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을 수학과 사랑에 빠트리다
_김민형 (영국 옥스퍼드대 수학과 교수)
서울대 조기졸업 1호, 미국 예일대 전액 장학생, 한국인 최초 영국 옥스퍼드대 정교수.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수학자로 손꼽히는 김민형 영국 옥스퍼드대 수학과 교수 뒤에는 늘 ‘기록’이 따라다닌다. 그런 그가 또 한 번 기록을 세웠다. 그가 작년 하반기에 낸 책 ‘수학이 필요한 순간’이 2018년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팔린 대중과학서 3위에 오른 것이다. 스테디셀러가 많은 자연과학 분야에서 수학을 주제로 한 신간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건 이례적인 일이다. 문과생조차 수학을 사랑하게 만드는 그의 파워는 뭘까.
‘지능이 굉장히 높은 여자는 왜 대부분 지능이 낮은 남자와 결혼할까요?’
김민형 영국 옥스퍼드대 수학과 교수가 지난해 9월 한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 던진 질문은 인터넷에서 큰 화제를 낳았다. 대부분의 사람은 지능이 ‘굉장히 높은’ 여자보다 지능이 낮을 수밖에 없다는 ‘확률론’을 이해하기에 앞서, 이런 질문도 수학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신선함에 매료됐다.
김 교수는 2000년 수학사의 난제로 꼽히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중 ‘정수계수 다항식의 해가 되는 유리수’를 풀 수 있는 혁신적 이론인 ‘산술적 위상수학 이론’을 제시해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런 수학자가 예능감까지 갖춘 건 왠지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그 바람에 불쑥 질문이 튀어나왔다.
“혹시 스스로 천재라고 생각하시나요?”
“전혀요. 사실 천재라는 개념 자체가 수상한 개념이기도 하죠.”
노트북 화면 속 그는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기자가 보기에는) 천재처럼 말했다.
수학하는 즐거움 함께 나누고파
3월 15일 오전 11시, 캐나다에 방문 연구 중인 그를 스카이프 화상채팅으로 만났다.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아이처럼 해맑은 미소가 그의 천재 이미지를 더욱 강화시키는 듯 했다.
“저는 수학적인 개념을 대중에게 설명하는 소위 대중화 활동이라는 게 연구 활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가 연구 활동에 큰 전환점을 마련해주기도 하거든요.”
그는 틈틈이 강연과 집필 활동을 이어가는 이유를 재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수학을 대중에게 전파하겠다는 사회적 의무보다는, 수학으로 세상을 배우는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목적이 크다는 것이다. 대화 중에 듣는 이가 정말 신기하다는 표정을 하거나, 새로운 걸 이해한 눈빛을 보이면 더 큰 즐거움을 느낀다고. 그는 후속작으로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아르키메데스에 대한 책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당시의 과학과 문화가 어떤 상관관계가 있었는지, 지중해 문화 속에서 과학계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연구 중이다.
수학의 영향력 앞으로 더 커질 것
“그나저나 기자님은 대학에서 무슨 공부를 하셨죠?”
김 교수는 그동안 만난 인터뷰이 중 가장 질문이 많은 인터뷰이였다. 질문은 인터뷰어인 기자의 전유물 같은 것인데,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얼떨결에 대답을 했다. 전자공학과에 들어가 통신에 흥미를 느꼈으나, 전자기학 전공서에 나오는 수식들을 보고 머리에 쥐가 나 전공을 깔끔하게 포기했노라고.
“그럼 수학적 통신이론을 공부하셨어야 했는데. 굉장히 연구가 활발한 분야거든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자를 포함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부분 스스로 수학을 못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을 매우 안타까워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성격상 본질을 이해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기본적으로 수학에 대한 기초실력이 뛰어나고 집중력도 높은 편이죠. 그런데 희한하게 수학에 겁을 많이 먹는 것 같아요.”
그는 “세상을 이해하는 데 수학의 중요성은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며 “수학을 전공한 연구자들이 학계가 아닌 다른 직업군으로 진출하는 것을 스스로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영국에서는 박사과정을 우수하게 마친 수학 전공자들도 기업에 취직하는 경우가 꽤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 가지 길에 얽매이지 말고 진로를 자유롭게 생각해보라는 조언에서 후배 수학도들에 대한 그의 진심이 느껴졌다.