능한 이유는 현대 의학이 난임의 다양한 원인을 밝혀냈기 때문이다. 현대 의학에서는 난임의 원인에 따라, 개입하는 깊이에 따라 난임 치료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가장 기본적이고 간단한 방법은 ‘인공 수정(IUI)’이다. 인공 수정은 정자의 수가 적거나 운동성이 낮을 때 사용되며, 운동성이 좋은 정자만을 선별해 가느다란 관으로 여성의 자궁에 직접 주입하는 방식이다. 난자와 잘 만날 수 있도록 정자에게 지름길을 제공하는 셈이다. 

     

    정자와 난자가 아예 만나지 못하는 상황도 있다. 나팔관이 막혀 정자가 난자를 만나러 가는 길이 막힌 경우, 또는 여성이 정자를 공격하는 면역 항체를 가진 경우다. 이때 쓰는 방법이 ‘체외 수정(IVF)’이다. 정자와 난자를 시험관에서 수정시킨 뒤, 잘 수정된 배아를 자궁에 이식한다. 정자들과 난자의 직접 만남을 주선하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경우에는 정자를 직접 난자에 넣어줘야 한다. 이것이 ‘난자 세포질 내 정자 직접 주입(ICSI)’ 기술이다. 이 방법은 단일 정자를 난자 세포질 내에 직접 주입해 수정시키는 기술로, 정자의 운동성이 아예 없거나 형태가 비정상적인 경우, 혹은 IVF에 실패했을 때 주로 사용된다.

     

    1. 냉동 난자는 여성의 생식력을 보존하고 원하는 시기에 임신을 계획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이다. 최신 냉동 기술은 난자의 질과 생명력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생애 계획의 유연성을 위해 이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2. 차병원의 한 연구자가 난자와 정자를 결합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체외 수정(IVF) 기술의 핵심 단계로, 세포 배양 환경에서 정자가 난자에 침투하도록 유도하는 과정을 거친다.

     

    수정은 물론 착상도 난임 연구자의 몫

     

    실험실에서는 실험에 사용하는 난자 채취 기구들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윤 팀장은 자리에 앉아 긴 호스와 연결된 스포이드를 들어 시범을 보였다. 호스 한쪽 끝을 입에 물고 공기를 흡입하며 난자를 하나씩 수집했다. 정자는 인위적으로 채취해 사용한다. 정자는 실험 목적에 따라 채취 장치나 협조를 통해 수집된다. 이렇게 채취된 난자와 정자는 세포의 특성을 분석하거나, 난임 치료 및 관련 연구에 활용된다.

     

    착상을 돕는 치료도 있다. 착상은 수정란이 자궁 내막에 성공적으로 붙어 임신이 시작되는 과정이다. 수정란은 3~4일 동안 난관을 따라 이동하며 세포 분열을 통해 내부에 세포 덩어리가 있는 구형 구조, 포배로 변신한다. 자궁에 도착한 포배의 영양막 세포는 자궁 내막 세포 사이로 침투한다. 자궁과 포배를 단단히 고정하고 혈관을 연결하기 위해서다. 이제 착상 끝. 본격적으로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받을 수 있다. 사실 임신 초기의 가장 중요한 단계가 착상이다. 수정된 포배가 자궁에서 착상되지 않으면 그저 월경으로 배출되기 때문이다. 

     

    착상 실패의 주된 원인은 수정란의 질이 낮거나 자궁 내막이 착상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체외 수정 과정에서는 유전자 검사(PGT-A, PGT-M)를 통해 건강한 배아를 선별하는 방법이 있다. 자궁 내막의 두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호르몬 치료를 진행하거나, 자궁 내부에 미세한 생채기를 만들어 내막을 재생시키고 면역 반응을 자극하기도 한다. 다른 치료는 다 이해가 됐지만 자궁에 생채기를 낸다는 방법은 이해가 가지 않아 갸우뚱거리던 기자에게 윤 교수는 “적당한 염증 반응은 자궁 내막의 착상 수용성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염증 반응은 혈류와 조직 재생을 촉진해 배아가 착상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때문이다. 수정과 착상, 각각의 과정에서 정교한 기술과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이유다.

     

    난임 치료의 종류

    Shutterstock, 박주현

     

    원하는 이는 모두 잉태할 수 있도록 

     

    “매년 약 1만 2000명의 아기가 차병원의 난임 치료를 통해 태어나고 있어요. 결혼 연령이 늦어지면서 난임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도 계속 늘고 있죠.”

     

    차병원을 찾는 환자 수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엄 실장은 이렇게 답했다. 난임 연구의 중요성이 최근 들어 더욱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초혼 연령이 상승하면서 건강한 정자와 난자가 적어지고, 출산 연령이 증가해 임신과 출산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임신 중인 기자에겐 더 와닿는 말이었다. 난임에 대비해서 가능한 한 빨리 임신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노산은 난자의 질이 떨어져 임신이 어렵다더라” “노산으로 태어난 아이는 ADHD가 많다더라”. 주변 사람들이 걱정을 담아 한마디씩 던진 말이었지만, 그 책임의 대상인 여성이기에 왠지 모를 억울함이 느껴졌다. 

     

    여성의 나이가 태아의 건강을 책임진다는 것이 야속하지만 이는, 난자 연구가 정자에 비해 덜 이뤄지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난자는 정자에 비해 연구를 위해 쓸 수 있는 수도 매우 적고 채취 과정의 윤리적 문제도 있다. 또 예로부터 수동적 존재라는 난자의 이미지는 연구에 대한 필요성을 축소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엔 난임 기술 개발을 위해 ‘난자’ 자체에 집중하는 연구가 상당히 많아지고 있다. 정자보다 훨씬 복잡한 난자를 연구할 수 있는 최신 기술도 밑바탕이 되고 있다. 

     

    윤 팀장은 “출산 연령은 증가하지만 임신하고 싶은 여성들은 여전히 많다”며 “이런 추세 덕분에 난자 노화로 인한 기능 저하를 극복하는 것이 최근의 연구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대표적으로 차병원은 노화로 인해 기능이 저하된 난모세포에 항산화제를 적용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항산화제는 세포 내 산화적 스트레스를 감소시켜 세포 기능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어 난모세포의 질을 향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방법이 개발되면 노화로 인해 난임을 겪는 환자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 

     

    난임 연구는 노화 이외의 이유를 가진 사람들에게도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손상된 난소 조직을 재생시키려는 줄기세포 요법이나, 항암치료의 영향으로 난소의 활동성이 줄어든 여성을 위한 연구가 발표되기도 했다. 윤 팀장은 자신의 일에 강한 자부심을 드러내며 말했다. 

     

    “잉태를 원하는 모든 이는 잉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저희의 일이니까요.” 

     

    김미래

    차병원 생식의학 및 불임유전체 연구센터는 습관성 유산, 자궁내막증, 남성 불임, 다낭성 난소 증후군 등 불임과 관련된 유전체를 발굴하고 그 기능을 연구한다. 사진은 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엄진희 차병원 난임연구실장, 박미선 기초의학연구팀 연구원, 김정혜 기초의학연구팀 연구원, 윤숙영 기초의학연구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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